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수필 >이야기

나의 편지 이야기 1

우리들 이야기 2021. 3. 27. 08:06

<편지>

하하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이른 아침

소리 없이 총각들의 승냥 하는 데로 가보았다.

불을 집 피고 모두가 동그랗게 서서

한사람이 손에 들고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모두가 웃음 띤 얼굴들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 뒤로 편지를 감춘다.

아마 연애편지를 읽는구나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좋은 시절이구나. 웃으면서 돌아왔는데 그래도 자꾸만

마음이 걸려 승냥이 모두 끝난 다음 승냥 간으로 발길을 돌렸다.

종이박스 하나가 놓여있는데 그 안에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내 이름이 보여 얼른 편지를 들어보았다.

남편이 군대 있을 때 나에게 온 편지였다 시집올 때

추억이 담겨있는 소중한 편지라서 가지고 왔는데

글을 잘 모르는 시어머니께서 불쏘시개 하라고 내어 주었고

종이박스 통을 들고 돌아와 하나하나 편지를 읽기 시작하였다.

사랑한다는 글 부끄러운 것까지도 들키었으니

시어머니가 왜 그리 미웠던지 동생이라면 한 방 때려주고 싶었다.

하나하나 읽어보면서 곱던 옛날의 추억이 떠올랐고 편지 속에

진실이 보이고 다시 시어머니가 추억을 살리게 해주어 고마웠다.

새삼 남편이 다른 사람으로 보이면서 소중하게

느껴지며 한세월 사는 동안 편지로 인한 사연이 많다.

한번은 대전으로 교육 갔는데 분심 든다며 시계도

맡겨놓고 커텐 치어 어두컴컴해서 전깃불을 켜놓아 낮인지

밤인지 때가되면 밥먹으러만 가고 교육에만 열정을

바치는데 편지요 하면서 한 직원이 편지를 가져다준다.

첫머리가 땀을 많이 흘리는 당신이 얼마나 더운데 고생을 하오.

이 글을 읽는 순간 내가 땀이 많은 것을 어떻게 아나?

고마워 눈물을 글썽이면서 남편 얼굴이 떠올랐다.

나이가 30대인데 편지 말투가 왠 나이 많은 어른처럼 폼 잡았지.

그래도 나는 자꾸만 눈물이 고인채로 한 통의 편지를 또 뜯어 보았다.

엄마가 안 계시니 엄마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겠다고

말썽을 부리던 초등학교 다니는 아들의 편지를 함께 받았다.

편지 한 통으로 보이지 않은 마음이 함께 하고 마음은

가정이 되어 그곳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전화로 문자로 빨리 가는 디지털 문화 시대에 살지만 정성과

생각이 그 사람의 모습 천년이 가도 변치 않는 진리가 편지

교육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받고 집에 돌아오니 반겨주는 가족들의

고마움이 편지 마음을 전한 바로 그 순간이었다. 2007

 

 

 

보고싶다 정숙아!

세월 속에 감춰진 정숙아! 그리운 이름 가만히 불러보니

아련히 떠오르는 그 얼굴 나이 수는 숫자라고

청춘일 때만 담아 놀게 너와 지워지지 않는 끈끈한 정

기억 속에 담아두지 않았던 하찮은 이야기들

날 수가 가는 동안 새록새록 떠오르고 정숙아!

너는 안 보여도 남겨진 이름 뒤에 한 사람이 되어

그날을 생각하며 길게 뻗은 저녁노을 그 아래 마른나무 가지 

한잎 두잎 낙엽 되어 떨어져 쌓이면 모르는 여자라도

네가 되어 이름 위에 수많은 사연들 다 지우고

다른 추억만 기억할께 통통하고 마음약했던  너 잊을수 없어

네 모습이 그림이 되고 이맘때면 함께 걷던 길 

혼자 지나며 네가 생각나 돌아보니 뒹구는 낙엽 소리만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 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얼굴 그림자가 다가와 미소 띠며 지난날 이야기 들려주네. 

정숙아! 오래전  대천 해수욕장 모래밭을 걷던 날들이

추억으로 그때가 오래전 우리들의 젊은날이네.

정숙아! 건강하게 잘 살지?

서울방배동이라 했잔어 지금도 그곳에 사는지?

너와 헤어진지도 한참 되었어  내가 젊고 성할때이니 찾아보고

싶지만 네가 가슴이 아플까봐 자신이 없어서 우리 젊음을

추억으로 담아놓고 해수욕장 모래밭 거닐던 그때 해도 뜨다

말고 흐릿했던 늦은 봄날을 떠올려 본다.

우리 거실에 누어서 지금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결혼식 날 만난 후 헤어져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서 서울에서

대천으로 복점 언니 선숙 언니 함께 만났는데 그때가

벌써 20년 전  길고 짧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고 어느새

우리들은  할머니란 이름으로 옛날 여인이 되었어.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을 담고 젊은날에 머물렀어.

정숙아! 늦가을은 겨울을 부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봄꽃으로 남았어 .2012

 

 

 

환갑

천안 오룡동 성당 신상옥 토마 신부님 60회 壽宴

푸르른 녹음 내음이 짙은 7월의 첫날 진심으로 신부님의 壽宴 축하드립니다.

신부님이 저의 대천 본당에 처음 부임해서

오시던 날 신부님 맞으러 교우들이 모였었지요.

그때 신부님께선 까만 수단을 입으시고 약간의

그을린 듯한 세련되고 멋있는 분이셨죠. 

자 들 본당 안으로 들어갑시다.

먼저 하느님께 인사드려야지요. 하시고는 안으로 들어가셔서 제대 앞에

무릎 꿇으시고 한참을 기도하시고는 우리를 향해서,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형제 되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합시다. 

그렇게 신부님과 인연이 되어 5년이란 시간을 함께 했지요.

여름 하계수련 해수욕장 초등학교 마당에서 그날 밤

보름달이 별들 사이로 지나가는 유치원생 손에 손잡고

강 강 술래하였는데 달이 차오르면 그때의 추억이 되었답니다.

신부님은 저희 가족 에겐 특별한 분이셨는데 시누이 홍 율리아

수녀님 종신 서원식 할 때에 특별히 참석해 주시어 자리를

빛내 주시고 저의 아이 첫영성체 신부님이셨지요.

시누이 종신 서언 끝내고 수녀님들 신혼여행 왔을 때 우리 해수욕장 회집에서

25명이 나눈 웃음 속에 하느님 술 마주 왕이 있어서 하느님과 함께 취해있었지요.

