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수필 >이야기

지난 날.애들.청춘.배신.추억이야기.

우리들 이야기 2021. 1. 15. 07:12

 

지난  날

 

<밧 대리>

데레사 야고보 집에 있어요?

시골 공소인데 신부님 공소 미사 보러 가서 자동차

밧 대리 나갔기에 급하게 전화하셨다.

마침 남편은 없는 터라 친구 남편이 있어 차를 몰고

시골 교회로 밧 대리 안 끄고 그냥 교회서 미사 보고

나오니 밧 대리가 나갔던 것이었다.

철 고리를 매달고 부 붕 앞으로 돌진하니 신부님 차도

밧 대리가 들어와 그 차를 타고 집에 오던 중

손자 둘하고 혼자 사는 할머니 찾아보고

신원동 계곡 끝에 닭집으로 저녁때 산중에 넘어가는 햇빛은

길게 비취고 바람 속으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

산중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니 반가운 것이 이산가족이더라.

백숙을 하느님 이야기로 웃음을 나누며 남편 차로 오면서

졸고 있었는데 침 흘리며 꿈을 꾸었다 밧 대리 꿈을

 

취나물

프라이더 빨간 스포츠 자가용 운전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운 때였다.

기름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을 때라 먼 길을

갈 때 자주 신세 지는 자가용 셋이서

취나물 뜯으러 가려 터널을 지나 나왔는데

앞차가 나이트를 반짝해 주어서 저 앞에

경찰이 있는가보다 천천히 가는데 또 앞차가

지나가며 반짝 신호를 보내준다.

우리 이미 알고 있는데 착한 운전사가 많구나.

기분도 좋아 수다 떨면서 고맙다고 창밖에

손 내밀어 흔들어 주었는데 다가 도록 순경은 없었다.

인적이 드문 산골에 차를 주차하고 하우스 문을

더우니 뜰까 봐 걷어놓은 데서 부담 없이

취나물을 비닐 포대에 하나씩 채워서

나와 실었는데 자동차가 시동이 안 걸려

그동안 왜 고장이 났지 고개를 갸우뚱하는데

차 주인이 바 대리 나간 거라고 아까 터널

지나올 때 라이트를 켜줬는데 대낮에

나이트 켜있다고 앞차가 신호해주었는데

다음 차도 신호를 보냈는데

우리가 엉뚱하게 착각했나 봐.

동네 총각들이 지나다가 그걸 보고 뒤에서 미니

시동이 걸려서 붕 나가 총각들이 참 이뻤지.

그리고 그때 불 켜졌다고 알려준 운전사님들 고맙습니다. 2006

 

 

<해수욕장>

바다가 출렁이는 낭만의 해수욕장 

썬 그라스 반바지 수영복이 두 여인

바다에 떠다니나?

아직은 애기수영 능숙하지 않지만

바닷물이기 때문에 그냥 몸이 뜨는 것이라

한참을 수영하다 힘이 들어

발을 땅에 대고 서려 하니 발이 땅에 닿지 않아

어머 이제는 물에 퐁당 빠져 죽는가 보다

생각하니 긴장되어 몸이 무거워서

이제는 뜨지도 않는다.

통통통 작은 배가 지나가기에 살려 주세요.

소리를 질렀지만 들리지 않나 무정하게 지나간다.

친구도 어디에 있나 보이지 않고 물을

꼴칵 꼴칵 먹으면서 그 순간에도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생각이 떠오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살아야 해 살아야 해하며 허우적 대다

발을 디디니 발이 땅에 닿는다.

아아 악몽 그때 멀리서 친구가 부른다.

친구도 맥이 쭉 빠져있었다백사장에 앉아서

그 바다를 바라보니 그 자리는 해일로

운동장만큼이나 푹 파진 웅덩이.

그 웅덩이에서 잠시나마 지옥과 천당을 오고 간 것이다. 2006

 

썬켑 모자

멋있게 보이려고 아주 비싼 아들 주황색 모자를 쓰고

바다서 놀다가 쌩쌩 달리는 보트를 타고 싶어서 보트에 올랐다.

신나게 바다를 가르며 달리는데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머리에 모자가 휙 날라 간다.

어머 내 모자 어떻게 해 그 순간은

다이아 몬드보다 더 아까운 모자였다.

보트에서 내려 아이 속상해 죽겠네.

어디로 떠내려갔을까?

투덜거리며 바다를 걷고 있는데 저만치에서

파도가 밀리는 대로 보일 듯 말듯 무언가 떠 있다.

저게 뭐지달음질 처서 가보니 모자였다.

조그만 바위 나무가지에 모자가 걸려서 떠내려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잃어버렸다고 모자를 찾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바닷물에

떠 내려오다니 신이 나서 모자를 쓰고 걸어오는데

물 위에 종이 한 장이 떠오른다.

친구가 어머 오천원짜리 돈 오늘 재수 정말 좋은 날이네..

공짜로 주어진 홍재 이걸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자.

아이스크림 보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 불러서 다 하나씩 주었더니

이상하게 생각하며 뒤돌아보고 웃어가며 지나간다.

오래전의 이야기인데 기분 좋은 바닷가의 추억으로 남는다. 2006

                                                                        

청춘의 낚싯대

낚싯대를 바닷물에 넣고 진짜 고기를 낚으려 했는지

그냥 멋지게 보이고 싶어선가?

바다에는 돌보다 바위가 많기에 바닷물과 노는

바위에 앉아 낚싯대는 낭만을 부르고 바닷가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기에 다시 꺼내 보니 청춘이었더라.

