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문화/세상 이야기

고래와 새우

우리들 이야기 2023. 5. 5. 12:14

고래와 새우

고래싸움에서 배터저 죽는다는 새우지만

등어리에 올라갈수 있기에 작은 무게가 무기였다.

고래의 희망은 넓은 바닷물을 헤엄쳐 가며

걸리는 것이 있으면 다 헤치려 하였는데 등에

올라간 새우는 고래가 가는대로 잠을 잔다.

생물이 살기 좋은집이 바다라면 자리대로 자기집.

작다고 내세울 것은 없어도 머리로 고민을

해결하니 키크면 싱겁다하며 작은 고추가 맵다는데

그 큰 고래 등짝에 올라간 세우는 작은 고추.

옛날에는 중국을 대국이라 불렀고 미국을 아메리카라

불렀는데 그들과 어께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작은 나라가 고래등어리에 올라간 새우였다. 2023년 나의 생각

 

국경을 넘으려면

우리나라는 섬나라처럼 버스와 기차로 다른 국가를 방문할 수 없다. 비행기나 배로만 국경을 넘을 수 있어, 흔히 해외여행이라 하는데, 일본 영향인지 아니면 분단문화 탓인지 모르겠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지 한 세대가 넘고, 많은 국민이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요새도, 어감 자체에 여전히 약간의 사치가 묻어나기 때문에, 공무원이나 의원들은 해외여행보다 국외출장이란 말을 쓴다. 남북을 자유롭게 내왕하고, 육지를 통해 외국을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아마 국외여행이 자연스러우리라.

그래도 말에는 역사가 남아있어, 국경을 ‘건너다’보다는 ‘넘다’고 해야 더 자연스럽다. 예전부터 국경선은 강이나 산이었기 때문일 게다. 조선(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회담을 위해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기차를 타고 오간 것처럼, 바다로 떨어진 대륙이 아니면 세계 어디나 버스나 기차로 연결된다. 국가 간 이동은 비행기가 가장 빠르고 노선이 많지만, 시간 여유가 있고 풍광을 보고 싶을 때는 버스나 기차를 이용한다. 어떤 때는 숙소 비용을 아끼기 위해 야간에 버스나 기차를 타기도.

국경을 넘으려면 비자(사증)가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여행하고자 하는 나라에서 들어와도 좋다는 사전 허가증. 많은 나라들이 돈을 벌기 위해 자국 여행을 하는 다른 나라 국민에게 일정기간 비자면제, 무비자를 시행한다. 무비자가 아니더라도 그 나라에 도착하는 특정 공항이나 항만에서 도착비자를 발급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은 나라들은 사전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인터넷으로 신청하거나 해당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 직접 사전 신청하는 경우로 나뉜다. 비자는 국가 사이 상호주의가 기본이지만, 관광 활성화와 불법체류 가능성을 따져 나라별로 다르다.

여권 파워, 한 나라 국민이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무비자, 도착비자를 이용하여 여행할 수 있는 국가 숫자, 한국 국민은 189개 국으로 독일과 함께 공동 3위, 일본과 싱가포르 다음인데 한 두 개 나라 차이란다. 미안하고 아쉽게도 우리는 몇 개 나라에게 비자를 개방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중국은 대사관에 비자신청을 해야 하기에, 출발 전에 비자를 받았고, 그 외는 나라는 구체적인 일정을 세우지 않은 채, 한국 여권의 힘만 믿고 출국했다.

 

 

야간버스에서 졸며 깨며

 

1)베트남에서 라오스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부 산악지대 사파를 야간열차로 갔다가, 다시 하노이로 돌아와 비행기를 타고 라오스로 넘어갈 계획으로 비행기 표까지 예매했다. 그런데 사파 숙소에서 보니, 라오스 루앙프라방까지 가는 국제버스 예약을 대행한다는 게 아닌가. 비행기 표를 취소해도, 사파에서 직접 넘어가면 그리 큰 손해가 아니었고, 트레킹 일정을 늘릴 수 있었다.

