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수필 >이야기

세상아 안녕.편지 이야기

우리들 이야기 2021. 3. 22. 12:50

 

유언

주님을 만나던 그해 봄바람 속에 사랑 꽃 편지

날릴 때 주님이 계신 곳인데 아직 세속에 젖어

높았던 성당 문턱을 내 집처럼 넘나들며 보라색

라일락이 성당 마당에서 꽃 나비 되어 날면 

꽃 향기가 가득했던 초여름 그곳에서 주님을

알았고 교리 받아 데레사 이름으로 새로 태어난 8월 15일

부르심에 대답한 주님과 영원한 만남은

최고의 선물 고맙습니다. 주님 곁으로 가게 해주소서.

 

 

자기에게
미운 정 고운 정 남기며 지지고 볶고 살다 보니 믿음이 사람이 되어

재미없는 얘기 자꾸 해도 들어주는 사람이라는걸

짜증 내는 걸 알면서도 오죽하면 저럴까 모르는 척해준 당신.
그 많은 시간을 얼마나 속상했을지 생각하면 자기는 내 인생의 세상.
삶과 죽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자기가 있어 숨을 쉴 수

있었고 어떻게 하면 자기한테 덜 미안한 죽음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나고 죽음은 세상의 이치 생각하기따라 별거 아니기에

누가 믿거나 말거나 죽음복이라는거에  매달려 봅니다.   2006

 

세상아 안녕!

동녘이 밝아오면 해 오르며 어둠이 걷히면 새날이 시작되는데

날마다 수천 일을 느낌 없이 살았는지 아쉬움과 고마운 날이었다
하나하나 알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그날은 가까워지니 슬플 것 같지만 그냥 편안하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작별하니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오면 별들이 

하늘 길을 밝혀주듯 가야만 하는 나의 길이라면 아픈 날도 있지만 웃음을

나누었던 정든 사람들과 세상도 손을 놓아야 하나 보다.

옛사람들이 있던 곳에는 새사람들이 이어가고 그날 내 인생이 어둠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려 몸부림쳤지만 겨우 날개 잃은 보잘것없는 생명 하나 건졌고
하찮고 희미한 별일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이들로 생각이 반짝였으니 때에 따라

마음이 변 하지만 너희들의 사랑은 한결 이었고 안녕은 반가운 인사라도 작별의

인사로 헤어지며 만남이 그리움을 남기듯 수만 번 연습하면서 몸은 망가졌어도 

세파에 시달려 동이 트면 쓸데없는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어둠이 내리면 세상이

저무는데 아픔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며 최선을 다 해봤지만 

떨어진 날개는 찾을 수가 없고  단풍색이 바래면 낙옆이 뒹굴 듯이 인생별거 아니었다.

내가 없어지면 저 숲도 언젠가는 갈색 낙엽 되니  내가 필요해서 불러줄 때 사람이고

쓸모 없어지니 슬펐지만 삶과 죽음은 다리 하나 건너는 경계선이라 가까워지니

뚜렷해지고 어둠을 뚫고 나온 햇볕이 비치듯 아픔과 걱정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2007

 

애들에게

주어진 팔자인가 슬프다 많이 생각이 깜빡깜빡

정신이 있을 때 너희들에게 부탁한다.

치매 등급 받아야 2급 그러면 요양비 무료인데 힘들 거야

지금은 3등급 요양비 칠십 만원이래
미안해하지 말고 갈 곳이 있으니 편하게 보내줘라.

가족은 하늘이 맺어준 운명이므로 함께하는 만남이니

좋은 관계로 교류하면서 미움은 빨리 잊어버리고

예쁨만 오래 기억하며 자주 만나야 오해가 없고 웃음 나눌 때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라 인식하지 생일 때마다 만나면 좋겠지.

내 생각에 맞추지 말고 서로 배우며 커나가기를 바란다.
하늘의 뜻으로 맺어진 나와의 관계 서로의 다른 환경에서

모였지만 가까이서 함께 웃고 울고 한맘으로 살다 보면 

이해와 사랑이 좋은 관계로 이어진다는 것을 삶으로 가르쳐 준 가족.
항시 기분 좋을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 목소리에도 기분이

담겨서 좋은 점만 보이는 것이 아니고 눈치도 보며 어려운 일도

함께 풀어가듯 잔소리는 관심이라 부모만이 해주더라.

이렇게 마음의 편지를 쓸 수 있는 건강한 생각이라 고맙단다. 2020년 

 

엄마가 세상과 이별해도 블로그 커톡에 올려놓았으니 다 너희

이 메일에다 정리하고 사망신고 하길 바란다.

살아온 인생이 글속에 담아놓았으니 엄마는 안보여도 엄마의  인생과 이름은 남겠지.

 

영전사진 장농 선반위에 있어. 

몸이 성치못하여 의자에 앉았어도 불안한 그 모습이 표정에도

나타났는데 어떻게 보면 수즙은 얼굴도 같다. 2022

 

 

생각 이야기

삶의 끝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나의 이별은 예뻤으면 한다.

누구나 사람의 생명은 유통이 길기도 하고 짧기 한 것은

맛이 가면 이별이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죽음이

세상과 갈라놓을 때 후회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을

보이는 세상속에서 살며 비교하듯이 죽음 앞에서 후회를

묻는다면 엄마의 마음은 죽는 날까지 똑같았다.