바닷물도 푸르고 바위도 그대론데 사람들은 청춘이

시들어 가도 추억을 만든 이들 마음은 그대로 늙지 않더라

한참을 안 봐도 마음은 가까이 있어 세월을 함께

먹었기에 떠날 줄 모르는 너와 나 오래전 바다와 놀던

낚싯대 보이지 않아도 추억은 바다 물속에 담겨있어라2006

 

 

<빨래터>

저수지 물을 가두어 물이 부족할 때

농사지을 대비를 하는 <수로>

빨래터가 되어 동네 아낙들의 웃음소리

누구네 흉보며 아낙네들의 빨래 두드리는 소리는

건너편에서 물 튀겨도 재밌더라

세상에서 제일 크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가

흉볼 때였지 흉 없는 이가 어딨나 함께 놀다 보면

흉보는 것은 당연한데 혼자 고상한 척하면 따 돌림

받으니 서로가 말을 많이 하고 거짓말이라도

해서 재미나면 인기였지 나는 그런 걸 잘 못 하니

속상하기도 했는데 사는 이야기 하다 보면

흉 없는 이가 없고 사연 없는 집들은 없기에 위로를 받으며

자리가 없어 시멘트 수로 위에 걸터앉아 젖은 빨래를

적셔 놓고 방망이 말리느라 공상 떨며 물속을 보노라면

하얀 구름 떠가면서 하늘이 담겨 계절도 보였던 수로

아줌마들의 아지트 동네소식도 그곳에  이야기가 되었지.

재잘재잘 떠들어대고 별거 아닌것이 흉이 되었으니

부족하고 거친 세상 살다 보면 흉 없는 이가 어딨나?

내 흉은 가려서 안 보이는 거지 더 많을걸 빨래터는

숨어있던 흉이 말하는대로 보태지는데 그래도 자꾸만

가고싶었던 발래터 더러운 것을 하얗게 빠는 빨래터. 2007 

 

집들이

내 인생에 전성기랄까 2층집 을 내 손수 짖고 들어가던 날

제일 먼저 동네 사람들 집들이 두 번째로 성당 신부님께서 축성

세 번째로 계원들 네 번째로 선생님들 다섯 번째로

보령병원 수녀님들 맨날 집들이하느라 내 친구네도

우리 집에서 저녁 먹었지동네서 제일 멎진 저택이었기에

대문 초인종 누를때면 누가 나좀 보았으면 하던 때

빨강 벽돌 담벼락은 넝쿨장미가 감아서 줄기가 대문까지

뻗어있었지 지금은 젊은 다른이가 살지만 얼마전에

조카딸이 남편하고 지났는데 저집 멎지다고 해서 

저집이 외삼촌 집이었는데 나 어릴때 저집에서 뛰어놀은

동심이 묻은 집이라고 했다더라그집 주인 이었던 때보다

집들이를 많이해서 지날때마다 내집같이 정감간다.

 

 

괜찮아1

구장을 하는 잘생기고 똑똑한 할아버지 논이 많은 아버지의 잘사는

시골의 그 애는 동네에서 공주라고 부러운 대상이었습니다.

이십 년 만에 생긴 그 아이 손이 귀한 그 집에서는 일찍 학교를 보내고

높은 학교 보낸다는 기대를 가지게 한 아이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일곱 살에 아버지 바람이 나서 할아버지한테 쫓겨나고

공주라고 생각하는 어린 그 아이는 상처가 많은 동심의 소녀가 되었는데

자존심은 많아서 아버지가 없어 가난해도 부자인 줄 알고 자기가

공주인척했으며 집안에 어른인 할아버지의 유일한 사랑을 받아 겸상

하였으며 다른 식구들은 깜보았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나 데리고 앉아서 엄마 흉을 보았는데 어린 마음

이라도 엄마 욕하는 할머니가 왜 그리 미웠던지요.

엄마랑 어른들은 싸우다가도 금방 풀어지기도 하면서 엄마가 아버지도

없는데 동생이 병이 나면 업고 이십 리나 되는 병원을 찾았지만 

심장병으로 죽었으며 학교가 얼마나 가기싫었는지 사실 아침이면

학교 안 가는 어른들이 부러웠는데 철이 조금나니 교복 입은 

애들한테 눈길이 갔으며 버스가 하루에 몇 번씩 다니는데 나는

그대로 시골에 살 수 없어 시내에 사는 고모 집에서 학원 다니어

양정점을 내려 하였는데 사촌들은 다 학교 다니기에 고등학교 공부

어깨 너머 조금은 배웠으며 고모부가 그래도 높은 학교를

보냈어야 했는데 고모가 괜찮다고 하길래 더 예뻤고 버스가

자주 없고 세 시간에 한 번씩 오면 줄 서서 타지 않고 몰려가서

억척인 사람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기 때문에 서로가 의자

앉으려 머리를 써서 짐꾸러미를 던지어 자리를 맡았으니

참 후진국 문화 보는 대로 신기한 것이 장날이면 왜 그리 있었던지 

어려서부터 궁금한 것이 많았으며 엉뚱한 생각 상상력은

풍부했는데 그때는 한심한 애였지만 공부를  했다면 유명한 내가 되었을까?

 

괜찮아 2

서울 바람이 불어 누군가 오라 해서 나의 처녀 시절은

서울에서 보내었고 산골처녀보다는 세련미가 있었기에 아무나

입지 못했던 검정 코트에 토끼털 카라 남동생이

나가면  멋쟁이 서울 처녀 서로가 자기가 매형이라고 한다

면서 우쭐대던 남동생은  옛날 동생이 되었습니다.

인연이란 참 묘한 것인가 많고 많은 사람 중에 남편을

만났으니 지금 남편이 나를 면회 와서 만나 남산가서 

사진도 찍었으며 우리들은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시작되었고

나는 서울에서 남편은 원주에서 군대 생활하며 전화가 없을 때라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나누면서 우리들의 사랑은 더 깊어갔답니다.

남자친구 이름이 여자 같아서 자주 오는 편지에 나의 친구가 

여자인 줄 알고 질투했었는데 남자친구기에 미안해 하였고.

아버지가 돌아오고 남동생이 죽으면서 나의 객지 생활 끝내

면서 고향으로 돌아가 남자친구하고 약혼식을 하고 그때부터

양부모 다 아니 동네에서는 연애하던 커플이 처음으로 성공

했으며 나이가 동갑이지만 남편이 생일이 2달 빠르다고 자기가

어른이라 하면서 나를 어린아이 취급했는데 사실은 싫지

않았고 3 13일 우리는 결혼식을 하였으며 3살 먹었을 때

누구에게 장가갈래 물으면 일순이 한테 간다했다니

우리는 3살부터 인연이 되어 연애 끝에 성사됐으니 천생 연분.

둘은 결혼하여 한 가정의 맏며느리로 지지고 볶고 

끝없이 이어지는 날들은 째는 것이 해소 안 되는데 아버님까지

아프셔 입원하셨고 의료보험이 없을 때라 병원비가 

일주일에 2백만원 이었던 것 기억합니다.