버스가 떠나는 날, 만나기로 한 당일 4시 경, 출발지라는 사파 시내 호텔에 도착해서 물어보니 조금 기다리란다. 얼마 있다 젊은 친구가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표는 주지 않고 6시에 출발한다고 알려준다. 그 친구 이름은 응억, 여러 차례 오토바이로 백인 남녀 다섯 명을 데려온다. 하루 종일 걸어 지독한 발 냄새, 화장실에서 씻었지만 신발에 배인 냄새를 어찌할 수 없다. 버스 타기가 걱정이다.

6시 40분이 넘어 땅거미가 내리고, 가로등까지 켜진 다음에야 도착한 버스, 신발을 비닐주머니에 넣고 탄다. 2층 침대가 양 창가와 가운데 3줄이다. 승객은 반도 차지 않았는데 차장이 맨 뒤로 안내한다. 멀리 가기 때문인가? 티슈로 발을 닦고 눕는다. 아스팔트지만 덜컹거리고 커브를 돌 때는 흔들거린다. 그래도 버스로 국경을 넘는 나라가 부럽다.

중간중간 손님들이 탄다. 9시에 라이짜우 식당 도착, 모두 내려 화장실을 다녀오고 늦은 저녁을 먹는다. 돌풍이 어찌나 심하게 부는지 입간판이 쓰러진다. 9시 30분 다시 출발할 때는 천둥치고 비가 세차다. 자다 깨니 새벽 4시쯤, 버스는 서 있고 승객들이 미니버스로 갈아탄다. 걱정되어 물어보니 내리지 않아도 된다고. 지도를 보니 탄빈.

 

버스는 여섯 명 남은 손님을 태우고 조금 가더니 4시 반에 시동을 끄고, 그냥 버스 안에서 대기하란다. 약간 불안하다. 5시 30분, 차장이 깨워서 루앙프라방 가냐고 묻고는, 내려서 뒤편 미니버스를 타란다. 백인 남녀 2명은 슬리핑 버스를 타고 라오스까지 간다고 하지 않았냐고 항의한다. 차장은 라오스에 가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이미 다른 사람 여행기를 검색해서 거짓말이란 걸 안다. 미니버스에는 통로나 뒤편에 물건 박스로 가득하다.

여섯 명을 태운 미니버스는 바로 출발하여 날이 밝아오는 시내를 달리더니 큰 도로 옆에 세운다. 6시, 지도를 보니 무엉탄, 베트남 마지막 도시 디엔비엔까지 10km 내외다. 우리 차 앞 유리에 붙은 행선지는 디엔비엔-우돔싸이- 루앙프라방, 7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해서 또 기다린다. 현지인 노부부가 탔는데 라오스인이고 무앙느아에 간다고. 기다리라더니 버스는 근처 버스 터미널로 들어간다. 라오스에 가는 큰 버스가 여러 대다.

가게에서 빵과 담배를 사고 잔돈 받는 화장실을 다녀온다. 대형버스들은 다 출발하고 미니버스들만 남았다. 차장이 아까 탔던 라오스 부부를 다른 차로 보낸다. 뒤쪽에 있는 짐을 다시 높게 짜더니, 계속 들어오는 짐을 의자 밑마다 넣고, 차 지붕 위로 올라가 더 짐을 싣고 결박한다. 8시 다 되어 출발하나 싶었더니 주유소 들렀다가 다시 터미널로, 또 차 지붕 위에 올라 새로 짐을 받는다.

8시 20분에 출발, 운전사나 차장이나, 많이 먹어야 30대 초반, 팔팔하다, 베트남 인구 평균연령이 29세라던가. 이미 열댓 명 정원인데도 가면서 또 손님을 태운다. 4명 앉는 좌석에 다섯 명씩, 두세 명은 낮은 천장 때문에 머리를 굽히고 서서 간다. 출입문 겨우 기대어 가던 차장은 힘들게 문을 열고 내려, 박스 2개를 받아 차 지붕 위에 싣고 끈을 맨다. 왕복 2차선 길 양쪽은 너른 들판, 논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벼가 자랐고, 열린 창으로 바람이 시원하다. 어 느새 강을 왼쪽에 두고 산길을 오른다.