모습이 맘에 안 들고 늙고 병든 것이 안따까워 슬퍼도

살아 있는 사람들은 두고두고 기억할 수 있는 신뢰하는 사랑이

갈수록 쌓여가길 바라지만 내가 없어지면 세상과 시간은

멈추니까 그해도 엄마의 사랑만은  끝없이 흘러가길  바란다.

 

<편지>

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이른 아침

소리 없이 총각들의 승냥 하는 데로 가보았다.

불을 집 피고 모두가 동그랗게 서서

한사람이 손에 들고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모두가 웃음 띤 얼굴들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 뒤로 편지를 감춘다.

아마 연애편지를 읽는구나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좋은 시절이구나. 웃으면서 돌아왔는데 그래도 자꾸만

마음이 걸려 승냥이 모두 끝난 다음 승냥 간으로 발길을 돌렸다.

종이박스 하나가 놓여있는데 그 안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내 이름이 보여 얼른 편지를 들어보았다.

남편이 군대 있을 때 나에게 온 편지였다 시집올 때

추억이 담겨있는 소중한 편지라서 가지고 왔는데

글을 잘 모르는 시어머니께서 불쏘시개 하라고 내어 주었고

종이박스 통을 들고 돌아와 하나하나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사랑한다는 글 부끄러운 것까지도 들키었으니

시어머니가 왜 그리 미웠던지 동생이라면 한 방 때려주고 싶었다.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곱던 옛날의 추억이 떠올랐고 편지 속에

진실이 보이고 다시 시어머니가 추억을 살리게 해주어 고마웠다.

새삼 남편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면서 소중하게

느껴지며 한세월 사는 동안 편지로 인한 사연이 많다.

한번은 대전으로 교육 갔는데 분심 든다며 시계도

맡겨놓고 커텐 치어 어두컴컴해서 전깃불을 켜놓아 낮인지

밤인지 때가되면 밥먹으러만 가고 교육에만 열정을

바치는데 편지요 하면서 한 직원이 편지를 가져다준다.

첫머리가 땀을 많이 흘리는 당신이 얼마나 더운데 고생을 하오.

이 글을 읽는 순간 내가 땀이 많은 것을 어떻게 아나?

고마워 눈물을 글썽이면서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나이가 30대인데 편지 말투가 왠 나이 많은 어른처럼 폼 잡았지.

그래도 나는 자꾸만 눈물이 고인채로 한 통의 편지를 또 뜯어 보았다.

엄마가 안 계시니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겠다고

말썽을 부리던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의 편지를 함께 받았다.

편지 한 통으로 보이지 않은 마음이 함께 하고 마음은

가정이 되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전화로 문자로 빨리 가는 디지털 문화 시대에 살지만 정성과

생각이 그 사람의 모습 천년이 가도 변치 않는 진리가 편지

교육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받고 집에 돌아오니 반겨주는 가족들의

고마움이 편지 마음을 전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2007

 

 

 

보고싶다 정숙아!

세월 속에 감춰진 정숙아! 그리운 이름 가만히 불러보니

아련히 떠오르는 그 얼굴 나이 수는 숫자라고

청춘일 때만 담아 놀게 너와 지워지지 않는 끈끈한 정

기억 속에 담아두지 않았던 하찮은 이야기들

날 수가 가는 동안 새록새록 떠오르고 정숙아!

너는 안 보여도 남겨진 이름 뒤에 한 사람이 되어

그날을 생각하며 길게 뻗은 저녁노을 그 아래 마른나무 가지 

한잎 두잎 낙엽 되어 떨어져 쌓이면 모르는 여자라도

네가 되어 이름 위에 수많은 사연들 다 지우고

다른 추억만 기억할께 통통하고 마음약했던  너 잊을수 없어

네 모습이 그림이 되고 이맘때면 함께 걷던 길 

혼자 지나며 네가 생각나 돌아보니 뒹구는 낙엽 소리만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 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얼굴 그림자가 다가와 미소 띠며 지난날 이야기 들려주네. 

정숙아! 오래전  대천 해수욕장 모래밭을 걷던 날들이

추억으로 그때가 오래전 우리들의 젊은날이네.

정숙아! 건강하게 잘 살지?

서울방배동이라 했잔어 지금도 그곳에 사는지?

너와 헤어진지도 한참 되었어  내가 젊고 성할때이니 찾아보고

싶지만 네가 가슴이 아플까봐 자신이 없어서 우리 젊음을

추억으로 담아놓고 해수욕장 모래밭 거닐던 그때 해도 뜨다

말고 흐릿했던 늦은 봄날을 떠올려 본다.

우리 거실에 누어서 지금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결혼식 날 만난 후 헤어져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서 서울에서

대천으로 복점 언니 선숙 언니 함께 만났는데 그때가

벌써 20년 전  길고 짧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고 어느새

우리들은  할머니란 이름으로 옛날 여인이 되었어.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을 담고 젊은날에 머물렀어.

정숙아! 늦가을은 겨울을 부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봄꽃으로 남았어 .

