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옛날 이야기

나.남편. 어린날.

우리들 이야기 2021. 1. 9. 15:47

 

남편추억

추억ㅎㅎ<삼촌과 조카> 

옛날에는 며느리와 같이 아이를 낳았기에 삼촌보다 한 살 어린 조카가

더 어른스러웠고 장손인 조카는 착하기도 했지만 공부도 잘하여 할아버지

귀염을 독차지 하였고 시골이라 농사를 짓고 소를 먹이는데 꼴 베고

논두렁도 만드는 것을 조카가 잘하니 데리고 다니며 시키었다지요.

식구가 많아 물지게를 어깨에 메고 나무를 잘해서 이래저래 할아버지 귀여움을

받았다니 타고난 천심인가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조카는 삼촌과 나무를 

하러 가서 조카는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짐을 해서 지고 내려오는데 몆 가지

나무를 지고 오다 쉬면서 무거워서 못가니 내 것도 지고 가라 하여 나뭇짐은

소복했지만 삼촌은 빈 지게를 지고 달음질쳐 내려갔답니다.

삼촌이 친구들과 싸우는 걸 보면 조카가 달려가서 한편이

되어주었고 삼촌과 조카 중학교를 들어가는데 조카는 학격 했지만 

삼촌은 떨어져서 먼데 있는 학교 후기로 갔으며 형편이 어렵다고

가지 말라는 고등학교를 돈 안들이고 가려 먼저 국비생으로 들어간

선배하숙집에서 하루를 보내며 시험을 치러보려 하였답니다.

그 선배가  멋있고 잘생기어 여자들이 좋아했나?.

그날 밤 두 여자가 찾아왔는데 선배는 관심도 안 두고 함께 간 동료들 2명과

막걸리 코가 삐뚤 어 지게 마시는데 한쪽에서는두 여자가

머리채를 잡고 싸웠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선배는 내버려 두었으며 

중 3 학년 술을 처음 마시는 학생들 그냥 취한 채로 잠들었고 취기가

남은 채로 다음날 시험을 보는데 며칠 전 라디오에서 대통령이

해외 가는 곳을 특보로 나오는데 마침 그날 시험문제에 대통령

방문한 나라 이름이 나와서 운 좋게 시험을 잘 치렀답니다.

선배네 집에 합격자 발표 나올 때 까지 있을 수 없고 또 시골과 서울의 열차 

차비 아끼려고 누나가 서울에서 양장점 디자이너로 있길래

그곳에 묵으려고 했는데 거기도 누나들 3명이라 잠잘 곳이 없어 

다시 선배네 집으로 왔으니 측은한 어린 중학생 마음 보이네요. 

그곳에도 선배 여자가 찾아와 할 수 없이 아는 친구 따라 그 방에

신세를 지고 다음 날 합격자 발표에 이름이 나와서 좋았지만 이제부터

어떻게 하나  어린 마음이라 두려웠고 국비생 시험이라 20대 1인데

합격해서 기뻤지만 아버지 사업실패로 어려운 것을 알기에 과외를

하면서 먹는 것은 해결되었고 그 어려운 고등학교를 조카는

국비생으로 들어가 2학년이 되었는데 삼촌은 일반으로 1학년.

먹는 것도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 공부하기 위해서는수업료가 문제라 

과외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가진 적이 남편에게도 있었답니다.

서울에 있는 학교 간다면 유학이라고 하던 시대 입이라도 해결

하려고 국비생이라 돈은 안 들어가지만 한참 때 먹는 것 부실해서

실컷 먹고 싶어 중학생을 가르치었다는데 아버지는 일찍 죽고

엄마는 나가고 할머니가 키우다가 작은아들이 살림을 가지니 그 집에

손자를 데리고 들어갔다는데 그때만 해도 시집살이하던 때라

며느리가 조카를 키우면서도 눈치 보던 때기에 할머니 손자 사랑은

끔찍했기에 공부를 가르치다 선생님! 먹을 거 뭐 드시고 싶으세요?

