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문화/사회돌아가는 이야기

우리들 이야기 2020. 11. 7. 08:56

 

법이란 싫다

법대로 살아라! 누가 그렇게 가르쳤나?

언제 법이 약자의 편에서 평가를 해준 적 있나?

사기꾼과 눈싸움을 하는 곳

꽃집은 향기가 나지만 오물 뒤집어쓰고

더러운 걸레에 병균들이 들썩거리는 곳

성매매 아니면 사기죄를 다루며

듣고 싶은 말이 나오게 협박하는 곳.

상대가 잘못했다고 따지면서 억지 부리며

눈싸움하는 더러운 곳이 그곳 아닌가?

눈빛을 보면 마음이 보인다는데

그곳에 모인 이는 도긴개긴 거기서 거기 아닌가?

왜? 라는 물음표가 많은 것이 헌법.

그런데 약자들이 들어가는 법의 문턱은 왜 그리 높은지?

 

 

법조인들 듣고 있나요.

다 그런이들이 아니기에 세상은 돌아가고 

민주 법공화국으로 한단계 앞으로 가려하는데

쌓여진 덤풀들이 크기에 힘든 작업이네요.

법은 물이 가는 것처럼 순리적이어야 하는데

도랑물이 냇가로 냇물이 강으로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되듯이 바다의 물결이 어울려야 멎지지요.

법이란 더러운 것을 싫어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이

만지작거리는 돈 앞에서 자유로운 법조인이 있을까요?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나오지 않았나요?

아니면 당당하게 아니라고 해보세요.

시간이 쌓이면 자기의 색깔이 사라지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오래전 법치국가를 만들어놓고

서민만 높은 문턱이었어요.

따져보렵니다.

우리의 삶을 왜 법률가들이 심판하는지요?

죄를 판결할 때 의혹이 생기어 확실하지 않을 땐

피의자 편에 서라고 한 것은 억울하지 않게 하려

헌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블랙과 화이트가 섞여 회색인데 자기의 이익 따라

판결한다면 법치국가 사법은 무너지고 말겠죠.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법조인

자기들 감정대로 칼날을 휘두른다면 이게 무슨 사법인가요?

일반 주방에 칼날은 한 면만 있지만

검찰의 칼은 양면이라 휘두르면 억울하게 다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으니 심사숙고하기 바랍니다.

감정의 동물이라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약자들이

기대는 곳인데 냉정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인 가봐요.

고등학교 한 교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법조인은 박박 공부만 해서 사법에 학격 해 자기들이

세상을 좌지우지 흔드는 줄 아니 한참을 잘못 배웠다 하였습니다.

감정도 무디고 세상을 잘 몰라 저희가 최고인 줄 아니

인간 됨됨이는 빵점이라 아이들 꿈이 법조인이라면 바꾸라 한답니다.

인간미가 있을 때 인기가 있고 사람들을 부르는데

디지털시대 4차산업 앞으로 가는데 70년 전 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지 그곳은 행세하는 곳이 아니고

피와 눈물이 있는 곳이고 약자들의 집인데

입맛대로 죄를 만들어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도신문으로 죄를 만들고 내 맘대로 형을 때리나 곳이었습니다.

 

누가 히어로

깃털은 고개를 숙이고 중앙에서 행세하는 이들이 머리를 들고

기득권들의 자리는 행세하는 곳 말이 안 되어도 덮어주는 곳인가?

누구나 크고 작은 자리는 있고 아름다운 이름이 있는 것은

주어진 위치의 본분이고 책임인데 자기들만 최고라고 자처하는 그곳

인정이 메마르고 기생충이 득실득실 어딘가에 전염을 시키려는지?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유도신문으로 짐작해서 죄를 만드는 곳

어떤 사연이 있는지 끝까지 경청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할 때까지 질문하고 억지를 쓰며 여론몰이하니

정상적인 이들은 그곳을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은 두려운 곳이다.

 

법이 빛이 되어

잘 싸워 이기면 죄가 없어지는 곳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는 곳이 아니라

입맛대로 숨을 곳을 알려주고

어떤 이는 욱박 지르며 들춰내어 털고 있으니

정당한 법이 아니라 무소 불이 되어

양날의 칼을 가지고 휘두르니

억울할 때 찾아갈 곳은 어디일까?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주는 곳이 어딜까?

한 사람의 말로 오판해서 인생을 송 두리체

망가트리며 죄의식도 안 가지니

소용없는 법은 있으나 마나 하겠지?

어둠이 가려진 별들도 구름이 지나가면 반짝이듯

어둠 속에서 헤매는 법도 별빛 같은 날이 오겠지?

암울한 시대 법은 약자만 지키는 곳

힘없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곳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것처럼

말하는 곳을 약자들은 찾아가야 하나?

