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문화/사회돌아가는 이야기

사회 돌아가는 이야기 1

우리들 이야기 2021. 3. 27. 11:35

 

 

법의 지팡이

법치국가에서 자리 따라 눈치 보는 이곳 억울한

일이 없게 헌법이 있는 거라면 차라리 가까운 사람들을

믿겠다는 이들이 늘어가니 얼마나 사법이 죽어있나요?

과거에 독설이나 검으로 휘두르던 시대가 익숙해져서

툭하면 표현의 자유라 하니 자유가 울고 갈 것 같아요.

자유는 책임이기에 자유의지가 주어졌는데 자유가

법조인들의 방패인가요?

정의로운 자세로 진실을 찾아야 하는 곳 저마다의 생각은

다르다지만 진실은 하나기에 덮어진 것은 눈비가 쓸고

가면 사실만 남고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정의가

꽃펴야 하는 법치국가 거룩한 성경이라 해도 정확한 것은

그곳에서도 찾을 수 없고 비유기에 삶이 불확실에서 혹시나

그대로 믿지만 법이라고 하는 그곳은 해결하지 못하는

억울함을 풀어주는 곳이 아니던가요?

법조인 말 한마디로 삶이 뒤바뀐다면 책임 질 건가요?

신분 차별하면서 오로지 자기들의 신을

신봉하는 율법을 예수는 반대하면서 십자가를

지었듯이 정의를 위해서 생명을 내려놓는 것인데

율법 시대에 인정도 못 받는 목수의 아들 예수

하찮은 사람이었지만 오늘날에 그리스도인 모두가

거룩한 분으로 만들어 드리지 않았나요?

며칠 있으면 해마다 아기로 오시는 성탄 33세의

청년이 해맑은 아기로 오시며 닮으라 하시는데

여기저기 이리떼가 많아서 죄송하답니다.

아픈 역사를 디디고 백의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대답하기 곤란하다 이익만을 위해 침묵하니

그래도 법조인을 믿어야 하나요?

애매하게 딜레마의 빠진 상황의 그림 왜 저렇게 벌벌

떨며 비굴한 처사로 말도 못 하는지?

법치국가에서 사법의 정의란 무엇인가?

법원 앞에 저울은 일자로 공평한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고망식이 이익 따라 기우는 저울

생각이 양면으로 갈라져 진영싸움이 나이대로 지역대로

싸우지만 합리적인 논리로 정의가 승리하였으면  해요.

성경에서는 기도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아무도

안 보이는 골방에서 진심을 말하라 한것은 여론몰이로

알리지 말라는 것이듯이 예수님은 자기가 고쳐주고

해결하고도 너의 믿음이 그를 살리었다 하시었고

한 번도 나를 내세우지 않으셨지만 세상의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 시키려고 왔다 하셨으니

모세의 지팡이는 신약에서 성령으로 정의사도

우리의 예수를 닮는 법조인이 많았으면 지금 그리스도

구세주는 겨울바람 헤치고 모두에게 오시려 썰매타고 오시겠죠 .

이리 떼 끼리 할퀴고 싸우는 무서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 닮아

따뜻한 온정이 넘치며 수고하는 백의 천사들 응원하며

법치국가 책임지는 법의 지팡이가  많았으면 합니다. 

 

 

진급

사람을 얻는 것이 제일 큰 소득

한 해가 지면 진급이 울고 웃게 하는 새해

한해가는 자리 새해가 오르고 함께 지났더라.

입사 한 대로 경쟁하며 중앙에 가지가

커 보이더니 훗날에 다 잘라 없어지고 가에

가지만 남듯이 세상 속에 사는 법은 나무에서

사람을 보았고 일을 많이 하는 이는 흠이

있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은 흑 땅 물이

튀기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책임을

안 지으려 하니 직무유기가 자기를

돕는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흉이 있고

설거지하며 그릇도 깨 뜨는 이가 재미있더라.

살아있는 것들은 움직이니 아무 대책

없는 것 같아도 경험을 얻었고 늦게 피는 꽃이

오래 남는다고 진급을 먼저 하려고 안 하는 것은

중앙에는 적이 있기에 가에 가지로

남아야 오래 피어있는 꽃이 되고 사람을 사는 것이었다.

 

 

영상

법대로 하라는 이 말은 모든 삶이 맨 꼭대기서 위치대로

흔들어대니 죄를 만드는 곳도 되고 죄의식이 자리 따라

달라지는 현실이 무섭기만 합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목적을 버리기도 해야 하건만

이리떼의 목적을 위해서 배신하며 잡아 헤쳐서 성과를

내려고 한다면 사법체제는 무너지고 말겠지요.

법을 아는 이들이 법을 빠져나가는 법을 아니 억울하게

당하는 이들이 울부짖음은 가진 것 없고 모르기에 당하는

한탄이랍니다.

누구에게나 사는 것에 편리하게 하려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헌법이고 제도지만 바뀌는 세상에서 맞지 않으니

개혁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보이지 않아도 그 제도

속에서 한발 작 앞으로 나가나 봅니다.

힘없는 이들의 법망은 그물이 촘촘하여 빠지지 못하는데

힘센 괴물들은 그물을 찢어 버리고 온 바다를 휘 접고

다니기에 잡기가 힘들어요.

굶는 사람이 없어도 차별을 하니 비교하고 대우받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지만 자연의 법칙이랄까

햇빛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머리 위에서 놀고 생활에 따라

맘에 맞는 데로 표현하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지켜야 하는 법제도 어디까지가 법이고 아닌지

목소리 큰 사람보다는 증거가 우선이고 정확도는 영상이었습니다.

 

 

비참한 현실

선진국이라는데 법은 거꾸로 가는 한국 사회의 현실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을 만들어놓고

힘없는 사람들이 지키는 것은 헌법 그대로가 편하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 헌법을 힘 있는 이들의 방패 메기였더라.

잃어버렸나? 안 지키었나? 사법은 로스쿨로 바뀌었어도

헌법의 전문인이며 엘리트라고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철면피

사법을 바꾼다고 선진국에서 도입해 흉내만 냈지

사실은 더 힘들게 알아듣지 못하게 공부로 평가받으며

언론과 한패 되어 주무르니 진영 싸움을 하며 분열을 조작하였더라.

헌법 정신의 수호자여야 할 판검사 변호사들이

특권계급이 되어 검으로 휘두르니 사법은 무너지고 판결하는

재판이 눈치를 보고 억울한 이가 늘어가는 시민

판검사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한다.

믿음과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세상 속의 교회가

어쩌다 세상 속의 교회가 되어 주님을 장사하는지 슬픈 일

정의를 위해서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용기를 내어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데 검 앞에 사법이 무너지는 비참한 현실

 

용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데

우리의 삶도 지킬 것과 버릴 것을 생각하게 하는

코로나 19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심란한데

떠들어대는 의원들이 더 용서하기 힘듭니다.

3단계로 묶어버리면 굶어 죽는다고 아우성치니

그래도 나랏일 한다는 이들이 월급을

가져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고 누구를 위해서

그 자리 있는지 일하라고 뽑아주니까 자기들 이익만을

생각하니 용서하기 힘듭니다.

대책은 안 내놓고 잘잘못을 따지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는지 한쪽에서는 배고프고 집이 없어 얼어

죽게 생겼는데 국민이 낸 세금 가지고

배 터지게 부르니까 자기들 생각을 토해내나 봅니다.

세상이 심란한데 하나로 모이지는 못해도

정의 사도 백의 천사가 많아져 건강부터 챙겨야 하는데

무서운 코로나 19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저기 큰집에서 들썩거리니 용서하지 못합니다. 저들을

 

청년의 허리

청년으로 깨어야 나라가 산다지요.

우리에겐 허리가 있어 중심을 잡고 어둠에서

빛으로 밝아지고 있습니다.

역사 속의 나라를 지킨 사람들도 다 청년들

나라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열정과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런 세상에 길잡이가 되어주었습니다.

청년으로 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면 나라도 밝겠지만 세상에서 살고 싶은

나라가 되어갈 때 청년에게 희망이 보이겠지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명언을

남기신 선생님들 지금의 청년들은 몇 살 까지죠?

생각이 청년이면 나이는 관계없겠지요?

나이가 들었지만 생각은 여전히 청년정신

허리가 건강해야 중심을 잡듯이

깨어있는 청년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대한 청년들이 시들지

않는 꽃으로 철 따라 피었으면 합니다.

 

 

빅딜

제도 시스템 계단이 절실해도 그 보다 우선적인 것이

인권을 보호하는 법제도 후라이펜도 오래가면 바꾸듯이

씨앗으로 뿌린 풀들도 열매를 몇 배로 거두고

매끈한 나무도 비바람 맞으며 무성한 잎새들을 맺듯이

70년 된 헌법을 세상의 변화 속에 뒤처지게 할 수 없지요.

기회는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 타이밍이 있기에

그때를 잘 사용할 때가 지금인 것 같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두드리면서 다져왔건만 두 계단을

올라가다 뒤로 떨어지는 기득권들 약자를 밟고 올라가며

그들은 다른 세계서 산다고 차이를 두니 제도를 바꾸려고 하죠.

모든 것이 시스템을 작동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머리 쓰고

손으로 버튼을 누르니 생각이 정직할 때 제도 계단이 빛을 볼 것 같아요.

선생님들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고 배우야 젊게 살아가는데

월급은 잔뜩 받고 싸움만 하는 정치인들

정의를 꼼짝 못 하게 떠들며 브라운관을 덮는 그들이 누리는 법

아까워서 못 내놓고 나만 아는 주로 옛날 사람들의 근성

나도 속해있지만 내 아이들에게서 신문화를 보고 나누면서

채워가는 법도 배워 나눌 게 없으면 마음이라도 나누렵니다.

디지털 온라인 시대를 가면서 바뀌어야 할 제도 시스템 계단.

 

지구를 지키자

설명회에서 공감했기에 몇 자 적으려 했는데 쓰다 보니 조리 없어

길지만 우리의 세상이니 끝까지 읽어주세요.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고 집은 배우 는 곳이라고 하지만

둘 다 배움인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이 덜 자랐기에 궁금한 것을 선생님께

물어보는 순진도 묻어있죠.

선생님이 말씀은 법이었으니 왜라는 질문이 많아서 나중에는

대답을 못 했다고 웃으며 말했어요

집에서도 궁금한 게 많았던 애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아이들 마음 같아야 들어간다고 하시고

세상에서도 아이들 마음처럼 속을 보이라고 하셨지요.

철이 없는 아이들 속이 보이기에 더 예쁘고

아이 둘을 키우면 반 의사가 되기도 하지만 정신의

분석조차 하는 것이 엄마 모른다면 좋은 엄마가 아니지요.

아이들 보는 모델은 집에서는 엄마 아빠

부부가 사이좋으면 사랑부터 배우고 학교에서는 가르침이

인생 진로 결정해주니 아이들은 무엇이 꿈이야 물으면

선생님이라 하고 머 장관이라고 하고 대통령이라고도

하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애들이 선택하지만

집에서는 보고 배우는 아이들 부모의 눈보다 새끼 눈이

더 무섭다고 하는 엄마 아빠는 관심이 있는 현명한 부모였어요.

생각이 덜 자라 어른들 보기에는 시대에 뒤떨어져

진다고 하는 애들이 자기의 중심에는 공동체가 있다고

알아가는데 어른들이 못살고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아이들에게서 찾으려 하니 아이들 꿈이 무너지고 그렇게 만들고 있어요.

언제까지 천민과 양반을 구분할는지 돈과 지위 자리가

평가하니 이상한 제도며 부끄러운 현실의 나라인가 봅니다.

어젯밤 교육 설명회서 북유럽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 애들이

교육법은 어려서부터 혼자가 아닌 전체를 배우며

꿈이 무어냐고 물으니 우리나라처럼 공무원이 아니고

그 예들은 꿈이 없다 했다 한참 있다가 있어요.