구역 반장 모임 웬만하면 참석하시어 함께 걷던 길이 추억이 묻어있답니다.

본당을 위해서 어렵고 힘든 일 다 하시고 특별히 어린이들에게 관심이 많았었지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고 호주 한인 성당으로 부임 받아

떠나시던 날 신부님 전송 나갔을 때 학생들이 성당 마당에

엎드려 고마운 인사가 저희 모두 아쉬움에 눈물이 고였답니다.

우리 손 하나하나 잡아 주시고 그동안 여러분들이 있어 행복했다고 말씀하시며

눈시울을 적시던 그 모습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계시는 동안 좋은 일 많이 하시고 가난한 형제자매님 들 한 테 특별히

사랑을 주시었는데 정열이 있으시고 젊으신데 신부님 벌써 壽宴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니 세월이 많이도 흘렀어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그동안 하시었던 것처럼 교우들 사랑 많이 해주십시오.

저희 시어머니 호주에 여행 갔을 때 신부님 뵈었다고 해서 만나 뵌 것 같이 반가웠습니다.

한국에 나오시어 오룡동 성당에 계시는데 저에게는 큰 변화가 있어

찾아뵙지 못하여 아쉬움에 수연 축하 글을 올립니다.

신부님 언젠가 꼭 뵐 날이 있을 것입니다. 

내내 주님의 은총 충만하시고 복된 삶이 되십시오.

2007  7  1  홍민선 야고보 임일순 데레사 드림

 

인연 김서방에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은아와 만남이 나의 사위가 되었네.

딸 가진 엄마들이 바라는 것은 고생 안 시킬 사람을 고르는 것은

엄마의 마음이라 생각하는데 본인들의 마음은 정이 가면

눈에는 들보가 가린다지.

그러기에 인연은 사람의 힘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는데

더구나 마음 약한 나는 딸 생각을 꺾을 수가 없었지.

둘이 만남은 하늘이 내려주신 천상 연분

처음엔 좋은 모습만 보이다가 살다 보면 속이 보여 싸우면서

지지고 볶고 하지만 가정을 위해서 한마음이니까

싸움은 관심이란 거 더 오래 살아야 알 수 있으니

별스러워도 한마음은 부부니까 두 사람이 건강한 마음과

몸이 서로에게 기쁨을 주는 거니 작은 기쁨을 크게 자랑하며

서로를 위할 때 동휘에게도 산 공부가 되는 거야

시대의 흐름따라 간다해도 세상을 오래 살은 장모의 생각

김서방도 아버지가 되었으니  정감가는 아빠와

남편으로 살면서  건강한 마음 몸 지키며 살기바래. 

그래야 이다음 동휘가 본받아 모두에게 귀여움을 받지.

둘이 알아서 잘 살겠지만 일단 참는 것이 기쁨으로

간다는 것을 알면서 잘 살아야 해.  2007 

 

 

사랑하는 은아야

너와 같이 예쁜 딸을 나에게 보내주신 하느님께 먼저 감사드린다.

너를 가져 열 달 동안 함께 웃으며 기뻐하며 네가 세상 속에 축복으로 태어났지

예쁜 짓 하면서 매일매일 웃음을 주고 기쁨을 주면서 잘 자라 주었어.

취학 통지서를 받고 우리 딸 학교에 입학하네.

마음이 설레었고 나 혼자 학부형이 되는 것처럼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건강하게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성적이 좋아 엄마를 기쁘게 해주었고

중학교에 가서도 반장 자리 놓치지 않는 통솔력이 강하고 친구가 많은 해맑은 소녀

고등학교를 대전여고로 가게 되면서 너와 헤어짐이 그때부터 더욱 그리워하는 모녀

대전여고에서도 홍은아 하면 인기 짱 이었던 덕분에 은아 엄마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엄마의 이름은 잊어버리고 은아 엄마가 내 이름인 줄 알았어.

대학을 들어갈 때 경쟁률이 높은 학교에 학격 해 가족을 기쁘게 하여

잔치까지 하였으니 너로 인해 엄마 아빠는 항상 행복했단다.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배우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너도 이제 엄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어 예쁜 손자를 안겨주어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씩씩한 너를 보면 삶의 활력소가 생기고 네가 나의 딸이라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단다.

그런데 네가 이런 말을 했어. 엄마한테 받기만 했지 해드린 것이 없다면서

이번 엄마 생일날 손수 생일상을 차려 준다고 눈물이 났어.

너를 키우면서 기쁨을 얻어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었기에 너는 이미 효도를 다

했는데도 지금까지도 고맙다고하니 나도 고맙다.

그리고 망가져 아무 일도 할 수 없어 속상했지만 네가 이제는 아이도 생겼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건강하게 잘 키우고 현만 이와 행복하게 잘 살아라.

너희가 잘살아주는 것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는 거란다.

언제나 건강한 웃음이 가정에 넘치기를 기도한다. 2007   엄마 아빠

 

 

승완 은주에게

너희들의 만남은 운명적인 인연이다.

많은 날을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자기의 꿈을 향해 목표를 가지고 어렵고

힘이 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실현하려는 너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너희들이 가는 길에 불필요 한것들 은 마음에 두지 않고 자신을 가지고 바쁘게

살아가는 그 젊음 빨리 가다가 지치는 사람들도 있고 천천히 더디 가도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 어떤 보장이 주어지더라.

이런 말이 있지 일찍 피는 꽃은일찍 지고 늦게 피는꽃은 오래 남는다고.

때를 기다리면서 좋은 날을 기다리자.

어떠한 상황에서도 실망하지 말고 내일이라는 희망의 선물이 있으니 용기를 가지자.

부부라는 이름은 사랑이고 용서이다.

그대의 좋은 점은 칭찬으로 두 배의 기쁨을 갖게 하고,나쁜 점은 시간에 맡기자

본인도 자기의 단점을 알고 있거든 하늘이 맺어주신 부부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신뢰하는 친구로 한 곳을 같이 바라보는 동반자가 되어

많은 날 들을 웃으면서 몸과 마음 건강하게 살아가기 바란다. 2007    엄마 아빠

 

은주가 나에게

충남 보령시에 사는 시어머니는 인터넷으로 며느리를 북돋아 준다.

내 전화 목소리가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사이월드에 글을 남기고, 이메일을 보낸다.

띄어쓰기가 없는 문자메시지도 가끔 날아온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진 글은 항상 ‘사랑하는 우리 은주에게’로 시작된다.

깜짝 선물도 택배로 배달된다.