무너져버린 법 앞에서 소리치는데 못 들었는지

안 들은 척하는 건지 다 그런 것은 아니기에

누군가는 법의 별빛이 되는 이가 있겠지?

알쏭달쏭 물음표가 희망이 되어버린 약자들

혹을 떼러 갔다가 하나를 더 달고 나오는 곳

수술하러 갔다가 엉뚱한 곳에 칼 대는 곳

정의로운 큰 나무는 그늘을 멀리 만들어주는데

그곳은 험 한곳이었다.

힘없는 사람들은 어두운 밤하늘 되지만 반짝이는

별들의 집이기에 환하게 또 다른 세상을 비추어주더라.

이게 바로 법이구나. 이렇게 환한 곳이 있구나.

 

 

사람이 법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데

사람을 위한 법을 누가 만들었나요?

지키지 않는 법 힘없는 이들만 지키는 법이니

법의 문턱이 언제나 낮아지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곳이 될까요?

자기 돈 가지고 지가 노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언제 법이 놀음이나 똑같지 다른 게 있었던가요?

돈 놓고 돈 버는 도박장 어디는 불법이고 어디는 합법인가요?

민주를 위해 데모하던 이들이 도망간 것은 잡히면 처벌당하니

일단 피하고 보듯이 그게 죄의식을 느끼는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법이란 이름을 붙이어 무조건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이 나올 때까지 억압하며 닦달하는 곳

법치 국가라 하면서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다지만

그런 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만 알지 가고 싶지 않은 곳 첫 번째

도박 매춘 마약 돈으로 매수하니 어디까지를 정의라고 하나요?

화날 때 해결 하면 정이라고 하지만 그 정의도 해석하기 따라

달라지니 어떤 말이든 몇 % 보고 결정하게 되지요.

공격 위치 이론 법이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한 공학적 제도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만들어진 법

그대로 따르라 하지만 법을 만든 이들은 피해 가는 법도 배웠어요.

사람들의 이기심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사회 질서가

무너지니까 법치 국가라 하며 정의를 지킨다고 하는데

도덕 감정을 정의라 하지만

지키는 이가 험난한 세상에 살 수 있을까요?

의문이 들면 정의가 불의로 바뀌어 가며 부당과 정당의

사이도 자기들 생각으로 만들며 불법이 합법은 아니니

현실의 정의는 자리가 힘쓰는데 먼 훗날에는 자리 위에

가치가 있다는 거 그래서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가치를 본다죠

나쁜 짓을 하면 사람도 아니라 하니까

법도 사람을 위해서 있으니 사람이 법이었습니다.

 

법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의혹과 질문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숙제로 남아 푸나?.

세상은 선과 악이 함께 사니 상황 따라 어떤 때는

선과 악이 뒤집히니 그래서 사람들은 본심을 이야기하고

됨됨이를 따지며 옛날에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왜 그리

변해버렸지 하는 것은 세상의 흐름 따라 마음이 함께 가니

처음 맘 그대로 살 수 없는 사회에 우리가 서 있더라.

법이란 생각하기 따라 법이니까

언제 까지고 논쟁은 있겠지만 사회에 주어진 법은

한 사람의 판결로 남의 인생을 죽이고 살리니

그래서 재판하는 판사가 누군지 알려 하나 보다.

악법이 법이라는 것은 법조인들이 편리하게 써먹는 말이지

판사의 말 한마디로 남의 인생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데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는 것을 얼마나 사람들은 알까?

일상이 다 헌법이고 고마운 법대로 사는 세상

법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고 잘 피어난 법의 꽃은

향기 나고 아름다운데 억울함만 호소하는 것인 줄 아나보다.

돈과 사기가 판치는 더러운 곳을 수사하는 곳이 아닌

법이 없어도 서로가 토론하는 양심이 법 위에 있었으면

 

 

흘러가더라.

쓰레기와 정당하지 않은 돈은 모을수록 더러운 것이라고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비 눈에 씻기어 훗날에 가면

더러운 오물로 버러지가 들썩거리니까 다양하게 살기가 좋은 지금

자랑할 것 많은 나라에서 합당하지 않은 부자는 부끄럽게 보자.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

보이는 화려함에 눈은 가도 마음은 뺏기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무쇠솥이 검다고 밥까지 검은 것은 아니고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희망을 말하고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사실만 남으니 기다리는 지혜도 생기더라.

 

 

억지가 쓰레기로

쓰레기장은 더러운 곳이고 쓰레기통이 있더라.

집에서도 안 보이는 곳에 쓰레기통을 놓아두게 되고

날마다 청소하고 오물은 쓰레기통에 담듯이

날마다 치우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어 득실득실

투서와 고소는 손바닥과 등 큰 차이 안 나지만

대접은 천양 차이고 먼저 고소한 사람을 위한 수사를 하게 되더라.

