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시/좋은글ㅡ 명언

운명.에디슨과 테슬라.

우리들 이야기 2023. 5. 23. 14:07

경계선

혹시 내 경계선은 지켜지길 바라면서
상대의 경계선은 넘나들고 있는

아닌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관계가 두터워질수록, 가까운 사이일수록
상대방을 마치 나의 소유물처럼

취급해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 정약용 –

 

 

운명

보고 들은 것은 지식이고 생각은

지혜라고 그중에 지식도 지혜도 공존했으며

3전 7기가 운명 이라면 운이 좋은 것은

믿고 운이 나쁜 것은 믿지 안으려면 나쁜

3의 운으로 좋은운 7을 만드는 것이었다.

모르는 것이 창피가 아니라 알면서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더 챙피한 삶

사람은 누구나 넘어집니다.

하지만 '넘어짐'이란 '실패'가 아닌 다시 일어날 '기회'

'넘어짐'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넘어지는 법을 배운 사람은 다음에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늘의 명언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어.

단, 다시 일어나는 사람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거야.

영화 '밤비, 1942' –

오늘의 명언
어느 곳을 향해서 배를 저어야 할지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 몽테뉴 –

 

1931년 10월 18일 미국 전역의 도시들을 밝히던 전등이 1분 동안 일제히 꺼졌다.

바로 그날 사망한 천재적인 발명가 에디슨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84년의 생애 동안 1093개의 특허와 2000여 개의 발명품을 남겼다.

성인이 된 후로 따지면 약 열흘에 한 개꼴로 발명품을 내놓은 셈이다.

끊임없이 질문을 해대는 탓에 3개월 만에 학교를 중퇴한 에디슨은 12세 때부터 철도역에서 신문을 팔았다.

선천적인 청각 장애로 귀가 전혀 들리지 않았지만 하루 6시간 이상은 자지 않으며 발명에만 매달렸다.

백열전구를 비롯해 축음기, 축전지, 영화 촬영기 등이 모두 그의 발명품이다.

1983년 미국 의회는 그의 생일을 ‘발명가의 날’로 지정했으며, 1997년 ‘라이프’지는 지난 1000년간 가장

중요한 인물 1위로 에디슨을 선정했다.

20세기 미국인들은 이처럼 치열한 그의 전기를 읽으며 성장했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던  그의 말은 한때 전 세계인에게 회자될 정도였다.

천재 발명가 에디슨은 노벨상을 받을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으나 결국 받지 못했다. ⓒ 위키미디어 public domain

그런데 그는 단 한 곳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과학자에게 가장 영예롭다는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 이에 대해

노벨상위원회가 발명가에 대한 수상을 꺼려했다는 주장이 있다.

1908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리프만이 그 근거다.

리프만은 최초로 컬러사진을 발명한 공로로 노벨상은 받았지만,

그것이 현대 컬러사진의 원리와 전혀 달랐기 때문에 이후 발명가에게 노벨상이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디슨에게 노벨상 수상의 기회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1912년 노벨상위원회는 물리학상 수상자 후보로 에디슨을 지목했다.

그런데 공동 후보로 지목된 테슬라가 에디슨과 함께 받는 상은 싫다며 거절했다.

결국 그해의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는 무인 등대의

자동조명 시스템을 개발한 스웨덴의 구스타프 달렌으로 결정됐다.

직류 vs 교류의 전쟁에서 패배

에디슨과 테슬라의 악연은 1884년 6월 테슬라가 에디슨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입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테슬라는 직류전기를 발명한 에디슨에게 더 실용적인 교류전기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하지만 이미 직류 전기에 많은 투자를 한 에디슨은 그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후 또 하나의 묘한 사건으로 둘 사이는 더욱 틀어졌다.

에디슨은 테슬라에게 모터 및 발전기의 효율을 높이는 데 성공할 경우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테슬라가 정말로 성공시키자 에디슨은 5만 달러 대신 주급을 조금 더 올려주겠다고 했다.

화가 난 테슬라는 결국 에디슨 연구소를 뛰쳐나와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테슬라는 에디슨이 거절한 교류전기의 연구에 매진해 세계 최초의 교류 전기

모터와 변압기 등의 특허를 획득했다.

그러자 웨스팅하우스 사가 테슬라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약속하며

이 특허들을 사들인 후 대대적인 교류 송전 사업을 추진했다.