하면서 지구요 또 한 가지는 평화요 한다니까

아이들의 꿈은 어른들이 만든 제도였어요.

공무원 꿈이 많은 나라는 저밖에 몰라 노후의 안전을 찾으니

없어질 나라에 순위가 앞당겨진대요.

그런 위기에 놓여있으니 제도를 바꾸어야 하는데

선거가 많이 있어 표 때문에 당장만 생각하고

아이들의 미래는 없게 만드네요.

순수한 아이들 하늘빛처럼 푸른 바다처럼 향기 나는 아이들 맑은 눈빛

어른들이 지켜주어 철 따라 피워 내는 꽃이 되게 만들어요.

세상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지구가 병들지 않게 하는 것이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유언에 전 세계가 하나이지만

남북만 갈라져 있다고 가슴 아파하며 종교인들은 벽을 허물고

평화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셨다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그는 오로지 평화를 걱정하신 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무리

첨단의 기술이라 해도 하늘 문은 못 열고 너와 나 다르듯이

나라도 다르다 지만 진실과 이치 순리는 하나였습니다.

지구가 깨끗해야 하늘이 맑듯이 생명이 있는 꽃부터 선명하고

아름다우니 전염병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지키고 가꾸게 하소서.

 

법이란 싫다

법대로 살아라! 누가 그렇게 가르쳤나?

언제 법이 약자의 편에서 평가를 해준 적 있나?

사기꾼과 눈싸움을 하는 곳

꽃집은 향기가 나지만 오물 뒤집어쓰고

더러운 걸레에 병균들이 들썩거리는 곳

성매매 아니면 사기죄를 다루며

듣고 싶은 말이 나오게 협박하는 곳.

상대가 잘못했다고 따지면서 억지 부리며

눈싸움하는 더러운 곳이 그곳 아닌가?

눈빛을 보면 마음이 보인다는데

그곳에 모인 이는 도긴개긴 거기서 거기 아닌가?

왜? 라는 물음표가 많은 것이 헌법.

그런데 약자들이 들어가는 법의 문턱은 왜 그리 높은지?

 

 

법조인들 듣고 있나요.

다 그런이들이 아니기에 세상은 돌아가고 

민주 법공화국으로 한단계 앞으로 가려하는데

쌓여진 덤풀들이 크기에 힘든 작업이네요.

법은 물이 가는 것처럼 순리적이어야 하는데

도랑물이 냇가로 냇물이 강으로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되듯이 바다의 물결이 어울려야 멎지지요.

법이란 더러운 것을 싫어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이

만지작거리는 돈 앞에서 자유로운 법조인이 있을까요?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나오지 않았나요?

아니면 당당하게 아니라고 해보세요.

시간이 쌓이면 자기의 색깔이 사라지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오래전 법치국가를 만들어놓고

서민만 높은 문턱이었어요.

따져보렵니다.

우리의 삶을 왜 법률가들이 심판하는지요?

죄를 판결할 때 의혹이 생기어 확실하지 않을 땐

피의자 편에 서라고 한 것은 억울하지 않게 하려

헌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블랙과 화이트가 섞여 회색인데 자기의 이익 따라

판결한다면 법치국가 사법은 무너지고 말겠죠.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법조인

자기들 감정대로 칼날을 휘두른다면 이게 무슨 사법인가요?

일반 주방에 칼날은 한 면만 있지만

검찰의 칼은 양면이라 휘두르면 억울하게 다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으니 심사숙고하기 바랍니다.

감정의 동물이라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약자들이

기대는 곳인데 냉정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인 가봐요.

고등학교 한 교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법조인은 박박 공부만 해서 사법에 학격 해 자기들이

세상을 좌지우지 흔드는 줄 아니 한참을 잘못 배웠다 하였습니다.

감정도 무디고 세상을 잘 몰라 저희가 최고인 줄 아니

인간 됨됨이는 빵점이라 아이들 꿈이 법조인이라면 바꾸라 한답니다.

인간미가 있을 때 인기가 있고 사람들을 부르는데

디지털시대 4차산업 앞으로 가는데 70년 전 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지 그곳은 행세하는 곳이 아니고

피와 눈물이 있는 곳이고 약자들의 집인데

입맛대로 죄를 만들어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도신문으로 죄를 만들고 내 맘대로 형을 때리나 곳이었습니다.

 

누가 히어로

깃털은 고개를 숙이고 중앙에서 행세하는 이들이 머리를 들고

기득권들의 자리는 행세하는 곳 말이 안 되어도 덮어주는 곳인가?

누구나 크고 작은 자리는 있고 아름다운 이름이 있는 것은

주어진 위치의 본분이고 책임인데 자기들만 최고라고 자처하는 그곳

인정이 메마르고 기생충이 득실득실 어딘가에 전염을 시키려는지?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유도신문으로 짐작해서 죄를 만드는 곳

어떤 사연이 있는지 끝까지 경청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할 때까지 질문하고 억지를 쓰며 여론몰이하니

정상적인 이들은 그곳을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은 두려운 곳이다.

 

법이 빛이 되어

잘 싸워 이기면 죄가 없어지는 곳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는 곳이 아니라

입맛대로 숨을 곳을 알려주고

어떤 이는 욱박 지르며 들춰내어 털고 있으니

정당한 법이 아니라 무소 불이 되어

양날의 칼을 가지고 휘두르니

억울할 때 찾아갈 곳은 어디일까?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주는 곳이 어딜까?

한 사람의 말로 오판해서 인생을 송 두리체

망가트리며 죄의식도 안 가지니

소용없는 법은 있으나 마나 하겠지?

어둠이 가려진 별들도 구름이 지나가면 반짝이듯

어둠 속에서 헤매는 법도 별빛 같은 날이 오겠지?

암울한 시대 법은 약자만 지키는 곳

힘없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곳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것처럼

말하는 곳을 약자들은 찾아가야 하나?

무너져버린 법 앞에서 소리치는데 못 들었는지

안 들은 척하는 건지 다 그런 것은 아니기에

누군가는 법의 별빛이 되는 이가 있겠지?

알쏭달쏭 물음표가 희망이 되어버린 약자들

혹을 떼러 갔다가 하나를 더 달고 나오는 곳

수술하러 갔다가 엉뚱한 곳에 칼 대는 곳

정의로운 큰 나무는 그늘을 멀리 만들어주는데

그곳은 험 한곳이었다.

힘없는 사람들은 어두운 밤하늘 되지만 반짝이는

별들의 집이기에 환하게 또 다른 세상을 비추어주더라.

이게 바로 법이구나. 이렇게 환한 곳이 있구나.

 

 

사람이 법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데

사람을 위한 법을 누가 만들었나요?

지키지 않는 법 힘없는 이들만 지키는 법이니

법의 문턱이 언제나 낮아지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곳이 될까요?

자기 돈 가지고 지가 노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언제 법이 놀음이나 똑같지 다른 게 있었던가요?

돈 놓고 돈 버는 도박장 어디는 불법이고 어디는 합법인가요?

민주를 위해 데모하던 이들이 도망간 것은 잡히면 처벌당하니

일단 피하고 보듯이 그게 죄의식을 느끼는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법이란 이름을 붙이어 무조건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이 나올 때까지 억압하며 닦달하는 곳

법치 국가라 하면서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다지만

그런 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만 알지 가고 싶지 않은 곳 첫 번째

도박 매춘 마약 돈으로 매수하니 어디까지를 정의라고 하나요?

화날 때 해결 하면 정이라고 하지만 그 정의도 해석하기 따라

달라지니 어떤 말이든 몇 % 보고 결정하게 되지요.

공격 위치 이론 법이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한 공학적 제도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만들어진 법

그대로 따르라 하지만 법을 만든 이들은 피해 가는 법도 배웠어요.

사람들의 이기심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사회 질서가

무너지니까 법치 국가라 하며 정의를 지킨다고 하는데

도덕 감정을 정의라 하지만

지키는 이가 험난한 세상에 살 수 있을까요?

의문이 들면 정의가 불의로 바뀌어 가며 부당과 정당의

사이도 자기들 생각으로 만들며 불법이 합법은 아니니

현실의 정의는 자리가 힘쓰는데 먼 훗날에는 자리 위에

가치가 있다는 거 그래서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가치를 본다죠

나쁜 짓을 하면 사람도 아니라 하니까

법도 사람을 위해서 있으니 사람이 법이었습니다.

 

법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의혹과 질문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숙제로 남아 푸나?.

세상은 선과 악이 함께 사니 상황 따라 어떤 때는

선과 악이 뒤집히니 그래서 사람들은 본심을 이야기하고

됨됨이를 따지며 옛날에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왜 그리

변해버렸지 하는 것은 세상의 흐름 따라 마음이 함께 가니

처음 맘 그대로 살 수 없는 사회에 우리가 서 있더라.

법이란 생각하기 따라 법이니까

언제 까지고 논쟁은 있겠지만 사회에 주어진 법은

한 사람의 판결로 남의 인생을 죽이고 살리니

그래서 재판하는 판사가 누군지 알려 하나 보다.

악법이 법이라는 것은 법조인들이 편리하게 써먹는 말이지

판사의 말 한마디로 남의 인생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데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는 것을 얼마나 사람들은 알까?

일상이 다 헌법이고 고마운 법대로 사는 세상

법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고 잘 피어난 법의 꽃은

향기 나고 아름다운데 억울함만 호소하는 것인 줄 아나보다.

돈과 사기가 판치는 더러운 곳을 수사하는 곳이 아닌

법이 없어도 서로가 토론하는 양심이 법 위에 있었으면

 

 

흘러가더라.

쓰레기와 정당하지 않은 돈은 모을수록 더러운 것이라고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비 눈에 씻기어 훗날에 가면

더러운 오물로 버러지가 들썩거리니까 다양하게 살기가 좋은 지금

자랑할 것 많은 나라에서 합당하지 않은 부자는 부끄럽게 보자.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

보이는 화려함에 눈은 가도 마음은 뺏기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무쇠솥이 검다고 밥까지 검은 것은 아니고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희망을 말하고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사실만 남으니 기다리는 지혜도 생기더라.

 

 

억지가 쓰레기로

쓰레기장은 더러운 곳이고 쓰레기통이 있더라.

집에서도 안 보이는 곳에 쓰레기통을 놓아두게 되고

날마다 청소하고 오물은 쓰레기통에 담듯이

날마다 치우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어 득실득실

투서와 고소는 손바닥과 등 큰 차이 안 나지만

대접은 천양 차이고 먼저 고소한 사람을 위한 수사를 하게 되더라.

억울하지 않게 헌법이 있는 거라며 의혹이 갈 때는

피의자 편에 있으라 하였듯이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말고 먼저 고소하니 먼저 승기를 먼저 잡으니까?

법에 대해서 모르니 법대로 사는 이는 힘없는 약자들이고

법의 문턱이 낮은 기득권들 사기를 치고도

이쪽저쪽 어느 방향이 더 이로운가? 눈치 보면서 거짓말하는 쓰레기장

투서는 풍문이니까 투서만으로 수사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짓인가?

풍문이라도 고소인이 항상 위 의가 있으니 왜 고소를 당하는지 모르더라

밴댕이 꼰대 속 좁은 어른들과 모 조리가 많은데는

무서운 기생충이 섞어 사는 곳 멀쩡한 단지에 깨진 똥 단지

오물이 되어 조금씩 표 안 나게 흐르더니 요즘은 콸콸 흐르고

정의와 공평은 생각하는 대로 다른 건지 틀린 건지 아무튼

억지가 법이 되어 보는 대로 듣는 대로 거기에 있더라.

 

 

느낌

똑같은 꽃을 다르게 보는 것은 눈으로는 꽃 이름을 알지만

생각이 다르기에 꽃의 향기도 다르듯이 부하를 아끼어

존경받는 장수가 있고 장수는 개떡이라도 신하가 말을

잘 들어 장수의 위치가 높아지듯이 그래서 나의 평가도 있지만

밑에 사람을 잘 두어야 하나 보다.