묻고 집에 있는 거 가져오는 게 아니라 남이 가게 가서

훔쳐 와 얼마나 잘 훔치는지 들키지도 않아 잔뜩 가져왔답니다.

마트에서는 머 사러 온 척하다 다른 손님하고 물건을 팔면 

그사이 가져오기에 일찍 오는데 군고구마 먹고 싶다면 한참 걸려야

한다며  군고구마는 주인이 화장실 갈 때를 이용해서 훔쳐 오는 것이라

오래 걸린다니 먹고 싶은 욕구에 모르는 척했다는데 생각하니 공범.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잡히면 할머니가 간단하게 합의 보아 나와서 

다시는 안 해야 하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또 하고 또 하고 훔치는

데는 도가 터서 그때는 배고픈 시절이라 한두 사람이 그런 게 아니고 

좀 도둑이 많을 때라 그러려니 하며 합의도 쉽게 보았다지요.

옛날 좀도둑이 세월 타고 지금은 큰 도둑으로 이익이 되는 거라면 

무어던지 서슴지 않고 힘 있는 자들은 큰 도둑이라도 빠져나가니

공평하지 않은 세상 과외가 학원으로 머리를 돈 주고 사는 시대라도 

여전히 배고픈 사람들이 있어 허기를 달래려 작은 빵하나 훔치고서도

감방을 가야 하나 힘없고 작은 이들이 도둑을 못 면하고 형편 따라

사람은 변한다니 잘 훔치던 그 애는 지금 죽었는지 살았는지 잘되어 머 장관

하는지 사장이 되었는지 아부를 잘해서 사람 들을 잘 꼬시는지 여전히 

도둑질하는지 궁금하지는 않아도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의 한 폐지래요.

누나가 양장점 해도 삼촌 동생 돈이 많이 들어가 해결 못하니 1년 후에

집에서 내려오라는 통보를 받았답니다.

그때 버티고 있었으면 지금 군인연금이 제법 많을 텐데 한 살 더 먹은 삼촌

때문에 늘 조카는 손해를 보았고 어른 들 말을 거역 못 하는 

조카는 고등학교를 한 학기 남겨놓고 삼촌 때문에 함께 포기 했다 합니다.

그때만 해도 체면으로 살면서 실속이 없었던 어른들 시대 한참

클 나이에 배고픔도 참아야 했고 어른들 말이 법이 되어 옳은 말 하면

바른말 한다고 흉보던 시절 인천 애들이 시골애들 서울에 와서 공부 

한다고 때리면서 빵을 사달래서 늘 배고팠는데 한번은 아는 선배가 그럼 

체육관 다니면서 운동 배우라 해서 권투를 잘하였는데 국가대표로 시험을

보려면 외국을 가야 한다니 그때만 해도 비행기표를 개인이 사야 한대서 

돈이 없어 그냥 권투를 포기했는데 학생들은 속없이 권투 잘하니까

다 붙어 다녀 똘만 이들이 많았고 이래저래 속상한데 인천 애들이

껍죽거리니 화가 나서 다리를 걷어찼는데 한 학생이 다리가 부서졌지만 

그때만 해도 큰 사고 없이 지나쳐 버렸답니다.

법보다 주먹이 먼저이고 인권을 중요시하지 않는 후진국 고등학교를

졸업 못 하고 조카는 속이 상해 집으로 내려오지 않고 그때

고모부가 어느 회사에 간부로 있어 그곳에 취직해서 돈 벌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고모부가 병이 생겨서 회사를 그만두어 아버지를

돕게 되었다니 참 가난과 싸우며 마음대로 공부도 못하고 취직은 했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참 어려운 시대 기구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70이 넘어 지금은 애들이 주는 생활비로 살지만 내가 온전하지

않아 주방장이 되어 나의 손 발이 되었으니 그때 아버지 동네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모른 척했더라면 남편 인생은 군인연금으로 땅땅거리며 

아이들에게 큰소리치는 아빠가 되었을 텐데 한 생을 살면서

웃음을 잃지 않는 성격이라 편하다 하여 내 친구들과 만나 옛날이야기도

하고 운동해서 나이보다 청년에 가까운 건강한 모습이랍니다.