인터넷 쇼핑몰을 돌다가 며느리에게 어울릴 만한 옷을 발견하면 우리 집으로 보내는 거다.

며느리와 백화점을 누비며 쇼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시어머니가 얼마 전부터 인터넷 쇼핑법을 대안으로 찾아낸 것이다. 

집안에서도 시어머니는 항상 내 편이다.

시어머니를 처음 만나던 날, 나는 설거지를 하다 컵을 깼다.

나중에 알았지만, 고모가 외국에 나갔다가 선물로 사온 귀한 물건이었다.

며느리감이 온다고 시어머니가 특별히 내놓았던 것인데 

집안 살림에 서투른 내가 깨 먹은 것이다.

시어머니는 “다치지 않았니. 낯설어서 그렇지.손님한테 일을 시킨 내가 미안하구나.”라고

말하고 남편을 전격 투입했다.

시어머니는 두 아들을 완벽한 살림꾼으로 키웠다.

설거지는 물론이고 청소, 빨래, 요리까지 못하는것이 없는 훌륭한 내조자다.

그 후 나는 시어머니 앞에선 혼자 집안일을 하는 법이 없다.

남편과 함께 음식하고, 청소하고 2004년 8월, 만난 지 10년이 넘은 ‘오래된 연인’과 결혼했다.

시어머니도 수년간 봐온 터라 호칭이 친정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시어머니는 ‘은주야.’라고, 나는 ‘엄마’라고 부른다.

신혼 첫날 남편은 내 손을 잡으며  어머니 불쌍한 분이다 

친정엄마처럼 생각하고 잘 지내 달라고 했다.

가족에게도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네지 않던 무뚝뚝한 남편이 진심을 드러낸 것이다.

시어머니는 1999년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

큰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다리가 일부 걷기가 힘들게 됐다.

쉰을 갓 넘겨 찾아온 시련에 온 가족이 슬픔에 잠겼다 

그때 시어머니가 좌절을 털고 일어섰다.

나는 목숨과 다리를 맞바꾼 거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소중한데 왜 슬퍼하니''남편이 부탁이 없었더라도 나는 시어머니와 반목할 수가 없다.

그분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술을 지녔기 때문이다.

일간지 신문기자인 나는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많다.

시부모가 우리 집에 방문했더라도 취재 약속을 무작정 최소하고 달려가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면 시어머니는 밤늦게까지 며느리를 기다린다.

그리고 얼굴이 빨개져 들어온 며느리에게 꿀물 건낸다.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넌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야" 

시어머니는 이처럼 나의 든든한 후원자다. 

그래서 검찰총장의 말 한마디를 들으러 새벽에 출근하고 사건을 파해 치느라

밤이슬을 맞으며 현장을 지키는 것이 지칠 때면 나는 시어머니를 찾는다.

"엄마 나 회사 그만둘까요. 하니까 "우리 시대는 눈치 보느라 여자가 설거지한다.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내가 아들 잘 키웠지.”라고 자랑하며 흐뭇해한다.

시집은 종가집이고 나는 8대 종손이고 며느리다.

명절 때면 시 어머는 입으로 나는 손으로 음식을 만든다.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가 솜씨 없는 며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래도 잔소리는 전혀 없다 오히려 칭찬 일색이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양념을 만들고 나물을 삶는다.

실수투성이지만 가끔 쓸만한 잔꾀를 내놓는다.

"음식마다 따로따로 야채 를 썰지 말고요? 

음식마다 계획한 요리에 들어갈 야채 를 한꺼번에 준비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편할 것 같아요.

"시어머니는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친다.

그리고 시아버지에게 " 우리 은주는 요리도 아주 똑똑하게 해요.

몆 년만 지나면 요리도 나보다 잘할 거에요."라고 자랑한다.

종갓집 맏며느리인데 보조 노릇만 하기 미안해 지난 추석에는 스파게티를 선보였다.

솜씨 좋은 시어머니지만 만든 적이 없는 요리였기에 선택했다.

쇠고기와 각종 야채를 볶고 스파게티 소스로 맛을 냈다. 

과정은 쉽고 결과는 성공 명절 음식에 식상한 사촌 시동생들이 즐겁게 먹었다 

시어머니는 은주는 뭐든 하기만 하면 잘한다. "고 치켜세워줬다.

나는 또 잡채와 떡볶이를 만들었다.

시어머니의 칭찬이 듣기 좋아 이것저것 자꾸 요리하게 된다.

올 추석에 휴가를 받았다 남편의 일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자

시어머니가 "너도 자유를 만끽하라"고 명령했다 

혼자 여행을 떠나도 좋고 집에서 책과 DVD를 즐겨도 좋단다.

우리는 자주 보니까 명절이라고 무조건 고향에 내려올 필요 없어 

네가 제 충전해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게 더 중요하단다.

시어머니가 보낸 이메일 일부다.

쑥 쓰러 입 밖에 내놓지 못했지만 나는 시어머니께 하고픈 말을 마음에 새긴다.

"엄마, 저는 엄마를 참 존경해요. 

다시 태어나도 엄마 며느리 할래요. 은주 드림   <고마워 은주야  엄마>

은주의 마음이라 이 글을 죽을대까지 보관할 것이다.  

 

 

승완아!

어릴 때 고집이 너무 세어 버릇 고쳐 준다고 때리고 때리어도

울음이 그치지를 않아 엄마가 지쳐버렸어.

그리고 다시는 너를 때리지 않았다

너를 알았지 너는 말귀를 잘 알아들어 달래면서 키워야 한다고

네가 여섯 살 때였어. 누나 따라 학교에 가서

누나 선생님이 예쁘다고 하면서 이름 쓸 줄 알아 하니까 너는

책을 읽고 있었어 선생님이 놀라서 이다음 꼭 큰 사람이 되겠다고 칭찬하더라.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잘해서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었고 너한테 기대에 부풀어있었지

가장 힘든 고등학교 시절에 성적 하나 더 올리려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새벽녘까지 자율 학습 한다고

잠도 못 자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단다.

다른 애들에 비해 자기주장이 강하고 고집이 세어 아무도 너의 뜻을 꺾지 못했어.

공대를 졸업하고 취직은 하지 않고 다시 영화 공부한다고

한국 종합 예술학교에 들어가서 엄마 아빠 정말 많이 속이 상했지만

네가 좋아하는 일이 그 길이라 이해하고 뒷 바라 지 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단다.

네가 복이 있어서인지 네가 좋아했던 아이와 결혼하고 지금은 그 아이한테

너의 어려운 길 짐을 지게 해 줘서 미안하단다.