억울하지 않게 헌법이 있는 거라며 의혹이 갈 때는

피의자 편에 있으라 하였듯이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말고 먼저 고소하니 먼저 승기를 먼저 잡으니까?

법에 대해서 모르니 법대로 사는 이는 힘없는 약자들이고

법의 문턱이 낮은 기득권들 사기를 치고도

이쪽저쪽 어느 방향이 더 이로운가? 눈치 보면서 거짓말하는 쓰레기장

투서는 풍문이니까 투서만으로 수사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짓인가?

풍문이라도 고소인이 항상 위 의가 있으니 왜 고소를 당하는지 모르더라

밴댕이 꼰대 속 좁은 어른들과 모 조리가 많은데는

무서운 기생충이 섞어 사는 곳 멀쩡한 단지에 깨진 똥 단지

오물이 되어 조금씩 표 안 나게 흐르더니 요즘은 콸콸 흐르고

정의와 공평은 생각하는 대로 다른 건지 틀린 건지 아무튼

억지가 법이 되어 보는 대로 듣는 대로 거기에 있더라.

 

 

느낌

똑같은 꽃을 다르게 보는 것은 눈으로는 꽃 이름을 알지만

생각이 다르기에 꽃의 향기도 다르듯이 부하를 아끼어

존경받는 장수가 있고 장수는 개떡이라도 신하가 말을

잘 들어 장수의 위치가 높아지듯이 그래서 나의 평가도 있지만

밑에 사람을 잘 두어야 하나 보다.

나 혼자의 행동이 보는 이마다 다르니까 긍정과 부정은 싸우나?.

왜 서로가 자기가 긍정이고 옳다 하니 그래서 % 수가 결정하나?

여러 저마다의 생각은 달라도 느낌이 판단하더라.

 

의지의 투혼

사람과 사람을 자리로 보면서 신묘한 추측으로

죄를 만들어 언론 플레이 잘해야 거물 행세하는 그들이

정의 사도가 되는 걸 보면 슬픈 법의 현실.

말도 안 되는 양심을 자리로 행세하며 두려운 집이었다.

지저분하게 챙기면 다음 사람들이 정리하느라

힘들겠지만 그러면서 닮아가고 배우더라.

아름답고 깨끗한 곳에서 심신을 달래려 등산하고

운동한다지만 우연히 익숙하게 튀어나오는 말속에는

이렇게 물속이 보이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지?

부끄러운 현실 성서 율법에서 기득권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도덕이 갖추어져야 할 이곳 의지와 투혼이 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런다면 사법체제는 무너진다.

 

정의

슬그머니 행동하는 법치국가 

검은 옷입고 휘접고 다니며 통하지 않는 무소불 

이익을 위해  법대로 하라 한다면

목적을 위해 배신을 하는이가 있고

사람을 위해 목적을 버리듯이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수 는 없어도 

판단은 할수 있듯이 속이고 속는세상

아무도 모를것 같아도 낮에는 새가 듣고

밤에는 쥐가 듣는다니 다 드러나고 

얘 밴 암소 죽을 쑤었는데 옆집 염소가

훔쳐먹었으니  이미 지난 일이지만

속은 부글부글 하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권으로 대변하는 권력을 누가

손에 쥘 것인가 피 터기는 싸움하지만

결국은 예측한대로 정의가 이기더라.

이미 다 지난일인데도 앞으로 연속되면

안되니까 깨끗한 법을 만들려는데

왜 그리 힘이드는지 정의 사도는

어디에서라도 나오겠지만 특히

법치국가인 사법 검찰이 혁신이 시급한데

얼키설키 하게 오랫동안 쌓 여진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정의는

이성이나 본능의 산물이 아니라 지킬 때

공정이고 평등할 때 정의가 향기 나겠지요.

 

변호사

말 잘하면 변호인 하라고 하던 때는

독재가 판치던 시대이지 않았나?

두서없이 말이 안 되어도 변호인이라는

간판이 지어주면 다 옳은 것인가?

로스쿨로 학격 한 여성 변호인 시청

공무원이 되었지만 그냥 사람이고 여자지

말을 더 잘하는 것은 아니더라.

정말 말 잘하는 것이 한자도 더 보태지도

빼지도 말고 그대로 하는 것

쌓여 진 거짓말은 눈비가 씻어내면 사실만 남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변호인도 눈물이 있고 웃음이 있는

사람이라 억울함을 변호해주기도 하지만

죄를 지은이를 변호하려면 거짓말부터 해야겠지.

두 변호인이 잡당 하여 돈을 더 준

사람이 이기게 해서 재판이 끝나면 나눠

가지다니 변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 유죄 사자나

호랑이하고 싸우는 격 억지와 유도신문이

말 잘못 하면 신세가 종 치니 모르면

침묵이 금이더라.