남편이 우연히 인천 사는 고등학교 동창생을 아는 교수를 통해서 알게 되어 

인천에 있기에 만나러 갔다가 5년 전인가 그때도 인천에 사는데

남편이 이름을 대니 반갑다고 찾아왔는데 당뇨병을 앓고 있으며 

빼싹 말라서 한쪽 다리를 절고 있길래 물어보니 옛날 고등학생 때 다친 다리

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고등학교 때 남편이 걷어찬 다리였다고 합니다.

미안하다 하니 괜찮다며 웃기는 했지만 마음이 걸리었고 

그러고 보니 마음은 청춘인데 하나둘 모습이 늙어가며 세상과 이별한 

동창들이 많아지고 있다니 지금 그 동창도 살아있는지 모르겠지만 남은 인생

탈 없이 잘살기를 바랜다며 옛날에도 이런 이야기는 들었는데

조카딸과 여동생이 오니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나 그 시절의

이야기 재미있어 듣다 보니 남편의 이야기가 옛날의 좌화상이었습니다.

처음 듣는 얘기라며 말도 안 되는 짓을 할아버지가 했다고

아니 삼촌 할아버지는 일반학생이라 돈이 들어 가지만 국비생인 외삼촌을 

왜 희생시키었냐고 조카딸이 집에 다가도록 외할아버지 밉다고 했답니다.

통행 금지가 있고 부족한 속에도 머리만 좋으면 배울 수 있기에 70이 넘은

사람들 이야기 그들이 씨앗을 뿌린 건데 거두지 못하고 하나둘

안보이니 60년대 그때만 해도 고등학교나 대학은 아무나 못 갈 때지만

지금은 온라인 시대에서 그 시절의 추억이 되었답니다.

 

 

나의 이야기

강추위

도랑물 모여진 작은 냇가 보를 막은 아이들의 보땜

꽁꽁 얼어붙은 빙판 위 꼬마들 썰매는 달리고

토기 털 귀마개 알록달록 뜨개질한 벙어리 장갑 끼고

매서운 바람 코가 빨개져 신나게 돌면서 썰매 타던

옛날의 어린 시절 그때 낭만이 동심의 겨울놀이

요즘 시대 맞춰보면 참 보잘것없는 하찮은 이야기지만

우리의 동심은 하나도 보탬없이 살아온 그 때의 현실

추워도 냇가에 얼음 얼기를 기다리며 한겨울 재미나게

보내던 그 작은 보땜 돌멩이로 던져보고 두껍게 얼은 

냇가에서 남자애들은 썰매타고 여자애들은 손잡아주며

미끄럼타던 놀이도 남녀 구별하던 우리의 어린시절

 

 

정성

나무 홈을 파서 돌담 사이로 연결되어 함석

다라에는 물이 항상 철철 넘어 동네 사람들은 우리 보러

부잣집이라 해서 부잣집 딸인 줄 알았는데 그래서 어린애라도

구차한 짓은 안 하고 있는 척하며 재수 없었던 아이

옛날에는 장독대를 장광 이라 부르고 옆에는 손질 안 해 준

상나무 대추나무가 잎이 떨어지면 장독대가 지저분했지만

물로 씻어내어 멋대로 핀 맨드라미 수국으로  장독대는 환했다.

동네 총각들 밤이면 회 파람 부르고 어둠이 내려오면

산마루에서 소쩍새 울면 국화무더기 혹시 꽃 필래나?

어느 시인의 시를 옴 조려 보기도 하였다.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짓던 시대 기우제를 지내면 과학으로

풀어보면 말도 안 되지만 정성이 하늘에 닿았나 빗방울이 몇 개 던졌다.

 

사진

운동회가 큰 행사였던 그시절 추석 명절 끝에 해야

따로 음식을 안 만들어도 된다며

주로 추석 명절 뒷날에 운동회를 하였는데 운동하는 날

사진사 고모부께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어 집마다 전달하였다.