더이상 탈 사람이 없는가, 이제야 차장은 차비를 받기 시작한다. 언덕길 미니버스는 힘이 부치는지 기어를 바꾸어 천천히 오른다. 9시30분 산 중턱 평평한 길에 작은 건물, 출국장이다. 모두 차에서 내려 출국 도장을 받고 꾸역꾸역 다시 탄다.

산 능선 오르다가 내리막 굽이굽이, 라오스 국경 표시, 그냥 산으로 이어져 있어 어디가 베트남이고 라오스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9시 50분, 다시 평평한 곳이 나오고 크지 않은 건물, 라오스 입국 세관이다.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고 유조차까지 몇 대 있다. 다시 모두 내린다.

단층 건물 옆으로 줄을 선다. 베트남과 라오스는 프랑스와 미국에 맞서 힘을 합쳐 싸웠기 때문에 양국 국민은 자유롭게 상호 방문하는 듯 간편하다. 코리아는 여권만 가져가고 다른 외국인들은 서류 주면서 사진 있냐고 묻고 작성하란다. 창을 사이에 두고 사무실에서 장부에 한 사람 한 사람 적는 방식이다. 머물 수 있는 기간이, 처음엔 2주일이라더니 옆 사람에게 물어보고, 한 달이라며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 준다. 다른 외국인은 비자증을 여권에 붙여준다.

다음은 입국비용 내는 곳, 남한이냐 북한이냐 물어보며 또 2주일 어쩌고 한다. 한 달이라고 했더니 3만5천 킵과 1달러, 1달러를 1만킵으로 치나? 어쨌든 또 일일이 적고 여권보다 큰 영수증 4개를 준다. 앞에 좀 떨어져 있는 제복 입는 이가 다시 여권 검사, 뒤쪽 사무실로 여권을 가져가서 살짝 걱정했는데, 스탬프가 2주일짜리라 한 달 표시로 다시 찍었다고.

다른 외국인들 때문에 한참 기다린다. 이것이 한국 여권 힘인가. 먼저 와서 기다리던 라오스 사람이 말을 건다. 머리가 벗겨지고 나이 먹어 보이는 이는 고등학교 선생인데, 하노이에서 박사 과정을 한다며 나중에 교수를 바라본단다. 외국인들이 도착하고 다시 미니버스에 탄다. 신기하게도 처음 앉았던 자리를 찾아 그대로 탄다. 11시가 넘어서야 국경을 완전히 벗어나 라오스를 달릴 수 있었다.

 

2)북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

맥주는 오줌 마려울까봐 안마시고, 작은 물과 과자 하나를 사서 버스에 오른다. 오후 9시 정각 출발, 좌석표가 없는 차라 맨 앞줄에 앉는다. 대형버스에 승객은 절반 정도, 안전띠가 없다. 기사도 안 매는데 안전하겠지. 9시 50분 시 외곽 정류장 도착, 기사는 내리고 두 사람이 타서 한 명은 운전하고 다른 한 명은 표 검사를 한다. 장거리 버스는 2명이 교대로 운전한다.

자리에 앉은 채로 졸고 깨고, 버스는 몇 번이나 정차하며, 불 꺼진 간이터널이나 주유소 옆 등에서 승객을 태운다. 새벽 1시, 주유소 겸 슈퍼에서 기사는 기름을 넣고 손님들은 커피나 간단한 음식으로 요기를 한다. 앞에 탄 게 최악, 운전자 2명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다시 비몽사몽, 등받이만 뒤로 조금 젖혀지는 야간버스, 다음부터는 타지 말아야지. 어느 정도 가다가 운전자가 교대하고, 기존 기사는 내린다.

