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틀에 박힌것>
글
어제와 오늘이 별반 다를 것 없는 것 같아도
하늘과 땅 사이 하루가 가는 대로 생각이
많아지고 오래 살수록 늘어나는 것은 잔소리
사는 것이 비슷한 것 같은데 틀리니까
경험이 많아지고 잔소리가 늘어 날수 밖에요.
오래전에 글을 쓸 땐 좋은 말은 베끼였는데
저작권이 있다기에 지워버렸고 나의 지난날을
하나하나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 별별 꼴을
다 보고 살아온 날들이 긴에세이가 되었습니다.
블로그에 13년에 전에 쓰여 진 글을 보면
한자도 빼 놀 수 없는 그때의 나의 삶.
양념을 어느 것 넣었느냐에 맛이 있듯이 나의
글맛은 정성이 들어갔기에 소중하고 감칠맛이
나는 글이 되었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을
정리 하다보니 재미있는 때도 많았기에
나의 삶이 슬프지만은 않았구나.
고마움 감사를 가질 수 있는 나의 글이었습니다.
인연
양자택일 이것인가 저것인가 비슷할 때 하나만
택하라 하면 핵 갈리니 그럴 때는 손 고락 점을
쳐보는 것이었습니다.
인간관계는 살면서 가까이 군림하는 것들이라
사소하여 대충 넘어가다 보면 서운해서
절교하기도 하였기에 관계란 인연과 악연 절교
유리를 다루듯이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금이 가고 깨져가는 것이 인간관계
그뿐 아니라 살면서 인연이란 떠나가고 남기도
하지만 글도 편지도 스쳐 간 사람들 돈 주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글 속에
도취 되어 배워가고 써먹기도 하였습니다.
오래전에 한 군인한테 받은 펜팔에서 어린 소녀는
<자연계는 변동해서 단풍잎이 물든 가을이라고>
이 말을 얼마나 많이 써먹었는지
지금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이 없지만 편지도
책 속에도 공통점은 글이고 생각 인연은 세월 속에
묻히기도 하지만 살아있는 책과 편지는
추억이 되어 생각 속에 담아지었습니다.
움직여 주세요.
가끔 억울한 일이 있을 때 특히나 세금을 받는
이들이 탁상행정으로 안 가보고 생각대로
글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기도 하니 글은 발이 달려
있지 않고 눈이 달리지도 않았기에 실수로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드니 억울하게 누명을 입은
이들은 당연히 가만히 안 있지요.
글에는 증인이 없고 보이지 않고 발도 안 달렸기에
아니면 말고 식으로 쓰고 싶은 대로 전달하는 글.
글로 한 생명을 살리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하니
글에 대한 책임은 꼭 져야 하며 글에는
책임도 따르기에 발로 뛰어서 살펴보며 글을 써야겠지요.
틀에 박힌 곳
종교적인 말쟁이들은 많으나 종교적인 행동가들은
아주 드물다네요.
성경은 우리에게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하였지요.
성경은 말씀은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고 하고 그래서 지식의 목표는 지혜랍니다.
하루에서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 내 집이라면 그다음은 어딜까요?
생각해보니 마트 아니면 시장통이었습니다.
살기 위한 먹거리가 먼저고 이것저것 진열되어있는
마트가 대세지만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시장통에는
사람이 다양하게 움직이었습니다.
삶의 분투 그곳은 오래만에 만나는 얼굴들 조금은 싸니
여러 가지 사게 되고 다양한 사람 냄새도 맡으면서
나를 돌아보며 틀에 박힌 삶인 거 같지만 장소에 따라
머물다 보면 말쟁이가 되어가고 누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사람 말을 들어보고
무슨 말이 필요할지 해야 하는데 어쩌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가르치는 말쟁이가 되었습니다.
종교를 가지었으면 믿음이 우선인데 우린 안 보이는
신앙의 믿음을 가지었나 자신을 돌아보다 남에게서 찾는답니다.
종교인뿐 아니라 삶이란 저만이 지고 가는 십자가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지만 마음 따라 믿음이
마른나무에 꽃이 피기도 하고 젖어있어 무겁기도 하다지요.
주님의 지신 십자가는 하늘과 땅을 이으신 사랑의
십자가인데 힘들면 무거운 십자가라고 하는데 그것은
주님의 십자가가 아니고 세상 것을 소유하려는 자기의 욕심.
하느님의 지혜를 따라야 하는데 보잘것없는 생각을 따르며
변덕스러운 마음을 따라가고 있기에
변화되는 육신이 의미를 두기 때문이랍니다.
틀에 박힌 삶도 시대 따라 현실이 바뀌어
가니 지금 내 틀은 내가 앉아있는 곳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