차라리 변호사가 알려주는 대로 생각을 정리할까?

선과 악 두 가지 마음이 싸우고 있는데

악성 바이러스가 덕지덕지 묻었어도 자기가

사마리아인이라 하니 그걸 어떻게 판정 짓나?

천사보다도 악마가 세상을 편히 사는 것이고

착한 이보다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 사람들이

모이니 살기 위해 양심은 바닥에 떨어지고

검은 속을 알 수 가 없으니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의 남발 하여 믿음이 안 가고

말 만 번지르르하다 뒷담을 하더니 결국은

한패가 되어 꼬시지 않아도 행동에서 반했나?

세상은 잘 몰라도 변호인은 법을 아니?

 

법조인들 들리나요.

법률시장이 마당이 되어서 떠들어대니

뭐가 있는지 없는지 만들어 파는지 모르겠어요.

되는 법은 웃음이 있겠지만 안 되는 법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것 같아요.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 하고 맞은 이는

발 뻗고 자고 팬 자는 오그리고

잔다더니 현실을 예언한 옛말인가봐요?

두려운 곳 만들지 말고 사람 냄새나는 곳을 만드십시오.

조용해야 할 법이 시끄러운 것은

썩은 냄새가 나서 그런가 봅니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모르듯이

법조인이라고 법을 다 아는 것이 아니겠지요.

세상을 살다 보면 잘못 없이 살기가

힘들기에 그래서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나 봅니다.

각자의 상황이나 형편이 다른데

어떻게 삶을 평가할 수 있으리오.

다 책임이지 행세하는 자리가 아니랍니다.

향기 잃은 시든 꽃이라면 뽑아내어 새로운 씨를

뿌리어 가꾸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본분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고 사랑받고 살기에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는 거라지요.

이익 앞에 허튼짓하지 말고 법치국가 꽃이

향기 나게 하시고 삶은 두 갈래 마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헤매 이지만

그런 때는 향기 나는 쪽으로 가십시오.

양날의 칼을 쥐고 휘두르다 보면 큰일 난답니다.

생명이 사는 곳은 영원한 것 없으니

잘못은 반성해야 하고 자리는 두려움 없게 하십시오.

 

 

인디언 법

피고와 피고인 피의자와 피해자 법률가들이

제일 많이 써먹는 말

판검사 경찰들은 많은데 법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이들이 왜 그리 많은가요?

여전히 돈 안 쓰면 죄가 되고 돈을 쓰면 죄가 지워지니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 유죄 부끄러운 이 법이 언제나 바뀔까요?

법률가들은 기득권이 가져다준 불로소득을

자기들의 능력에 따른 댓 가라고 착각하니

세금이 울고 있지 않을까요?

어떤 과일이든 알맹이를 보호해주는 껍질이 있듯이

사람도 제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부모가 있지 않은가요?

자식의 작은 허물도 감싸주는 부모일 때

마음을 놓듯이 우리의 법도 사실을 위한 안전장치가 되어

보호막이 되어준다면 좋으련만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양파가 마지막 한 잎까지 다 벗기면 속살이 드러나니

법률가들 심보가 보여요.

시대를 앞서가는 현대인에게 법은 구시대에 멈추어

억압하고 족치면서 듣고 싶은 말 나올 때까지

옥죄어놓은 매듭을 풀어주지 않는다니. 차라리 시간이

가서 판 검사가 안 보이면 악법에서 인디언 법으로 바뀌겠지요.

 

 

민심

수녀 된 시누이 면회 갔던 여름

1987년 명동성당 마당에 여기저기 나무에 걸쳐있는

붉은 글씨 대자보는 군부독재 타도

떨어진 글씨들이 흩어져 짓밟고 다니고 그때의

학생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소리치며 싸워온 민주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워카발로 채이며 최루탄이 한 생명을

잃게한 6월의 무덥던 대학마당

먼지가 날리던 그때의 여름 피맺힌 학생의 울부짖음

싸늘한 죽음으로 민주가 꽃피는 승리의 6월 항쟁이

갈라진 민주가 다시 독재에 넘겨주었으니

대통령 병이었나?

그 새내기 어린 대학생은 안 보여도

민주로 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꽃다운 그때에 남은 학생들은 가정을 가지고

또 지키려 기득권과 정쟁 그 뒤로 무엇이 바뀌었나요?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줄 착각하니 돈 앞에 슬적 무뎌지고

권력을 만들며 책임지는 자리가

행세하는 자리로 다시 옛날이 그리운가 봅니다. 

백두산 물은 맑다 못해 하늘에서 금방 선녀가

내려올 것 같은데 덩치 큰 호랑이 한 마리가 휘 접고

다니면서 맑은 물을 흐려지게 하고.

우리의 우방국인 미국을 말하면서 법은 왜

따르지 않는지요?