 

 

 

환갑

천안 오룡동 성당 신상옥 토마 신부님 60회 壽宴

푸르른 녹음 내음이 짙은 7월의 첫날 진심으로 신부님의 壽宴 축하드립니다.

신부님이 저의 대천 본당에 처음 부임해서

오시던 날 신부님 맞으러 교우들이 모였었지요.

그때 신부님께선 까만 수단을 입으시고 약간의

그을린 듯한 세련되고 멋있는 분이셨죠. 

자 들 본당 안으로 들어갑시다.

먼저 하느님께 인사드려야지요. 하시고는 안으로 들어가셔서 제대 앞에

무릎 꿇으시고 한참을 기도하시고는 우리를 향해서,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형제 되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그렇게 신부님과 인연이 되어 5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지요.

여름 하계수련 해수욕장 초등학교 마당에서 그날 밤

보름달이 별들 사이로 지나가는 유치원생 손에 손잡고

강 강 술래하였는데 달이 차오르면 그때의 추억이 되었답니다.

신부님은 저희 가족 에겐 특별한 분이셨는데 시누이 홍 율리아

수녀님 종신 서원식 할 때에 특별히 참석해 주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고 저의 아이 첫영성체 신부님이셨지요.

시누이 종신 서언 끝내고 수녀님들 신혼여행 왔을 때 우리 해수욕장 회집에서

25명이 나눈 웃음 속에 하느님 술 마주 왕이 있어서 하느님과 함께 취해있었지요.

구역 반장 모임 웬만하면 참석하시어 함께 걷던 길이 추억이 묻어있답니다.

본당을 위해서 어렵고 힘든 일 다 하시고 특별히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았었지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호주 한인 성당으로 부임 받아

떠나시던 날 신부님 전송 나갔을 때 학생들이 성당 마당에

엎드려 고마운 인사가 저희 모두 아쉬움에 눈물이 고였답니다.

우리 손 하나하나 잡아 주시고 그동안 여러분들이 있어 행복했다고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적시던 그 모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계시는 동안 좋은 일 많이 하시고 가난한 형제자매님 들 한 테 특별히

사랑을 주시었는데 정열이 있으시고 젊으신데 신부님 벌써 壽宴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어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그동안 하시었던 것처럼 교우들 사랑 많이 해주십시오.

저희 시어머니 호주에 여행 갔을 때 신부님 뵈었다고 해서 만나 뵌 것 같이 반가웠습니다.

한국에 나오시어 오룡동 성당에 계시는데 저에게는 큰 변화가 있어

찾아뵙지 못하여 아쉬움에 수연 축하 글을 올립니다.

신부님 언젠가 꼭 뵐 날이 있을 것입니다. 

내내 주님의 은총 충만하시고 복된 삶이 되십시오.

홍민선 야고보 임일순 데레사 드림

 

인연 김서방에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은아와 만남이 나의 사위가 되었네.

딸 가진 엄마들이 바라는 것은 고생 안 시킬 사람을 고르는 것은

엄마의 마음이라 생각하는데 본인들의 마음은 정이 가면

눈에는 들보가 가린다지.

그러기에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는데

더구나 마음 약한 나는 딸 생각을 꺾을 수가 없었지.

둘이 만남은 하늘이 내려주신 천상 연분

처음엔 좋은 모습만 보이다가 살다 보면 속이 보여 싸우면서

지지고 볶고 하지만 가정을 위해서 한마음이니까

싸움은 관심이란 거 더 오래 살아야 알 수 있으니

별스러워도 한마음은 부부니까 두 사람이 건강한 마음과

몸이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거니 작은 기쁨을 크게 자랑하며

서로를 위할 때 동휘에게도 산 공부가 되는 거야

시대의 흐름따라 간다해도 세상을 오래 살은 장모의 생각

김서방도 아버지가 되었으니  정감가는 아빠와

남편으로 살면서  건강한 마음 몸 지키며 살기바래. 

그래야 이다음 동휘가 본받아 모두에게 귀여움을 받지.

둘이 알아서 잘 살겠지만 일단 참는 것이 기쁨으로

간다는 것을 알면서 잘 살아야 해.  2007 

 

 

사랑하는 은아야

너와 같이 예쁜 딸을 나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먼저 감사드린다.

너를 가져 열 달 동안 함께 웃으며 기뻐하며 네가 세상 속에 축복으로 태어났지

예쁜 짓 하면서 매일매일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면서 잘 자라 주었어.

취학 통지서를 받고 우리 딸 학교에 입학하네.

마음이 설레었고 나 혼자 학부형이 되는 것처럼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건강하게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성적이 좋아 엄마를 기쁘게 해주었고

중학교에 가서도 반장 자리 놓치지 않는 통솔력이 강하고 친구가 많은 해맑은 소녀

고등학교를 대전여고로 가게 되면서 너와 헤어짐이 그때부터 더욱 그리워하는 모녀

대전여고에서도 홍은아 하면 인기 짱 이었던 덕분에 은아 엄마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엄마의 이름은 잊어버리고 은아 엄마가 내 이름인 줄 알았어.