한동네에 사는 외사촌 집 나이가 같은 외사촌들

고모란 사람이 자기 딸보고 너는 왜 이렇게 못난 애와

사진 찍었냐고 하였는데 지금까지

잊지 않는 것은 고모가 조카딸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때

옛날에는 먼 친척도 가까이 지냈기에 할아버지의 외사촌 내 사촌

형제인데도 구정이면 꼭 인사하러 찾아오시었어니

겨울방학과 명절이 함께 끼어서 할머니 따라 그 할아버지 댁 놀러 갔는데 

할아버지 딸 늦동이 나와 동갑내기 아줌마가 있었다.

저녁에 옛날 말로 처녀총각 남녀가 모여 윶 놀이한다고 노래 부르고

오락하면서 넓은 방 찾다 보니 불이 안 들어와 방바닥은 차가운데

이십 명쯤 되는 체온의 열기가 방안은 훈훈 모두 처음 보는 얼굴이니까

아줌마가 인사를 시킨다.

그때 한 총각이 노래를 부르는데 잘 부르고 가수 지망생이라지 

얼굴도 미남이고 키도 크면서 멋진 남아 자꾸만 눈길을 주는데 수줍어

안본척 하면서도 뒤통수만 보였나?

내숭이 밥먹여주던 그때 함참후에 라듸오서 신청 곡과 희망곡

음악 선물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을 때 놀다가 집에 들어오니까 

라듸오서 노래 선물이라 하며  내 이름이 나왔다는데 아 그때 그 친구였구나.

주소도 모르고 전화도 없을 때라 인사도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간 다음

아쉬운 생각이 쬐끔 나지만 지금 가수가 되었을까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궁금하지만 찾을 길이 없고 아니 찾고 싶지도 않다.

하찮은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 추억은 늙지않나보다. 2006

 

 

반딧불

모기의 서식지 모깃불이 메카 했지만

반딧불은 숲 풀을 쉬면서 날던 여름밤
더웠지만 그때의 시절이 추억이 될 줄이야

밀 때 방석을 마당에 깔고 전기가 없던

시골 캄캄한 밤하늘 보노라면 유난히 그때의

별들은 반짝이었지 축축해서 일어나보면

밤이슬이 적시었는데 꼼짝도 하기 싫어

그래도 그냥 별과 놀았으니 저 별은 너 의별

저별은 나의 별 흥얼흥얼 반딧불로 떨어졌나?

그 옆에 반딧불이 함께 자고 있었다.  2006

 

 

그 집

겹집이라고 식구들이 많아 방이 많았더라

여자들이 바지란 하여 널 직한 마당에는 항상 깨끗하였고

억센 시누이가 있어 뒤뜰은 반듯한 돌을 쌓아 이쁜 장독대

초가지붕 벽은 황토로 매끈하게 치장하고 눈에 들어오는

옛날 문화가 그곳에서 숨 쉬는 것 같았는데 고추밭은

고염 나무를 젖 부쳐 감나무로 바뀌어 여름이면 푸른 열매

가을이면 황금색으로 주렁주렁 모여 달콤한 감이 침을 삼키게 하여

한 개를 따서 소매 끝에다 씩 닦아서 한입 크게 비어 물면

새콤달콤 떫은 그 맛이 인생의 맛이었는데 초가집은

보이지 않고 감나무밭은 버섯밭으로 사람이

유행 따라 시대가 변하였어도 그곳에는 반듯한 초가집이 보인다.2006

 

 

마당

전에는 집집마다 마당 두 개가 있어 안마당은 곡식 널고

뒷 마당은 놀이터로 부르기도 하고

대문 밖에 있으면 바깥마당은 동네 아이들 마당이었다.

돌멩이로 금긋고 뜀박질하는 동네 아이들 마당이지만

나는 한 번도 이기지 못한 바보였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속이지 않으면 못사는 시대지만 그때는

이익보다는 체면을 지키는 게 위에 있었나?

그래서 믿음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안 들어와도 찾지 않은 것은

때가 되면 누군가 밥을 먹이고 데려다 잠도 재워 주겠지.