그곳은 판사가 검사를 견제하고 배심원이

판사를 견제하기 위해 선서를 한다는데.

삶이 걸려있는 법은 본받지 아니하고

그냥 잘사는 우방국이라 자랑하니 한심합니다.

정약용이 지금 다시 목민심서를  쓴다면

목민심서가 아닌 사법개혁을 쓰지 않을까요.

사법개혁은 1987년부터 하려 했지만

기득권들의 반대하니 왜 그런지 이번 기회에

하지 못하면 영영 못 할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하늘의 뜻이고 민심이니

한 대학생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세요.

밀알 하나가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사법을 개혁하게 하소서

 

 

두려운 자유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듯이 자유는 책임을 묻는 자유 테두리가

있어 그 안에서만 누리게 되었는데 요즘 자유가 무언지도

모르고 남발하여 고귀한 자유를 더러운 바닥에 떨어뜨렸더라.

내 맘에 안 들면 하느님 탓 히틀러는 왜 만들어 사람을

많이 죽였느냐고 따지니까 하느님의 말씀 나는 그를 사람으로 만들었지

그렇게 한 것은 히틀러의 자유 의지

자유는 좋지만 두려운 자유도 된다는 것을 함부로

자유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듯이

자유는 분명히 테두리가 있으니 그 안에서 누리기를 바랍니다.

배신이나 나쁜 짓 하고 내 자유야 하면

그 자유는 테두리 밖을 나온 것이니 방종이었습니다.

성직자 자유를 뺏은 것이 아니라 테두리 안에서

성직자 본분을 지키는 성직자의 자유이듯이

자유를 편리한데로 이용하면 자유가 슬퍼할 거에요.

두려운 자유가 아닌 책임의 자유는 바로 지금 헌법의 자유

 

교육법

우리나라와 다른 평생 교육의 북유럽

노후 보장이 잘 되어 있는 북유럽

세금을 많이 내어도 불평을 안 하는 것은

노후대책이라 적금으로 생각하니

그곳은 이미 복지가 고갈된 지가

오래되어서 세금이 복지제도에

모자라면 더 걷고 남으면 덜 걷으면서

조정한다는데 우리나라는 고갈되었다 하면

없어지는 줄 알고 난리 치니

복지제도는 참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정책은 선진국을 따르기 위해 조금씩

변해가니 나중에는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미래를 예언하고 국민연금으로

그래야 공평하지 지금 연금은 가지 수가

너무 많아 그래서 아이들이 노후의

안전만을 찾게 하나 보다.

그래서 연구인이 꿈인 애들은 나라의 미래가 있지만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공무원이 꿈인 나라는

제일 빨리 없어진다니 얼마나 무서운가?

북유럽의 부모들도 자녀는 특별한 존재기에

그럼 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으로 키우려 애쓰는 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잘나가는 것보다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옛날의 어른을 알아보는 때와 비슷하다.

뿌리가 있어 아이들 마음은 그대로 가는데

못 배우고 가난이 한이 남긴 부모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그러니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정직한 아이들이 살아갈 수가 없다.

제도를 바꾸는 것이 시급한데 지금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무얼 하나 한심하다.

돈이나 자리가 판치는 세상이라도 북유럽 교육은

됨됨이가 더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사람들 차별이 없으니

비교할 줄 모르는 제도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 삶의 시간이 길게 만들었더라.

그들의 자유는 책임지는 자리지 행세하는 자리가

아니고 자유도 테두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선을 안 넘어가고 남발하는 우리의 자유는 부끄럽다.

그들의 행복은 특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살아가려면 함께 어우러질 때.

 

제도

헌법이 꽃피어 향기가 나야 하거늘 피다 말고 잎이

말라 떨어지는 것처럼 꽃에 향기가 없으면

버리듯 법치국가 조그만 일도 법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도 이룰 수 없는데 지금도 법을 만든 사람들은

법을 피해가며 사니 힘없는 이들만 법이 삶을 막고 있더라.

그러기에 자리를 탐하고 법대로 하자며 할지라도

특정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자의적 실행되는 경우는

권력의 불법발동에 지나지 않으며 이익대로 하니

재판은 돈과 싸움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자리나 억울한 이가 없으라 고 세워진 헌법인데

사법에서 안 지키고 친한 이의 말을 들으며

한편 법의 기능을 강제적 제재에 의한 위협과 그 실행에

초점을 맞추어 파악하는 접근법은 도덕 등의 다른

사회규범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 내 주위에

변호사 부부가 있는데 인정 못 받는 직업이더라.

순한 양보다는 이리떼를 따라야 도움을 받으니까

슬픈 일이지만 법가치는 사회의 정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깡패나 이리떼 뒤에 숨으려 하더라.

모든 국가사회의 법질서는 자기들의 생각대로

성격을 달리하는 인생이 걸린 삶을 저들의 생각대로

판결하고 죄인을 만든다면 억울해서 어디에 하소연하나?