나 혼자의 행동이 보는 이마다 다르니까 긍정과 부정은 싸우나?.

왜 서로가 자기가 긍정이고 옳다 하니 그래서 % 수가 결정하나?

여러 저마다의 생각은 달라도 느낌이 판단하더라.

 

의지의 투혼

사람과 사람을 자리로 보면서 신묘한 추측으로

죄를 만들어 언론 플레이 잘해야 거물 행세하는 그들이

정의 사도가 되는 걸 보면 슬픈 법의 현실.

말도 안 되는 양심을 자리로 행세하며 두려운 집이었다.

지저분하게 챙기면 다음 사람들이 정리하느라

힘들겠지만 그러면서 닮아가고 배우더라.

아름답고 깨끗한 곳에서 심신을 달래려 등산하고

운동한다지만 우연히 익숙하게 튀어나오는 말속에는

이렇게 물속이 보이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지?

부끄러운 현실 성서 율법에서 기득권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도덕이 갖추어져야 할 이곳 의지와 투혼이 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런다면 사법체제는 무너진다.

 

정의

슬그머니 행동하는 법치국가 

검은 옷입고 휘접고 다니며 통하지 않는 무소불 

이익을 위해  법대로 하라 한다면

목적을 위해 배신을 하는이가 있고

사람을 위해 목적을 버리듯이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수 는 없어도 

판단은 할수 있듯이 속이고 속는세상

아무도 모를것 같아도 낮에는 새가 듣고

밤에는 쥐가 듣는다니 다 드러나고 

얘 밴 암소 죽을 쑤었는데 옆집 염소가

훔쳐먹었으니  이미 지난 일이지만

속은 부글부글 하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권으로 대변하는 권력을 누가

손에 쥘 것인가 피 터기는 싸움하지만

결국은 예측한대로 정의가 이기더라.

이미 다 지난일인데도 앞으로 연속되면

안되니까 깨끗한 법을 만들려는데

왜 그리 힘이드는지 정의 사도는

어디에서라도 나오겠지만 특히

법치국가인 사법 검찰이 혁신이 시급한데

얼키설키 하게 오랫동안 쌓 여진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정의는

이성이나 본능의 산물이 아니라 지킬 때

공정이고 평등할 때 정의가 향기 나겠지요.

 

변호사

말 잘하면 변호인 하라고 하던 때는

독재가 판치던 시대이지 않았나?

두서없이 말이 안 되어도 변호인이라는

간판이 지어주면 다 옳은 것인가?

로스쿨로 학격 한 여성 변호인 시청

공무원이 되었지만 그냥 사람이고 여자지

말을 더 잘하는 것은 아니더라.

정말 말 잘하는 것이 한자도 더 보태지도

빼지도 말고 그대로 하는 것

쌓여 진 거짓말은 눈비가 씻어내면 사실만 남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변호인도 눈물이 있고 웃음이 있는

사람이라 억울함을 변호해주기도 하지만

죄를 지은이를 변호하려면 거짓말부터 해야겠지.

두 변호인이 잡당 하여 돈을 더 준

사람이 이기게 해서 재판이 끝나면 나눠

가지다니 변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 유죄 사자나

호랑이하고 싸우는 격 억지와 유도신문이

말 잘못 하면 신세가 종 치니 모르면

침묵이 금이더라.

차라리 변호사가 알려주는 대로 생각을 정리할까?

선과 악 두 가지 마음이 싸우고 있는데

악성 바이러스가 덕지덕지 묻었어도 자기가

사마리아인이라 하니 그걸 어떻게 판정 짓나?

천사보다도 악마가 세상을 편히 사는 것이고

착한 이보다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 사람들이

모이니 살기 위해 양심은 바닥에 떨어지고

검은 속을 알 수 가 없으니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의 남발 하여 믿음이 안 가고

말 만 번지르르하다 뒷담을 하더니 결국은

한패가 되어 꼬시지 않아도 행동에서 반했나?

세상은 잘 몰라도 변호인은 법을 아니?

 

법조인들 들리나요.

법률시장이 마당이 되어서 떠들어대니

뭐가 있는지 없는지 만들어 파는지 모르겠어요.

되는 법은 웃음이 있겠지만 안 되는 법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것 같아요.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 하고 맞은 이는

발 뻗고 자고 팬 자는 오그리고

잔다더니 현실을 예언한 옛말인가봐요?

두려운 곳 만들지 말고 사람 냄새나는 곳을 만드십시오.

조용해야 할 법이 시끄러운 것은

썩은 냄새가 나서 그런가 봅니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모르듯이

법조인이라고 법을 다 아는 것이 아니겠지요.

세상을 살다 보면 잘못 없이 살기가

힘들기에 그래서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나 봅니다.

각자의 상황이나 형편이 다른데

어떻게 삶을 평가할 수 있으리오.

다 책임이지 행세하는 자리가 아니랍니다.

향기 잃은 시든 꽃이라면 뽑아내어 새로운 씨를

뿌리어 가꾸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본분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고 사랑받고 살기에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는 거라지요.

이익 앞에 허튼짓하지 말고 법치국가 꽃이

향기 나게 하시고 삶은 두 갈래 마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헤매 이지만

그런 때는 향기 나는 쪽으로 가십시오.

양날의 칼을 쥐고 휘두르다 보면 큰일 난답니다.

생명이 사는 곳은 영원한 것 없으니

잘못은 반성해야 하고 자리는 두려움 없게 하십시오.

 

 

인디언 법

피고와 피고인 피의자와 피해자 법률가들이

제일 많이 써먹는 말

판검사 경찰들은 많은데 법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이들이 왜 그리 많은가요?

여전히 돈 안 쓰면 죄가 되고 돈을 쓰면 죄가 지워지니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 유죄 부끄러운 이 법이 언제나 바뀔까요?

법률가들은 기득권이 가져다준 불로소득을

자기들의 능력에 따른 댓 가라고 착각하니

세금이 울고 있지 않을까요?

어떤 과일이든 알맹이를 보호해주는 껍질이 있듯이

사람도 제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부모가 있지 않은가요?

자식의 작은 허물도 감싸주는 부모일 때

마음을 놓듯이 우리의 법도 사실을 위한 안전장치가 되어

보호막이 되어준다면 좋으련만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양파가 마지막 한 잎까지 다 벗기면 속살이 드러나니

법률가들 심보가 보여요.

시대를 앞서가는 현대인에게 법은 구시대에 멈추어

억압하고 족치면서 듣고 싶은 말 나올 때까지

옥죄어놓은 매듭을 풀어주지 않는다니. 차라리 시간이

가서 판 검사가 안 보이면 악법에서 인디언 법으로 바뀌겠지요.

 

 

민심

수녀 된 시누이 면회 갔던 여름

1987년 명동성당 마당에 여기저기 나무에 걸쳐있는

붉은 글씨 대자보는 군부독재 타도

떨어진 글씨들이 흩어져 짓밟고 다니고 그때의

학생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소리치며 싸워온 민주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워카발로 채이며 최루탄이 한 생명을

잃게한 6월의 무덥던 대학마당

먼지가 날리던 그때의 여름 피맺힌 학생의 울부짖음

싸늘한 죽음으로 민주가 꽃피는 승리의 6월 항쟁이

갈라진 민주가 다시 독재에 넘겨주었으니

대통령 병이었나?

그 새내기 어린 대학생은 안 보여도

민주로 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꽃다운 그때에 남은 학생들은 가정을 가지고

또 지키려 기득권과 정쟁 그 뒤로 무엇이 바뀌었나요?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줄 착각하니 돈 앞에 슬적 무뎌지고

권력을 만들며 책임지는 자리가

행세하는 자리로 다시 옛날이 그리운가 봅니다. 

백두산 물은 맑다 못해 하늘에서 금방 선녀가

내려올 것 같은데 덩치 큰 호랑이 한 마리가 휘 접고

다니면서 맑은 물을 흐려지게 하고.

우리의 우방국인 미국을 말하면서 법은 왜

따르지 않는지요?

그곳은 판사가 검사를 견제하고 배심원이

판사를 견제하기 위해 선서를 한다는데.

삶이 걸려있는 법은 본받지 아니하고

그냥 잘사는 우방국이라 자랑하니 한심합니다.

정약용이 지금 다시 목민심서를  쓴다면

목민심서가 아닌 사법개혁을 쓰지 않을까요.

사법개혁은 1987년부터 하려 했지만

기득권들의 반대하니 왜 그런지 이번 기회에

하지 못하면 영영 못 할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하늘의 뜻이고 민심이니

한 대학생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세요.

밀알 하나가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사법을 개혁하게 하소서

 

 

두려운 자유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듯이 자유는 책임을 묻는 자유 테두리가

있어 그 안에서만 누리게 되었는데 요즘 자유가 무언지도

모르고 남발하여 고귀한 자유를 더러운 바닥에 떨어뜨렸더라.

내 맘에 안 들면 하느님 탓 히틀러는 왜 만들어 사람을

많이 죽였느냐고 따지니까 하느님의 말씀 나는 그를 사람으로 만들었지

그렇게 한 것은 히틀러의 자유 의지

자유는 좋지만 두려운 자유도 된다는 것을 함부로

자유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듯이

자유는 분명히 테두리가 있으니 그 안에서 누리기를 바랍니다.

배신이나 나쁜 짓 하고 내 자유야 하면

그 자유는 테두리 밖을 나온 것이니 방종이었습니다.

성직자 자유를 뺏은 것이 아니라 테두리 안에서

성직자 본분을 지키는 성직자의 자유이듯이

자유를 편리한데로 이용하면 자유가 슬퍼할 거에요.

두려운 자유가 아닌 책임의 자유는 바로 지금 헌법의 자유

 

교육법

우리나라와 다른 평생 교육의 북유럽

노후 보장이 잘 되어 있는 북유럽

세금을 많이 내어도 불평을 안 하는 것은

노후대책이라 적금으로 생각하니

그곳은 이미 복지가 고갈된 지가

오래되어서 세금이 복지제도에

모자라면 더 걷고 남으면 덜 걷으면서

조정한다는데 우리나라는 고갈되었다 하면

없어지는 줄 알고 난리 치니

복지제도는 참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정책은 선진국을 따르기 위해 조금씩

변해가니 나중에는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미래를 예언하고 국민연금으로

그래야 공평하지 지금 연금은 가지 수가

너무 많아 그래서 아이들이 노후의

안전만을 찾게 하나 보다.

그래서 연구인이 꿈인 애들은 나라의 미래가 있지만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공무원이 꿈인 나라는

제일 빨리 없어진다니 얼마나 무서운가?

북유럽의 부모들도 자녀는 특별한 존재기에

그럼 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으로 키우려 애쓰는 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잘나가는 것보다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옛날의 어른을 알아보는 때와 비슷하다.

뿌리가 있어 아이들 마음은 그대로 가는데

못 배우고 가난이 한이 남긴 부모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그러니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정직한 아이들이 살아갈 수가 없다.

제도를 바꾸는 것이 시급한데 지금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무얼 하나 한심하다.

돈이나 자리가 판치는 세상이라도 북유럽 교육은

됨됨이가 더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사람들 차별이 없으니

비교할 줄 모르는 제도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 삶의 시간이 길게 만들었더라.

그들의 자유는 책임지는 자리지 행세하는 자리가

아니고 자유도 테두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선을 안 넘어가고 남발하는 우리의 자유는 부끄럽다.

그들의 행복은 특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살아가려면 함께 어우러질 때.

 

제도

헌법이 꽃피어 향기가 나야 하거늘 피다 말고 잎이

말라 떨어지는 것처럼 꽃에 향기가 없으면

버리듯 법치국가 조그만 일도 법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도 이룰 수 없는데 지금도 법을 만든 사람들은

법을 피해가며 사니 힘없는 이들만 법이 삶을 막고 있더라.