대학을 들어갈 때 경쟁률이 높은 학교에 학격 해 가족을 기쁘게 하여

잔치까지 하였으니 너로 인해 엄마 아빠는 항상 행복했단다.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너도 이제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어 예쁜 손자를 안겨주어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씩씩한 너를 보면 삶의 활력소가 생기고 네가 나의 딸이라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단다.

그런데 네가 이런 말을 했어. 엄마한테 받기만 했지 해드린 것이 없다면서

이번 엄마 생일날 손수 생일상을 차려 준다고 눈물이 났어.

너를 키우면서 기쁨을 얻어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기에 너는 이미 효도를 다

했는데도 지금까지도 고맙다고하니 나도 고맙다.

그리고 망가져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속상했지만 네가 이제는 아이도 생겼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건강하게 잘 키우고 현만 이와 행복하게 잘 살아라.

너희가 잘살아주는 것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는 거란다.

언제나 건강한 웃음이 가정에 넘치기를 기도한다. 2007   엄마 아빠

 

 

승완 은주에게

너희들의 만남은 운명적인 인연이다.

많은 날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자기의 꿈을 향해 목표를 가지고 어렵고

힘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실현하려는 너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너희들이 가는 길에 불필요 한것들 은 마음에 두지 않고 자신을 가지고 바쁘게

살아가는 그 젊음 빨리 가다가 지치는 사람들도 있고 천천히 더디 가도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 어떤 보장이 주어지더라.

이런 말이 있지 일찍 피는 꽃은일찍 지고 늦게 피는꽃은 오래 남는다고.

때를 기다리면서 좋은 날을 기다리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말고 내일이라는 희망의 선물이 있으니 용기를 가지자.

부부라는 이름은 사랑이고 용서이다.

그대의 좋은 점은 칭찬으로 두 배의 기쁨을 갖게 하고,나쁜 점은 시간에 맡기자

본인도 자기의 단점을 알고 있거든 하늘이 맺어주신 부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신뢰하는 친구로 한 곳을 같이 바라보는 동반자가 되어

많은 날 들을 웃으면서 몸과 마음 건강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2007    엄마 아빠

 

은주가 나에게

충남 보령시에 사는 시어머니는 인터넷으로 며느리를 북돋아 준다.

내 전화 목소리가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사이월드에 글을 남기고, 이메일을 보낸다.

띄어쓰기가 없는 문자메시지도 가끔 날아온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진 글은 항상 ‘사랑하는 우리 은주에게’로 시작된다.

깜짝 선물도 택배로 배달된다.

인터넷 쇼핑몰을 돌다가 며느리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발견하면 우리 집으로 보내는 거다.

며느리와 백화점을 누비며 쇼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시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인터넷 쇼핑법을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다. 

집안에서도 시어머니는 항상 내 편이다.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설거지를 하다 컵을 깼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모가 외국에 나갔다가 선물로 사온 귀한 물건이었다.

며느리감이 온다고 시어머니가 특별히 내놓았던 것인데 

집안 살림에 서투른 내가 깨 먹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다치지 않았니. 낯설어서 그렇지.손님한테 일을 시킨 내가 미안하구나.”라고

말하고 남편을 전격 투입했다.

시어머니는 두 아들을 완벽한 살림꾼으로 키웠다.

설거지는 물론이고 청소, 빨래, 요리까지 못하는것이 없는 훌륭한 내조자다.

그 후 나는 시어머니 앞에선 혼자 집안일을 하는 법이 없다.

남편과 함께 음식하고, 청소하고 2004년 8월, 만난 지 10년이 넘은 ‘오래된 연인’과 결혼했다.

시어머니도 수년간 봐온 터라 호칭이 친정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시어머니는 ‘은주야.’라고, 나는 ‘엄마’라고 부른다.

신혼 첫날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어머니 불쌍한 분이다 

친정엄마처럼 생각하고 잘 지내 달라고 했다.

가족에게도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무뚝뚝한 남편이 진심을 드러낸 것이다.

시어머니는 1999년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큰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다리가 일부 걷기가 힘들게 됐다.

쉰을 갓 넘겨 찾아온 시련에 온 가족이 슬픔에 잠겼다 

그때 시어머니가 좌절을 털고 일어섰다.

나는 목숨과 다리를 맞바꾼 거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소중한데 왜 슬퍼하니''남편이 부탁이 없었더라도 나는 시어머니와 반목할 수가 없다.

그분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술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간지 신문기자인 나는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많다.

시부모가 우리 집에 방문했더라도 취재 약속을 무작정 최소하고 달려가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시어머니는 밤늦게까지 며느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져 들어온 며느리에게 꿀물 건낸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넌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야" 

시어머니는 이처럼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 

그래서 검찰총장의 말 한마디를 들으러 새벽에 출근하고 사건을 파해 치느라

밤이슬을 맞으며 현장을 지키는 것이 지칠 때면 나는 시어머니를 찾는다.

"엄마 나 회사 그만둘까요. 하니까 "우리 시대는 눈치 보느라 여자가 설거지한다.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내가 아들 잘 키웠지.”라고 자랑하며 흐뭇해한다.

시집은 종가집이고 나는 8대 종손이고 며느리다.

명절 때면 시 어머는 입으로 나는 손으로 음식을 만든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가 솜씨 없는 며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도 잔소리는 전혀 없다 오히려 칭찬 일색이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양념을 만들고 나물을 삶는다.