깜깜한 왕복 2차선, 길은 그런대로 괜찮고 차들은 거의 없다. 호수 옆길, 호수가 국경인가? 지도를 보니 세관까지는 30km 가량, 달이 구름 속을 들락거린다. 기사는 창문을 열고 담배를 핀다. 이 나라 흡연율은 남녀 모두 60프로는 넘는 듯. 비가 오기 시작하고 안개가 자욱하다. 빗길에 안전띠도 없고 살짝 걱정된다.

멈춤 표지 몇 개를 지나니, 길이 약간 넓어지고 부스가 연달아 두 개, 국경인가 보다. 새벽 1시 반, 기사가 내리고 짙은 남색 정복 경찰이 올라와 여권을 걷는다. 주인 없는 개 몇 마리가 국경을 오가며 도로에 고인 빗물을 먹는다. 개들은 국경이 없구나. 부스 안에서 여권을 하나씩 스캔하는 모니터 화면이 보인다. 스캔 화면 바뀌는 시간은 10초 내외.

기사가 2명을 부른다. 노리안은 남자여권, 암브라는 여자 신분증, 둘 다 젊은이들. 버스에서 내려 경찰과 면담하고, 다른 여권은 기사가 가져온다. 기사는 상향등 작동을 여러 번 시도하나 허사, 이 기사가 운전할 때부터 벌써 여러 차례, 앞이 잘 보이지 않는가 보다.

2시 출발, 100여 미터나 갔을까, 부스 몇 개가 이어진 곳에 차를 세운 후 여권 묶음을 들고 내린다. 비는 그쳤는데, 안개 때문인가, 달이 하늘에 흐릿한 원으로 보인다. 주변은 축구장 정도 면적, 대형 트럭 몇 대가 서 있다. 도로 국경은 24시간 개방되나 보다.

2시 10분 경, 기사가 이름을 부르며 여권을 돌려준다. 이름을 한참 보고 읽는데도, 발음이 잘 안 맞는 경우가 있어 혼선을 빚기도. 동양계는 나 혼자이고, 여권 표지가 레드 중에서 유일하게 그린이라서, 안 부르고 건네준다.

출발해서 우회전하니 불 켜있는 여관 같은 3층 건물, 1km도 지나지 않아 저 멀리 산 아래 작은 도시들 불빛들이 보인다. 급경사 고불고불한 길, 옛 대관령 길 같다. 고원 분지를 경계로 국경을 정한 듯. 산 아래 도시에서 한 명 내리고, 30분 안 가서 또 내리고, 비몽사몽간에 계속 어디라는 소리 들리고, 또 어디 내리라는 줄 알았는데 기사가 깨운다. 티라나였다.

새벽 4시 50분, 어딘지 모르는 장소, 터미널도 아니고 사위는 훤해지기 전, 차량 불빛이 이어지는 도로 옆, 아침이라 춥다. 아이고, 박물관이라도 문여는 시간까지 서너 시간을 어디서 보내나. 숙소는 보통 12시가 넘어야 입실이 가능한데.

* 국경은 아니었으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오후 9시부터 오전 8시까지 11시간, 밤새 꼬박 앉아 졸았어도, 새벽 이후 풍광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야간열차를 타고

 

1)터키에서 불가리아

애초 이스탄불에서 불가리아 소피아까지 버스를 탈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고 해저터널을 지나 도착한 역 에서, 우연히 국제열차 표 파는 창구를 발견했다. 할칼리역에서 소피아행 기차표를 여기 시르게시역에서 파는데 할 칼리역까지는 버스로 이동한다고. 저녁 9시 30분 버스로 출발, 할칼리역에서 10시40분에 떠나, 소피아에는 다음날 08시 40분 도착하는 편, 하루 전에 예약했다.