그러기에 자리를 탐하고 법대로 하자며 할지라도

특정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자의적 실행되는 경우는

권력의 불법발동에 지나지 않으며 이익대로 하니

재판은 돈과 싸움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자리나 억울한 이가 없으라 고 세워진 헌법인데

사법에서 안 지키고 친한 이의 말을 들으며

한편 법의 기능을 강제적 제재에 의한 위협과 그 실행에

초점을 맞추어 파악하는 접근법은 도덕 등의 다른

사회규범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 내 주위에

변호사 부부가 있는데 인정 못 받는 직업이더라.

순한 양보다는 이리떼를 따라야 도움을 받으니까

슬픈 일이지만 법가치는 사회의 정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깡패나 이리떼 뒤에 숨으려 하더라.

모든 국가사회의 법질서는 자기들의 생각대로

성격을 달리하는 인생이 걸린 삶을 저들의 생각대로

판결하고 죄인을 만든다면 억울해서 어디에 하소연하나?

법규범이 말하는 대로 달라지고 힘이 없는 이들을

법도 무시해버리니 이러한 구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이가 어디 있겠나?

옳은 말을 하면 법에 걸리기도 하고 자리 따라 죄를

만드니 동일한 일을 해도 어떤 이는 형량이 높고

어떤 이는 무죄가 되듯이 법조인들이 자기들

이익만 생각한다면 사법은 무너지고 법은 오래가기에

자기들 후손이 받을 것이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이 지혜를 돈과 보물에 팔아

너희 아버지와 할아버지 정의를 보아서 너까지 봐주고

후손 3대부터 멸한다고 하셨듯이 저희도 할아버지 세대

법보다는 입이 먼저 말로만 사고팔고 한 것이

오늘날 재판에 걸렸듯이 별거 아니지만

송장이 날아오면 그 순간부터 머리 복잡하여 그곳은

지옥 같은데 법조인들은 악을 쓰고 행세하는 곳이더라.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사전에 일반적인 법적

규준에 따라 관계를 생각하지 말고 명확히 규정하여

분쟁 방지에 정의로 와야 하는데 법 문턱에 있는 저울처럼

판결해야 하고 의혹이 남을 때는 먼저 피의자 편에서

판결하라 한 것은 말 한마디 잘못으로 억울하면 안 되니까.

사기 치는 머리를 만들어야 부자로 잘사나?

정의를 배신하고 양심을 버리고 어떤 구체적인

분쟁으로 증인이 될 때는 양심을 팔기도 하면서

이익이 가는 곳에 편을 들어주니 어이없다지.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최종적인 공권적 분쟁 해결기구가 자리하고 권력 그리고 돈

그래서 유전 무죄 무전 유죄 하니 부끄러운 사법

낡고 오래된 사법 법보다 주먹이라고 하던 시절

법보다 독재 권력이 먼저라는 것은 수없이

보아 와서 법에 접촉 되게는 안 살려고 했다.

표현의 자유보다 표현의 언론보다 시급한 표현의 헌법

햇빛은 크고 작은 이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머리 위를 비추는데 툭하면 핑계 대는 표현은

어디에 써먹는지 아니면 말고 식이 아닌 책임이 표현이라면

사법은 확실히 정의표현이 법이어야 하더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옳은 말 하는 이 보면 정의로운데

적이 많은 것은 자기의 삶이 그에게 어떻게 비칠지

부담 가고 그 사람 좋은 이라고 마음으로는 칭찬

어쩔 수 없이 사나운 이리떼 뒤에 서야 살아남으니

우리의 사법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누구든 잘못하면 수사를 받아야 공평하지 그러기

위해선 공수처가 시급한데 사람의 마음이 배신하지 않을까?

고심해야 하겠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 다 때가 있다고

이번의 찬스 놓치면 영원히 법은 고치기 힘들고

누가 그런 자리 만들어 주었나?

깊이 생각하기를 바라며 제일 먼저 사법제도가 바뀌었으면

 

 

사법의 자리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기에 고민하면서

판결하는 판사 의혹이 생길 때는 피의자 편에 서라는 것은

억울하면 안 되니까 정의롭게 하라는 법인데

사람이 한계라고는 하나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을

이용한다면 무너지는 헌법이랍니다.

수없이 보아온 유전무죄 무전 유죄는 아직도 부끄러운 헌법

이기고 지는 싸움을 칼을 가지고 덤비니 안 보았던 망나니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시대에 사는 것을 민주라 할 수 있나요?

칼은 일상의 도구라 없으면 맛있는 것을 못 하듯이

인권을 다스리는 검은 심사숙고 해야 하는데 양날의 칼을 가지고

휘두르다 자기 발등을 찍는 격이 헌법이라면 법을 아는

사람은 빠져나가는 길도 알기에 말 한마디가 법이니.

말과 칼이 정의롭게 쓸 때 우리가 의존하는 헌법이지요.

사는 것에 법이 안 거친 것이 어딨나요?

나면서부터 호적 신고 죽으면 사망신고 이 밖에도

사는 것이 다 법이라 법치국가라고 하며 정의로운

법은 편리하고 특히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법인데

법까지 부와 가난을 차별하니 돈 없고 힘없는 약자는

억울함을 당해도 말을 못 하고 입맛대로 손을 들어준다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요?

지키라고 있는 헌법인데 휘두르는 검에 얼마나 많은 이가

희생되었는지 나라 이름을 빼앗기고 그때의 일본 순사가

지금 검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니 이번 기회에 정의로운

법으로 꽃피기를 법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공동생활의 기준인데요.
우리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법이

이러한 것들을 보장해 주고 법치국가에서 약자들이 의존하는 법

만약 법이 없다면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갖기 위해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빼앗아도 꼼짝 못 하고 당하니

교육의 제도가 법조인이 되어야 자기의 보호막이 생기니까요?

세상을 안 바라보고 출세만을 볼 때 사법은 무너진다지요.

법의 제도를 세월이 간만큼 바꾸어야 하는데

법조인들이 악랄하게 발악하니 사법이 무너지는 나라

다시 법 개정을 하고 헌법이 꽃을 피웠으면 합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와 양을 구별할 수 있게 사법이

있는 건데 요즘 보면 검은 그림자가 뒤에서 가까운 사람이

조정하는 대로 따라가니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양의 탈을 쓴 이리가 휘 접고 다니니 참 기막힐 일이고

정의 사도 백의 천사들이 바이러스와 싸우는데

도움이 하나도 안가는 법인 것 같아요

약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에게 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사라져 어제의 친구가 오늘 적이

되는 법의 사회인가 봅니다.

권력의 힘이 아닌 근육의 힘을 키우느라

운동하는 이가 많아지고 억울한 이가 없게 하였으면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행세하라고

주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거 알았으면 합니다.

 

법이 꽃

양의 탈을 쓴 이리떼가 많아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

법을 만든이들이나 법을 아는 이들은 빠져나가는 법을 아니

애꿎은 힘없는 사람들만 법에 의존하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정말로 가고 싶지 않은 곳.

순한 양은 이리떼를 지키지 못하지만 이리 떼는 자기들

입맛에 들면 다 지켜주니 힘이 먼저인가?

그런 곳에서 날마다 죄인을 만들기도 하고

죄를 숨겨주기도 하느라 고생이 많기에 그런 이들 안 부럽고

사자의 눈으로 변해가며 신뢰할 수 없으니 없어졌으면 좋겠다.

창세기를 보면 인디언들이 사는 법과 비슷.

고마움 감사를 알고 양심을 먼저 지키고 가치로

인성을 평가하는 세상을 인디언들은 법이 없어도 알아서

자기들이 법을 지키는데 법치국가라 하지만

약자들이 넘어가기에 높은 법의 문턱

그곳은 사람 냄새가 없고 오로지 이익만 챙기는 곳

서초동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한적하고 음침한 그곳

저울을 양팔에 들은 동상이 쓸쓸해 보이는 그곳은 가기 싫은곳

저 안에서 길잃은 양 목자를 잃은 양

떼 지어 다니는 검은 이리떼들 싸움이 끝나는 날 법의 꽃은 피리라.

 

 

법과 허리

헌법이 머리라면 젊은이는 허리

나라의 중심은 청년들의 허리라지.

70년 써먹은 헌법이라면 그릇이나

옷이나 숲도 나무도 그때의 문화는

남은 것 없이 다 바뀌었는데

왜 헌법은 바꾸지 못하나?

정치가 젊어져 허리가 되어가면

국민을 허리로만 바라보아준다면 하는 아쉬움만

지금 현실을 보면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다 해도 요즘 세상 애들은

달나라 가는 디지털 세상에 사는데 제도가

70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 한 발짝도

못 나가기에 앞서가는 진보적인 젊은이들

시대의 흐름은 갈라질 수밖에

자기의 인기로 디지털 세상이라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국격을 만들었더라

돈이 판치는 현실에서 가치를 아는 예술인들이

외로 많기에 나라의 앞날이 보인다.

우리의 허리인 젊은 애들은 생각도 세상을 보는 눈도

깨끗한데 어른들 뒤를 따라가니 희망이 안 보이고

허리가 없이 미미한 원피스가 대한의 옷

허리가 있는 옷이 예쁘고 바로 청년들인데

 

 

헌법

탄핵이 없는 법의 꽃은 향기가 진 할 텐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탄핵이 유행되어 대통령이

시범을 보이니 창피하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헌재의 탄핵 노무현 박근혜  

선고내용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을 아프게 찔렀기에

둘로 나누어져 진영싸움이 끝나 지가 않더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자격이 상실된다는 것을 

명문화한 것이 이번 헌재판결의 핵심

어디 그뿐이랴? 돈 앞에 이익 찾아가는 사람들

어느 쪽에 서야 이로울까 재면서 가는 배신자
언론의 자유라고 하지만 책임도 따른다는 거 안

배웠는지 아니면 말고 식인지 언론의 무분별한 글이

사람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생명을 죽이기도 하니

아이고 무서워 언론자유 훼손 주범으로 대통령을 

특정하기 어렵고 언론자유라 표현의 자유라 떠들기만 하지

특종도 정확히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장사하니 누가 언론을 믿을 건가?

간판이 브랜드가 되어 믿음이 없으면 브랜드도

인정을 안 해주는 데 부끄럽게도

언론자유가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명시되었으면

그래서 헌법상의 숭고한 가치로서의 

언론자유가 보기 좋은 꽃장식으로 헌법 조항에 

매달려 있지 않고 언론이 법이 되어버린 세상

 

 

 

헌법이 왜 이래?

이기고 지는 싸움이 시작되는 헌법이라면 옛날 사람들

몰라서 억울한 일 안 당하고 법이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뉴스에 나오는 장관과 총장만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은 더 많은 법 속에서 살아가며

조금만 안 지키면 수사를 받는 곳이라 검찰청은 무서운 곳

법 만든이들이 떠들어대고 나라가 발칵되집어 졌다고

하는데 검사와 판사가 싸워서 개혁되어 법의 꽃이 피었으면

그동안 판검사가 하나 되어 약자들은 꼼짝 못 하였지

지금처럼 생각이 다르다고 다툰 적이 있었던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면 법의 자유도

있어야 공평한 것이 아닌가?

입맛대로 수사하고 난동을 부리는 곳이 아니고 억울한

이가 없게 사실을 위해 수사하는 곳인데 무엇이던

오래가면 낡아지어 냄새까지 나니까 그만 사법개혁을

하여서 모든 이가 평등한 법치국가에서 살면 좋겠다.

법이 엉망인 것은 직접 해당이 되어 법에 관심

가지다 보니 자주 구레 한 법들을 고쳐야 할 곳이 많더라.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산골 땅 상속자가 되어

명의만 남기고 50년도 넘었는데 땅 찾아가라며 법에

논리로 골치가 아프고 쉽지가 않으니 참 어이가 없다.

어떻게 하나 할 줄도 모르고 법무사나 변호사 사서 하려니

비용이 엄청나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나?