실수투성이지만 가끔 쓸만한 잔꾀를 내놓는다.

"음식마다 따로따로 야채 를 썰지 말고요? 

음식마다 계획한 요리에 들어갈 야채 를 한꺼번에 준비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편할 것 같아요.

"시어머니는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친다.

그리고 시아버지에게 " 우리 은주는 요리도 아주 똑똑하게 해요.

몆 년만 지나면 요리도 나보다 잘할 거에요."라고 자랑한다.

종갓집 맏며느리인데 보조 노릇만 하기 미안해 지난 추석에는 스파게티를 선보였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지만 만든 적이 없는 요리였기에 선택했다.

쇠고기와 각종 야채를 볶고 스파게티 소스로 맛을 냈다. 

과정은 쉽고 결과는 성공 명절 음식에 식상한 사촌 시동생들이 즐겁게 먹었다 

시어머니는 은주는 뭐든 하기만 하면 잘한다. "고 치켜세워줬다.

나는 또 잡채와 떡볶이를 만들었다.

시어머니의 칭찬이 듣기 좋아 이것저것 자꾸 요리하게 된다.

올 추석에 휴가를 받았다 남편의 일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자

시어머니가 "너도 자유를 만끽하라"고 명령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도 좋고 집에서 책과 DVD를 즐겨도 좋단다.

우리는 자주 보니까 명절이라고 무조건 고향에 내려올 필요 없어 

네가 제 충전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게 더 중요하단다.

시어머니가 보낸 이메일 일부다.

쑥 쓰러 입 밖에 내놓지 못했지만 나는 시어머니께 하고픈 말을 마음에 새긴다.

"엄마, 저는 엄마를 참 존경해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며느리 할래요. 은주 드림   <고마워 은주야  엄마>

은주의 마음이라 이 글을 죽을대까지 보관할 것이다.  

 

 

승완아!

어릴 때 고집이 너무 세어 버릇 고쳐 준다고 때리고 때리어도

울음이 그치지를 않아 엄마가 지쳐버렸어.

그리고 다시는 너를 때리지 않았다

너를 알았지 너는 말귀를 잘 알아들어 달래면서 키워야 한다고

네가 여섯 살 때였어. 누나 따라 학교에 가서

누나 선생님이 예쁘다고 하면서 이름 쓸 줄 알아 하니까 너는

책을 읽고 있었어 선생님이 놀라서 이다음 꼭 큰 사람이 되겠다고 칭찬하더라.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잘해서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고 너한테 기대에 부풀어있었지

가장 힘든 고등학교 시절에 성적 하나 더 올리려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새벽녘까지 자율 학습 한다고

잠도 못 자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단다.

다른 애들에 비해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어 아무도 너의 뜻을 꺾지 못했어.

공대를 졸업하고 취직은 하지 않고 다시 영화 공부한다고

한국 종합 예술학교에 들어가서 엄마 아빠 정말 많이 속이 상했지만

네가 좋아하는 일이 그 길이라 이해하고 뒷 바라 지 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단다.

네가 복이 있어서인지 네가 좋아했던 아이와 결혼하고 지금은 그 아이한테

너의 어려운 길 짐을 지게 해 줘서 미안하단다.

예술의 길은 험하고 인내로 극복하지 않으면 뜻을 펼칠 수 없어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엄마 아빠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조급히 생각하지 말자. 세상은 쉬운 일이 없어

경제적 능력이 없는 너기 때문에 물질적 효도는 바라지 않지만

너는 이미 나한테 커 나오면서 기쁨을 주었어.

불편한 엄마 관심 속에 항상 걱정해주며 너의 마음 엄마는 다 알고 있다.

좋은 아내를 맞이하여 엄마 아빠한테 큰 효도를 했고 누가 뭐라고 해도 엄마는 늘 너의 편이란다

용기 잃지 말고 건강한 생활하여 네 아내 고마움을 가지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어라

노력하는 만큼의 꿈을 이루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고 세상살이는 만만한 게 없단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걸 잊지 마라

그리고 부탁은 가족관계는 가장 중요한 사랑이니 관심을 가지고 종종 전화로 안부 묻기 바란다.

너희 둘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도한다. 2007   엄마   아빠

 

 

사랑하는 은주야!

이렇게 부르면서 너에게 내 마음 전하련다.

너를 오래전에 만났지 너희들이 대학 1학년 때 인가?

학교 홍보 책자 표지 모델에 네가 나와서

좋은 선한 눈을 가진 예쁜 학생이었어.

승완이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인연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늘이 주신 인연인지 나의 소망이 이루어졌어.

네가 나의 며느리라는 게 너무 행복해 5년이란 캐나다 유학 중에도

변하지 않고 사랑을 지켜온 너의 순수함 칭찬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만만치 않은데 그 어려움 속에서

너의 남편 뒷바라지까지 하고 있으니 미안하고 고맙다.

한국 종합 예술학교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졸업하면 감독이 되어 걱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예술이란 멀고도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으니 두 사람 중에 한사람만 경제를 담당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맏며느리로서 역할까지 충실히 하면서 일가친척들 관심 두고

명절 때면 전화해서 모두 모여 사랑의 우애를 나누고 네 남편 치켜세우면서

자랑할 때 엄마 아빠는 네가 예쁘고 고맙기만 하단다.