결국은 경희대 병원에서 8개월을 입원하면서 살림을 거덜 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시누 시동생 학교 내 아이들의 교육 만만치

않은데 어린 남편한테 책임지게 하고 성질도 만만치 않은 시아버지

대가족을 짊어진 남편  치료비를 늦게 가져왔다고 돌아눕는

것을 보고 얼마나 서운했는지 아버님이 원망스럽고 섭섭했답니다.

아이들 돌 반지 우리의 예물 다 팔아서  시동생 대학 등록금 대고

동생 가르치는데 나도 일조하였으며 째는 대가족이 함께 사는 사연

다 이야기한다면 책으로도 100권은 되겠지만 살면서 웃기도

많이 했으니 인생이란 그런 거 아닌가 하며 희미하게나마 생각나는

것만 대충 헤아리니 해결 되지 않은 채로 돌고 돌아 나 살던 

고향으로 내려와 막내 시누이가 놀러 와 이야기하다 보니 큰오빠가

작은오빠를 대학 보내는데 너무 힘든거 같아서 나도 가고

싶었지만 포기했다고 하니 나 혼자 희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부모님은 봉황당에 계시고 나는 그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온전하지 못하니 불쌍한 남편 뻔뻔한건지 익숙해진

건지 나를 잊고 살 때가 많았으며 삶에서 현실만 보기에 건강한

삶을 고르라면 우선 가족들의 마음이 그만하면 만족하고 생각하면

문화의 차이가 시절을 말해주지만 시집 식구 흉보던 며느리들이

시어머니가 되었으니 인생이란 것이 내일로 가는데 그 세월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 누가 머라 안 해도 기죽는 것은 내 모습 때.

나스스로 나에게 괜찮다고 위로하며 살아오면서 후회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때늦은 후회가 늙어서까지 후회가 된다는 것을 몰랐는데 

그때 공부에 대한 것에 미련을 가지었기에 나중에 내 애들은

무조건 가르치었는데 사실 공부란 것이 제일 하기 싫은 숙제

괜찮아위로의 말도 되지만 아이들이 생각보다 성적이 안 나와도

괜찮아이 말이 나이가 드니 괜찮어로 위로가 되었기에 가장 많이 써먹는다. 2007

 

 

애들 

보물찾기

학부 형 이 대단한 이름인 줄 알았던 젊은 엄마

소풍 갈 때마다 따라가는 엄마가 되었더라.

김밥은 당연하고 몇 개를 더 싸서 선생님 거 못 싸 오는 학생 거

세 개는 기본이고 김밥 싸는 날은 식구들도 김밥을 먹으니

20줄은 쌓았나 소풍 이 행사가 되어 큰 일과가 되었어도

재미있던 엄마 가진 멋 부리고 소풍 가서 보물찾기하면

돌을 떠들어 보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지만 허탕만 치고 보물은

엉뚱한 곳에서 나와 속상한 것은 상품보다는 보물 찾아 누구의 엄마라고

자랑하고 싶었는데 내 이름은 없어지고 누구의 엄마라면

모르는 이가 없어 애의 덕을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보고 있다. 2008

 

화분

전원주택이 아닌 2층 저택 가족이 많으니 이왕이면

넓은 집으로 지어 집들이하던 날 취미로 국화 산목 하는 엄마가

선물로 화분 2개를 가져와 그때부터 우리 마당은 가을이면

국화 화분이 가득히 놓여진 마당 학교에 장학사 오신대서

집에 화분이 있는 학생 가져오라 해 내아들과 친구가 와서 두 개를 가져갔다.

앞 건물은 동 사무소 2층이 회의장이라 관 공소 모임 있으면 우리 화분을

빌려 가지만 한 번도 반납받은 적은 없으니 그래도

가을이면 국화꽃 마당이고 여러 모임에 선보이는 화분이더라.2008

 

속이 상한 매

중학교 다니는 애가 다리를 절룩거려 깜짝 놀라

올려보니 단임이 얼마나 때렸는지

툭툭 불어나 속이 상해서 단임한테

따지러 간다니까 애가 못 가게 말려 안 갔지만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모른다.

이유는 복도를 실레화 신고 갔다고 그랬단다.

큰 잘못도 아닌데 자기감정으로 애를 때린 것 같아

그 선생 이름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다.

성은 오가 이것만 밝히련다.

지금은 늙어서 정령 퇴직했겠지.

그때니까 그냥 넘어갔지.

지금의 교육법이라면 그 선생은 해고되었을 거다.2008

 

카치네 켐핑

홍승완 여름방학 카치 네 냇가 목표로 삼아

들떠서 야영 가더니 하룻밤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집에 도착해 이유를 물으니 냇가 건너편에

쫄 만이 깡패들 때문에 밤새 불안했는데 한

친구가 팔을 쭉 뻗고 수영하며 냇가를 건너기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한다.

다음날 날이 새자 부랴부랴 켐핑 짐을 싸서 집에 왔다 한다.

수영한 그 애는 나도 아는 동네 아이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 이름만 안다. 재승이.2008

 

학부형의 되던날

처음 학부영이 되던날 첫딸과 설레는 손을 잡고

가까운 학교를 갔는데 선생님이 운동장을 돌면서

학교 운동놀이 소개 시켜주는데 철봉 앞에

서더니 내 딸에게 철봉한번 하라하니 두손을

쭉 빧으며 철봉을 잡고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나도 너무 놀랐는데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쬐끄만 꼬마가 철봉하며 노니까 선생님들은 기억했다.

그후로는 학교에서 운동때면 이것저것 시키며

운동히날 준비로 육상 달리기까지 애가 코피를 쏟고

힘들어 해서 단임한테 부탁하니 안들주어

교장 선생님 찾아가 빼달라고 건의한적이 있었다.