말로만 사서 그 아버지는 죽고 아들이 양계장을 하는데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변호사를 사서 상속자 주소를 찾으려고 28명에게

송장을 보냈다니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그 송장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날 정도라 안 펴보았는데

머가 그리 많은가 보니 다 죽고 없는 자식들 3대까지

상속인이라니 연락도 안 하고 사는데 그 변호사는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정보가 법 쪽에서는 아니 불법사찰까지

하면서 자기들과 서민들은 다른 나라에서 사는 줄 아니 씁쓸하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했는데

법치국가라고 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으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법대로 살지 않고 힘없는 이들만 지키고

자리 따라 말로 법을 만드는 모양인데 그러거나 저러거나 어쩔 수

없이 약자들끼리 싸움이 시작되니 이겨도 져도 그저 그렇다.

 

 

법의 공평

의혹이 가 확실하지 않으면 피고의 편에 서라는 것은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기에 그래서 자기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시시비를 가려주는 곳이 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법도 이익 따라 만드니 사법은 무너지고 거짓이

흉흉해서 믿지 못하는 곳을 법조인들이 만들었더라.

법치국가에서 법을 안 지키면 범죄자가 되어 자리 따라

크기가 다르니 법은 만든이들을 위한 보호막이고 힘없는

이들이 지키는 법이었다.

법대로 하자고 큰소리치는 이들은 뒤에서 누가 봐주기에 믿고서 당당

하지만 죄를 안 짓고도 억울하게 죄인이 되는 법치국가.

법보다 주먹이라 허더니 요즘은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양날의 날을 세운 검인가?

신상정보도 그들만이 할 수 있으니 어쩌다 법조인이 저렇게 되었는지

자기들 죄를 모르고 엄한 이들을 치려고 휘젓고 다니나?

하지만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진리 그들이 벌 지금은 안 받아도

먼 날에는 그 후손들이 받더라.

그래서 조상 탓을 하고 우리가 아는 지혜의 왕 솔로몬도 돈과 여자

권력앞에 나중에는 타락하여 할아버지 이세와 아버지 다윗의 됨됨이가

훌륭하였기에 솔로몬 시대까지 벌을 안 받고 후손들은 갈라지었다지.

이렇게 법을 사람들은 자리 따라 먹이지만 진리는 공평하더라.

 

 

사람이 하는일

법은 인간이 만들었으니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안 되는 일 없다 하였지만 

법대로라는 말이 가진이의 무기 피할려고 하는 사람들과의 재판은 가진이

손을 들어주니 사람의 인정이 법에 부합되어 완벽할 수는 없더라.

하지만 어쨌거나 법이란 테두리가 안전 막이고 법이란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자유롭게 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더라.

생각이 다르니 저마다 옳고 그름이 틀리겠지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주어진 법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의인이 되기도 하니까 법률가들은 말 한마디라도 억울한 이가 없게

판결해야 하는데 법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법의 판단에 따라 이리와 양이 되기에

분명한 것은 상황을 바라보는 생각이 좌우하기에 맘에 안맞게 판결하면

다시 승소하고 대법원까지 가니 사람의 하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더라.

 

고맙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코로나 19와 싸우면서 지겨운 한해가

지고 있지만 해 오르는 내년에는 웃음으로 거리감이

좁아지게 희망을 걸고 별일 없이 넘어간 한해였기에 고맙습니다.

올 한해 크고 작은 나랏일에 회비가 갈라져 끝나지 않은

싸움이지만 민주사회로 가는 진통이었습니다.

창세기에 율법도 지금의 헌법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지

법이 잘못은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세상에 오실 때는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 했습니다.

지금도 헌법을 고쳐서 법을 살리려 하는 것이지 없애려 하는 것이

아닌데 힘든 일이네요.

혁명은 총칼의 무기가 휘두르니 이루기가 쉬웠지만

민주로 하는 개혁은 참 어렵답니다.

힘들었던 과거냐 아팠던 옛날이냐?

독재의 그늘로 다시 돌아가기 싫은 날들 그 세월을 살지는

않았지만 역사를 보면 기가 막힌 한이 서려 있습니다.

식민지 전쟁을 안 겪은 세대라고 좋은 세상에 산다고 해서

다 누리고 사는 줄 알았는데 풍족한 세상에 살다 보니

잘못된 헌법에서 자유를 찾고 인권을 찾으며 여자 남자 평등을

찾으려는데 생각이 다르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완벽한 민주는 아직 안 왔지만 더디 피는 꽃이 오래가는

것처럼 반드시 정의는 승리를 몰고 온다니 기다림의 2021은

해 오름의 내년이 되겠지요.

세상이 평화로울 때 가정이 편안한 것처럼 나라는

떠들어대도 불안한 코로나 19 에서 별일 없이 건강을 지켰기에

고맙습니다.

관심은 오로지 가정의 건강한 몸과 마음이었기에 감사하답니다.

 

 

부드러운 도구

이리와 양들의 싸움이 정의와 불의로 전쟁하는가?

시끄러워도 내일은 오고  오늘은 어제가 되니 코로나 19와

파란만장 속에서 해가 바뀌며 새해가 내일이란다.

승리는 거저 오지 않고 만드는 것이기에 안 가본 안개 속으로

걸어가다 보면 엎어지고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는 승리의

길은 가까워지니까 희망이 보이지만 그 어둠을 헤쳐가는 이가 있을까?

독립도 해방도 거저 온 것이 아니고 누군가 희생하여 우리가

그 덕을 받고 살면서 고마워할 줄 모르니 정의에 승리가

힘든 것은 도구가 부드러운 마음이기 때문이었다.

디지털 온라인으로 성공한 우리나라 자원이 없어도

머리로 세계의 국격을 올리고  인권을 중요시하여 코로나 19와

싸우면서도 대처를 잘하는 것은 경험과 준비된

옛날이 있었기 때문이라 수없이 침략만 당해온 나라지만

이만큼 민주로 만든이들이 있었기에 세상이 이목이

여기에 살고 싶어 하는 나라가 늘어가는데 아직도 

국민 의식은 부끄러운 현실 하지만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은

해마다 내리는 눈비로 쓸고 가면 덮 혀진 것들이

드러나고 사실만 남으니 일에는 때가 있는 것이라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이용하여 여럿이 머리를 굴리면 당장 의 승리는

거저 오지 않고 만드는 것이기에 희생하지 않고 어떻게 만들 것인가?

총칼 없이 부드러운 도구를 사용하며 민주로 가는

개혁은 기다림과 희생이 있어야 하는데 누가 앞장설까?

 

시스템과 제도

개혁이란 제도를 바꿀 때 성공하지 않을까요?

총칼로 다스리는 혁명은 무섭기에 쉽게 이루는데

개혁이란 옛날에는 뿌리가 뽑혀야 할 정도로

그만큼 힘들었는데 지금은 인권을 우선으로 하는

시대에선 민주의 자유가 주어졌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뒤떨어진 부끄러운 낙오자가 된답니다.

시급한 법개혁 절차가 있다지만 언제까지

지켜주지 않으니 기회가 주어졌을때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서 호적 신고부터 사망신고까지 법을지키면 

편하기는 하는데 법대로 하자고 법조인들은

빠져나가는 법도 함게 배웠으니 법제도가 시급하네요. 

자리 따라 차별하고 비교하며 중산층은 없어지고

부자와 가난이 대물림하는 시스템

그래서 동양의 문화 효와 춤이 사라지고 돈으로

가치를 먹이는 시대의 잘못된 과오.

총알같이 날아가는 시스템과 제도가 더디 가는 정의로

바뀔 때만이 공평이 오고 살고 싶은 나라가 되겠지요.

 

 

법의 집

기온이 떨어지는 대로 하늘은 높아지고

파란데 더 춥게 하는 것은 정치판과 법?

양과 이리떼가 섞여서 서로가 자기가 양이라고

하면서 싸우는데 눈빛에서 찾아낼 수 있어.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면 얼은 마음을녹여

훈훈한 바람이 불어야 하는데 

나라가 망했다고 아우성치면서도

월급은 꼭꼭 챙긴다면 누가 이나라를 지킬건가?

남의 티는 보면서도 자신들의

들보 이리떼의 눈에는 보이지 않나?

 

 

겨울꽃

과거와 현재에서 갈등해도 기득권 들의

세상은 지는 꽃이고 젊음의 현재는 피어나는 꽃

내일을 위한 봄가을은 해마다 오는데

보이지 않게 아주 조금씩 세상은 바뀌어

풍족한 시대 입맛대로 먹다 보니 자유가 그립고

똑같은 사람들에게 정의가 주어졌는데

사람들이 편을 가르며 여전히 대물림하니

나라가 가난한 게 아니라 개인만이 가난.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지만 그래도

생명은 살 수 없어 공평해 아흔아홉 섬 가진 이가

한섬 가진 이에게 100섬을 채워 달라니

차고 넘치면 안 차는 것만 못하다고

채워서 넘치면 균이 득실대겠지.

어둑한 과거가 좋았다고 독재를 그리며

늙어가는 꽃은 금방 지겠지.

자원은 없어도 머리로 사는 내 나라

지지 않는 꽃으로 피어 살고 싶은 나라

봄에는 얼굴에서 꽃 피지만 가을에는

나뭇잎에서 꽃 피듯 병들지 않고 잘 피어

백설 꽃으로 철 따라 피어나는 겨울꽃

 

 

법의 지팡이

법치국가에서 자리 따라 눈치 보는 이곳 억울한

일이 없게 헌법이 있는 거라면 차라리 가까운 사람들을

믿겠다는 이들이 늘어가니 얼마나 사법이 죽어있나요?

과거에 독설이나 검으로 휘두르던 시대가 익숙해져서

툭하면 표현의 자유라 하니 자유가 울고 갈 것 같아요.

자유는 책임이기에 자유의지가 주어졌는데 자유가

법조인들의 방패인가요?

정의로운 자세로 진실을 찾아야 하는 곳 저마다의 생각은

다르다지만 진실은 하나기에 덮어진 것은 눈비가 쓸고

가면 사실만 남고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정의가

꽃펴야 하는 법치국가 거룩한 성경이라 해도 정확한 것은

그곳에서도 찾을 수 없고 비유기에 삶이 불확실에서 혹시나

그대로 믿지만 법이라고 하는 그곳은 해결하지 못하는

억울함을 풀어주는 곳이 아니던가요?

법조인 말 한마디로 삶이 뒤바뀐다면 책임 질 건가요?

신분 차별하면서 오로지 자기들의 신을

신봉하는 율법을 예수는 반대하면서 십자가를

지었듯이 정의를 위해서 생명을 내려놓는 것인데

율법 시대에 인정도 못 받는 목수의 아들 예수

하찮은 사람이었지만 오늘날에 그리스도인 모두가

거룩한 분으로 만들어 드리지 않았나요?

며칠 있으면 해마다 아기로 오시는 성탄 33세의

청년이 해맑은 아기로 오시며 닮으라 하시는데

여기저기 이리떼가 많아서 죄송하답니다.

아픈 역사를 디디고 백의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대답하기 곤란하다 이익만을 위해 침묵하니

그래도 법조인을 믿어야 하나요?

애매하게 딜레마의 빠진 상황의 그림 왜 저렇게 벌벌

떨며 비굴한 처사로 말도 못 하는지?

법치국가에서 사법의 정의란 무엇인가?

법원 앞에 저울은 일자로 공평한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사고망식이 이익 따라 기우는 저울

생각이 양면으로 갈라져 진영싸움이 나이대로 지역대로

싸우지만 합리적인 논리로 정의가 승리하였으면  해요.

성경에서는 기도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아무도

안 보이는 골방에서 진심을 말하라 한것은 여론몰이로

알리지 말라는 것이듯이 예수님은 자기가 고쳐주고

해결하고도 너의 믿음이 그를 살리었다 하시었고

한 번도 나를 내세우지 않으셨지만 세상의 사람들이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 시키려고 왔다 하셨으니

모세의 지팡이는 신약에서 성령으로 정의사도

우리의 예수를 닮는 법조인이 많았으면 지금 그리스도

구세주는 겨울바람 헤치고 모두에게 오시려 썰매타고 오시겠죠 .