8시 20분 땅거미가 질 때 숙소에서 나왔다. 한국인 숙소 주인 젊은 친구는 한두 달 만에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아쉬워한다. 오벨리스크 광장 그 많은 탁자마다 사람이 가득 하고, 그 주변과 트램 역까지 풀밭을 포함해서 앉을 수 있는 공간은, 싸온 음식이든 사서 먹든, 뭔가를 먹는 사람들 천지다. 라마단 저녁이라 그런가.

역 옆 공터에 별다른 표시가 없어, 역사에 들어가 역무원에게 거듭 확인한다. 관광버스는 9시 30분에 도착해서 40분에 출발, 손님은 열두 명, 역 직원이 타서 이름과 여권번호 적으라고 종이를 돌린다. 다음엔 버스표 달라더니 뒤에다가 볼펜으로 날짜를 적어준다. 버스비는 127리라, 할칼리에서 소피아 기차표는 103리라. 10시 15분 할칼리역 도착, 직원이 역구내 플랫폼까지 안내하고 열차승무원과 함께 승객들 좌석 탑승까지 확인한다.

승무원은 대체로 육십 전후로 보이는 남자들로, 아주 친절하다. 기차는 완전 새 차, 복도형 객실은 2인실, 널찍하고 바닥에 양탄자가 깔렸다. 두 명이 진행 방향으로 앞을 보고 앉다가 잘 때 2층 침대로 바꿔준다. 목재 찬장 안엔 냉장고와 수납장, 찬장 위에 옷걸이, 그리고 세면대와 거울까지. 조명스위치와 온도조절장치는 출입문 위에 있고,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도 있다. 냉장고엔 물 1병과 비스켓 2개.

기차는 10시 40분에 정확히 출발. 동승자는 서른 넘은 남자, 이름은 올키아 33살, 터키인이고 소피아에서 산업공학 대학 졸업, 10년을 살면서 불가리아 여자와 결혼, 고향은 이스탄불 아닌 다른 도시, 영어를 나보다 훨씬 잘해, 어디에서 배웠냐니까, 형이 미국에 있을 때 가족 방문 비자로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며 3년 정도 살았다고.

내일 불가리아 비자시험 20문제를 보기 때문에 공부하는 중, 딸 아들 쌍둥이 대여섯 살 먹은 사진을 보여주며 더 낳을 계획은 없다고. 불가리아에서 환전할 때, 뭔가를 쓰라 하면 가짜일 수 있으니 조심하란다. 소피아란 도시 이름은 로마시대 불가리아로 치료차 왔던 공주 이름을 따왔다는 얘기까지 들은 다음, 비자 공부하라고 대화를 마치고, 나는 심카드 남은 데이터로 유튜브를 본다.

다음 날 2시50분 국경 도착, 카피쿠레 국경역, 승무원이 깨운다. 밖으로 나가니 가랑비 내려 선선하다. 기관차는 3개 차량만 남기고 떠난다. 지하도 지나 역사 내 사무실, 승객이 적어 금방 출국 스탬프 받고 돌아오니 3시 5분, 근처에는 버스 트럭 등 차량 통관소가 보인다. 3시 40분 출발, 기관차는 불가리아 소속, 잠시 정차하더니 불가리아 세관 경찰이 타고 빠른 속도로 이동, 3시 55분에 불가리아 시빌렝라드역 도착. 곧 여성2, 남성1명 올라와 여권을 수거해 간다. 여기서는 내리지 못하게 문을 잠근다. 여권을 수거해간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담배를 핀다. 4시 30분 열차에 올라 여권을 돌려준다.

안내방송 소리에 깨어난 듯, 6시 40분. 정차한 역 이름은 모르겠고 맵스미에서 검색하니 지역명은 플로브디프, 날은 이미 환하게 밝았다. 10분 정도 후에 기차는 다시 움직인다. 차창으로 본 도시는 5층짜리 크지 않은 아파트 건물과 이층짜리 단독주택들, 골목은 포장되어 깨끗하다.