그때는 젊은엄마 보이지 않는 사간이 가는대로 세월도 

흘러 그 딸내미도 고운 단풍들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잊지못할 그때의 딸내미의 추억이 담기었다. 2010

 

학부형
첫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세상을 다가진 것처럼

위대해 보였던 나 빨강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딸내미

학교가 가까워서 올때가 되어 행길을 보고있는데

받아쓰기 문제지를 들고서 앙앙 울기에 문제 지를

펴보니 열문재 다 맞았는데 작대기를 하나 그어서 딸은

울었기에 나도 속상해서 그 시험지를 가지고 담임을

만나러 갈까 했는데 남편이 가지 말라 해서 안갔지만

오랫동안 억울해서 잊혀지지가 않았으니 그게

엄마의 마음이었고 사랑하는 부모의 이름이었다..2010

 

엄마의 걱정

자율학습에다 그때도 대학 공부로 애들에게는 공부도 쉬는 방학

친구하고 지리산 천황 봉 간다기에 고추장에 쇠고기 다져

병에 넣고 비오 면 안 되는데 구름 끼어도 걱정 또 해 뜨면

더울까 봐 걱정 이미 떠났는데 쓸데없는 엄마들의 걱정이더라.

이것저것 따지는 세상에 유일하게 거래하지 않는 엄마의 걱정

힘들 때 걱정하지 않으면 엄마가 아니라 하더라

그럼 나는 천상 엄마 죽을 때까지 걱정하는 게 엄마더라.2010

 

자갈치 시장

고등학교 졸업여행 친구들하고 부산 자갈치시장 

처음으로 사회 물먹는 줄 알았는데 역시 세상 물정

모르는 학생신분 다 다음날 돈이 떨어져 집으로 왔다.

그 것도 고등 학생의  추억으로 남았겠지.2010

 

영화감독

그때는 등수가 최고였을 때 

그애가 고등학교 3학년 공부 잘해서 전체 6등이라

계원에게 한턱을 내었지만 기분 좋은 일

어렵고 힘들어도 애들이 웃음을 주었고

옛날에는 공부 잘하면 대통령이나 판사 된다고 했는데

그 애는 지금 어려운 영화감독으로 세상과 싸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렵지 않은 일이 어디 있나? 2010

 

큰아들 일곱살
시내로 목욕하러가던날 아들은 일곱 살이라
여탕이 들어갈수 없어 딸만 데리고 오랜시간에 나왔는데
때미는 아저씨가 아들을 금방 밀어주어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들 머리가 꽁꽁얼었어도
여탕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박에서 기다리던 아들
너무나 안쓰러워서 그때의겨울 오랜시간이 지났어도

그때의 일이 생각나며 검정과 회색 바둑무늬 코트를

입었던 일곱살짜리 아들 머릿결이 얼었던 그때의

아들은 지금은 영화 감독 여전히 추운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반드시 겨울은 봄을 앉고 온다고 꽃피는 봄을 기다립니다.2010

막내아들

아이 3명 키우면 반의사가 된다는데 나는 교사가 되었다.

학교서는 가르치고 집에서는 배움이라고

보는대로 따라하니  착하게 세상과 싸워야 했다.

딸1 아들 2이면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렵다해서

별을 딴 줄 알았으며 철따라 다른 꽃이 피어도 세상에선

꽃으로 밤이면 어둠을 밝혀주는 별같이 반짝이며 

훤치런하게 생긴 막내아들은 아버지가 되었어도 내게는 여전히 막내아들.2010

 

엄마마음

엉아친구들과 놀면서  야구하다 어리다고 공만 주어

오라하니 야구방맹이로 엉아친구를 때리어서 그 엄마가

찾아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었던  나.

한번도 내 잘못가지고 빌지 않았으며 나의 엄마가

다 해주었는데 엄마가 되고보니 엄마의 마음을 알았다.

엄마란 이름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죄인이 된다더니

그러기에 한부모는 열자식을 키워도 열자식은

한부모를 못모신다고  엄마가 되고보니 정답이었다.

어릴때는 엄마는 세상이기에 아이들의 잘못도 뒤집어 쓰고

편들어주는게 엄마였다.2010 

 

청춘

커텐

예쁘고 얌전했던 양재학원 선생님의 이야기라 눈도

깜빡이지 않고 집중하여 듣고있었다.

겨울밤 친구들과 놀다 오줌마려 마당으로 나가니

눈을 하얗게 모아둔 곳에 추어서 막 세게 쌌더니

다음 날 아침 쇠눈이 되어서 오줌 눈 자리가 추우니

깡깡 얼어붙어 군데군데  듬성듬성 오줌 눈 자리가

표시나드라고 해서 그럴 수 있기에 우리도 그런 거 해봤기에

공감이 가서 웃었는데 시집와서 거실 창에 커텐 을

처음 손수 미싱질했고 척 늘어트리니 내가 대견해서

그리고 커텐을 꽤맸기에 자랑스러워 누가 묻지도 않는데

저 커텐 예쁘지 않냐고 좌와 자천했으며 집은 없어지고

주차장이 되었지만 보라색과 연분홍색이 가로 처진 커텐은 기억난다.2014

 

 

연탄가스

고모네가 동양사진관 현상을 하는데 옆에는

극장이 있어 고모네 서 물 떠가고 연탄불도

빌려 가 친해서 나는 고모하고 공짜로 영화가

바 꿜 때마다 보았다.
아침에 일어 나려니까 자꾸 쓰러지고 내가

왜 이러지 다리힘이 하나도 없어 자리에 눕고

못 일어나니까 고모부가 연탄가스 마셨다고

창문 열어놓고 물 마시고 오후에 밖에 나왔는데

극장 아저씨가 어떠냐고 묻는다

연탄불 빌리러 왔을때 고모가 말했나?

그래서 발없는 말 천리간다고 하나보다.2014

 

그 이름

동짓달 보름밤 어둠을 가르며 떠가는 둥근 보름달

동요에 나오는 쟁반 같았는데 싱숭생숭

처녀 마음 애인이 있으면 불러내고 싶었지만 고작 꿩보다

닭이라고 친한 척하면서 친구를 불러냈다.

달 보니 네 생각 나더라. 하니 나도 네 생각났어

그 말은 진심 같아서 미안하더라.

둘이는 손을 잡고서 별들 사이로 둥둥 지나가는 달을 보며

신작로를 걸어가는데 어디서 남자들이 웃음소리가

들리어 딱 걸음을 멈추고 돌담을 넘겨보았다.

옛날에는 대문이 없는 낮은 담 남자들이 화투 놀이를 하나?