시누이 시동생 동서한테도 특별한 관심으로 자주 만나서

식사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내는 너를 보면 정말 기특하고 고맙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승완이가 좋은 영화 만들어

홍승완 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질 때 너의 이름도 함께 하겠지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그때를 기다리자.

부부의 인연이란 하늘이 내려주신 축복이니 감사하자

너를 나에게 며느리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좋은 아이로 키워서 나에게 주신 사돈님들 고맙고

좋은 아내를 며느리로 선물한 승완이 가장 큰 효도 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너희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엄마 아빠의 기쁨이란다.

너희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승완 은주야 2007    엄마 아빠

 

은주야!

새해는 웃음이 가득하고 언제나 즐거운 노래만 부를 수 있는 해가 되며

늘 좋은 생각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우리 며느리 전화도 제대로 못 건다.

정말 멋진 것은 정의를 꽃피려고 하는 너의 마음

돌아가는 세상에 양심을 팔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너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언론이 정직해야 좋은 세상이지.오래 정의롭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꽃이 피고 열매도 맺더라.

아직 자기 일이 때가 안 온 지금 어디에다 기대고 싶기도 할 텐데

그래도 이해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새해는 언제나 건강하고 좋은 날이 쭈욱 있기를 바란다.

 2007 시엄마 시아빠

 

 

승덕 세정에게

인연이란 하늘의 뜻으로 맺어주는 것

많은 사람 들 중에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픔은 함께하면 가벼워지고 기쁨은 함께하면 두 배로 늘어나

부부라는 이름은 두 사람이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의 그대는 그대의 나이고 그대는 나의 그대

그대가 아파하면 나도 아프고 그대가 기뻐하면 나도 기쁘고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대의 단점은 기분 좋은 말로

깨닫게 하고 장점은 두 배로 칭찬하면서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사고로 언제나 한편이 되어야 한다.

세상 속에서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며 너무

성급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여유롭게 쉬면서

건강 지키며 행복한 삶이 되기를 바란다. 2008  엄마 아빠

 

 

작은아들 승덕아!

너는 어릴 때부터 기쁨이었어 예쁘고 착하고 말도 잘 듣고 항상

잘 웃고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너를 보면서 엄마 아빠는 행복했단다.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학부형 면담이 있어서 단임 선생님 뵈었지.

그때 너의 성적이 400명 중에 238등 엄마도 충격이었지만 네가 더 실망하고

날마다 자율학습을 새벽까지 하면서 노력 끝에 상반기 중간고사 61등으로

올리느라 얼굴이 핼쑥해지고 몸도 날씬해지면서 1석2조로 멋졌지.

노력 끝에 시골에서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서 엄마 아빠 기쁘게

해주었고 인기가 좋아서 여자 친구들이 많았지.

대학에 들어가서 3학년 마치고 어학연수 간다고 케나다 수속 다 밟아놓았는데

가정형편으로 포기했을 때 엄마 아빠 맘 많이 아팠단다.

마음으로만 부모 노릇 하는 게 아니구나. 슬펐어 그런 부모 심정을 알고

너는 괜찮다고 하면서 엄마 등 끌어 앉고 이런 말 했지 잘 된거에요.

사실은 나 겁 많아서 혼자 외국 나가는 것 불안했거든요

이곳에서 영어 공부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지.

어쩌면 너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좋은 계기가 된 것도 같아.

그로 인하여 좋은 친구이자 연인 되어버린 세정이를 만났잖아 힘들어할 때

선녀 같은 친구가 찾아와 너는 그 애로 인하여 다시 꿈을 가졌지.

취직 문이 좁다고 뉴스에 나올 때마다 걱정했는데 취직 원서 넣어 놓고

발표하는 날 엄마도 컴퓨터 앞에서 기다렸는데 2월 26일 오후 6시

네 주민번호 이름 확인하니 축하합니다. 신입사원 채용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면서 세정이 감격한 목소리로 어머니 오빠 합격했어요.

고맙다. 너도 기쁘지 그렇게 너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

어려운 대기업에 적응하려니 힘이 들어 하는 너를 보고 맘이 편하지는 않았어.

이제는 어려운 고비 넘기고 회사생활 잘 맞추어가니 안심이 되고 네가

좋아하는 아이하고 결혼해서 얼마 있으면 아빠가 되는 너를 보니 대견하다.

막내라고 어리게만 보았는데 일가친척 챙길 줄도 알고 가족들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우애를 나누니 엄마 아빠 너의 갸륵한 마음에 칭찬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부부로 맺은인연이야 사랑해주고 어떠한

자리에서도 세정이 편이 되어야 한다.

너희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엄마 아빠한테

효도하는 거니 행복하게 잘 살아라. 2008   엄마 아빠

 

 

승덕아

한해가니 새해가 오르고 항상 너는 애들 같은데 네가 더

어른이 된 것처럼 커 보여 언젠가부터 나이 먹는 것이 무섭지.

세상이 부족한 것 없이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모두가

경쟁자라 물질이 마음을 사는 세상 그러나 양심은 아름답기를 바란다.