이리 떼 끼리 할퀴고 싸우는 무서운 세상에서도 그리스도 닮아

따뜻한 온정이 넘치며 수고하는 백의 천사들 응원하며

법치국가 책임지는 법의 지팡이가  많았으면 합니다. 

 

 

진급

사람을 얻는 것이 제일 큰 소득

한 해가 지면 진급이 울고 웃게 하는 새해

한해가는 자리 새해가 오르고 함께 지났더라.

입사 한 대로 경쟁하며 중앙에 가지가

커 보이더니 훗날에 다 잘라 없어지고 가에

가지만 남듯이 세상 속에 사는 법은 나무에서

사람을 보았고 일을 많이 하는 이는 흠이

있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은 흑 땅 물이

튀기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책임을

안 지으려 하니 직무유기가 자기를

돕는다고 하지만 사람이란 흉이 있고

설거지하며 그릇도 깨 뜨는 이가 재미있더라.

살아있는 것들은 움직이니 아무 대책

없는 것 같아도 경험을 얻었고 늦게 피는 꽃이

오래 남는다고 진급을 먼저 하려고 안 하는 것은

중앙에는 적이 있기에 가에 가지로

남아야 오래 피어있는 꽃이 되고 사람을 사는 것이었다.

 

 

영상

법대로 하라는 이 말은 모든 삶이 맨 꼭대기서 위치대로

흔들어대니 죄를 만드는 곳도 되고 죄의식이 자리 따라

달라지는 현실이 무섭기만 합니다.

정의를 위해서는 목적을 버리기도 해야 하건만

이리떼의 목적을 위해서 배신하며 잡아 헤쳐서 성과를

내려고 한다면 사법체제는 무너지고 말겠지요.

법을 아는 이들이 법을 빠져나가는 법을 아니 억울하게

당하는 이들이 울부짖음은 가진 것 없고 모르기에 당하는

한탄이랍니다.

누구에게나 사는 것에 편리하게 하려고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헌법이고 제도지만 바뀌는 세상에서 맞지 않으니

개혁을 원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보이지 않아도 그 제도

속에서 한발 작 앞으로 나가나 봅니다.

힘없는 이들의 법망은 그물이 촘촘하여 빠지지 못하는데

힘센 괴물들은 그물을 찢어 버리고 온 바다를 휘 접고

다니기에 잡기가 힘들어요.

굶는 사람이 없어도 차별을 하니 비교하고 대우받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하지만 자연의 법칙이랄까

햇빛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머리 위에서 놀고 생활에 따라

맘에 맞는 데로 표현하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지켜야 하는 법제도 어디까지가 법이고 아닌지

목소리 큰 사람보다는 증거가 우선이고 정확도는 영상이었습니다.

 

 

비참한 현실

선진국이라는데 법은 거꾸로 가는 한국 사회의 현실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을 만들어놓고

힘없는 사람들이 지키는 것은 헌법 그대로가 편하니까

그런데 어느 순간에 이 헌법을 힘 있는 이들의 방패 메기였더라.

잃어버렸나? 안 지키었나? 사법은 로스쿨로 바뀌었어도

헌법의 전문인이며 엘리트라고 고개 숙일 줄 모르는 철면피

사법을 바꾼다고 선진국에서 도입해 흉내만 냈지

사실은 더 힘들게 알아듣지 못하게 공부로 평가받으며

언론과 한패 되어 주무르니 진영 싸움을 하며 분열을 조작하였더라.

헌법 정신의 수호자여야 할 판검사 변호사들이

특권계급이 되어 검으로 휘두르니 사법은 무너지고 판결하는

재판이 눈치를 보고 억울한 이가 늘어가는 시민

판검사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현실을 통렬히 비판한다.

믿음과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세상 속의 교회가

어쩌다 세상 속의 교회가 되어 주님을 장사하는지 슬픈 일

정의를 위해서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용기를 내어

침묵하지 말아야 하는데 검 앞에 사법이 무너지는 비참한 현실

 

용서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삶이 달라져야 한다는데

우리의 삶도 지킬 것과 버릴 것을 생각하게 하는

코로나 19 바이러스와의 전쟁도 심란한데

떠들어대는 의원들이 더 용서하기 힘듭니다.

3단계로 묶어버리면 굶어 죽는다고 아우성치니

그래도 나랏일 한다는 이들이 월급을

가져가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고 누구를 위해서

그 자리 있는지 일하라고 뽑아주니까 자기들 이익만을

생각하니 용서하기 힘듭니다.

대책은 안 내놓고 잘잘못을 따지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는지 한쪽에서는 배고프고 집이 없어 얼어

죽게 생겼는데 국민이 낸 세금 가지고

배 터지게 부르니까 자기들 생각을 토해내나 봅니다.

세상이 심란한데 하나로 모이지는 못해도

정의 사도 백의 천사가 많아져 건강부터 챙겨야 하는데

무서운 코로나 19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저기 큰집에서 들썩거리니 용서하지 못합니다. 저들을

 

청년의 허리

청년으로 깨어야 나라가 산다지요.

우리에겐 허리가 있어 중심을 잡고 어둠에서

빛으로 밝아지고 있습니다.

역사 속의 나라를 지킨 사람들도 다 청년들

나라를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열정과 의지가 있었기에

오늘날 이런 세상에 길잡이가 되어주었습니다.

청년으로 가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면 나라도 밝겠지만 세상에서 살고 싶은

나라가 되어갈 때 청년에게 희망이 보이겠지요?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명언을

남기신 선생님들 지금의 청년들은 몇 살 까지죠?

생각이 청년이면 나이는 관계없겠지요?

나이가 들었지만 생각은 여전히 청년정신

허리가 건강해야 중심을 잡듯이

깨어있는 청년들이 많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대한 청년들이 시들지

않는 꽃으로 철 따라 피었으면 합니다.

 

 

빅딜

제도 시스템 계단이 절실해도 그 보다 우선적인 것이

인권을 보호하는 법제도 후라이펜도 오래가면 바꾸듯이

씨앗으로 뿌린 풀들도 열매를 몇 배로 거두고

매끈한 나무도 비바람 맞으며 무성한 잎새들을 맺듯이

70년 된 헌법을 세상의 변화 속에 뒤처지게 할 수 없지요.

기회는 늘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 타이밍이 있기에

그때를 잘 사용할 때가 지금인 것 같습니다.

한 계단 한 계단 두드리면서 다져왔건만 두 계단을

올라가다 뒤로 떨어지는 기득권들 약자를 밟고 올라가며

그들은 다른 세계서 산다고 차이를 두니 제도를 바꾸려고 하죠.

모든 것이 시스템을 작동하기 위해선 사람들이 머리 쓰고

손으로 버튼을 누르니 생각이 정직할 때 제도 계단이 빛을 볼 것 같아요.

선생님들도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고 배우야 젊게 살아가는데

월급은 잔뜩 받고 싸움만 하는 정치인들

정의를 꼼짝 못 하게 떠들며 브라운관을 덮는 그들이 누리는 법

아까워서 못 내놓고 나만 아는 주로 옛날 사람들의 근성

나도 속해있지만 내 아이들에게서 신문화를 보고 나누면서

채워가는 법도 배워 나눌 게 없으면 마음이라도 나누렵니다.

디지털 온라인 시대를 가면서 바뀌어야 할 제도 시스템 계단.

 

지구를 지키자

설명회에서 공감했기에 몇 자 적으려 했는데 쓰다 보니 조리 없어

길지만 우리의 세상이니 끝까지 읽어주세요.

학교는 가르치는 곳이고 집은 배우 는 곳이라고 하지만

둘 다 배움인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이 덜 자랐기에 궁금한 것을 선생님께

물어보는 순진도 묻어있죠.

선생님이 말씀은 법이었으니 왜라는 질문이 많아서 나중에는

대답을 못 했다고 웃으며 말했어요

집에서도 궁금한 게 많았던 애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아이들 마음 같아야 들어간다고 하시고

세상에서도 아이들 마음처럼 속을 보이라고 하셨지요.

철이 없는 아이들 속이 보이기에 더 예쁘고

아이 둘을 키우면 반 의사가 되기도 하지만 정신의

분석조차 하는 것이 엄마 모른다면 좋은 엄마가 아니지요.

아이들 보는 모델은 집에서는 엄마 아빠

부부가 사이좋으면 사랑부터 배우고 학교에서는 가르침이

인생 진로 결정해주니 아이들은 무엇이 꿈이야 물으면

선생님이라 하고 머 장관이라고 하고 대통령이라고도

하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애들이 선택하지만

집에서는 보고 배우는 아이들 부모의 눈보다 새끼 눈이

더 무섭다고 하는 엄마 아빠는 관심이 있는 현명한 부모였어요.

생각이 덜 자라 어른들 보기에는 시대에 뒤떨어져

진다고 하는 애들이 자기의 중심에는 공동체가 있다고

알아가는데 어른들이 못살고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어

아이들에게서 찾으려 하니 아이들 꿈이 무너지고 그렇게 만들고 있어요.

언제까지 천민과 양반을 구분할는지 돈과 지위 자리가

평가하니 이상한 제도며 부끄러운 현실의 나라인가 봅니다.

어젯밤 교육 설명회서 북유럽 스위스 노르웨이 스웨덴 애들이

교육법은 어려서부터 혼자가 아닌 전체를 배우며

꿈이 무어냐고 물으니 우리나라처럼 공무원이 아니고

그 예들은 꿈이 없다 했다 한참 있다가 있어요.

하면서 지구요 또 한 가지는 평화요 한다니까

아이들의 꿈은 어른들이 만든 제도였어요.

공무원 꿈이 많은 나라는 저밖에 몰라 노후의 안전을 찾으니

없어질 나라에 순위가 앞당겨진대요.

그런 위기에 놓여있으니 제도를 바꾸어야 하는데

선거가 많이 있어 표 때문에 당장만 생각하고

아이들의 미래는 없게 만드네요.

순수한 아이들 하늘빛처럼 푸른 바다처럼 향기 나는 아이들 맑은 눈빛

어른들이 지켜주어 철 따라 피워 내는 꽃이 되게 만들어요.

세상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지구가 병들지 않게 하는 것이고

요한 바오로 2세가 유언에 전 세계가 하나이지만

남북만 갈라져 있다고 가슴 아파하며 종교인들은 벽을 허물고

평화를 위해서 일하라고 하셨다니 마지막 가시는 길에도

그는 오로지 평화를 걱정하신 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무리

첨단의 기술이라 해도 하늘 문은 못 열고 너와 나 다르듯이

나라도 다르다 지만 진실과 이치 순리는 하나였습니다.

지구가 깨끗해야 하늘이 맑듯이 생명이 있는 꽃부터 선명하고

아름다우니 전염병이 없는 세상 사람들이 지키고 가꾸게 하소서.

 

법이란 싫다

법대로 살아라! 누가 그렇게 가르쳤나?

언제 법이 약자의 편에서 평가를 해준 적 있나?

사기꾼과 눈싸움을 하는 곳

꽃집은 향기가 나지만 오물 뒤집어쓰고

더러운 걸레에 병균들이 들썩거리는 곳

성매매 아니면 사기죄를 다루며

듣고 싶은 말이 나오게 협박하는 곳.

상대가 잘못했다고 따지면서 억지 부리며

눈싸움하는 더러운 곳이 그곳 아닌가?

눈빛을 보면 마음이 보인다는데

그곳에 모인 이는 도긴개긴 거기서 거기 아닌가?

왜? 라는 물음표가 많은 것이 헌법.

그런데 약자들이 들어가는 법의 문턱은 왜 그리 높은지?

 

 

법조인들 듣고 있나요.

다 그런이들이 아니기에 세상은 돌아가고 

민주 법공화국으로 한단계 앞으로 가려하는데

쌓여진 덤풀들이 크기에 힘든 작업이네요.

법은 물이 가는 것처럼 순리적이어야 하는데

도랑물이 냇가로 냇물이 강으로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되듯이 바다의 물결이 어울려야 멎지지요.