살금살금 들어가 보니 장화와 털신이 있고

고 소리가 나며 정신 빠진 거 같아 저만치 옹달샘이 있어

바가지로 물을 떠다 신발에다 다 부었다.

장화와 털신에다 그리고 둘 이는 천연스럽게 웃으며 나왔다.

오다가 생각하니 화장실이라도 갈려고 나왔다 신발을

신으려다 깜짝 놀라 누가 신발에다 물을 부어놓았지?

웅성댈거야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서 배꼽을 잡고 오는데

친구도 내 얼굴을 바라보며 막 웃어 웃음이 더 나와 둘이

주저 앉았으니 동짓달 달밤에 쇼한 그때가 둥근 달이

떠오르면 생각나는데 그때 그 친구는 서울에서 살며 말을

느리느리 하며 남편은 떠나보내고 혼자 산다는데 그 애가 보고 싶다.2014

 

결명자

혼자 못 하는 일도 둘이 했으니 공범인가?

어이없는 못난이 추억 옛날에는 담이 없는 집이 많았다.

장난 많은 애도 아닌데 산골에서 애들도 그리 많지 않아

한 친구가 가장 가깝게 살아 여름날에 둘 이는 저 집은

누구네 저 집은 아는 집 탐구를 하며 신작로를 가다가

대문 없는 빈집 들어가 보니 땅콩 나무가 크고 있었다.

벽에 걸어놓은 호미를 내려서 땅을 파고 묻어주며

옆에다 한글을 써놓았다땅콩은 땅에 묻어주는 거라고

한참 지난 후에 궁금해서 그 빈집을 가보니 묻어준 땅콩

그 나무는 결명자가 다닥다닥 맺었더라.

기가 막혀서 어린 마음이지만 몰라도 한참을 몰랐으니

그 후론 절대로 모르는 것은 아는 척 안 하려 한다.2014

 

옛날 이야기
부족함이 불만족으로 남의 이야기가 부럽기만 했던
철없던 어린시절 감나무 그늘아래 방석을
펴고서 부채질하던 그때가 낭만이 있었던 시대였는데
밭 한가운데 원두막은 오고가는 바람이 쉬어가는 곳
솜털이 송글송글 덮었던 참외 수박 높은 원두막
위에서 보이는 작은 냇가는 애들의 수영장이었나?
그때는 둥둥 헤엄치며 떠다니는 애들이 부럽기만 하더니.
감나무아래 방석은 들마루 낭만이 있던 원두막은

아파트 공원마다 방갈로가 서있고 참외 수박은 마트가 집
시대의 변화를 보여 주었으니 옛날과 현제는

어우러져 지금이 지나면 다시 옛날이야기 하겠지요.

 

 

배신

그때의 아버지1

동심은 한이 많았던 어린시절이었기에 생각을 접으련다.

바람난 아버지 집에서 살았어도 늘 나를 챙겨주는 그 여자는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남편을 차지한 맹수였으며

어린 동심을 빼앗은 나쁜 사람이었으니 나보다 엄마는 더

남편의 배신감을 느끼고 그 여자가 미웠겠지.

툭하면 싸우고 보따리 싸던 그 여자는 무슨 이유인지 다

팽개치고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이사 가버렸기에 그때부터

아빠없는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아버지가 죽었다면

포기했을텐데 멀쩡히 살아서 자식을 버리었기에 한을 남긴 아버지.

자존심이 많은 아이 여름이면 오빠나 아버지가 나무로

매끈하게 만든 나무 슬리퍼 나에게는 시늉만 낸 나무 슬리퍼 

이래저래 속이 상하여서 나의 동심은 슬펐다.

부잣집 아이인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초라한 어린나였으며

높은 학교 보낸다고 포장이 안된 신작로길을 가게 하던

어른들 책임은 자기들 멋대로 날려버렸으니 나역시 공부가

싫었고 공부를 다하지 못한 일은 하나도 후회가 없지만

어릴때의 아버지 없는 설음은 컷기에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전혀 생각하기 싫은 어린시절이고 아버지의 대한 원망이다.2014

 

블청객 아버지2

남 애들은 아버지가 다 있는데 나는 왜 없는지

어린 마음에는 상처가 많았다.

만족하지 못한것이 다 아버지 탓인거 같아서 아버지 나간 것이

원망 스러웠으며 누가 알면 챙피하니 속이 찬 어린 아이였다.

논이 많아야 부자라고 하던 시절 동네 술집에 기생이

찾아와 젊은 남자들을 꼬시고 있었으니 그때나 지금이나

꽃뱀들에게 넘어가 홀려 버리것이 순진한 남자들인가?

어린시절 아버지는 집안의 기둥이었는데 엄마 얘기 들으면

늦게 장가들어 엄마밖에 모르고 좋은 아버지

였다는데 사는것이 재미들어 밤새는 줄 모르고 일을 하였단다.

한 기생이 집안을 송두리째 말아 먹었으니 그 아이에겐 철천지 한을

너무 일찍 맛보았으며 그래도 보리밥은 안 먹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나무에 홈파서 담장사이로 다라에는 물이 철철

흘렀기에 물지게는 몰랐으며 남들은 부유하게 사는줄 알았을지

몰라도 그 아이게는 상처가 있고 또한 자존심이 많은 아이라

어린시절이 사실 궁색하였는데  그시절은 그러려니 했기에 보리밥은

안 먹었으니 사는것에 가난은 몰랐다.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었기에 부러운 집은 아니었고.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기에 툭하면 어른들이

싸움이 잦았으니 그아이 어린시절은 정말 괴로운 삶을 살았다.
아프면 병원가는 것이 아니라 동투났다고 나무에 부적써서 붙이고

그래도 안 나으면 살다말고 죽은 귀신쫓는다고 작은 할머니가

무당이라 찾아와서 궂하고 세 살먹어서 죽은 내 동생이 실렸다고

엄마 엄마 하며 엄마의 오장 육보를 아프게 하였으니

그꼴 보기싫다고 엄마는 성당에서 영세받고 미신을 멀리 하였다.