가족이 건강하고 너희들이 직장 생활을 잘해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며 회사에서는 회사 일에 충실하고 집에 오면

가족들한테 충실해서 사랑받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해.

올 목표는 살 빼는 거 너도 잘 알지 그래서 멋진 아빠 멋있는 남편

되어 건강 하게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08    엄마 아빠.

 

 

 세정아! 

승덕이 가 네 사진을 절대로 안 보여주었지.

관심 없는 척하니까 저 스스로 섭섭했는지 엄마만 알고 있어요. 

하면서 지갑 속에 사진을 보여주더라.

네 사진을 제일 위에다 올려놓고 매일 보고 있었나.

스키장에 간다고 김밥을 많이 싸서 신촌 집까지 가지고 왔었어.

어머, 김밥까지 예쁘게 싸니 제법이네. 칭찬했지.

어버이날 제사 때에 네가 와서 도와주었는데

식구들이 너보고 자꾸 다른 아이 이름 불러서 승덕이 곤란하게

하고 너도 무척 서운했을거야. 지나고 보니 재미있는 추억 거리다.

설악산 단풍 구경 간다고 설악 콘도 예약해놓고

새벽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네가 욕실에 들어가서 안 나오니까 

너의 시누이가 그랬지 너는 왜 그렇게 오래 있다 나오니?

하고 핀잔하니까 언니 닮아서 그래요.

너의 그 재치 있는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아직 철이 없는 것 같이 여리면서도 해야 할 도리는

다 지켜가는 너의 모습에서 마음으로 칭찬한다.

결혼하기 전 우리는 함께 살아봤지 그때보다도 네가 결혼하고 나더니

점점 더 예뻐지는 것은 내 식구라 그런거고 아이까지 잉태하여

어머니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겁이 난다고 엄마 생각을 귀엽게 문자 보내주어  고맙다.

입덧이 심해서 걱정이 되는데 다 아는 병이니 엄마가

되어가는 훈련을 지금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잘 견디기 바래.

너를 나의 며느리로 인연을 맺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예쁘게 잘 키워서 나에게 주신 사돈님들께 고마우며

며느리로 선물한 승덕이 큰 효도했다고 칭찬한다.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 보여주는 것이 엄마 아빠 바람이니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라. 너의 위해 기도한다. 승덕 세정아! 2008   

 

새해는 웃음이 가득하고

언제나 즐거운 노래만 부를 수 있는 해가 되며

늘 좋은 생각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

아이들이 한 살 더 먹으면

그만큼 엄마 아빠는 고달팠지만 살아온 보람이 있지

힘들어도 예쁜 아이들을 보살피는 책임이

어쩌다 보니 아이들은 커가고 사랑이 나누어져 숫자가 늘어갔지만

그 사랑은 책임으로 아이들이 밧줄이 되어

꽁꽁 묶어버려 소중한 가족이 되었어.

살다 보면 서운한 것도 있지만 서로를 위해서 인내하며

좋았던 것만 기억하렴. 승덕 세정아. 2008  시엄마   시아빠 

 

 

 

보고싶다 정숙아!

세월 속에 감춰진 정숙아! 그리운 이름 가만히 불러보니

아련히 떠오르는 그 얼굴 나이 수는 숫자라고

청춘일 때만 담아 놀게 너와 지워지지 않는 끈끈한 정

기억 속에 담아두지 않았던 하찮은 이야기들

날 수가 가는 동안 새록새록 떠오르고 정숙아!

너는 안 보여도 남겨진 이름 뒤에 한 사람이 되어

그날을 생각하며 길게 뻗은 저녁노을 그 아래 마른나무 가지 

한잎 두잎 낙엽 되어 떨어져 쌓이면 모르는 여자라도

네가 되어 이름 위에 수많은 사연들 다 지우고

다른 추억만 기억할께 통통하고 마음약했던  너 잊을수 없어

네 모습이 그림이 되고 이맘때면 함께 걷던 길 

혼자 지나며 네가 생각나 돌아보니 뒹구는 낙엽 소리만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 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얼굴 그림자가 다가와 미소 띠며 지난날 이야기 들려주네. 

정숙아! 오래전  대천 해수욕장 모래밭을 걷던 날들이

추억으로 그때가 오래전 우리들의 젊은날이네.

정숙아! 건강하게 잘 살지?

서울방배동이라 했잔어 지금도 그곳에 사는지?

너와 헤어진지도 한참 되었어  내가 젊고 성할때이니 찾아보고

싶지만 네가 가슴이 아플까봐 자신이 없어서 우리 젊음을

추억으로 담아놓고 해수욕장 모래밭 거닐던 그때 해도 뜨다

말고 흐릿했던 늦은 봄날을 떠올려 본다.

우리 거실에 누어서 지금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결혼식 날 만난 후 헤어져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서 서울에서

대천으로 복점 언니 선숙 언니 함께 만났는데 그때가

벌써 20년 전  길고 짧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고 어느새

우리들은  할머니란 이름으로 옛날 여인이 되었어.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을 담고 젊은날에 머물렀어.