예술의 길은 험하고 인내로 극복하지 않으면 뜻을 펼칠 수 없어

고생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엄마 아빠 걱정이 떠나질 않는다.

조급히 생각하지 말자. 세상은 쉬운 일이 없어

경제적 능력이 없는 너기 때문에 물질적 효도는 바라지 않지만

너는 이미 나한테 커 나오면서 기쁨을 주었어.

불편한 엄마 관심 속에 항상 걱정해주며 너의 마음 엄마는 다 알고 있다.

좋은 아내를 맞이하여 엄마 아빠한테 큰 효도를 했고 누가 뭐라고 해도 엄마는 늘 너의 편이란다

용기 잃지 말고 건강한 생활하여 네 아내 고마움을 가지고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어라

노력하는 만큼의 꿈을 이루지 못해도 실망하지 말고 세상살이는 만만한 게 없단다.

최선을 다하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라는 걸 잊지 마라

그리고 부탁은 가족관계는 가장 중요한 사랑이니 관심을 가지고 종종 전화로 안부 묻기 바란다.

너희 둘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기를 기도한다. 2007   엄마   아빠

 

 

사랑하는 은주야!

이렇게 부르면서 너에게 내 마음 전하련다.

너를 오래전에 만났지 너희들이 대학 1학년 때 인가?

학교 홍보 책자 표지 모델에 네가 나와서

좋은 선한 눈을 가진 예쁜 학생이었어.

승완이가 좋아하는 것 같아서 인연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하늘이 주신 인연인지 나의 소망이 이루어졌어.

네가 나의 며느리라는 게 너무 행복해 5년이란 캐나다 유학 중에도

변하지 않고 사랑을 지켜온 너의 순수함 칭찬한다.

기자라는 직업이 만만치 않은데 그 어려움 속에서

너의 남편 뒷바라지까지 하고 있으니 미안하고 고맙다.

한국 종합 예술학교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서

졸업하면 감독이 되어 걱정이 없는 줄 알았는데

예술이란 멀고도 어려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보니 걱정이 된다.

그래도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있으니 두 사람 중에 한사람만 경제를 담당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맏며느리로서 역할까지 충실히 하면서 일가친척들 관심 두고

명절 때면 전화해서 모두 모여 사랑의 우애를 나누고 네 남편 치켜세우면서

자랑할 때 엄마 아빠는 네가 예쁘고 고맙기만 하단다.

시누이 시동생 동서한테도 특별한 관심으로 자주 만나서

식사라도 함께하는 시간을 내는 너를 보면 정말 기특하고 고맙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승완이가 좋은 영화 만들어

홍승완 이라는 이름이 유명해질 때 너의 이름도 함께 하겠지

조급히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그때를 기다리자.

부부의 인연이란 하늘이 내려주신 축복이니 감사하자

너를 나에게 며느리로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좋은 아이로 키워서 나에게 주신 사돈님들 고맙고

좋은 아내를 며느리로 선물한 승완이 가장 큰 효도 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너희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엄마 아빠의 기쁨이란다.

너희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승완 은주야 2007    엄마 아빠

 

은주야!

새해는 웃음이 가득하고 언제나 즐거운 노래만 부를 수 있는 해가 되며

늘 좋은 생각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 세상에서 가장 바쁜 우리 며느리 전화도 제대로 못 건다.

정말 멋진 것은 정의를 꽃피려고 하는 너의 마음

돌아가는 세상에 양심을 팔지 않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너의 마음을 배우고 싶다.

언론이 정직해야 좋은 세상이지.오래 정의롭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꽃이 피고 열매도 맺더라.

아직 자기 일이 때가 안 온 지금 어디에다 기대고 싶기도 할 텐데

그래도 이해하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새해는 언제나 건강하고 좋은 날이 쭈욱 있기를 바란다.

 2007 시엄마 시아빠

 

 

승덕 세정에게

인연이란 하늘의 뜻으로 맺어주는 것

많은 사람 들 중에 두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픔은 함께하면 가벼워지고 기쁨은 함께하면 두 배로 늘어나

부부라는 이름은 두 사람이 몸도 마음도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의 그대는 그대의 나이고 그대는 나의 그대

그대가 아파하면 나도 아프고 그대가 기뻐하면 나도 기쁘고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면서 그대의 단점은 기분 좋은 말로

깨닫게 하고 장점은 두 배로 칭찬하면서 좋은 생각과

긍정적인 사고로 언제나 한편이 되어야 한다.

세상 속에서 둘이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며 너무

성급하게 살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여유롭게 쉬면서

건강 지키며 행복한 삶이 되기를 바란다. 2008  엄마 아빠

 

 

작은아들 승덕아!

너는 어릴 때부터 기쁨이었어 예쁘고 착하고 말도 잘 듣고 항상

잘 웃고 가족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너를 보면서 엄마 아빠는 행복했단다.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학부형 면담이 있어서 단임 선생님 뵈었지.

그때 너의 성적이 400명 중에 238등 엄마도 충격이었지만 네가 더 실망하고

날마다 자율학습을 새벽까지 하면서 노력 끝에 상반기 중간고사 61등으로

올리느라 얼굴이 핼쑥해지고 몸도 날씬해지면서 1석2조로 멋졌지.

노력 끝에 시골에서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들어가서 엄마 아빠 기쁘게

해주었고 인기가 좋아서 여자 친구들이 많았지.

대학에 들어가서 3학년 마치고 어학연수 간다고 케나다 수속 다 밟아놓았는데

가정형편으로 포기했을 때 엄마 아빠 맘 많이 아팠단다.

마음으로만 부모 노릇 하는 게 아니구나. 슬펐어 그런 부모 심정을 알고

너는 괜찮다고 하면서 엄마 등 끌어 앉고 이런 말 했지 잘 된거에요.

사실은 나 겁 많아서 혼자 외국 나가는 것 불안했거든요

이곳에서 영어 공부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면서 웃는 얼굴을 보여주었지.

어쩌면 너의 운명을 바꾸어 놓은 좋은 계기가 된 것도 같아.

그로 인하여 좋은 친구이자 연인 되어버린 세정이를 만났잖아 힘들어할 때

선녀 같은 친구가 찾아와 너는 그 애로 인하여 다시 꿈을 가졌지.

취직 문이 좁다고 뉴스에 나올 때마다 걱정했는데 취직 원서 넣어 놓고

발표하는 날 엄마도 컴퓨터 앞에서 기다렸는데 2월 26일 오후 6시

네 주민번호 이름 확인하니 축하합니다. 신입사원 채용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면서 세정이 감격한 목소리로 어머니 오빠 합격했어요.