작은할머니 막내딸은 무당엄마가  싫어서 교회에 나가고

있었으며 철없이 순수해야할 어린가슴에 별별꼴을 다보며

피멍들고 장날이면 모시해서 짜가지고 팔러가는 엄마따라

오일장을 갔던 그 아이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건만 오지않고 그 아이는 할아버지가 가장

이었으니 모두가 지나온 나의 어린날 집나간 아버지는 내가

결혼하기전에 오시었고 우리를 지켜주었던 할아버지 할머니 안보이는

세상으로 가시었으니 그 후로 아버지도 세상을 떠나시고

병원에 입원하신 한분 남은 엄마 내가 할머니가 되었어도

옛날의 아픈 시절은 잊지 못하고 힘들때마다 옛날일이 기억나는 아픈 불청객

 

여자 팔자

손이 귀한 집안에 시집와 얘기를 못 낳으니 죄인처럼 남편이 다시

새장가를 가는데 식장에서 입을 두루마기 꽤매 면서 눈물

흘리는 것도 호강이라고 가슴을 죄어 뜯었다 하니 그 속은 숫 검방

되어  뒷방 새댁으로 시어머니와 한방을 쓰고 지냈다 한다.

옛날에는 조강지처 내보내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법이 되어

그렇게 미련 맞게 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남편이 무정자라

얘기  없는 것을 두 여인이 다 불쌍한 한세월을 살았더라. 

한 여자는 남편을 빼앗기고 다른 한 여자는 작은 여자라는 오명으로

한 생을 보냈으니 양자를 하고도 자기 호적에 올리지 못하고

늙어서 작은 여자 혼자만 남아 땅 많은 부자였지만 누가 다 가져가고

지금은 돈 없는 늙은이로 수급자가 되었다니 여자 팔자는 뒤 범벅.2014

 

치사빤스.

오빠 동생 장애를가진 시골 여자 엄마는 얌전했지만

아버지는 바람피워 첩한테 빠지면 바보 천치가 되어가나?

결혼식 날 첩 대기가 심술로 신부 아버지 양복을 물에

빠뜨려 그때만 해도 귀한 양복 사위 본다고 해 입은

양복이었는데 입을 것 없어서 두루마기 입고 식장에 갔다니

이게 웬 말이며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2014

 

그시대의 배신

옛날이 되었어도 어이가 없어서 보이지 않는 지난날 속에 다 감춰졌지만

살아온 날만큼 시대 따라 살아온 사람들 바람피우는 남편 여자가 먹을 것으로

입 막이 하니 남편을 빌려주고 문 앞에서 지켜주었고 어떤 이는 남편이

바람피워 데리고 들어온 여자 한방에서 잤다하니 더럽고 치욕스러웠겠다.
치사하고 비겁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여 이렇게 가슴아프게 하였나?

그런 꼴을 안 보려면 헤어져야 하는데 자식들 때문에 참고 사는 엄마 세대

여자가 생기니 미안한줄도 모르고  움 방 안방 칸막이 미닫이로 막았지만

조용하면 다 들리니까  더 바짝 머리를 곤두세웠을 것 같다.

비겁한 행동을 하고도 뻔뻔하게 에햄 했으니 말도 안 되게 살아온 그 시대 여자들

세상에 남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여자들이  한을 품으면 오 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였나 보다.2014

 

한 생

시누이 시집가느라고 팔자 좋은 사람을 불러서 이불 꽤메는데

시아버님이 외박하고 오시니까 삼 년 된 하얀 개 꼬리 씻으니

다시 힌 개 꼬리라 해서 시아버님 삐져 방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

오지 못하게 하니 똥 끼인 놈이 성낸다고 며느리한테 미안해

하며 이야기했던 시어머니는 남의 집에 시집온 같은 여자였다.

어떻게 아내한테 그럴 수가 있나 용서 안 되었는데 옛날에는 더

많이 그랬다고 해서  기가막혔고 뻔뻔한 시아버지 젊은 날

바람핀것은 배신 한 건데 돌아가시고 나니 그래도 자식보다는

서방이라고 아버님 영정 사진 앞에서 우는 것을 보았다. 2014

 

 

추억 이야기

신화

잡히지 않아도 기억할수 있는 신자가 들어가는

신기루 신비의 세계속에 내가 있었다.

아들둘 딸 하나 놓으면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거라해서

나는 별을 딴줄 았았는데  그 별나라를 엉뚱한 이들이 간다.

보이지 않는 신화가 어릴때의 생각들이 현실의 되었다.

전설이라고는 하지만 아주 없는 이야기가  아니니 옛날 이야기가

지금의 현실에도 있으니  생각이 덜자라 상상으로 말도

안되는 신화는 우리의 옛날 이야기지만 세월이 흘러가도

먼날에 오늘의 우리의 신화적인 옛날이야기가 되니 현실에서

옛날이야기를 만들며 시대따라 끝도 없는 가는 시대의 유행

허덕이며 따라가는 인생 인기도 시대를 먹고 달라지듯이

영원한 것  하나도 없으니 더 바빠지고 생각은 힘든싸움

아름다운 세계도 생각하기따라 만들어지니 상상으로 잡히지

않는 신기루 신화 신기 신비는 전설속에  등장하기에

잡히지 않고 과학으로 풀지 못하면 신비가 답이었다.

과거는 묻어놓고 보이지  않는 내일을 향해 희미한 그림자가 

신화가 되어 영화나 소설로 등장하고  전 세계를 지배하나 2014

 

 

기억

옛날에는 얕은 물위에는 징검다리를 놓아서 건너가고 깊은곳은

나룻배로 건너갔는데 시간이 가는곳은 사람들을 위해서 세월이

되었는지 우리가 지나간  남해 가거교는 바다 밑으로 다리가 놓여서

물을 이고 지나간다고 생각했는데 대천 원산도에서 꽃지

해수욕장으로 바닷길이 뚫린다고 하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별나라에서 사는지 구름위를 떠 다니는지요.?

지방자치체가 생기며 사람들을 부르며 관광사업이 대세를

이루고 사람들은 살기가 좋아지며 가는곳마다 옛 정서와

현대의  문화가 어우러져 어릴때의 시대를 기억하게 하였다.