에디슨이 추진하던 직류는 전류의 방향과 세기가 일정한 전류를 말한다.

따라서 직류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전송하면 전류를 세게 하기는

쉽지만 전압을 높이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테슬라의 교류 방식은 전류를 세게 만들기 어려워도 전압을 높이는 건 쉽다.

전기를 전송하는 전선에는 저항이 있어 멀리 송전할수록 전기량이 줄어들게 된다.

때문에 전압을 높이기 어려운 직류의 경우 송전 범위가 발전소 주변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교류는 발전소를 전기 소비 지역에 가까이 지을

필요 없이 어디든 발전소를 세울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이 같은 결정적인 차이로 인해 직류와 교류의 전쟁에서 에디슨은 결국 패배하고 만다.

이 후 에디슨은 JP모건은행에게 에디슨전기회사를 양도해야 했으며,

앙숙이 된 테슬라의 거절로 노벨 물리학상의 최종 후보 명단에서도 제외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그런데 에디슨에게는 또 한 번의 노벨상 수상 기회가 있었다.

전구의 밝기 개선 연구 과정에서 발견한 ‘에디슨 효과’ 덕분이다.

에디슨은 탄소필라멘트를 수명이 더욱 긴 대나무 숯으로 바꾸었다.

그러자 대나무 필라멘트가 증발해 전구 안쪽의 유리벽에 검댕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했다.

‘에디슨 효과’ 발견했으나 규명하지 않아

에디슨은 그 같은 검댕 현상을 순수한 금속 필라멘트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 과정에서 필라멘트 사이에 금속판을 넣고 백금으로 만든 선에 연결하자

백금 조각과 필라멘트 사이의 진공관에 전류가 흐르는 현상이 관찰된 것. 더욱 신기한 건 백금 조각을

양극에 연결하면 허공에 전류가 흐르지만 음극에 연결했을 땐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당시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충격적인 현상이었다.

에디슨은 그 현상과 더불어 그를 증명하는 특별한 램프를 만들어 특허출원을 했다.

하지만 그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규명은 하지 않은 채 곧바로 다른 발명에 매달렸다.

이후 월리엄 프리스에 의해 ‘에디슨 효과’라고 명명된 이 현상을

규명한 이는 영국의 물리학자 리처드슨이었다.

그는 거듭된 실험을 통해 에디슨 효과가 진공상태에서 자유전자의

발생과 이동으로 인해 생겨난 현상이라는 걸 증명해냈다.

사실 백금 조각을 넣은 에디슨의 실험용 전구는 사상 최초의 전자기기용 진공관이었던 것이다.

에디슨 효과는 진공관에 응용되면서 무선전신, 라디오,

텔레비전, 컴퓨터 등의 발명으로 이어지는 등 전자산업 발전의 토대가 됐다.

에디슨 효과를 증명한 리처드슨은 192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으나 이번에도 에디슨은 역시 공동 수상자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에디슨이 최초의 진공관을 발견하고도 그에 대한

연구를 하지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난무한다.

당시 여러 가지 특허 분쟁과 채권 문제 등으로 골치를 앓던 터라 더욱 시장성 있는 제품을

발명하기 위해 그 현상에 미처 관심을 갖지 못했다는 설명이 그중 하나다.

또 다른 설명으로는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탓에 평소

이론 규명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의 연구 방법은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을

수없이 시도하는 시행착오적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대해 에디슨은 ‘쓸모없는 실패는 없다’고 주장했지만,

과학적 이론의 부족은 그의 치명적 단점이기도 했다.

 

 테무진 징기스칸의 명언

 징기스칸이란  전세계의 군주                             .

외롭다 말하지 말라​

나는 아홉살에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으며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었다.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황량한 초원에서

불타는 태양과 눈보라 속에

풀뿌리와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힘들다 말하지 말라​

나는 집에 머물지 못했으며

전세계를 달렸다

목숨을 건 전쟁이 내직업이고 일이었다.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나의 제국은 병사로10만

백성 어린애 노인까지 2백만도 되지 않았다.  

배운게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현명해 

지는 법을 배웠다. 

힘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뺨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까지 했다. 

적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깡그리 

쓸어버렸다. 

내가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징기스칸이 되었다.

모든건 내탓이다..⚘️  

- 징기스칸의 명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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