법규범이 말하는 대로 달라지고 힘이 없는 이들을

법도 무시해버리니 이러한 구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이가 어디 있겠나?

옳은 말을 하면 법에 걸리기도 하고 자리 따라 죄를

만드니 동일한 일을 해도 어떤 이는 형량이 높고

어떤 이는 무죄가 되듯이 법조인들이 자기들

이익만 생각한다면 사법은 무너지고 법은 오래가기에

자기들 후손이 받을 것이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이 지혜를 돈과 보물에 팔아

너희 아버지와 할아버지 정의를 보아서 너까지 봐주고

후손 3대부터 멸한다고 하셨듯이 저희도 할아버지 세대

법보다는 입이 먼저 말로만 사고팔고 한 것이

오늘날 재판에 걸렸듯이 별거 아니지만

송장이 날아오면 그 순간부터 머리 복잡하여 그곳은

지옥 같은데 법조인들은 악을 쓰고 행세하는 곳이더라.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사전에 일반적인 법적

규준에 따라 관계를 생각하지 말고 명확히 규정하여

분쟁 방지에 정의로 와야 하는데 법 문턱에 있는 저울처럼

판결해야 하고 의혹이 남을 때는 먼저 피의자 편에서

판결하라 한 것은 말 한마디 잘못으로 억울하면 안 되니까.

사기 치는 머리를 만들어야 부자로 잘사나?

정의를 배신하고 양심을 버리고 어떤 구체적인

분쟁으로 증인이 될 때는 양심을 팔기도 하면서

이익이 가는 곳에 편을 들어주니 어이없다지.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최종적인 공권적 분쟁 해결기구가 자리하고 권력 그리고 돈

그래서 유전 무죄 무전 유죄 하니 부끄러운 사법

낡고 오래된 사법 법보다 주먹이라고 하던 시절

법보다 독재 권력이 먼저라는 것은 수없이

보아 와서 법에 접촉 되게는 안 살려고 했다.

표현의 자유보다 표현의 언론보다 시급한 표현의 헌법

햇빛은 크고 작은 이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머리 위를 비추는데 툭하면 핑계 대는 표현은

어디에 써먹는지 아니면 말고 식이 아닌 책임이 표현이라면

사법은 확실히 정의표현이 법이어야 하더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옳은 말 하는 이 보면 정의로운데

적이 많은 것은 자기의 삶이 그에게 어떻게 비칠지

부담 가고 그 사람 좋은 이라고 마음으로는 칭찬

어쩔 수 없이 사나운 이리떼 뒤에 서야 살아남으니

우리의 사법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누구든 잘못하면 수사를 받아야 공평하지 그러기

위해선 공수처가 시급한데 사람의 마음이 배신하지 않을까?

고심해야 하겠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 다 때가 있다고

이번의 찬스 놓치면 영원히 법은 고치기 힘들고

누가 그런 자리 만들어 주었나?

깊이 생각하기를 바라며 제일 먼저 사법제도가 바뀌었으면

 

 

사법의 자리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기에 고민하면서

판결하는 판사 의혹이 생길 때는 피의자 편에 서라는 것은

억울하면 안 되니까 정의롭게 하라는 법인데

사람이 한계라고는 하나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을

이용한다면 무너지는 헌법이랍니다.

수없이 보아온 유전무죄 무전 유죄는 아직도 부끄러운 헌법

이기고 지는 싸움을 칼을 가지고 덤비니 안 보았던 망나니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시대에 사는 것을 민주라 할 수 있나요?

칼은 일상의 도구라 없으면 맛있는 것을 못 하듯이

인권을 다스리는 검은 심사숙고 해야 하는데 양날의 칼을 가지고

휘두르다 자기 발등을 찍는 격이 헌법이라면 법을 아는

사람은 빠져나가는 길도 알기에 말 한마디가 법이니.

말과 칼이 정의롭게 쓸 때 우리가 의존하는 헌법이지요.

사는 것에 법이 안 거친 것이 어딨나요?

나면서부터 호적 신고 죽으면 사망신고 이 밖에도

사는 것이 다 법이라 법치국가라고 하며 정의로운

법은 편리하고 특히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법인데

법까지 부와 가난을 차별하니 돈 없고 힘없는 약자는

억울함을 당해도 말을 못 하고 입맛대로 손을 들어준다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요?

지키라고 있는 헌법인데 휘두르는 검에 얼마나 많은 이가

희생되었는지 나라 이름을 빼앗기고 그때의 일본 순사가

지금 검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니 이번 기회에 정의로운

법으로 꽃피기를 법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공동생활의 기준인데요.
우리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법이

이러한 것들을 보장해 주고 법치국가에서 약자들이 의존하는 법

만약 법이 없다면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갖기 위해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빼앗아도 꼼짝 못 하고 당하니

교육의 제도가 법조인이 되어야 자기의 보호막이 생기니까요?

