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편지 이야기

승완 은주

우리들 이야기 2007. 6. 5. 10:41

 

 

너희들의 만남은 운명적인 인연이다.

많은 날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자기의 꿈을 향해 목표를 가지고 어렵고 힘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실현하려는 너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너희들이 가는 길에 불필요 한것들 은 마음에 두지 않고,

자신을 가지고 바쁘게 살아가는 그 젊음!

빨리 가다가 지치는 사람들도 있고 천천히 더디 가도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 어떤 보장이 주어지더라.

때를 기다리면서 좋은 날을 기다리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말고 내일이라는

희망의 선물이 있으니 용기를 가지자.

부부라는 이름은 사랑이고 용서이다.

그대의 좋은 점은 칭찬으로 두 배의 기쁨을 갖게 하고,

나쁜 점은 시간에 맡기자 본인도 자기의 단점을 알고 있거든.

하늘이 맺어주신 부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신뢰하는 친구로 한 곳을 같이 바라보는 동반자가 되어

많은 날 들을 웃으면서 살아가기 바란다.

2007   6    5   엄마 아빠

 

은주가 나에게

충남 보령시에 사는 시어머니는

인터넷으로 며느리를 북돋아 준다.

내 전화 목소리가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사이월드에 글을 남기고, 이메일을 보낸다.

띄어쓰기가 없는 문자메시지도 가끔 날아온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진 글은 항상 ‘사랑하는 우리 은주에게’로 시작된다.

깜짝 선물도 택배로 배달된다.

인터넷 쇼핑몰을 돌다가 며느리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발견하면 우리 집으로 보내는 거다.

며느리와 백화점을 누비며 쇼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시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인터넷 쇼핑법을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다. 

집안에서도 시어머니는 항상 내 편이다.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설거지를 하다 컵을 깼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모가 외국에 나갔다가 

선물로 사온 귀한 물건이었다.

며느리감이 온다고 시어머니가 특별히 내놓았던 것인데 

집안 살림에 서투른 내가 깨 먹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다치지 않았니. 낯설어서 그렇지.

손님한테 일을 시킨 내가 미안하구나.”라고 말하고

남편을 전격 투입했다.

시어머니는 두 아들을 완벽한 살림꾼으로 키웠다.

설거지는 물론이고 청소, 빨래, 요리까지 

못하는것이 없는 훌륭한 내조자다.

그 후 나는 시어머니 앞에선 혼자 집안일을 하는 법이 없다.

남편과 함께 음식하고, 청소하고,

2004년 8월, 만난 지 10년이 넘은 ‘오래된 연인’과 결혼했다.

시어머니도 수년간 봐온 터라 호칭이 친정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시어머니는 ‘은주야.’라고, 나는 ‘엄마’라고 부른다.

신혼 첫날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어머니 불쌍한 분이다 

친정엄마처럼 생각하고 잘 지내 달라고 했다.

가족에게도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무뚝뚝한 남편이 진심을 드러낸 것이다.

시어머니는 1999년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큰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다리가 일부 걷기가 힘들게 됐다.

쉰을 갓 넘겨 찾아온 시련에 온 가족이 슬픔에 잠겼다 

그때 시어머니가 좌절을 털고 일어섰다.

나는 목숨과 다리를 맞바꾼 거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소중한데 왜 슬퍼하니''남편이 부탁이 없었더라도

나는 시어머니와 반목할 수가 없다.

그분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술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간지 신문기자인 나는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많다.

시부모가 우리 집에 방문했더라도 

취재 약속을 무작정 최소하고 달려가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시어머니는 밤늦게까지 며느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져 들어온 며느리에게 꿀물 건낸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넌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야" 

시어머니는 이처럼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 

그래서 검찰총장의 말 한마디를 들으러 새벽에 출근하고 

사건을 파해 치느라 밤이슬을 맞으며

현장을 지키는 것이 지칠 때면 나는 시어머니를 찾는다.

"엄마 나 회사 그만둘까요. 하니까

"우리 시대는 눈치 보느라 여자가 설거지한다.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내가 아들 잘 키웠지.”라고 자랑하며 흐뭇해한다.

시집은 종가집이고 나는 8대 종손이고 며느리다.

명절 때면 시 어머는 입으로 나는 손으로 음식을 만든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가 솜씨 없는 며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도 잔소리는 전혀 없다 오히려 칭찬 일색이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양념을 만들고 나물을 삶는다.

실수투성이지만 가끔 쓸만한 잔꾀를 내놓는다.

"음식마다 따로따로 야채 를 썰지 말고요? 

음식마다 계획한 요리에 들어갈 야채 를

한꺼번에 준비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편할 것 같아요.

"시어머니는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친다.

그리고 시아버지에게 " 우리 은주는 요리도 아주 똑똑하게 해요.

몆 년만 지나면 요리도 나보다 잘할 거에요."라고 자랑한다.

종갓집 맏며느리인데 보조 노릇만 하기 미안해 

지난 추석에는 스파게티를 선보였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지만 만든 적이 없는 요리였기에 선택했다.

쇠고기와 각종 야채를 볶고 스파게티 소스로 맛을 냈다. 

과정은 쉽고 결과는 성공 명절 음식에

식상한 사촌 시동생들이 즐겁게 먹었다 

시어머니는 은주는 뭐든 하기만 하면 잘한다. "고 치켜세워줬다.

나는 또 잡채와 떡볶이를 만들었다.

시어머니의 칭찬이 듣기 좋아 이것저것 자꾸 요리하게 된다.

올 추석에 휴가를 받았다 남편의 일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자

시어머니가 "너도 자유를 만끽하라"고 명령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도 좋고 집에서 책과 DVD를 즐겨도 좋단다.

우리는 자주 보니까 명절이라고 무조건 고향에 내려올 필요 없어 

네가 제 충전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게 더 중요하단다.

시어머니가 보낸 이메일 일부다.

쑥 쓰러 입 밖에 내놓지 못했지만 나는 시어머니께 

하고픈 말을 마음에 새긴다.

"엄마, 저는 엄마를 참 존경해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며느리 할래요. 은주 드림   <고마워 은주야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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