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하느님 사랑/주님의 말씀.나의 생각.

세례자 요한 수난 기념일

우리들 이야기 2020. 9. 2. 11:55

오늘의 묵상

 

마르코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마르 1,1)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예수님에 대한 나자렛 사람들의 무시와 열두 제자의

파견(마르6,1-13 참조) 그리고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이야기와 빵의

기적(마르 6,14-16.30-44 참조) 사이에, 헤로데 안티파스 임금을 매개로 한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사람들의 여론(마르 6,14-16 참조)을 함께 놓고 있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배다른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를 차지하여 세례자 요한에게서

비난을 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살아 있는 형제의 부인과 혼인을 시도하는 것을

근친상간이라 하며 금지하였기 때문입니다(레위 18,16; 20,21 참조). 헤로데는 비록 세례자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지만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여겨 바로 죽이지 않고

보호해 주며 때로는 요한의 말을 기꺼이 듣고는 하였습니다.

오히려 입장이 불편하였던 헤로디아가 앙심을 품고 세례자 요한을 죽일 기회만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회는 쉽게 왔습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자신의 생일잔치 때

헤로디아의 딸인 살로메의 춤에 넋이 나가 허튼 맹세를 지키고자 세례자 요한을

참수하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았기에 인식이 흐려진 것입니다.

마르코가 이렇게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그의 죽음이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요한의 사명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의로웠습니다.

담대히 진리를 외치고 또 증언함으로써 순교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속 권력자 헤로데 안티파스는 자신의 생일 잔칫상에 사람의 목을 잘라 올렸지만,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몇 개의 빵과 몇 마리의 물고기로

많은 이를 먹이시어 하늘나라의 풍성한 잔치를 보여 주십니다.

요한의 죽음과 연결된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세례자 요한의 수난 기념일인 오늘의

의미를 더욱 잘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

 출처 : 2020. 8. 29. (토) 굿 뉴스 오늘의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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