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하느님 사랑/주님의 말씀.나의 생각.

신약은 구약 예언의 완성

우리들 이야기 2020. 12. 15. 11:14

 

신약은 구약 예언의 완성.
구약의 예언이란 다름 아닌 구세주에 대한 예언.
이 예언은 예언자들이 전한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이 말씀은 진리이기에 비켜 갈 수가 없습니다.

불확실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입니다.
우리는 원칙이 통하지 않고, 변화가 잦은 사회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점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 불안정한 사회현실 때문.
둘째, ‘쏟아지는 정보 속, 선택의 문제.
점 보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은 낯모르는 역술인에게서

들은 내용을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문화가 다원화하고 사회가 복잡해 지면서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짐에 따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권위가 점차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셋째, ‘속전속결(速戰速決)주의 코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빠른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세계가

다 아는 사실 따라서 현실이 아닌 내세에서의 행복을 보장하는

다른 종교에 비해, 점은 그 자리에서 바로 예언을 들을 수 있기에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넷째, ‘운명론(숙명론)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회가 아무리 다변화하더라도 우리 문화의 기본 바탕에는 동양적인

사상이 내재해 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동양적인 운명 사상을 믿는 것은 한국인이 점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고민을 나눌 상대의 부재(不在)’다.
어떤 학자는, 현대사회에서 인정받는 종교인, 가톨릭 신부나 불교 고승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과 역술인에게 돈을 주고

점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 심리를 같은 선상에 놓기도 합니다.

 

알파요 오메가 시작과 끝

임마누엘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님 시대에 정해진 운명이며 지옥에 떨어질 죄인으로 여겼던

그들 창녀 마귀가 들었던 마리아 막달레나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자의식을 회복하게 되었으며, 부활의 첫 번째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를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불행한 운명에서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으로 변화하는 대반전을 체험하였습니다.

 

나병 환자가 치유되었고, 악령 들린 자들이 풀려났고, 절름발이가 걷게 되었고,

벙어리가 말하게 되었고, 12년간 하혈 병을 앓던 여인이 낫게 되었고,

그 밖에도 신나는 일들이 도처 에서 발생.
이러한 대반전 드라마는 2000년 전의 박제된 사건이 아니라,

오늘에도 계속되고 Blessing of the rainbow 하는 일마다 잘 되리라.

어떻게 이러한 반전 드라마를 우리의 삶에서 이어갈 수 있을까?

 

2.매 순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됩니다.

그리고 지나간 일은 예수 성심께 봉헌하며 운명이란 개척할 수 있는 것.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이유는, 운명이란 시간 속에 있고,

이 시간은 직선의 시간이기에 반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얼마든지 내 자아상의 이미지를 바꿀 수 있듯이, 나의 운명을

내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성숙한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런데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책임을 지려 하지 않으니 이러한 사람들은 정신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현실을 직면하고, 느끼고, 실행하는 행동은 때로는

고통에 직면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인내하고 넘어서는 순간

우리는 활력이 넘치는 삶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지성으로 예수성심은 어디에나 계시다고 믿고,

내 기억으로 떠올려서 마음으로 내려놓고 주님과 일치하려는 소망으로,

의지로는 수억 수천 도의 용광로보다 더 뜨거운 사랑 자체이신 예수성심을

향해서 기억을 던집니다.

 

맹자의 명언

순천 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순천자(順天子)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子)는 망(亡)한다"고 되어 있다.
순천 자는 존이요.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살고.

역천자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자는 망할 것이다.

 

우리의 상식은 그렇다.

하늘에 순응하는 자 흥하고(順天者興)

하늘에 반하는 자 망할 것이라고(逆天者亡)

그래서 항상 순리대로 살아가라는 것이 선현들의 가르침이었다.

세상을 살면서 상식적으로 살기를 원했다.

무엇이 상식이고,  순리인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인간의 보편타당성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자연의 진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상식은 어느 개인의 가치관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공감 할 수 있는 인간 보편의 가치다.

이러한 상식 속에 사람들의 삶은 자연스러워지고 너와 나

우리는 공동체로써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권력자는 이런 말 한다.

법을 지키라고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권력자들은 법을 지키지 않는다.

그리고 법이라는 것이 상식을 초월한다.

상식을 초월한 법이 과연 제대로 된 법일까?

권력자들이 지키라고 하는 법은 인간의 상식에 기초한 법이 아니다.

그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서의 법이다.

그런 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넌 센스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

우리는 이것이 진리인 줄 알고 살아왔다.

그러나 100년 동안 하늘을 거슬린 인간들은 망하지 않았다.

100년을 하늘에  순응한 자 흥하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은 말한다.

100년 아니면 200년이 지나면 망한다는 말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로써 달도 차면 기우는 현상이다.

생노병사 의 자연 순환 현상일 뿐

역천자이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식이 없어도 잘사는 나라가 있다.

법이 아니어도 살아가는 세상이 있다.

바로 정글의 법칙이다.

정글속에 들어가 있는 맹수들은 그들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간다.

지금 우리는 정글속에 갇혀있다.

가진 자라는 맹수에게 걸려든 불쌍한 동물들이다.

순천 자는 흥하지 않는다.

거짓과 위선 탈선과 매국으로 자자손손 이어져 내려오는 그들이

세상을 호령하는 곳에서 지금 우리는 호흡하면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것이다.

세상은 상식적이어야 한다.

몰상식의 세상은 잠깐은 좋을지라도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몰상식의 세상에서 살수 가 없다.

양심이라는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몰상식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브라함은 떠 돌이었다.

아브라함은 머무는 곳이

젓과 굴이 흐르는 땅 약속의 땅이라고 했다

계약은 하느님과 나의 약속이었다.

많고 많은 신중에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라고 한다.

 

구약에는 계약이 피였다

피는 생명이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형을 받고 피를 흘리시며

하늘과 땅을 이으셨다.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계시하신다.

교회를 안 다녀도 기억하는 이름들 노아 아브라함 모세 아론

이삭 야곱 다윗 솔로몬 예수 마리아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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