믿는 마음이 불안하지는 않았는데 시대가 변하면서

살림이 나아지니 서로가 경계하며 믿지 못하니 작은 일도

의혹부터 생기는 살벌한 이웃이 되고 아이들이 모여서 놀던

마당은 애들이 보이지 않고 올망졸망 모여 사는 정다운

동네가 없어지고아파트란 덩챙이 큰 빌딩이 해마다 살기 좋은

내부 디자인을 하면서 사람들은 그 안에 다 갇혀있으니

옛날에 모이던 마당은 누구네 마당이 아닌 아파트 공원이란

이름이 붙으며 놀이기구 건강을 위한 스포츠 기계

운동장으로 누구나 그런 곳을 선호하고 옛날 정이 넘치던 마당은

찾을 수가 없으니 세월이 빨리 변했는지 과학이 세월보다 앞서갔나?

시멘트가 아닌 흑마당 빗자루로 쓸어내면 돌멩이가 듬성듬성

모든 이름이 마당 안에 가득해 안마당은곡식  바깥마당을 뒷마당

어른들은 그때도 아이들이 노는 마당을 만들었더라.2007

 

 

 

개근상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은 생활이 학교 가는 거였는데

공부상은 어려우니까 개근상이라도 상장을 받고 싶었나?

친구 그네를 밀어주다 넘어져 그네 바퀴 나사에다 뒤통수를 갈 켰다.

그때는 몰랐는데 밤새 열이 나더니 목에 종기가 생기어

병원도 멀 은 시골애는 버스 타고 10km되 는 병원 가서 목 수술했다.

그때는 심지를 박아 염증을 막던 시대  6년 개근상은 물거품이

되었으며 날마다 병원 가면서 15일 동안 결석을 했으니 지금도

목에는 두두룩한 흠이 나 있으니 요즘 의술이라면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왜 그리 무서웠던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상복이 없던 애였나 개근상이 날 라가 버린 그때가 나 어릴 때의 이야기다. 2012.

 

그때

정월 초사흗날 하얀 눈이 소복히 쌓인 거리 

건너마을 가는길에 눈속에 백환짜리 가 보여서 

꺼내보니 십환 차리도 석장이 있어 합치면

만 삼천환  한 친구가 정월달에 돈주우면 부정타고 

일년동안 액운이 온다고 어른들이 그랬다 해서

다 그돈을 눈속에 넣어놓았지.

참 어이없는 그때 주어들 은 말이 그대로 법이

되는 시대 요즘애들에 비교하면 참 멍청한 그애

화폐 개혁하기 전 그때는 몰랐는데  어른이

되어 옛날일이 생각나 남편한테  이야기하니

나보러 바보라고 하여서 섭섭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그 돈을 그 말한 친구가 가져가지 안았을까?

속이며 속으며 살다보니 그때 일이 의심이 난다.2012

 

 기억<꽃게>

무창포로 수학여행 가는데 포장이 안 된 신작로를 걸어서

10km 엄마가 큰맘 먹고 2만 환 주셨다.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그런데 2만환 어치 꽃게 사니까

한 푼도 안 남아 다른 애들이 먹는 거 부러워 보고

있는데 아무도 안 주어 서운했어도 집에 가서 칭찬받을

줄 알고 기뻤는데 엄마가 화 나서 난리였다
애가 소풍 가서 아무것도 안 사 먹고 꽃게 사 왔다며

애들인데 얼마나 먹고 싶어 겠냐며 속상해 하였다.

어떤일이 칭찬 받을 일인가 구분도 못한 나는 어리둥절했다.

내가 엄마 되고 되고보니 똑같은 마음 애들이 애야지

어른 눈치 보는 거 싫은것은 자연히 커지면 세상과 싸우느라

철이 드는데 일찍부터 애어른 되는 게 못 마땅 하셨겠다..2012

 

순진 

동생 입학하던 날 정자나무 옆에 조그만 학고방

아무개 손자가 학교 들어왔구나.
빨강 고무풍선 호도기 공짜로 주어서 우리 할아버지가

대단한 사람이구나 자랑스러워 거만하게 학교로

오는 중에 삑 하고 크게 부니 빵 소리 내며 터져버렸다.
이걸 어째 아까워서 웃던 가게 아줌마가 다시 줄 것

같아 가게로 가서 애 이거 터졌어요?