금세 작은 도시를 벗어나 들판, 온통 진녹색 평원, 푸른 하늘과 잇닿아 장관이다. 맑고 멀리까지 호밀 이삭이 나온 들판이 이어지고, 방풍림인지 숲인지 군데군데 짙푸른 나무들과 들판뿐이다. 어느 밭은 갈아엎어 놓은 맨흙이 보이고,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일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차창 안으로 따스하게 퍼지는 햇살, 차창 밖으로 끝없는 녹색 평원과 군데군데 마을들, 평화롭다. 편안하게 졸린다.

 

2)루마니아에서 몰도바

기차는 7시에 플랫폼에 들어왔다. 1호차 6번 룸, 65좌석 윗 침대, 젊은 남녀 2명이 캔맥주 마시고 있다. 이어 짧은 턱수염이 하얀 60세 내외 남자와 어린 남자 아이가 들어오는데, 놀랍게도 캐리어 포함 짐이 8개라, 남녀는 황당해하고 나는 일단 짐을 의자에 올리도록 도와준다. 그는 능숙하게 의자 밑 공간과 2층 침대 옆 공간에 다 집어넣는다.

할아버지는 몰드바 국민 조지아, 손자는 9살 마르코, 로므니아인이라는 건 민족 이름, 우리는 루마니아라 하지만, 여기 발음은 로므니아다. 몰드바 국민 다수가 루마니아인이고 루마니아어를 쓴다고. 아마 몰드바에 가면서 생필품을 많이 가져가나 보다. 말이 안 통하니 통성명에 그친다.

먼저 온 젊은 남자는 인도계 같은데 엄마가 폴란드인이고 국적도 폴란드, 여자는 아빠가 폴란드인이고 국적은 미국, 프라하에서 3년째 함께 일하지만 아직 애인은 아니라고 강변한다. 키시나우는 2번째 여행인데 와인이 좋다고. 이후 일정은 우크라이나 어디를 들러 키예프에서 돌아간다는데,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야기를 한다.

얼마나 덥던지 땀이 줄줄 흘러 창문 바람을 쐬러 복도로 나간다. 끝없이 이어지는 녹색 평원, 루마니아라는 나라는 굶어 죽는 사람은 없겠다. 에어컨이 없고 화장실은 그냥 배출식이고 충전콘센트는 복도에만 4개, 다른 이들이 다 꽂아놓았다. 조지아는 손자가 이미 누운 좌석에서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졸고 있고, 젊은 남녀는 각자 위쪽 침대로 올라갔다. 9시 반 지나 차장이 와서 내게 룸을 옮기란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탄 노인을 배려하는가 보다.

새로운 방에서 다시 인사한다. 프랑스인 키 작은 노인네는 몇 년 전 서울에 다녀왔다며 누운 채로 반갑게 맞이하고, 맞은 편 젊은 남자는 핸드폰에 이어폰 낀 채 한 번 쳐다보고 만다. 침대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없어 어렵게 오른다.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른다. 그래도 자둬야지, 근데 침대 폭이 좁고 옆쪽으로 뭐라도 덧붙인 안전장치가 없다.

잠깐 조는데 다리가 훅 꺼지는 느낌, 습관적으로 다리를 벌리다 힘을 주니 한쪽 다리 밑이 침대 밖으로 삐져나간 탓. 자다가 떨어지면 큰일인데!, 이불보를 벽 쪽 고리에다 끼워서 허리를 한 바퀴 돌려 묶는다.

기차는 80km가 넘지 않는 느낌이나 달리는 소리가 크고 가끔 출렁거리며 흔들린다. 룸 벽은 흔들릴 때마다 찌걱찌걱 소리가 난다. 더워서 졸다 깨다, 기차는 한참을 정차하다가 새벽 3시 경 아주 천천히 간다. 잠시 후, 차장이 10분 있으면 화장실 닫으니 갔다 오란다.