고맙다. 너도 기쁘지 그렇게 너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어.

어려운 대기업에 적응하려니 힘이 들어 하는 너를 보고 맘이 편하지는 않았어.

이제는 어려운 고비 넘기고 회사생활 잘 맞추어가니 안심이 되고 네가

좋아하는 아이하고 결혼해서 얼마 있으면 아빠가 되는 너를 보니 대견하다.

막내라고 어리게만 보았는데 일가친척 챙길 줄도 알고 가족들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우애를 나누니 엄마 아빠 너의 갸륵한 마음에 칭찬한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부부로 맺은인연이야 사랑해주고 어떠한

자리에서도 세정이 편이 되어야 한다.

너희들이 잘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엄마 아빠한테

효도하는 거니 행복하게 잘 살아라. 2008   엄마 아빠

 

 

승덕아

한해가니 새해가 오르고 항상 너는 애들 같은데 네가 더

어른이 된 것처럼 커 보여 언젠가부터 나이 먹는 것이 무섭지.

세상이 부족한 것 없이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만 모두가

경쟁자라 물질이 마음을 사는 세상 그러나 양심은 아름답기를 바란다.

가족이 건강하고 너희들이 직장 생활을 잘해 꼭 필요한

사람으로 남기를 바라며 회사에서는 회사 일에 충실하고 집에 오면

가족들한테 충실해서 사랑받는 사람으로 남았으면 해.

올 목표는 살 빼는 거 너도 잘 알지 그래서 멋진 아빠 멋있는 남편

되어 건강 하게  꿈과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08    엄마 아빠.

 

 

 세정아! 

승덕이 가 네 사진을 절대로 안 보여주었지.

관심 없는 척하니까 저 스스로 섭섭했는지 엄마만 알고 있어요. 

하면서 지갑 속에 사진을 보여주더라.

네 사진을 제일 위에다 올려놓고 매일 보고 있었나.

스키장에 간다고 김밥을 많이 싸서 신촌 집까지 가지고 왔었어.

어머, 김밥까지 예쁘게 싸니 제법이네. 칭찬했지.

어버이날 제사 때에 네가 와서 도와주었는데

식구들이 너보고 자꾸 다른 아이 이름 불러서 승덕이 곤란하게

하고 너도 무척 서운했을거야. 지나고 보니 재미있는 추억 거리다.

설악산 단풍 구경 간다고 설악 콘도 예약해놓고

새벽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네가 욕실에 들어가서 안 나오니까 

너의 시누이가 그랬지 너는 왜 그렇게 오래 있다 나오니?

하고 핀잔하니까 언니 닮아서 그래요.

너의 그 재치 있는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아직 철이 없는 것 같이 여리면서도 해야 할 도리는

다 지켜가는 너의 모습에서 마음으로 칭찬한다.

결혼하기 전 우리는 함께 살아봤지 그때보다도 네가 결혼하고 나더니

점점 더 예뻐지는 것은 내 식구라 그런거고 아이까지 잉태하여

어머니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겁이 난다고 엄마 생각을 귀엽게 문자 보내주어  고맙다.

입덧이 심해서 걱정이 되는데 다 아는 병이니 엄마가

되어가는 훈련을 지금 받는다고 생각하면서 잘 견디기 바래.

너를 나의 며느리로 인연을 맺게 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예쁘게 잘 키워서 나에게 주신 사돈님들께 고마우며

며느리로 선물한 승덕이 큰 효도했다고 칭찬한다.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 보여주는 것이 엄마 아빠 바람이니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라. 너의 위해 기도한다. 승덕 세정아! 2008   시엄마  시아빠

 

새해는 웃음이 가득하고

언제나 즐거운 노래만 부를 수 있는 해가 되며

늘 좋은 생각으로 좋은 시간을 보내

아이들이 한 살 더 먹으면

그만큼 엄마 아빠는 고달팠지만 살아온 보람이 있지

힘들어도 예쁜 아이들을 보살피는 책임이

어쩌다 보니 아이들은 커가고 사랑이 나누어져 숫자가 늘어갔지만

그 사랑은 책임으로 아이들이 밧줄이 되어

꽁꽁 묶어버려 소중한 가족이 되었어.

살다 보면 서운한 것도 있지만 서로를 위해서 인내하며

좋았던 것만 기억하렴. 승덕 세정아. 2008  시엄마   시아빠 

 

 

 

보고싶다 정숙아!

세월 속에 감춰진 정숙아! 그리운 이름 가만히 불러보니

아련히 떠오르는 그 얼굴 나이 수는 숫자라고

청춘일 때만 담아 놀게 너와 지워지지 않는 끈끈한 정

기억 속에 담아두지 않았던 하찮은 이야기들

날 수가 가는 동안 새록새록 떠오르고 정숙아!

너는 안 보여도 남겨진 이름 뒤에 한 사람이 되어

그날을 생각하며 길게 뻗은 저녁노을 그 아래 마른나무 가지 

한잎 두잎 낙엽 되어 떨어져 쌓이면 모르는 여자라도

네가 되어 이름 위에 수많은 사연들 다 지우고

다른 추억만 기억할께 통통하고 마음약했던  너 잊을수 없어

네 모습이 그림이 되고 이맘때면 함께 걷던 길 

혼자 지나며 네가 생각나 돌아보니 뒹구는 낙엽 소리만 

거리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 속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 얼굴 그림자가 다가와 미소 띠며 지난날 이야기 들려주네. 

정숙아! 오래전  대천 해수욕장 모래밭을 걷던 날들이

추억으로 그때가 오래전 우리들의 젊은날이네.

정숙아! 건강하게 잘 살지?

서울방배동이라 했잔어 지금도 그곳에 사는지?

너와 헤어진지도 한참 되었어  내가 젊고 성할때이니 찾아보고

싶지만 네가 가슴이 아플까봐 자신이 없어서 우리 젊음을

추억으로 담아놓고 해수욕장 모래밭 거닐던 그때 해도 뜨다

말고 흐릿했던 늦은 봄날을 떠올려 본다.

우리 거실에 누어서 지금 꿈을 꾸는 것 같다고

결혼식 날 만난 후 헤어져 오랜만에 시간을 내어서 서울에서

대천으로 복점 언니 선숙 언니 함께 만났는데 그때가

벌써 20년 전  길고 짧은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고 어느새

우리들은  할머니란 이름으로 옛날 여인이 되었어. 