하니 웃기만 하고 안 주어 그 아줌마가 베기싫고

부끄런 어린 자존심은 속상했다. 2012

 

바보
산수를 잘하던 꼬마 6×5=30을 칠판에 썼는데
키가 작아서 영에 꽁지가 나왔더라.
애들이 틀렸어요?. 36이라 하니 틀렸어요?
수줍은 건지 못나서인지 작대기를 그었으니

그때 말 못한 것이 두고두고 속상했다.  2012

 

바보의 순진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잠꾸러기 업어주는 나라가 왜 좋은지 물어보니
웃기만 하고 안 가르쳐줘 아는 척하고

묻지 안했지만 그 뜻 을 한참 후에 커서 알았다. 2012

 

 

운동회
공부도 못하며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 학교

가기만 싫은 것이 아니고 행사가 운동회인데 달리기를

못하기에 어린게 자존심은 많아서 운동회가 싫었다.
얼마나 못 달리는지 두 번 체 달리는 애들하고 같이

들어 왔으니 학부 형 달리기가 있어 다른 애들은 오빠나

아버지하고 달리는데 나는 아버지가 집나가서 이런때는

더 속상했는데 그래도 할아버지가 기선 부회장이라

참석하니 나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달렸는데 두루마기

까지 입은 할아버지 뒤뚱뒤뚱 꼭 팽귄 같았다.
얼마나 못 달리는지 꼬찌 가다 안 되니까 운동장 가운데로

내 손목을 끌어 당기며 가로질러 들어왔는데 그냥 

3등으로 해주었으니 완전히 위반인데 참 옛날에는 그랬다.2012

 

손가락
옛날에도 미움은 관심이었더라.
남매가 싸운다고 야단치니 눈 흘기며 싸움하다
밥상 아래에 검지 손 꼬락 구부리며 손으로

욕했다는데 귀여운 옛날이야기.

그 누나가 시집을 갔는데 제일 생각 나는 건

그 남동생 이었다고 그 사람들이  큰고모와 아버지 

아웅다웅 보기만 하면 싸웠어도 미운정고운정

들어 그때는 미웠지만 사랑이 남은 관심

이기에 고모 말에 검지 손꼬락만 보면 동생 생각했단다. 2012

 

엄마 마음

엄마가 부지깽이 들어 얼른 맨발로 뛰어나가

담 모퉁이에 숨었는데 동생이 신발

가져다줘서 신고 살금살금 고양이처럼 들어

왔는데 알고도 모른 척 한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가 신발 가져다주라 시켰다 한다.2012

 

콩쿨 대
당고모는 교회 선생님 했기에  우리한테

춤을 가르쳤는데 친구들이 언니언니 부르는 게

부러워 고모! 나도 언니라 불르면 안돼?

하니 막 웃더라. 왜 그런지 몰라 어린 마음은

고모가 미웠지만 도라지 춤을 배워야 하니까

속은 상했어도 안 그런척 했다..2012

 

샘 쟁이

지금은 미인 기준은 검고희고 상관없이 자기 개성이지만

그시절애는 흰피부를 선호했기에  얼굴 까만 동생이

언니에게 숫검 방을 손가락에 묻혀 얼굴에다 찍 그었다는데 참 귀여운 동생.

커 나는 애들을 보아온 엄마가 하는 말  자매가 하나도

안 닮았는데 목소리까지 똑같다니 자매는 못 속이나 보다.

지금은 일부러 색시하게 보이려 썬팅하는데 그때만 해도

하얀얼굴이 공주같았으니 시대의 흐름이 유행은 뒤 바뀌더라.2012

 

 

어린시절

고무줄 땅뺏기 가이생이 놀이가 재미있었던 그 시절

일본말이 가시지 않은 시골 학교 출 때면 교실 장작 난로불 위에

변또라 부르는 도시락을 쌓아놓으면 따뜻하게 해주었지.

