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시/좋은글ㅡ 명언

김동욱문학박사

우리들 이야기 2007. 9. 9. 08:30
 

오늘의 갈매못 순교성지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순교자의 후예였던 고 정규량 레오(1883-1952년)

신부가 1925년 인근 신부들과 함께 목격 증인들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순교지를 확인하고, 이듬해에 20평의 땅을

우선 매입해 1929년에 서울교구 천주교 유지재단에 귀속시켰기 때문이다.

그 후 갈매못이 순교성지로 다시 눈길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962년 대전교구 대천 본당이 설립된 후 순교자

현양운동과 함께 1975년 9월 당시 대천 본당 주임이었던 고 정용택 사도 요한(1998년 7월 3일 선종) 신부가

순교 당시의 위치를 재확인하고 순교복자 기념비를 세우면서부터이다.

그 후 1985년 9월에 다섯 분의 순교성인 기념비와 야외제단이 세워졌다.

김동욱(金東旭.1922∼1990.1.29) 김동욱 문학박사의 순교성인비 친 필 붓글씨
김동욱(金東旭.1922∼1990.1.29)
국문학자. 충남 홍성 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6ㆍ25전쟁 때 부산에 피난, 동아고등학교, 동아대학에서 교직에 종사, 구 뒤 서울대학교, 중앙대, 연세대, 단국대 대학원 교수 역임.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장 재직 중 사망.

특히 <춘향전연구>는 지금까지 개념론에 머물렀던 이 방면의 연구를 실증과 분석을 통해 재정리한 것으로, <춘향전>은 설화에서 판소리를 거쳐 소설로 이행했다는 명제에 대한 학문적 연구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춘향전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국어국문학회] 창립에 관여, 고전문학 분과위원장을 지냈다. 3ㆍ1문화상, 노산문학상 수상.

장지 : 충남 홍성군 구항면(龜項面) 마온리(麻溫里) 선영.

국문학자ㆍ고문서학자ㆍ복식학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나손(羅孫). 충청남도 홍성 출신. 전문학교 입학자격 검정시험에 합격하여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전문부 법과에 편입학하여 1943년에 졸업하였다. 학병입대를 거부하여 원산철도공장에 징용되어 주물공으로 복무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1945년 고향으로 돌아와 홍성중학교(洪城中學校)ㆍ장항농업학교(長項農業學校) 교사로 있다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에 편입학하여, 1949년에 졸업하였다. 그 뒤 천안농업중학교(天安農業中學校)ㆍ병천중학교(竝川中學校)ㆍ대천수산중학교(大川水産中學校)ㆍ부산 동아고등학교(東亞高等學校) 등에서 교사로 봉직하였다.

1952년 11월 피난 수도 부산에서 양재연(梁在淵)ㆍ김민수(金敏洙)ㆍ장덕순(張德順)ㆍ정병욱(鄭炳昱)ㆍ허웅(許雄)ㆍ강한영(姜漢永)ㆍ전광용(全光鏞) 등과 함께 국어국문학회(國語國文學會)를 창립하였다. 1953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강사, 1955년 중앙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되었다. 1959년 이하윤(異河潤)과 함께 [비교문학회(比較文學會)]를 창설하여 연구조사부 위원을 맡았다. 1961년 국어국문학회 이사, 진단학회 감사에 각각 피선되었으며, 그해 〈한중록 閑中錄〉으로 한국일보의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1963년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취임하였고, 같은 해 6월 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로 피임되어 1965년 6월까지 재임하였다.

1966년 제7회 3ㆍ1문화상 인문과학상을 받았다. 1968년 서울대학교에서 논문 <판소리계 소설의 실증적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71년 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하여 1973년 이 연구소에서 발간한 <고문서집진(古文書集眞)>으로 연세대학교 학술상을 받았다. 1973년 10월 미국 하버드대학 연경학사(燕京學舍)의 지원을 받아 전후 두차례 도미하여 연구하였다.

그 뒤 민속학회 이사, 한국비교문학회 회장, 한국 복식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동북아시아연구회를 결성하여 주무를 맡았다. 1976년부터 도자기 유약(釉藥) 연구를 시작하여 남한 각처의 점토(粘土) 등으로 유약시험을 진행하였다.

1977년 문화공보부 문화재위원이 되었다. 1977년 12월 20일부터 5년간 개인신문 [나손서실통신(羅孫書室通信)]을 자비로 꾸준히 출간하였다. 1981년 문화공보부 정책자문위원, 학술원 회원 등에 피선, 피촉되었다. 1981년 일본 도호쿠대학(東北大學) 일본문화연구시설(日本文化硏究施設) 초청으로 4개월간 도일하여 연구하였다. 같은 해 노산문학상(鷺山文學賞) 학술상을 받았다.

1984년 3월 단국대학교 대학원 교수 겸 동양학연구소(東洋學硏究所) 소장으로 취임하여 종신하였다. 1986년 이후 한동안 민족문화추진회(民族文化推進會) 회장을 겸직하였다. 그는 국문학 여러 분야의 연구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가요문학에서는 향가를 비롯한 고려·조선의 가요와 가사, 판소리 삽입가요 등 전반에 걸쳐 폭넓게 다루고 있으며, 그 방법 또한 다양하다.

그는 자료의 발굴, 소개, 해제작업 으로부터 문헌에 관한 서지적 연구, 장르론, 형식론, 민속적 접근, 문학 기저(基底)의 사상론에 이르기까지 가능한, 모든 분야에 걸쳐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여 연구하였다. 향가 장르를 문화사적인 넓은 시야에서 분류하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가요의 작자와 연대의 고증, 실전(失傳)하거나 알려 지지 않은 작품의 발굴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춘향전>에 대한 일련의 연구들은 ‘춘향전학(春香傳學)’을 정립할 만큼 연구사적 의미를 가지는 방대한 업적들이다. 고전소설의 서지학과 소설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방각본(坊刻本), 간소(刊所), 운반자(運搬者), 독자(讀者) 등에 관한 문제를 고증하는 작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고전소설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영인, 출간하는 일도 적극적으로 진행하여 많은 성과를 올렸다. 그는 한문학을 국문학의 범주에 이의없이 포함하고, 한문화권의 중ㆍ일 두 나라 문화와의 횡적ㆍ종적 관련성 위에서 한국문학의 독자적 성격을 해명한다는 방향을 잡고 국문학사를 체계화하였다.

그의 문학사는 일어와 영어로 쓰고 또 옮겨져 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 다른 한편, 고문서 분야에서도 양식과 분류에 관한 선구적이며 독창적인 업적을 내놓았으며, 또 복식학 분야에서도 한국복식에 관한 역사문헌적 연구의 전범(典範)을 보이는 중후한 업적들이 있다.

전반적인 학문적 경향은 우리 문화를 동북아적 일체성의 구도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었으며, 그럼으로써 ‘국문학 내지 한국학의 세계성 지향’의 길을 열어놓았다.

【저서】<국문학개설>(1961) <한국가요의 연구>(1961) <한중록주해>(1962) <이조초기 복식사(服飾史) 연구>(1963) <국문학개설>(1963) <춘향전연구>(1965) <한국복식사연구>(1974) <국문학사>(1976) <춘향전 비교연구>(1979)

【자료집】<고문서집진(古文書集眞)>(1973) <고소설판각본전집(古小說板刻本全集)>(1973ㆍ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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