그래도 마음은 여전히 청춘을 담고 젊은날에 머물렀어.

정숙아! 늦가을은 겨울을 부르지만 우리는 여전히 봄꽃으로 남았어 .2009

 

 

 

추억에게

추억은 내 가슴에 살아온 지난날 흔적이 되었지만

세월 속에 지워져가니 미움도 잊으라 하고 고이는 눈물도

흘리지는 마라 하면서도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세상위에 사는 동안 겪어야 할 내일이라 내가 지고 가는

것이기에 운명의 장난같아라.

아름다움과 아픈날들이 범벅되어 견디기 힘든 것이 째는책임

자랑할 건 못 되어도 부족한 그때 상황 부끄러운

날일지라도 헤쳐나갈수 있는 젊음이 있었기에 속마음은

고민하며 울고 있어도 웃음을 나눌 줄도 알았는데.

종교생활 학교 엄마로 동네 아줌마로 여기저기 필요한 사람으로

돈 들어 갈 곳은 많았어도 젊고 건강할 때의 바쁘게 뛰어

다닌 이야기가 내 앨범속에 먼 훗날 가서는 한 페이지로 남겠지.

사는 것은 추억을 만들며 가는 것이니 추억아 고마워  2009

 

 

 

자기들에게

우리의 만남은 세월이 흘러가도 더 끈끈하게 맺어지니

고마움뿐 힘들 때 같이 울어 주고 기쁠 때 같이 내일

같이 웃어주던 자기들은 가까운 내 곁에 있어 맘만 먹으면

찾아가 만날수 있었으며 눈빛만 보아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서로의 메아리를 주고받는 친구들이었다.

이사람 만나면 저사람 말하고 저사람 만나면 이사람

말하고 지금까지 그러지만 모두가 관심이었어.

자주 만나면 이야기가 통하고 누구네 애기하면 다 알수

있듯이 반가웠던 자기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이

함께하여 전화로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보이는 자기들.

비밀 없어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고 내 말이 썰렁하거나

어떤 말을 해도이해하고 통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

지식보다는 마음이 편하여 언제나 어깨를 같이하여 나란히

앉고싶은 하늘 냄새를 지닌 나한테는 그런 자기들이였어.

오래 사귀다 보면 마음이 보이니 닮아가게 되고

텃밭에서 상추나 호박을 따와 나누어주고 밤에는 꽃잎에 이슬

낮에는 해가 되는 자기들 들길을 지나면 들꽃이 반겨 주는

것처럼 만나면 들꽃과 같이 반가운 그런 자기들이 있는 곳이 나의 안식처2009

 

 

 

봄과 가을아

얼굴에서 피던 꽃이 잎새에서 꽃피고 봄에 씨뿌리면 가을에

열매맺어 거두듯이 봄과 가을은 우리의 일상이었어

봄이 있어 가을이 더 아름답듯이  해마다 가을이 오면 잊고 싶은 시간과

기억하고 싶은 날들이 섞여져 그안에 웃음도 눈물도 함께 있는 가을

시간이 흐르는대로 몆번인가 너의 가을이 내게로 찾아오더니

아픔은 서서히 지워지고 아름다운 너의 가을이 나의 젊은 봄을 보게 하였어.

그때만 추억하고 맑은 가을하늘 황금빛 들판 어디를 보아도

풍요로움을 주기에 어둔 마음을 비춰 주면서 너의 가을이 내가을 되었다. 2009

 

 

내가 나에게

너와 나는 한몸이고 한마음 이지만 추억은 생각하는대로

다른곳을 향하기에 이쁘게 보면 네가 대견했고

나쁘게 보면 너는 한심한 것처럼 하나의 너와 내가 아니라

상황따라 몸만 변한 것이 아니고 마음도 따라가고 있었어.

제 작년에 서울에서 대천으로 이사올때는 나의 웃고 울던

반평생이 묻힌곳이기에 정겨웠는데 추억이 서려있어 슬프게 하였어

즐거웠던 날이 많았는데 내 기억은 그날에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현제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가봐.

생활이 복잡할 때 해소 시키는 위로의 말은

가난 끝 행복시작이라고 하더니 믿지는 않았어도 기분좋은 말이었지.

달력에는 일기처럼 지나간 날을 혼자서 뒤적거려보니

숫한 사연들이 나의 삶이었어.  2010

 

돌고 돈다.

해마다 새해를 맞고 미래로 가다보니 희미해져가는 내과거.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면서

지구만 돌고 도는게 아니고 세월도 가고 오고 돌고 있었어.

너에게 하고싶은 말이 무수히 많은줄 알았는데

네가 나기에 한방 때려주고 싶을 뿐이지 미안하기도 해.

거울을 보기싫어 안보는데 병원 에레베터 맞은편 거울속에

아버지가 있어 자세히 보니 바로 나였어 내가 아버지

닮았다고는 하지만 내가 나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볼수 있었어.2010

 

나의 아버지.

나에게는 아버지가 원망의 대상자였거든

해맑은 어린시절 한이 서리게 동심을 뺐아 갔기에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 좋은척만 하였지 사실은

엄마를 배신하고 자식을 책임안지었던 아버지가 미련스럽게 보였어.

젊은시절 가정을 위해서 나간 것이 아니고 어떤

나쁜여자에게 물려가서 가정을 버린 아버지 용서하지

못하였는데 막상 아버지가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는데

병의 이름을 찾지 못하기에 더 안쓰러웠고

대학병원에서 간농이라는 병명을 받았으니 어느순간 나는 아버지의

과거를 용서하였고 나에겐 그냥 아버지였어.

그러기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공장을 아버지 집 가까운데

차리고 축성받고 신부님께서 이렇게 산골에 공장을

지으면 장사가 되냐고 걱정스러워 하며 기도하여주셨어.

자식일이라 몸이 어려워도 신이나서 하던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을해서 엄마 한분 계시기에 가까운

대천으로 모셨으며 네가 쓰러지었는데 그게 나였더라.2010

 

 슬픔아!

처음엔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은 것이 없고 가까운이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였지만 어느 순간인가 아무리

내가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왕이 몸은 망가졌어도

마음만은 속 썩지 말자라는 신조가 나의 목표였는데

나도 모르게 짜증 냈으니 한해가 가는대로 숲은 커나가고

사람들은 안보이기도 하면서 네가 늙었는데 그 늙은이가

볼품없는 나였으며 초라한 모습에 속상함이 터져나와 우울하단다.

쓰러지고 보니 손잡아주는 이들이 많기게 세상은 살만 했지만.