세상을 안 바라보고 출세만을 볼 때 사법은 무너진다지요.

법의 제도를 세월이 간만큼 바꾸어야 하는데

법조인들이 악랄하게 발악하니 사법이 무너지는 나라

다시 법 개정을 하고 헌법이 꽃을 피웠으면 합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와 양을 구별할 수 있게 사법이

있는 건데 요즘 보면 검은 그림자가 뒤에서 가까운 사람이

조정하는 대로 따라가니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양의 탈을 쓴 이리가 휘 접고 다니니 참 기막힐 일이고

정의 사도 백의 천사들이 바이러스와 싸우는데

도움이 하나도 안가는 법인 것 같아요

약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에게 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사라져 어제의 친구가 오늘 적이

되는 법의 사회인가 봅니다.

권력의 힘이 아닌 근육의 힘을 키우느라

운동하는 이가 많아지고 억울한 이가 없게 하였으면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행세하라고

주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거 알았으면 합니다.

 

법이 꽃

양의 탈을 쓴 이리떼가 많아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

법을 만든이들이나 법을 아는 이들은 빠져나가는 법을 아니

애꿎은 힘없는 사람들만 법에 의존하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정말로 가고 싶지 않은 곳.

순한 양은 이리떼를 지키지 못하지만 이리 떼는 자기들

입맛에 들면 다 지켜주니 힘이 먼저인가?

그런 곳에서 날마다 죄인을 만들기도 하고

죄를 숨겨주기도 하느라 고생이 많기에 그런 이들 안 부럽고

사자의 눈으로 변해가며 신뢰할 수 없으니 없어졌으면 좋겠다.

창세기를 보면 인디언들이 사는 법과 비슷.

고마움 감사를 알고 양심을 먼저 지키고 가치로

인성을 평가하는 세상을 인디언들은 법이 없어도 알아서

자기들이 법을 지키는데 법치국가라 하지만

약자들이 넘어가기에 높은 법의 문턱

그곳은 사람 냄새가 없고 오로지 이익만 챙기는 곳

서초동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한적하고 음침한 그곳

저울을 양팔에 들은 동상이 쓸쓸해 보이는 그곳은 가기 싫은곳

저 안에서 길잃은 양 목자를 잃은 양

떼 지어 다니는 검은 이리떼들 싸움이 끝나는 날 법의 꽃은 피리라.

 

 

법과 허리

헌법이 머리라면 젊은이는 허리

나라의 중심은 청년들의 허리라지.

70년 써먹은 헌법이라면 그릇이나

옷이나 숲도 나무도 그때의 문화는

남은 것 없이 다 바뀌었는데

왜 헌법은 바꾸지 못하나?

정치가 젊어져 허리가 되어가면

국민을 허리로만 바라보아준다면 하는 아쉬움만

지금 현실을 보면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다 해도 요즘 세상 애들은

달나라 가는 디지털 세상에 사는데 제도가

70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 한 발짝도

못 나가기에 앞서가는 진보적인 젊은이들

시대의 흐름은 갈라질 수밖에

자기의 인기로 디지털 세상이라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국격을 만들었더라

돈이 판치는 현실에서 가치를 아는 예술인들이

외로 많기에 나라의 앞날이 보인다.

우리의 허리인 젊은 애들은 생각도 세상을 보는 눈도

깨끗한데 어른들 뒤를 따라가니 희망이 안 보이고

허리가 없이 미미한 원피스가 대한의 옷

허리가 있는 옷이 예쁘고 바로 청년들인데

 

 

헌법

탄핵이 없는 법의 꽃은 향기가 진 할 텐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탄핵이 유행되어 대통령이

시범을 보이니 창피하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헌재의 탄핵 노무현 박근혜  

선고내용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을 아프게 찔렀기에

둘로 나누어져 진영싸움이 끝나 지가 않더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자격이 상실된다는 것을 

명문화한 것이 이번 헌재판결의 핵심

어디 그뿐이랴? 돈 앞에 이익 찾아가는 사람들

어느 쪽에 서야 이로울까 재면서 가는 배신자
언론의 자유라고 하지만 책임도 따른다는 거 안

배웠는지 아니면 말고 식인지 언론의 무분별한 글이

사람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생명을 죽이기도 하니

아이고 무서워 언론자유 훼손 주범으로 대통령을 

특정하기 어렵고 언론자유라 표현의 자유라 떠들기만 하지

특종도 정확히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장사하니 누가 언론을 믿을 건가?