한쪽은 밥 조그만 반찬 놓는 용기가 들어있어 엄마는 자주 닷 광을

싸주셨는데 아이들이 맛있다면 다 내주어 미련 떨고

착한 척 했으니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는데 나는 고래 동생이었나?

글씨는 예쁘게 쓴다고 하면 잘한답시고 자기 공책이 아닌

그 애 공책에다 써주고 지 공책은 아끼었고  아버지가 안 계시니

속상했지만 자존심은 많아서 그냥 부자인척했고  예쁜 것을

보고도 아닌 척하고 은근히 심술도 많은  부끄러운 어린 시절 2012

 

 귀여움

생각이 덜 자란 애들도 사는 법을 알아.

마당에 넘어져서 큰일 날 뻔했구나?

놀래서 일으켜 주니까 지가 대단한 줄 알고

스스로가 어른들을 속이고 있더라.

어쩌나 보려고 문구멍으로 내다보니

마당에서 넘어지어 여기저기 둘러보다 사람이 없으니까

발딱 일어나서 문 열고 나오니 다시 엎어지더란다..2012

 

 

별 삼남매

모기 불 피우고 밀대방석에 누어 밤하늘 보면서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 어두운 밤하늘 별들은 수놓은 듯 꽃을 피웠지

별빛이 유난히도 밝은 여름밤 장마라고 구름이 심술부리고

그 뒤에 별은 숨어 있겠지 연기가 모기를 쫓아버리고 밤바람 불어와

엄마별 동생별 그리다 잠들었나 축축해서 깨어보니 이슬이 밀대

방석을 적시었는데 나란히 옆에는 별삼형제가 아니라 별 삼남매가 누어 있었지.2012

 

 여름 숙제

잔디 씨 뽑아가는 게 숙제였던 어느 날

동산에서 풀을 헤치니 개구리가 폴짝

깜짝놀래 도망 오는데 뱀이 쓰윽 지나갔다.

어린 꼬마는 신발이 벗겨진 채로

못 달리는 달리기가 번개 같았다.2012

 

칭찬

가족의 대장인 할아버지하고 겸상하다 보니 다른 가족은

무시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기막혔을까?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어린 나에게도 다 먹고 싶었는데

할아버지의 칭찬을 받고 싶어 갈치를 가운데 토막을

안 먹고 꽁지만 먹고 생선을 못 먹는 척했으니  아이가 아닌 내숭떠는 애어른  2013

 

기가 막혀

졸업하는데 야매 미용사 지금은 인정도 안 하지.

여학생들이 전부 머리를 고부라지게 고대했으니.

여자애들은 어릴 때도 예뻐 보이고 싶었나?

그럼 다 공주나 신데렐라가 되는 줄 알았나 보다.

여선생님이 학생의 머리가 그게 무어냐고

혼 줄을 맞아 죄인처럼 말 못 하고 끼리끼리 서로가

눈을 마주치면 작별이 서러워 눈물을 보여야 하는데

눈에는 웃고 있었으니 치마에 침을 무치어

눈물 인척했으며  왜그리 슬픈 생각을 해도 눈물이

안 나오던 그때 별거 아닌 것에는 눈물이 많았는데 2013

 

여름 일기

장마인가 폭우인가?

비닐우산을 여름비가  짓궂게 적시던 날

골목마다 쌓인 비는 수로를 넘쳐나 위로

성난 듯이 거품을 내고 남들은 언니 오빠가

우산을 들고 우비를 가지고 교문밖에서

기다리는데 한 꼬마는 곤색 우비를 쓰고

비를 철철 맞고 신작로를 걸어가는데

몰아치는 빗줄기 얼굴을 때리고 돌아서서

뒷걸음으로 걷는 딱한 학생 포장이 안 된

신작로는 빗줄기가 먼지 묻은 다리에 튀기고

왜 그리 꼬마에게는 집이 멀었는지

고무 신 이 젖어 맨발 속에 물이 하나고여 질컥질컥 2013

 

여선생님

남선생만 있는 학교에 여선생님 오셨는데

이쁘기까지 하고 나와 성이 같은 일가였다.