나를 슬프게 한 것이 부정한 생각이었기에 감사를 알게 해준

나의 신이 고마웠으며 네가 나고 내가 너라는 거 그러기에 건강

하나고 볼품없어도 우리는 하나니까 친하게 지내고

아푸지 말자고 너한테 정말 미안해 내가 내 관리를 못한 것이. 2010

 

 

 

바깥세상아

젖으면서도 흔들며 바닥에 쓰러져서

피어난 보잘것 없는 지독한 꽃아

풀잎들이 물속에 신음하다 날이 드니 여전히

아무 일 없다고 햇빛은 나뭇잎과 놀고

가을을 부르는 햇빛은 이글거리며 마른땅을 만드네.

땀 흘리며 봉사하는 천사들이 많아서

시간이 가면 물에 잠기었던 들판이 새로 태어나겠지.

편리한 디지털 세상 택배는 바빠지고 행사를 접고 

온라인으로 장사하듯이 옛말에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고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던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가을이 선물되어 오겠지. 20

 

가을아!

귀뚤 소리 들으면서 가을은 그렇게 오나 보다.

칙칙한 옷으로 갈아입으려 찬 이슬로 목욕하는 나뭇잎

가을의 꽃이었나 황금빛 들판 길가에 코스모스

가는 곳마다 저 높은 하늘색도 푸르게 곱게 물들이어

하얀 구름이 그림을 그리며 지나는 대로 저마다의

마음속 가을이 펼쳐저 젊은 날 청춘이 그리워진다.
아픈 사연은 제발 가슴에다 묻지 말고 기쁜날들만

담으려 하였는데 생각이 방해하나?

밝음 뒤에 자꾸만 기죽어 희미하게 숨어버린그림자

젊은 날의 전성기 남기고 나머지는 다 가져가라 가을아!2020

 

가을 편지

가을아! 너는 그대로인데 나만 몇 번의 가을 맞았더니

겨울에 와있어 가을 여인 인줄 알았는데 낙엽을 밟으면

우아한 가을 여인이 립스틱 짙게 바르고 흥얼대었는데

나이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모습도 가져갔어. 누가 누구게?

못된 세월이 알 수 없는 삶이 무색하게 어디로 사라졌나?

안 보여 캄캄해 어제는 햇밤을 찾아 공주로 가다 보니

길가에 크고 작은 코스모스 한때는 마음을 설레게 하더니

지금은 왜 서글프게 보이는지 네 모습에서 나를 보나 보다.

너도 가을이 한가운데로 가면 잎이 마르기 시작하겠지.

맘껏 아름다움을 보이는 너 아직은 가을 여인처럼 우아하다.

너를 보기가 쉽지가 않은데 공주까지 가는 길가를 환하게

해주니 고마워 예전이나 지금이나 세월은 많이도 갔건만

여전히 하늘대는 너를 닮고 싶지만 나는 한 물갔어

가을을 상징하는 코스모스야! 언덕에도 길가도 끝없이

펼쳐지고 누렇게 익어가는 황금빛 들판 군데군데 열매들은

붉게 익어가나 달콤한 냄새가 풍겨온다.

밤이슬에 목욕하며 여름 먼지를 벗겨내느라 아픔을

견디는 잎새들 알록달록 예쁜 가을 산아!

곱게 갈아입는 단풍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가을 산  2020

 

그리움아

풍요가 가득히 채워지는 느낌인가 안 먹어도 배부른 것

같은 것은 보이는 모든 것이 수채화 물감 뿌린 것처럼

아름답기에 저절로 배가 불렀나 그래도 여전히 이때가

되면 그리움이 밀려와 거리에 나뭇잎 허트러지면 더높고 맑은

푸른 가을하늘 나와서 보아달라고 부르는데 갈 수 없어

창문으로 내다보니 옛날이 그리워지고 점심때가

지나면 햇빛은 서산으로 기우는지 노을이 길어지며 안 보여도

또 계절이 바뀌면서 가득히 늘어섰던 알곡들 다 거두어

가면 쓸쓸함이 그리움으로 낙옆이 뒹구는데 단풍을 그리던 해

세월은 잡을 수 없지만 생각하는 대로 길이가 거기에 있더라.

청춘 때는 가을이라 긴 머리 휘날리고 버버리다 길은

끈 가방 어깨에 메고 높은 구두 신고 있는 대로 멋을 부리며

가을 여인의 낭만을 다 마신 줄 알았는데 언제 가고

왔는지 수십 번 가을이 오더니 낭만의 가을 여인은 낙엽으로

가을바람 부는 대로 옷이 두꺼워지며 허무와 허전이

뒤엉겨 뼈속으로 파고드나 하찮던 날들도 그리워지고 후딱

가버린 세월 도시와 시골이 없어지고 현대에 문화따라

젊은 애들은 머리로 살고 우리 세대는 몸으로 살기에

어려운 일은 어른들이 다하고 있으니 전쟁을 모르고 일본의

식민지를 몰라도 마지막 효도하고 첫 번째 버림받는

세대라니 불쌍하고 만만한 우리 들 악을 쓰며 남 따라

뒤처지지 않게 살려 했으나 세월의 무상 함인가?

세월을 함께보낸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지는 가을이란다 2020

 

 

애들아!

눈앞의 이익에 사로잡히면 자기의 본심을 잃는가?
겉으로만 공경으로서 하는 효는 하기 쉽겠지만

그 마음 볼 수 있는 것이 부모인데 못 본척 하면서

잘한 것만 기억하는 것이 부모더라.

서운하지만 질책을 하는 게 아니고 자기 탓으로

돌리며 슬퍼하는 것이 부모 마음

그래서 한 부모는 열 자식을 키우지만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시는 것은 부모를 짐 덩이로 아니

늙어서 자식한테 의지하기 싫어하고 전부 요양원

간다니 그곳이 죽음 준비하는 집이 되었더라.

누구나 부모는 되는 것이고 왕년에 자식이 아닌적이

없었으니  애정으로써 하는 효도가 어려운 것은

부모를 이익으로만 보기때문 그래서 부모라는 이름이

지어지는 순간부터 죄인이 된다고 그 말이 옳다고

느낄 때는 이미 힘없는 부모가 되었으며 효심이 사랑이

아니라 책임으로 공경 하나 본데 이 나이가 되고보니

왜 사람들이 초심을 잃는지 이익 앞에서 변해가자만

주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 부모의 자식 사랑 세상의 흐름

따라 시대가 자식들은 변한다 해도 부모의 사랑만은

높은 곳에서 아래로 물흐르듯 자연적이고 변하지 않더라. 2020

 

 

내가 나에게

너와 나는 한몸이고 한마음 이지만 추억은 생각하는대로

다른곳을 향하기에 이쁘게 보면 네가 대견했고

나쁘게 보면 너는 한심한 것처럼 하나의 너와 내가 아니라

상황따라 몸만 변한 것이 아니고 마음도 따라가고 있었어.