간판이 브랜드가 되어 믿음이 없으면 브랜드도

인정을 안 해주는 데 부끄럽게도

언론자유가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명시되었으면

그래서 헌법상의 숭고한 가치로서의 

언론자유가 보기 좋은 꽃장식으로 헌법 조항에 

매달려 있지 않고 언론이 법이 되어버린 세상

 

 

 

헌법이 왜 이래?

이기고 지는 싸움이 시작되는 헌법이라면 옛날 사람들

몰라서 억울한 일 안 당하고 법이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뉴스에 나오는 장관과 총장만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은 더 많은 법 속에서 살아가며

조금만 안 지키면 수사를 받는 곳이라 검찰청은 무서운 곳

법 만든이들이 떠들어대고 나라가 발칵되집어 졌다고

하는데 검사와 판사가 싸워서 개혁되어 법의 꽃이 피었으면

그동안 판검사가 하나 되어 약자들은 꼼짝 못 하였지

지금처럼 생각이 다르다고 다툰 적이 있었던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면 법의 자유도

있어야 공평한 것이 아닌가?

입맛대로 수사하고 난동을 부리는 곳이 아니고 억울한

이가 없게 사실을 위해 수사하는 곳인데 무엇이던

오래가면 낡아지어 냄새까지 나니까 그만 사법개혁을

하여서 모든 이가 평등한 법치국가에서 살면 좋겠다.

법이 엉망인 것은 직접 해당이 되어 법에 관심

가지다 보니 자주 구레 한 법들을 고쳐야 할 곳이 많더라.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산골 땅 상속자가 되어

명의만 남기고 50년도 넘었는데 땅 찾아가라며 법에

논리로 골치가 아프고 쉽지가 않으니 참 어이가 없다.

어떻게 하나 할 줄도 모르고 법무사나 변호사 사서 하려니

비용이 엄청나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나?

말로만 사서 그 아버지는 죽고 아들이 양계장을 하는데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변호사를 사서 상속자 주소를 찾으려고 28명에게

송장을 보냈다니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그 송장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날 정도라 안 펴보았는데

머가 그리 많은가 보니 다 죽고 없는 자식들 3대까지

상속인이라니 연락도 안 하고 사는데 그 변호사는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정보가 법 쪽에서는 아니 불법사찰까지

하면서 자기들과 서민들은 다른 나라에서 사는 줄 아니 씁쓸하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했는데

법치국가라고 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으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법대로 살지 않고 힘없는 이들만 지키고

자리 따라 말로 법을 만드는 모양인데 그러거나 저러거나 어쩔 수

없이 약자들끼리 싸움이 시작되니 이겨도 져도 그저 그렇다.

 

 

법의 공평

의혹이 가 확실하지 않으면 피고의 편에 서라는 것은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기에 그래서 자기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시시비를 가려주는 곳이 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법도 이익 따라 만드니 사법은 무너지고 거짓이

흉흉해서 믿지 못하는 곳을 법조인들이 만들었더라.

법치국가에서 법을 안 지키면 범죄자가 되어 자리 따라

크기가 다르니 법은 만든이들을 위한 보호막이고 힘없는

이들이 지키는 법이었다.

법대로 하자고 큰소리치는 이들은 뒤에서 누가 봐주기에 믿고서 당당

하지만 죄를 안 짓고도 억울하게 죄인이 되는 법치국가.

법보다 주먹이라 허더니 요즘은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양날의 날을 세운 검인가?

신상정보도 그들만이 할 수 있으니 어쩌다 법조인이 저렇게 되었는지

자기들 죄를 모르고 엄한 이들을 치려고 휘젓고 다니나?

하지만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진리 그들이 벌 지금은 안 받아도

먼 날에는 그 후손들이 받더라.

그래서 조상 탓을 하고 우리가 아는 지혜의 왕 솔로몬도 돈과 여자

권력앞에 나중에는 타락하여 할아버지 이세와 아버지 다윗의 됨됨이가

훌륭하였기에 솔로몬 시대까지 벌을 안 받고 후손들은 갈라지었다지.

이렇게 법을 사람들은 자리 따라 먹이지만 진리는 공평하더라.

 

 

사람이 하는일

법은 인간이 만들었으니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안 되는 일 없다 하였지만 

법대로라는 말이 가진이의 무기 피할려고 하는 사람들과의 재판은 가진이

손을 들어주니 사람의 인정이 법에 부합되어 완벽할 수는 없더라.

하지만 어쨌거나 법이란 테두리가 안전 막이고 법이란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자유롭게 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더라.

생각이 다르니 저마다 옳고 그름이 틀리겠지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주어진 법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의인이 되기도 하니까 법률가들은 말 한마디라도 억울한 이가 없게

판결해야 하는데 법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법의 판단에 따라 이리와 양이 되기에

분명한 것은 상황을 바라보는 생각이 좌우하기에 맘에 안맞게 판결하면

다시 승소하고 대법원까지 가니 사람의 하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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