법이란 더러운 것을 싫어해야 하는데 여러 사람이

만지작거리는 돈 앞에서 자유로운 법조인이 있을까요?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나오지 않았나요?

아니면 당당하게 아니라고 해보세요.

시간이 쌓이면 자기의 색깔이 사라지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오래전 법치국가를 만들어놓고

서민만 높은 문턱이었어요.

따져보렵니다.

우리의 삶을 왜 법률가들이 심판하는지요?

죄를 판결할 때 의혹이 생기어 확실하지 않을 땐

피의자 편에 서라고 한 것은 억울하지 않게 하려

헌법이 있는 것이 아닌가요?

블랙과 화이트가 섞여 회색인데 자기의 이익 따라

판결한다면 법치국가 사법은 무너지고 말겠죠.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법조인

자기들 감정대로 칼날을 휘두른다면 이게 무슨 사법인가요?

일반 주방에 칼날은 한 면만 있지만

검찰의 칼은 양면이라 휘두르면 억울하게 다치는

이들이 많을 것 같으니 심사숙고하기 바랍니다.

감정의 동물이라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약자들이

기대는 곳인데 냉정한 것인지 무식한 것인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인 가봐요.

고등학교 한 교사의 말이 생각납니다.

법조인은 박박 공부만 해서 사법에 학격 해 자기들이

세상을 좌지우지 흔드는 줄 아니 한참을 잘못 배웠다 하였습니다.

감정도 무디고 세상을 잘 몰라 저희가 최고인 줄 아니

인간 됨됨이는 빵점이라 아이들 꿈이 법조인이라면 바꾸라 한답니다.

인간미가 있을 때 인기가 있고 사람들을 부르는데

디지털시대 4차산업 앞으로 가는데 70년 전 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허우적대는지 그곳은 행세하는 곳이 아니고

피와 눈물이 있는 곳이고 약자들의 집인데

입맛대로 죄를 만들어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도신문으로 죄를 만들고 내 맘대로 형을 때리나 곳이었습니다.

 

누가 히어로

깃털은 고개를 숙이고 중앙에서 행세하는 이들이 머리를 들고

기득권들의 자리는 행세하는 곳 말이 안 되어도 덮어주는 곳인가?

누구나 크고 작은 자리는 있고 아름다운 이름이 있는 것은

주어진 위치의 본분이고 책임인데 자기들만 최고라고 자처하는 그곳

인정이 메마르고 기생충이 득실득실 어딘가에 전염을 시키려는지?

보이지 않는 속마음을 유도신문으로 짐작해서 죄를 만드는 곳

어떤 사연이 있는지 끝까지 경청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할 때까지 질문하고 억지를 쓰며 여론몰이하니

정상적인 이들은 그곳을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은 두려운 곳이다.

 

법이 빛이 되어

잘 싸워 이기면 죄가 없어지는 곳

숨겨진 것들을 찾아내는 곳이 아니라

입맛대로 숨을 곳을 알려주고

어떤 이는 욱박 지르며 들춰내어 털고 있으니

정당한 법이 아니라 무소 불이 되어

양날의 칼을 가지고 휘두르니

억울할 때 찾아갈 곳은 어디일까?

하소연을 끝까지 들어주는 곳이 어딜까?

한 사람의 말로 오판해서 인생을 송 두리체

망가트리며 죄의식도 안 가지니

소용없는 법은 있으나 마나 하겠지?

어둠이 가려진 별들도 구름이 지나가면 반짝이듯

어둠 속에서 헤매는 법도 별빛 같은 날이 오겠지?

암울한 시대 법은 약자만 지키는 곳

힘없는 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곳이 아니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합리적인 것처럼

말하는 곳을 약자들은 찾아가야 하나?

무너져버린 법 앞에서 소리치는데 못 들었는지

안 들은 척하는 건지 다 그런 것은 아니기에

누군가는 법의 별빛이 되는 이가 있겠지?

알쏭달쏭 물음표가 희망이 되어버린 약자들

혹을 떼러 갔다가 하나를 더 달고 나오는 곳

수술하러 갔다가 엉뚱한 곳에 칼 대는 곳

정의로운 큰 나무는 그늘을 멀리 만들어주는데

그곳은 험 한곳이었다.

힘없는 사람들은 어두운 밤하늘 되지만 반짝이는

별들의 집이기에 환하게 또 다른 세상을 비추어주더라.

이게 바로 법이구나. 이렇게 환한 곳이 있구나.

 

 

사람이 법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데

사람을 위한 법을 누가 만들었나요?

지키지 않는 법 힘없는 이들만 지키는 법이니

법의 문턱이 언제나 낮아지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곳이 될까요?

자기 돈 가지고 지가 노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언제 법이 놀음이나 똑같지 다른 게 있었던가요?

돈 놓고 돈 버는 도박장 어디는 불법이고 어디는 합법인가요?

민주를 위해 데모하던 이들이 도망간 것은 잡히면 처벌당하니

일단 피하고 보듯이 그게 죄의식을 느끼는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법이란 이름을 붙이어 무조건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이 나올 때까지 억압하며 닦달하는 곳

법치 국가라 하면서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다지만

그런 법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유전무죄 무전유죄만 알지 가고 싶지 않은 곳 첫 번째

도박 매춘 마약 돈으로 매수하니 어디까지를 정의라고 하나요?

화날 때 해결 하면 정이라고 하지만 그 정의도 해석하기 따라

달라지니 어떤 말이든 몇 % 보고 결정하게 되지요.

공격 위치 이론 법이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한 공학적 제도 절차적으로 정당하게 만들어진 법

그대로 따르라 하지만 법을 만든 이들은 피해 가는 법도 배웠어요.

사람들의 이기심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사회 질서가

무너지니까 법치 국가라 하며 정의를 지킨다고 하는데

도덕 감정을 정의라 하지만

지키는 이가 험난한 세상에 살 수 있을까요?

의문이 들면 정의가 불의로 바뀌어 가며 부당과 정당의

사이도 자기들 생각으로 만들며 불법이 합법은 아니니

현실의 정의는 자리가 힘쓰는데 먼 훗날에는 자리 위에

가치가 있다는 거 그래서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기지만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가치를 본다죠

나쁜 짓을 하면 사람도 아니라 하니까

법도 사람을 위해서 있으니 사람이 법이었습니다.

 

법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인가?

의혹과 질문은 완성되지 않았기에 숙제로 남아 푸나?.

세상은 선과 악이 함께 사니 상황 따라 어떤 때는

선과 악이 뒤집히니 그래서 사람들은 본심을 이야기하고

됨됨이를 따지며 옛날에는 좋은 사람이었는데 왜 그리

변해버렸지 하는 것은 세상의 흐름 따라 마음이 함께 가니

처음 맘 그대로 살 수 없는 사회에 우리가 서 있더라.

법이란 생각하기 따라 법이니까

언제 까지고 논쟁은 있겠지만 사회에 주어진 법은

한 사람의 판결로 남의 인생을 죽이고 살리니

그래서 재판하는 판사가 누군지 알려 하나 보다.

악법이 법이라는 것은 법조인들이 편리하게 써먹는 말이지

판사의 말 한마디로 남의 인생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데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는 것을 얼마나 사람들은 알까?

일상이 다 헌법이고 고마운 법대로 사는 세상

법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고 잘 피어난 법의 꽃은

향기 나고 아름다운데 억울함만 호소하는 것인 줄 아나보다.

돈과 사기가 판치는 더러운 곳을 수사하는 곳이 아닌

법이 없어도 서로가 토론하는 양심이 법 위에 있었으면

 

 

흘러가더라.

쓰레기와 정당하지 않은 돈은 모을수록 더러운 것이라고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비 눈에 씻기어 훗날에 가면

더러운 오물로 버러지가 들썩거리니까 다양하게 살기가 좋은 지금

자랑할 것 많은 나라에서 합당하지 않은 부자는 부끄럽게 보자.

가진 것이 없어도 남의 것을 탐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

보이는 화려함에 눈은 가도 마음은 뺏기지 말자고 다짐하면서

무쇠솥이 검다고 밥까지 검은 것은 아니고

어느 구름에 비가 들었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희망을 말하고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사실만 남으니 기다리는 지혜도 생기더라.

 

 

억지가 쓰레기로

쓰레기장은 더러운 곳이고 쓰레기통이 있더라.

집에서도 안 보이는 곳에 쓰레기통을 놓아두게 되고

날마다 청소하고 오물은 쓰레기통에 담듯이

날마다 치우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어 득실득실

투서와 고소는 손바닥과 등 큰 차이 안 나지만

대접은 천양 차이고 먼저 고소한 사람을 위한 수사를 하게 되더라.

억울하지 않게 헌법이 있는 거라며 의혹이 갈 때는

피의자 편에 있으라 하였듯이 법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말고 먼저 고소하니 먼저 승기를 먼저 잡으니까?

법에 대해서 모르니 법대로 사는 이는 힘없는 약자들이고

법의 문턱이 낮은 기득권들 사기를 치고도

이쪽저쪽 어느 방향이 더 이로운가? 눈치 보면서 거짓말하는 쓰레기장

투서는 풍문이니까 투서만으로 수사한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짓인가?

풍문이라도 고소인이 항상 위 의가 있으니 왜 고소를 당하는지 모르더라

밴댕이 꼰대 속 좁은 어른들과 모 조리가 많은데는

무서운 기생충이 섞어 사는 곳 멀쩡한 단지에 깨진 똥 단지

오물이 되어 조금씩 표 안 나게 흐르더니 요즘은 콸콸 흐르고

정의와 공평은 생각하는 대로 다른 건지 틀린 건지 아무튼

억지가 법이 되어 보는 대로 듣는 대로 거기에 있더라.

 

 

느낌

똑같은 꽃을 다르게 보는 것은 눈으로는 꽃 이름을 알지만

생각이 다르기에 꽃의 향기도 다르듯이 부하를 아끼어

존경받는 장수가 있고 장수는 개떡이라도 신하가 말을

잘 들어 장수의 위치가 높아지듯이 그래서 나의 평가도 있지만

밑에 사람을 잘 두어야 하나 보다.

나 혼자의 행동이 보는 이마다 다르니까 긍정과 부정은 싸우나?.

왜 서로가 자기가 긍정이고 옳다 하니 그래서 % 수가 결정하나?

여러 저마다의 생각은 달라도 느낌이 판단하더라.

 

의지의 투혼

사람과 사람을 자리로 보면서 신묘한 추측으로

죄를 만들어 언론 플레이 잘해야 거물 행세하는 그들이

정의 사도가 되는 걸 보면 슬픈 법의 현실.

말도 안 되는 양심을 자리로 행세하며 두려운 집이었다.

지저분하게 챙기면 다음 사람들이 정리하느라

힘들겠지만 그러면서 닮아가고 배우더라.

아름답고 깨끗한 곳에서 심신을 달래려 등산하고

운동한다지만 우연히 익숙하게 튀어나오는 말속에는

이렇게 물속이 보이는 곳은 대한민국이 아니지?

부끄러운 현실 성서 율법에서 기득권들이 있는 줄 알았는데

도덕이 갖추어져야 할 이곳 의지와 투혼이 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데 이런다면 사법체제는 무너진다.

 

정의

슬그머니 행동하는 법치국가 

검은 옷입고 휘접고 다니며 통하지 않는 무소불 

이익을 위해  법대로 하라 한다면

목적을 위해 배신을 하는이가 있고

사람을 위해 목적을 버리듯이

마음을 거울처럼 들여다 볼수 는 없어도 

판단은 할수 있듯이 속이고 속는세상

아무도 모를것 같아도 낮에는 새가 듣고

밤에는 쥐가 듣는다니 다 드러나고 

얘 밴 암소 죽을 쑤었는데 옆집 염소가

훔쳐먹었으니  이미 지난 일이지만

속은 부글부글 하다 정권이 바뀌면

검찰권으로 대변하는 권력을 누가

손에 쥘 것인가 피 터기는 싸움하지만

결국은 예측한대로 정의가 이기더라.