제 작년에 서울에서 대천으로 이사올때는 나의 웃고 울던

반평생이 묻힌곳이기에 정겨웠는데 추억이 서려있어 슬프게 하였어

즐거웠던 날이 많았는데 내 기억은 그날에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현제에도 만족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가봐.

생활이 복잡할 때 해소 시키는 위로의 말은

가난 끝 행복시작이라고 하더니 믿지는 않았어도 기분좋은 말이었지.

달력에는 일기처럼 지나간 날을 혼자서 뒤적거려보니

숫한 사연들이 나의 삶이었어.

해마다 새해를 맞고 미래로 가다보니 희미해져가는 내과거.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면서

지구만 돌고 도는게 아니고 세월도 가고 오고 돌고 있었어.

너에게 하고싶은 말이 무수히 많은줄 알았는데

네가 나기에 한방 때려주고 싶을 뿐이지 미안하기도 해.

거울을 보기싫어 안보는데 병원 에레베터 맞은편 거울속에

아버지가 있어 자세히 보니 바로 나였어 내가 아버지

닮았다고는 하지만 내가 나의 모습에서 아버지를 볼수 있었어.

나에게는 아버지가 원망의 대상자였거든

해맑은 어린시절 한이 서리게 동심을 뺐아 갔기에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 좋은척만 하였지.

사실은 엄마를 배신하고 자식을 책임안지었던 아버지가 미련스럽게 보였어.

젊은시절 가정을 위해서 나간 것이 아니고 어떤 나쁜여자에게

물려가서 가정을 버린 아버지 용서하지 못하였는데 막상 아버지가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는데 병의 이름을 찾지 못하기에 더 안쓰러웠고

대학병원에서 간농이라는 병명을 받았지.

어느순간 나는 아버지의 과거를 용서하였고 나에겐 그냥 아버지였어

그러기에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나봐.

공장을 아버지 집 가까운데 차리고 축성받고 신부님께서 이렇게

산골에 공장을 지으면 장사가 되냐고 걱정스러워 하며 기도하여주셨어.

자식일이라 몸이 어려워도 신이나서 하던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을 하고 엄마 한분 계시기에 가까운

대천으로 모셨는데 네가 쓰러지었는데 그게 나였더라.

처음엔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은 것이 없고 가까운이에게 더 한

상처를 주기도 하였지만 어느 순간인가 아무리 내가 그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이왕이 몸은 망가졌어도 마음만은

속 썩이지말자라는 신조가 나의 목표였는데 나도 모르게 짜증 냈다고 했어.
한해가 가는대로 숲은 커나가고 사람들은 안보이기도 하면서

너는 늙었는데 그 늙은이가 볼품없는 나였으며 초라한 모습에

속상함이 터져나와 우울하였기도 하였지.

쓰러지고 보니 손잡아주는 이들이 많기게 세상은 살만 했지만.

나를 슬프게 한 것이 부정한 생각이었기에 감사를 알게 해준

나의 신이 고마웠으며 네가 나고 내가 너라는 거 그러기에 건강해도

하나고 볼품없어도 우리는 하나니까 친하게 지내고

아푸지 말자고 너한테 정말 미안해 내가 내 관리를 못한 것이. 2020

 

 

가을에게

가을아! 깊은 잠을 자는지 이제야 깨는 너를 보니

편지가 쓰고 싶어진다.

어쩌다 보니 푸르렀던 산과 들이 보이는 곳마다

색이 바래며 익어가고 나뭇잎이 얇아지며

옷 갈아입으려 하는 가을에서 인생도 보인다.

몇십 번을 네가 오고 가더니 옛날을 지고 왔나 추억이

뒤 살아나 엽서가 유행할 때 코스모스 허수아비 단풍

가을을 상징하는 그림엽서가 설레게 하더니 갈색

버버리 걸치던 낭만의 여인들 그리움이 가슴마다

그 노래의 주인공들이 되어 겨울로 가는 할머니들

예쁜 가을아 땀의 결실 오곡이 풍성하고

가꾸지 않았어도 자연계는 변동하여 산에는 단풍만

물 드는 것이 아니고 갖가지 열매들이

보기만 해도 배부르고 아름다워. 디지털 산업으로

도시와 시골이 어우러져 다 도시풍이 되었지만

정겨운 시골 풍경들에는 황금빛 나락 들

사이사이 억새와 이름 모를 꽃들이 발악하며

찬 이슬 맞고 더 예쁜 모습으로 내게 다가와

너는 그리움을 주고 떠나는 얄미운 가을이야.

그래 내가 없어도 해마다 찾아와 아름다움을 보이겠지.

네가 늦게까지 안 일어나니 나도 방금 일어났어.

지금은 해가 내 창가에 어른거린다.

아 가을아! 햇빛아! 가지 말고 그대로 멈추어라. 2020

 

가을 아침

가을 속에 너와 나는 추억도 함께 가서

여기까지 오는 우리는 절친이야.

여전히 가을이면 설레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것은 추억은 늙지 않기 때문인가?

알록달록 물들기에 가을 시작인가 했는데

가을의 한가운데로 달려왔나 하늘이 높아지고

기온이 긴 팔 입으라 하니 아름다운

10월의 중반 위에서 아래로 산 말랭이마다

여기저기 단풍 옷이 수줍은 19살 처녀 같아

누구에게나 보여주려고 저렇게 찬 이슬에

목욕하고 오들오들 떨면서 갈아입으려 하는 네 모양

피고 지는 잎새 사람들도 마지막 가는 길도

화장을 시키지만 시집갈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

예쁘게 신부 화장을 하니까 삶과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일상 결혼하면 가정이 생기고

마지막에는 혼자 떠나듯이 온 세상이 가을만 같아라.

구호가 너를 닮으라는 것이었어

마지막 모습은 아름답게 사람을 부르듯이 이별의

순간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네 모습이 인생의 가을

가을아! 빨리 가지 말고 천천히 기어서 가거라

초가을도 늦가을도 나에게는 그냥 단풍 이는가을.

오늘은 유난히 더 창가에 가을 햇빛 어른거린다..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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