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나의 이야기

달라지는 감정<목적지>

우리들 이야기 2021. 2. 10. 08:29

 

달라지는 감정

시기 질투라고 일상에서 보이고

볼 수 있기에 두 가지가 비슷한 거 같아도

더 앞서가는 것이 시기였습니다.

질투는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까 봐 불안해 있는 감정이고

시기는 자기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갖고 있을 때 생기는 미움 분노

적대심 우울 슬픔 등의 더 복잡한 감정.

보통은 이 둘이 섞여서 인간의 감정을 더

괴롭게도 하지만 상황 따라 무시할 수도 있고

자기가 하는 일을 더 사랑하면 시기나 질투는

안 하겠지 하지만 어느 한구석에는

그런 마음이 도사리고 있고 가까운 사람일수록

친한 이에서 더 그런 감정이 생긴다는데

나도 그중에 사람이었나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많다고 그런 데에 생각을 허비하면

안 되겠지만 알면서도 내 맘대로 바뀌지 않는 것이

시기 질투의 감정인가요?

우리가 TV에서도 보면 정이 편에 억울하지 않게

판결하며 그런 이의 편에 서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남이 잘되면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안 그러려고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치사한 것을 알아가며 정당한 거라고

합리화시키면서도 찜찜하였답니다.

나이가 드니 별거 아니었고 젊음의 전성기였으며

시기 질투는 상황 따라 그때의 감정이었습니다.

 

목적지

인생이 가는 길은 달라도 목적지는 하나이듯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였던가요?

일찍 피는 꽃이 있고 향기가 꽃마다 다르지만 꽃이었고

중앙으로 빨리 가는 이들 더디 가는 사람 다 함께

공존하며 곁가지 꽃이 늦게 피지만 오래가듯이

세상을 살다 보니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사계절이

다 들어 있는 인생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새싹도 되었고 비바람을 맞으니 잎새는 얇아지어

곱게 물들었었는데 낭만의 가을은 빨리 저무는 허무였나?

밤과 낮이 길이가 바뀌면서 겨울 길을 지나니

자연에서 인생이 보이며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친절

옳음과 친절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친절을 선택하라 하였듯이

그냥 내 말에 이유 달지 말고 들어 주면 안 되느냐고 심정을

말한다면 아무한테나 하는 것이 아닌데 선생님처럼 솔로몬 법으로

중립적인 말을 하면 거리감이 생긴다지요.

나중에 중립적인 말을 하더라도 일단 그 사람 편에 섰을 때

이 사람이구나. 할 텐데 그래서 옳음과 친절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친절을 선택하라 하였나요? 옳음은 조언이었습니다.

누가 하소연하면 조언만 하며 유식해 보이고 싶었던거 같아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는데 무슨

판결하는 사법도 아니고 친절은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안 보이는 것들

소경이 귀가 민감한 것은 들으려 하는 것은 들어야

짐작할 수 있으니 하나의 자기를 귀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많고 많은 사람과 꽃들 생명이 숨 쉬는 모든 것들과 살면서 자기의

생각으로 판단하다 보면 지우고 담아야 할 것들

만지고 싶은 것들이 있지만 그중에 제일은 가지고 다니고 싶은 것들.

익숙해지는 것도 상황이 만들었나요?

어쩌다 보니 실이 되어 바늘이 가는 대로 따라가도 생각은 실이 하고

시대 따라 유행이 다르다지만 그때마다 자기한테 꼭 필요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가지게 되는데 지금은 핸드폰 이것이 없으면 모든 것이

마비되는 것 같았습니다.

고장이 나서 대리점에 맡기었는데 시간이 길게 느껴졌습니다.

디지털 손안에 폰이 세상이 다 담기었고 소식을 주고받는

생명을 이어주는 밥이 되어 시대를 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이 가면 전화를 목소리라도 들으면 어쩌다 보면

1시간은 보통 집안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동네 이야기 두 사람이

아는 것들은 시시콜콜 다 하다 보니 시간개념이 없어지고 함께 있지

않아도 마음이 가까운 거리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불 꺼진 방에서 핸드폰에 저장된 강론의 이야기 들으며 묵주를

돌리다 보니 손은 5단에 끝에 와 있어 아마 손을 이끄는 분이

보이지 않아도 말씀은 나를 정화 시켜주고 귀가 보이게 하였습니다.

소설이나 이야기나 공감이 가면 자동으로 빠지게 되고

내용에다 양념을 넣어 꾸미지 않으면 재미가 없고 맛이 안 나듯이

우리의 일상의 삶도 사무적인 필요한 이야기만 하면 숨이 막히니

적당히 꾸미는 삶의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이야기를 쏙쏙 빠져들게 해주는 재주는

배움이나 모습이 볼품없어도 보이지 않는 마음이었어요.

 

 

모름

일상을 살면서 모르는 것이 많은데

아는 듯 말해서 돌고 돌아 터무니없는 말이

된 일이 많기에 말조심하는데 가끔은

남편이 말꼬리를 잡고 따지는 걸 보면

섭섭하기보다는 익숙하고 가까운 사람이라 그러겠지.

이해하니 참 우리는 많이 살은 듯합니다.

눈빛만 보아도 생각을 아는 사이가 되었으니

식사때마다 반주가 어떤 때는 소주

어떤 때는 막걸리 여동생이 전화가 와서 지금

막걸리 마신다고 하니 그래 막걸리는 곡류니까

마셔도 되지만 소주는 화학물질이 들었으니

조심하라 하길래 그렇게 남편한테 말했더니

웃으면서 별말 없길래 나도 잊어버렸는데 한참 후에

여동생 남편과 함께 언니 집에서 저녁 식사하면서

처제가 하라는 대로 하면 다 옳은 말이니 그대로 하래.

하니 형부 맞아요. 나 아는 사람들도 모르면

전부 나한테 물어보아요. 웃기는 좌와 자천

이런 때는 웃어야 할지 안 웃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미안합니다.

난 너에게 묻고 싶어
넌 네가 만들어놓은 나만 좋아하지?

이 말 좀 물어주었으면 신부님이

예수님과 오셔서 부모와 살은 날보다

우리의 만남이 오래되었으니

아내가 키운 거라고 하시어서

막 웃다가 생각하니 옳은 말씀이셨다.

아내가 지 역할 못 하니 더 미안했는데.

그런데 내가 키웠다고 하니 갑자기

대단한 사람 같았고 그렇게 보이게

만들어준 남편이 고맙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하는

아내인데 짐만 되니 미안하답니다.

내가 키웠다니 익숙해져 서운한 말을

해도 이유가 있겠지 이해하지만

말 한마디로 천량빛 값는 다고

재미있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빵점이네요.

신부님 말씀 들었지요? 

물으면 당연한 걸 왜 묻나?

입만 아프게 그럴 것이지만 헛소리도

말과 섞어서 해야 재밌다는 거 알아간답니다.

나이는 할머니지만 소녀보다 어린

아이였으면 철이 안 난 맘이

보이는 어린애들이 참 예쁩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우리 부부는

할 이야기가 많고 잘 통하기에

동네 이야기를 하면 어린

시절이 남편이 다 보인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