청양 호수위로 다리가 놓여지고 그 고장에서 나오는 고추를

광고하느라 여기저기 그림이 붙어있고 호수위에 출렁다리 지나

가면서 오래전에 유람선으로 바다위를 떠같던 날을 기억하게

하였으니 한해 한해 살아온 날이 발전하면서 옛날일이

되었으며 어릴때에 나무팽이 돌리느라 녹끈으로 줄을 맨들어 겨

울이면 얼음판 위에서 치는대로 팽이가 돌아가더니 지금은

프라시틱 팽이 모양을 만들어 공원이나 방안에서 놀고 있어

시대의 문화는 더 엎그레드 되어 전통 우리의 문화는 기억을 하게 하였다.

나간읍성에서 제기 차면서 상품을 걸었는데 승덕이가 일등은

못햇지만 전통 우리의 놀이를 한다는 것이 대견하였고 상품으로

과자를 받았는데 공짜여서 더 맛이 있었으며 옛날에는 흑으로

모양을 내면 손재주가 좋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찰흑으로 물감을

넣어서 다양하게 생각하는대로 만들지만 오래전 만든 것이 더 골동품이었다.2014

 

장단점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장단점이 없으면 숨이 막히어 살수 가 없을 것이다.

단점이 누군가에게는 득이 될 때도 있고 장점이 누군가에게는 피해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서로 다른 취향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개성의 자유라고 한다면

반드시 그때의 유행으로 오래전에 비싸게 사서 입은 모피도 지나면 가벼운 패딩만

못하니 저 혼자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사람이 자기만족이고 남이 볼 땐 걱정 없이

보여도 걱정을 지고 사는 이가 있으니 누가 함부로 장단점을 평가하리오.

주어진 곳에서 그만큼 살면 된다고 가진 사람이 돈을 안 써도 꼴 베고 없는 사람이

막 써대는 것도 심란하니 가진 만큼의 그 안에서 살았으면 나에게 한 달에

1억에 살라 하면 살 것이고 100만 원에 살라 하면 아끼면서 돈에 맞추어 살 것이다.

아껴도 꼭 써야 할 곳은 굶어도 써야 하는 것이 장점이고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안 써도 될 자리  써대는 것이 단점이라 사는 것은 물질이 마음이 담겨있어 돈이

많아도 아무데나 쓰는 것이 낭비라 단점이지만 베풀면은 자선가 소릴 들으니 장점이었다.2014

 

 

처음 지은 내집

이른봄 처음 내손으로 산목 하였는데 화분이25.

여름이면 물을 주고 밤이면 이슬맞히면서 가을에피어날 국화를

가지런히 마당에 느러놓고 화분만 보아도 배불렀답니다.

화분이 옮기는대로 꽃밭이 되어 가을이면 대문밖에까지

국화향이 사람을 불렀는데 지나던 사람들은 안보이고

꽃화분도 간곳없이 설렁한 아파트에 벤자민 나무가

꽃밭이라 하지만 처음 지은 정든 그집 빨강지붕 아래

그 집주인이 나였는데 지나간 날들이 나를 슬프게 하면서

서쪽새가 울어대면  내마음은 그때의 국화를 그린답니다.2014

 

 

칠갑산 
연두색 숲사이로 벗꽃이 듬성듬성 솜사탕 같은 구름 가까이 올라가니  
집들은 올망졸망 작게 보이지만 굴뚝서는 보얀 연기 몽실몽실 사람 냄새가 나는듯 
좁은 오솔길 그 이름은 유명한 칠갑산 산행은 훗날 잊지 못할 나의 흔적

눈감으면 아롱거리는 꿈같이 희미한 날들 산언덕 중턱에 길이 아닌 가까운

고 바위로 흔들거리는 나무에 기대어 끝없던 등산길 힘들었던 산행 멈춰서니
눈앞에 보이는 정상 시원한 바람이 땀을 씻어주고 저 아래로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 자욱하게 덮은 봄 안개 콩밭 매던 아낙네 베적삼이 흠뻑 젖누나

어디선가 바람 타고 들리는듯한 칠갑산 하늘과 봉우리가 맞다은 저 아래

논과 밭 사이로 집들이 다닥다닥 정다운 동네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면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 올 때 사는 맛이라고 칠갑산은 말이 없어도 사람들은 말하더라. 2014

 

부끄러운날들

뭐야 말도 안되어서 화가나지만

또 한편 부끄럽기도 하다.

생각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색이

섞어지어 왜 나만 이러게 알록달록한

꽃과 잎이 비에 젖어 바래어 추하고 더러우니

지금 이게 나의 꽃이라고 장난하는건가?

힘이모자라 얼굴을 긁었나 진물이

질질 나고 그애를 데리고 찾아온 그 엄마

문고리를 잡아다니었던 어린시절 법보다

주먹이 가까웠던 날 억울하여서 씩씩대기도

하였고 여기저기 쥐어뜻기고 골병들게

맞았지만 약지 못한 나는 보이는

곳만 손톺 으로 긁었으니 겁이나서

발도 못 뻗고 오그리고 잤다.

어린 시절도 사나운 애들은 해볼수 없었는데

지금도 사납고 억센이가 제일 무섭다.

봄에 나물을 캐로가면 남들은 바구니에

가득히 채웠다면 내그릇은 밑에만 깔리었고

조개를 잡으로 바닷물에 들어간적 있었는데

물이 무서워서 남들은 바자락을

한바구니 잡았는데 나는 빈그릇이었다.

어린시절 겁이 많았는데 바보짓하고

툭하면 눈물이나 보이고 울어 버렸으니

그 미련한날들이 부끄럽고 아쉽다. 2014

 

고스톱의 추억

빨리 오라는 사람이 없는데도 새가 지나가는

방앗간을 그냥 못 간다고 슬리퍼 신고

빨리가려 하다가 벗겨지면 맨발로 달려가기도

한 그 장소는 오랜 사람들이 모여 노는곳

나의 아지트가 되어 오십원짜리 게임에

온 마음이 다 빼앗겼으니 이기고 지는 싸움이라

작은 돈이 큰 웃음도 주고 속상하기도 하였지요.

미쳐서 놀아도 승부욕이 있어 따야 재미가

있고 못따면 이래저래 마음 고생이 심하였습니다.