정숙아! 늦가을은 겨울을 부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봄꽃으로 남았어 .2009

 

 

 

추억에게

추억은 내 가슴에 살아온 지난날 흔적이 되었지만

세월 속에 지워져가니 미움도 잊으라 하고 고이는 눈물도

흘리지는 마라 하면서도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세상위에 사는 동안 겪어야 할 내일이라 내가 지고 가는

것이기에 운명의 장난같아라.

아름다움과 아픈날들이 범벅되어 견디기 힘든 것이 째는책임

자랑할 건 못 되어도 부족한 그때 상황 부끄러운

날일지라도 헤쳐나갈수 있는 젊음이 있었기에 속마음은

고민하며 울고 있어도 웃음을 나눌 줄도 알았는데.

종교생활 학교 엄마로 동네 아줌마로 여기저기 필요한 사람으로

돈 들어 갈 곳은 많았어도 젊고 건강할 때의 바쁘게 뛰어

다닌 이야기가 내 앨범속에 먼 훗날 가서는 한 페이지로 남겠지.

사는 것은 추억을 만들며 가는 것이니 추억아 고마워  2009

 

 

 

자기들에게

우리의 만남은 세월이 흘러가도 더 끈끈하게 맺어지니

고마움뿐 힘들 때 같이 울어 주고 기쁠 때 같이 내일

같이 웃어주던 자기들은 가까운 내 곁에 있어 맘만 먹으면

찾아가 만날수 있었으며 눈빛만 보아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서로의 메아리를 주고받는 친구들이었다.

이사람 만나면 저사람 말하고 저사람 만나면 이사람

말하고 지금까지 그러지만 모두가 관심이었어.

자주 만나면 이야기가 통하고 누구네 애기하면 다 알수

있듯이 반가웠던 자기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함께하여 전화로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보이는 자기들.

비밀 없어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고 내 말이 썰렁하거나

어떤 말을 해도이해하고 통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

지식보다는 마음이 편하여 언제나 어깨를 같이하여 나란히

앉고싶은 하늘 냄새를 지닌 나한테는 그런 자기들이였어.

오래 사귀다 보면 마음이 보이니 닮아가게 되고

텃밭에서 상추나 호박을 따와 나누어주고 밤에는 꽃잎에 이슬

낮에는 해가 되는 자기들 들길을 지나면 들꽃이 반겨 주는

것처럼 만나면 들꽃과 같이 반가운 그런 자기들이 있는 곳이 나의 안식처2009

 

 

내가 나에게

너와 나는 한몸이고 한마음 이지만 추억은 생각하는대로

다른곳을 향하기에 이쁘게 보면 네가 대견했고

나쁘게 보면 너는 한심한 것처럼 하나의 너와 내가 아니라

상황따라 몸만 변한 것이 아니고 마음도 따라가고 있었어.

제 작년에 서울에서 대천으로 이사올때는 나의 웃고 울던

반평생이 묻힌곳이기에 정겨웠는데 추억이 서려있어 슬프게 하였어

즐거웠던 날이 많았는데 내 기억은 그날에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현제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가봐.

생활이 복잡할 때 위로의 말은 가난 끝 행복시작인데.

지나간 날들 뒤적거려보니 숫한 사연들이 나의 삶이었어.

해마다 새해를 맞고 미래로 가다보니 희미해져가는

내과거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되어 지구만 돌고 도는게

아니고 세월도 돌고 내가 너에게 하고싶은 말이 무수히 많은줄

알았는데 네가 나기에 한방 때려주고 싶을 뿐이지 미안하기도 해.

쓰러지고 보니 손잡아주는 이들이 많아도 나를 슬프게  네가 나고

내가 너라는 거 그러기에  볼품없어도 우리는 하나니까

아푸지 말고 친하게 지내 너한테 정말 미안해 내가 내 관리를 못한 것이. 2010

 

 

가을에게

가을아! 깊은 잠을 자는지 이제야 깨는 너를 보니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어쩌다 보니 푸르렀던 산과 들이 보이는 곳마다

색이 바래며 익어가고 나뭇잎이 얇아지며

옷 갈아입으려 하는 가을에서 인생도 보인다.

몇십 번을 네가 오고 가더니 옛날을 지고 왔나 추억이

뒤 살아나 엽서가 유행할 때 코스모스 허수아비 단풍

가을을 상징하는 그림엽서가 설레게 하더니 갈색

버버리 걸치던 낭만의 여인들 그리움이 가슴마다

그 노래의 주인공들이 되어 겨울로 가는 할머니들

예쁜 가을아 땀의 결실 오곡이 풍성하고

가꾸지 않았어도 자연계는 변동하여 산에는 단풍만

물 드는 것이 아니고 갖가지 열매들이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아름다워. 디지털 산업으로

도시와 시골이 어우러져 다 도시풍이 되었지만

정겨운 시골 풍경들에는 황금빛 나락 들

사이사이 억새와 이름 모를 꽃들이 발악하며

찬 이슬 맞고 더 예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너는 그리움을 주고 떠나는 얄미운 가을이야.

그래 내가 없어도 해마다 찾아와 아름다움을 보이겠지.

네가 늦게까지 안 일어나니 나도 방금 일어났어.

지금은 해가 내 창가에 어른거린다.

아 가을아! 햇빛아! 가지 말고 그대로 멈추어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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