3시 40분 남성경찰 2명이 들어와 여권을 확인한 다음 가져가고, 여성세관이 의자 밑까지 떠들어 보며 검색을 한다. 물을 사지 않아 남은 와인만 마셨더니 목이 탄다. 4시 20분 여권을 받고 얼마 있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인다. 또 몰도바 국경에서 서겠지, 먼동이 트기 시작한다. 4시 40분 역 건물 앞에 선다. 제복 입은 중년 여성이 노트북 매고 들어온다. 여권을 노트북 옆에 끼워 스캔하면서 묻는다. 목적은? 여행, 며칠 머무르나? 사오일 정도, 호텔예약은? 도착 해서, 다음 목적지는? 키예프.

 

외교부 안내문자, 돼지열병 관련 음식물 반입하면 과태료 낸다고. 다음 케이티로밍 문자 안내. 다시 젊은 제복 여자가 들어와 짐 검사, 가방을 열어서 이것저것 꺼내보고, 관광지 리플렛이나 비행기 표를 끼워놓은 노트까지 손전등을 비추며 들춰본다. 해외에 나와 몇 달 동안, 여태껏 어느 국경이든 가방 검색을 짐 뒤지듯이 하는 건 처음, 분명 코레아라고 했는데도, 내 참. 작은 나라에서 너무 하네. 소련 시절 관료주의가 남았나? 아니면 루마니아에서 밀수를 많이 하나? 10분쯤 있다가 기차에서 내리는 아줌마들 짐 들어주니, 꼬레아 땡큐 한다.

다시 출발한 기차가 멈추면서 소리가 나더니, 그대로 뒤로 해서 역구내에 재진입, 기관차는 옆 철로로 가고. 한 번 더 움직이더니 다시 온 곳은 기차 바퀴를 광궤로 바꾸는 장치 앞. 한 사람이 올라와 객실 바닥을 열고, 뭔가를 만진 다음 내려간다. 객차를 들어 올려 바퀴를 바꾼다. 옆 다른 객차도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만주리를 통과해서 러시아로 갈 때는 객차 전체를 한 번에 다 처리하더니, 여기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소련연방에서 독립한 작은 나라, 루마니아인이 80% 넘고, 한때는 루마니아와 통일결합을 논의하다 멈춘 몰도바, 몰도바 내에는 러시아계가 한 지역을 트란스니스트리아로 독립 선포해서 주권이 미치지 아니한단다.

이미 해는 떠서 빨갛던 구름들이 하얗게 빛난다. 차장 석 앞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물이라도 마시니 그나마 게 낫다. 6시 20분이 지나서야 쿵 소리가 나더니, 기관차가 연결되었는지 기차가 움직인다. 역을 빠져나가기 전에 다시 멈추었다가 또 거꾸로, 바퀴 바꾸는 곳을 지나 처음 도착했던 건물 뒤쪽에 정착, 6시30분, 다른 승객들 탄다. 6시 40분에 기적소리 힘차게, 2시간 넘게 걸려, 진짜 출발한다. 디젤 기관차 매연냄새가 객차까지 난다.

작은 호수 지나 습지에 장끼 한 마리 숨어있네. 속도는 40km나 되려나? 뛰면서 잡아탈 수 있는 정도. 야산 지대 국경마을이라 그런지 주로 단층 건물, 지붕은 빛바랜 붉은 기와나 슬레이트다. 왼쪽은 아스팔트 왕복 2차선이 따라가고, 낮은 구릉으로 시골마을들 이어지고 양떼들이 풀을 뜯는다. 평화롭고 좋으나 속도에 속 터진다.

* 국경은 아니었으되, 베트남과 루마니아, 중국에서 여러 번 야간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본, 일출과 석양 풍광은 피곤함을 잊게 만든다. 중국 내에서 몇 번 경험한 낮 시간 고속철도 경험도 대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다음호에 계속)

 

이순신 장군

원균동생 원연장군

원연은 이수신하고도 친했다.

평택에서 원 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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