우리 대청마루에 누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시골 학교로 전근 온 이야기 어린 나한테 시시콜콜

상황을 말한 거 보면 여 선생님도 어린 나이였나보다.

일가 여선생님이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는데

어느 날 보니 한 남자선생님이 좋아하는 눈치였다.

학교 끝나면 손잡고 오던 여선생님이

먼저 가라 하면서 둘이 만나는 것을 보았다.

아마 남자 선생님이 꼬신 거 같지만 머

처녀총각 이니 그런데 어린 나는 왜 은근히

질투가 나고 그 남자선생님이 미웠는지.

근데 여선생님도 빠진 거 같았다.

오래전 선생님들의 사랑 이야기 그때를 생각하니

둘 이는 결혼까지 했을까? 궁금하네. 머 총각 선생과

처녀 선생이니 둘 선생님들 이름도 잊지 않았다.2013

 

떡갈나무

떡갈나무에 팥이 아니고 떡고물이 묻은
떡인 줄 알고 떡갈잎을 조금 아주 조금 떼어서

먹었는데 떡이 아니라 풋내가 나는 나뭇잎

이거 안 먹었다고 박박 우기니까 누가 뭐래

묻지도 않고 애들은 관심도 없는데 혼자서

도둑 제발 절인다고 웃겼더라.

자꾸만 얼굴이 홍당무 되고 떡갈나무말만 하면

얼굴이 확확 달아올라서 떡갈잎 되었지.

오랫동안 왜 떡 냄새도 안 나는데 떡 갈 잎인가

궁금했는데 커서 알았지만 떡갈잎은

애정이 많아서 어울려 숲을 이루며 생명체들의

안식처가 되어주고 숲속의 동물들 연애를

하려면 비밀의 창고 같은 역할을 해준다니

떡갈잎은 예쁘기도 하지만 생명체의 삶의 공간.

이렇게 목적과 이유가 있는 떡갈잎이지만

그 떡갈잎은  혼자만 비밀을 가지고 있는 동화속의 떡갈나무2013

 

 

<계다>

여름이면 나무계다로 발 꼬락 나오게

끈을 달아 매끄럽게 슬립퍼 만들었는데

나는 할아버지가 나무로 투박하게 만들어 주어

일본말이 남아서 계다 라 하였는데 어린 마음

이라도 창피해서 감추고 어두울 때나 누가 안 볼 때 만 신었다.2013

 

헤엄 썰매

애들 마음이 아니고 무슨 자존심이 많아 

지가 무슨 대단한 애라도 되는 것처럼 여름이면 농사 물로

저장하느라 물을 막아놓은보 땜이 있었는데

그곳이 유일하게 아이들의 여름과 겨울 놀이 장소.

남녀 아이들이 물놀이터 헤엄 잘 치는 애들은

가운데 깊은 곳에서 놀고 헤엄 못 치는 애들은 땅 짚고 개구리

헤엄으로 팬티는 물에 젖어 돌에 널어놓고 홋 치마

입고서 개구리 헤엄치며 놀다가 가운데 살살 들어갔는데

꼴칵 꼴칵 물을 잔뜩 먹었어도 아닌 척했던

그때의 어린시절은 밉지만 참 귀엽기도 하였지.

겨울이라고 추면 그 보땜은 아이들의 썰매장 돌을 던져 보고

얼음이 깊게 얼었나 시험하면서 토끼털 귀마개하고

내복에다 세루 치마 입고 가에서만 놀다보니 다른애들은

멋있는 썰매에 송곳 자루 들고 팍팍 찍으며 가운데서

씽씽 달리는 썰매가 정말 멋있게 보여 나는 썰매도 없어

미끄럼탄다고 누가 두 손 잡고 끌어주면 내 눈은 썰매가 부러워 바라보았다.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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