따서 공돈을 내 놓아도 재미가 있는 것은

승부욕에 만족함이 있어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살다보면 별것도 아닌데 고스톱 치는

순간은 승부욕이 있기에 돈이 달라 보였으며 쉽게

중독되며 노는 순간은 오십원에 다 걸은 인생

안될때는 오십원짜리도 몇천원이 나가기에 오천원

자리를 헐지 않으려고 따로 가지고 갔었기에

막판에 가리를 했더니 나를 엎어놓고 호주머니를

뒤져서 오천원짜리 가져가며 거스름 돈을 준사람

그 사나움이 오래 가도 잊지 않았고 무서웠습니다.

끝에가서는 다 가리를 하는 것인데 어떻게

오천원 짜리 가져가며 잔돈을 거슬러주는지

법보다 주먹이 먼저고 사는 것은 힘이 먼저였으며

23년전 일인데도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화투를 보면 먼저 그때일이 생각나니

거지같이 재미없는 추억이 되고 말았습니다.2014

 

 

침묵이 금이라더니 말로 여유와 곰이 되기에  침묵이 금이었다.

오늘은 무슨 구단을 내유?

엄마와 할아버지 말다툼하면 할머니가 하는 소리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더 미웠을 거고 어린 나를 데리고 앉아서

엄마 흉을 보니  모녀간을 이간질 하는 할머니 뵈기싫었다.

술 잘 비비고 얌전하다고 동네 어른 들은 칭찬했지만

나는 그런 미련맞은 할머니 별로였으며 할아버지와 겸상을

해서 집에서는 제일 귀염받아 구들이 뵈는 게 없으니

할아버지가 대장이기에 집안에서는 아무도 꼼짝 못하고

나만 할아버지의 유일한 손녀딸이라 더 귀염받으려고 예쁜 짓

하면서 컸는데 그때 그 애가 할머니 되어 작은애들네

집을 보는데 큰애들이 와서 애들 어디 갔냐 해서  며늘애도

직장 다니니 운동해야 한다고 별말 안 했는데 로버트

맞추던 손자가 지엄마 오니까 할머니가 엄마 흉보았대서

그런 일 없는데 글쎄 즈네 엄마 살 빼려고 운동 같다

한 것이 흉이라 옛날에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앉아서

엄마 흉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할머니가 싫은 적이 생각나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말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니 손자가 쥐띠였고 그래서 쥐라 밤 말을 잘 듣나?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쥐들이 많아서 밤에 말 잘못하면 안 되겠다. 2014

 

늦은 가을밤

딩동댕 초인종 벨 소리와 함께

친구가 난 화분을 들고 들어온다.

이거 봐 난 봉우리가 터질 것 같아

꽃피는 것을 보이려고 한밤중에 찾아왔다

친구가 사는 곳은 한참 떨어진 곳에

사는데  다음 날 아침

난 화분에서 꽃망울이 터지고 있었다.

나도몰래 전화기를 들고

꽃이 피고 있어 꽃이 피고 있어  환호소리

보라색 꽃망울이 점점 피어나서

방긋이 웃는데 친구의 얼굴이 보였다.

지금도 아파트 베란다에 난 화분에서

친구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또 꽃망울이 맺었다.

보라색 꽃망울이 나는 또다시

이 꽃망울이 터지는 것을 보리라

그리고 친구의 얼굴을 그리리라 2015

 

<스키장>

옛날에는 입성도 시원찮은데 눈은 왜 그리

많이 왔는지 겨울이면 신작로 눈이 없을 때가 없어

미끄러워서 조심조심 가다가 두 팔로

허리에 손을 대고 쭉쭉 타며 지났는데

남자애들은 썰매를 타고 차가 많지 않은 신작로가

겨울이면 우리들의 겨울 놀이터.

몇 년 전 엘리시안 스키장 콘도 베란드 나와서

보니 스키를 타는 애들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실지 모습

저렇게 눈 쌓인 겨울 보기 힘든데 눈싸움하고

 반질반질하게 하얗게 다져진 신작로

눈길에서 미끄럼 타던 옛날을 보았다.

그날 저녁 노래방에서 술도 마시고 놀다 오는데

그때까지 눈발은 흩날리는데 희미하게

불 켜진 스키장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눈과 놀고

스키장 불빛이 추운지 떠는데

불빛만 졸고 있는지 희미하게 비추더라.2015

 

 

가야산

1 1일 눈이 소복이 쌓여

백설이 뒤덮여 설화 꽃이 피고

햇볕이 은색으로 비추던 날 부부동반으로 가야산에

내려 올 때를 생각해서 비닐 비료 부대를

준비하고 등산복에 검정 안경 끼고 산에 올랐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져도 왜 그리 재미있던지

등산화에 미끄러지지 않게 아이젠을 끼고

야호 부르면서 길을 만들면서 정상에 올랐지

싸늘한 바람에 얼굴을 스치면서 흘렸던 땀방울도 식었지.

내려오는 길 비닐 부대 썰매를 타고

내려오는데 어릴 때 썰매 타던 기분이 들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하하 호호 떠들어 댔던 그때

너무 소중한 추억 내려와서 갈산 삼삼 복 집에서 점심 먹고

덕산 온천에서 목욕하고 즐거운 새해 첫날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한 해를 시작했어.

지나고 보면 일을 만들고 고생하면서도

이야기가 많을수록 살아온 날들의 의미 있어.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아끼지 말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즐거움을 찾자 시간을 아낌없이

쓰는 것이 인생을 더 많이 사는 것 아닐까?

가능하면 보람 있게 멋지게 추억을 남기면서. 2015 임일순

 

 

청춘의 낚싯대

낚싯대를 바닷물에 넣고 진짜 고기를 낚으려 했는지

그냥 멋지게 보이고 싶어선가?

바다에는 돌보다 바위가 많기에 바닷물과 노는

바위에 앉아 낚싯대는 낭만을 부르고 바닷가의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기에 다시 꺼내 보니 청춘이었더라.

바닷물도 푸르고 바위도 그대론데 사람들은 청춘이

시들어 가도 추억을 만든 이들 마음은 그대로 늙지 않더라

한참을 안 봐도 마음은 가까이 있어 세월을 함께

먹었기에 떠날 줄 모르는 너와 나 오래전 바다와 놀던

낚싯대 보이지 않아도 그때는 몰랐던

하찮던 날이 바다 물속에 담겨있더라.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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