이미 다 지난일인데도 앞으로 연속되면

안되니까 깨끗한 법을 만들려는데

왜 그리 힘이드는지 정의 사도는

어디에서라도 나오겠지만 특히

법치국가인 사법 검찰이 혁신이 시급한데

얼키설키 하게 오랫동안 쌓 여진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정의는

이성이나 본능의 산물이 아니라 지킬 때

공정이고 평등할 때 정의가 향기 나겠지요.

 

변호사

말 잘하면 변호인 하라고 하던 때는

독재가 판치던 시대이지 않았나?

두서없이 말이 안 되어도 변호인이라는

간판이 지어주면 다 옳은 것인가?

로스쿨로 학격 한 여성 변호인 시청

공무원이 되었지만 그냥 사람이고 여자지

말을 더 잘하는 것은 아니더라.

정말 말 잘하는 것이 한자도 더 보태지도

빼지도 말고 그대로 하는 것

쌓여 진 거짓말은 눈비가 씻어내면 사실만 남으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믿을 수 있나?

변호인도 눈물이 있고 웃음이 있는

사람이라 억울함을 변호해주기도 하지만

죄를 지은이를 변호하려면 거짓말부터 해야겠지.

두 변호인이 잡당 하여 돈을 더 준

사람이 이기게 해서 재판이 끝나면 나눠

가지다니 변호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전무죄 무전 유죄 사자나

호랑이하고 싸우는 격 억지와 유도신문이

말 잘못 하면 신세가 종 치니 모르면

침묵이 금이더라.

차라리 변호사가 알려주는 대로 생각을 정리할까?

선과 악 두 가지 마음이 싸우고 있는데

악성 바이러스가 덕지덕지 묻었어도 자기가

사마리아인이라 하니 그걸 어떻게 판정 짓나?

천사보다도 악마가 세상을 편히 사는 것이고

착한 이보다 두려운 존재가 되어야 사람들이

모이니 살기 위해 양심은 바닥에 떨어지고

검은 속을 알 수 가 없으니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의 남발 하여 믿음이 안 가고

말 만 번지르르하다 뒷담을 하더니 결국은

한패가 되어 꼬시지 않아도 행동에서 반했나?

세상은 잘 몰라도 변호인은 법을 아니?

 

법조인들 들리나요.

법률시장이 마당이 되어서 떠들어대니

뭐가 있는지 없는지 만들어 파는지 모르겠어요.

되는 법은 웃음이 있겠지만 안 되는 법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질것 같아요.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 하고 맞은 이는

발 뻗고 자고 팬 자는 오그리고

잔다더니 현실을 예언한 옛말인가봐요?

두려운 곳 만들지 말고 사람 냄새나는 곳을 만드십시오.

조용해야 할 법이 시끄러운 것은

썩은 냄새가 나서 그런가 봅니다.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모르듯이

법조인이라고 법을 다 아는 것이 아니겠지요.

세상을 살다 보면 잘못 없이 살기가

힘들기에 그래서 용서가 있고 사랑이 있나 봅니다.

각자의 상황이나 형편이 다른데

어떻게 삶을 평가할 수 있으리오.

다 책임이지 행세하는 자리가 아니랍니다.

향기 잃은 시든 꽃이라면 뽑아내어 새로운 씨를

뿌리어 가꾸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본분

태어나는 순간부터 먹고 사랑받고 살기에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는 거라지요.

이익 앞에 허튼짓하지 말고 법치국가 꽃이

향기 나게 하시고 삶은 두 갈래 마음

이리 갈까? 저리 갈까? 헤매 이지만

그런 때는 향기 나는 쪽으로 가십시오.

양날의 칼을 쥐고 휘두르다 보면 큰일 난답니다.

생명이 사는 곳은 영원한 것 없으니

잘못은 반성해야 하고 자리는 두려움 없게 하십시오.

 

 

인디언 법

피고와 피고인 피의자와 피해자 법률가들이

제일 많이 써먹는 말

판검사 경찰들은 많은데 법을 요리조리

피해 가는 이들이 왜 그리 많은가요?

여전히 돈 안 쓰면 죄가 되고 돈을 쓰면 죄가 지워지니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 유죄 부끄러운 이 법이 언제나 바뀔까요?

법률가들은 기득권이 가져다준 불로소득을

자기들의 능력에 따른 댓 가라고 착각하니

세금이 울고 있지 않을까요?

어떤 과일이든 알맹이를 보호해주는 껍질이 있듯이

사람도 제일 안전하게 보호해주는 부모가 있지 않은가요?

자식의 작은 허물도 감싸주는 부모일 때

마음을 놓듯이 우리의 법도 사실을 위한 안전장치가 되어

보호막이 되어준다면 좋으련만 까도 까도 알 수 없는

양파가 마지막 한 잎까지 다 벗기면 속살이 드러나니

법률가들 심보가 보여요.

시대를 앞서가는 현대인에게 법은 구시대에 멈추어

억압하고 족치면서 듣고 싶은 말 나올 때까지

옥죄어놓은 매듭을 풀어주지 않는다니. 차라리 시간이

가서 판 검사가 안 보이면 악법에서 인디언 법으로 바뀌겠지요.

 

 

민심

수녀 된 시누이 면회 갔던 여름

1987년 명동성당 마당에 여기저기 나무에 걸쳐있는

붉은 글씨 대자보는 군부독재 타도

떨어진 글씨들이 흩어져 짓밟고 다니고 그때의

학생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소리치며 싸워온 민주가 시작되었지만

아직 멀고도 먼 길이었습니다.

워카발로 채이며 최루탄이 한 생명을

잃게한 6월의 무덥던 대학마당

먼지가 날리던 그때의 여름 피맺힌 학생의 울부짖음

싸늘한 죽음으로 민주가 꽃피는 승리의 6월 항쟁이

갈라진 민주가 다시 독재에 넘겨주었으니

대통령 병이었나?

그 새내기 어린 대학생은 안 보여도

민주로 가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꽃다운 그때에 남은 학생들은 가정을 가지고

또 지키려 기득권과 정쟁 그 뒤로 무엇이 바뀌었나요?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들은 다른 세상에서

사는 줄 착각하니 돈 앞에 슬적 무뎌지고

권력을 만들며 책임지는 자리가

행세하는 자리로 다시 옛날이 그리운가 봅니다. 

백두산 물은 맑다 못해 하늘에서 금방 선녀가

내려올 것 같은데 덩치 큰 호랑이 한 마리가 휘 접고

다니면서 맑은 물을 흐려지게 하고.

우리의 우방국인 미국을 말하면서 법은 왜

따르지 않는지요?

그곳은 판사가 검사를 견제하고 배심원이

판사를 견제하기 위해 선서를 한다는데.

삶이 걸려있는 법은 본받지 아니하고

그냥 잘사는 우방국이라 자랑하니 한심합니다.

정약용이 지금 다시 목민심서를  쓴다면

목민심서가 아닌 사법개혁을 쓰지 않을까요.

사법개혁은 1987년부터 하려 했지만

기득권들의 반대하니 왜 그런지 이번 기회에

하지 못하면 영영 못 할 것입니다.

이런 기회가 주어진 것은 하늘의 뜻이고 민심이니

한 대학생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세요.

밀알 하나가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사법을 개혁하게 하소서

 

 

두려운 자유

우리에게 자유를 주었듯이 자유는 책임을 묻는 자유 테두리가

있어 그 안에서만 누리게 되었는데 요즘 자유가 무언지도

모르고 남발하여 고귀한 자유를 더러운 바닥에 떨어뜨렸더라.

내 맘에 안 들면 하느님 탓 히틀러는 왜 만들어 사람을

많이 죽였느냐고 따지니까 하느님의 말씀 나는 그를 사람으로 만들었지

그렇게 한 것은 히틀러의 자유 의지

자유는 좋지만 두려운 자유도 된다는 것을 함부로

자유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듯이

자유는 분명히 테두리가 있으니 그 안에서 누리기를 바랍니다.

배신이나 나쁜 짓 하고 내 자유야 하면

그 자유는 테두리 밖을 나온 것이니 방종이었습니다.

성직자 자유를 뺏은 것이 아니라 테두리 안에서

성직자 본분을 지키는 성직자의 자유이듯이

자유를 편리한데로 이용하면 자유가 슬퍼할 거에요.

두려운 자유가 아닌 책임의 자유는 바로 지금 헌법의 자유

 

교육법

우리나라와 다른 평생 교육의 북유럽

노후 보장이 잘 되어 있는 북유럽

세금을 많이 내어도 불평을 안 하는 것은

노후대책이라 적금으로 생각하니

그곳은 이미 복지가 고갈된 지가

오래되어서 세금이 복지제도에

모자라면 더 걷고 남으면 덜 걷으면서

조정한다는데 우리나라는 고갈되었다 하면

없어지는 줄 알고 난리 치니

복지제도는 참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정책은 선진국을 따르기 위해 조금씩

변해가니 나중에는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미래를 예언하고 국민연금으로

그래야 공평하지 지금 연금은 가지 수가

너무 많아 그래서 아이들이 노후의

안전만을 찾게 하나 보다.

그래서 연구인이 꿈인 애들은 나라의 미래가 있지만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공무원이 꿈인 나라는

제일 빨리 없어진다니 얼마나 무서운가?

북유럽의 부모들도 자녀는 특별한 존재기에

그럼 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으로 키우려 애쓰는 것은

남들보다 뛰어나거나 잘나가는 것보다는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이라면

우리나라 옛날의 어른을 알아보는 때와 비슷하다.

뿌리가 있어 아이들 마음은 그대로 가는데

못 배우고 가난이 한이 남긴 부모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그러니 제도가 바뀌지 않으면

정직한 아이들이 살아갈 수가 없다.

제도를 바꾸는 것이 시급한데 지금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무얼 하나 한심하다.

돈이나 자리가 판치는 세상이라도 북유럽 교육은

됨됨이가 더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

행복지수가 높은 북유럽 사람들 차별이 없으니

비교할 줄 모르는 제도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 삶의 시간이 길게 만들었더라.

그들의 자유는 책임지는 자리지 행세하는 자리가

아니고 자유도 테두리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선을 안 넘어가고 남발하는 우리의 자유는 부끄럽다.

그들의 행복은 특별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살아가려면 함께 어우러질 때.

 

제도

헌법이 꽃피어 향기가 나야 하거늘 피다 말고 잎이

말라 떨어지는 것처럼 꽃에 향기가 없으면

버리듯 법치국가 조그만 일도 법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도 이룰 수 없는데 지금도 법을 만든 사람들은

법을 피해가며 사니 힘없는 이들만 법이 삶을 막고 있더라.

그러기에 자리를 탐하고 법대로 하자며 할지라도

특정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자의적 실행되는 경우는

권력의 불법발동에 지나지 않으며 이익대로 하니

재판은 돈과 싸움 그렇지 않으면 특별한

자리나 억울한 이가 없으라 고 세워진 헌법인데

사법에서 안 지키고 친한 이의 말을 들으며

한편 법의 기능을 강제적 제재에 의한 위협과 그 실행에

초점을 맞추어 파악하는 접근법은 도덕 등의 다른

사회규범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 내 주위에

변호사 부부가 있는데 인정 못 받는 직업이더라.

순한 양보다는 이리떼를 따라야 도움을 받으니까

슬픈 일이지만 법가치는 사회의 정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깡패나 이리떼 뒤에 숨으려 하더라.

모든 국가사회의 법질서는 자기들의 생각대로

성격을 달리하는 인생이 걸린 삶을 저들의 생각대로

판결하고 죄인을 만든다면 억울해서 어디에 하소연하나?

법규범이 말하는 대로 달라지고 힘이 없는 이들을

법도 무시해버리니 이러한 구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이가 어디 있겠나?

옳은 말을 하면 법에 걸리기도 하고 자리 따라 죄를

만드니 동일한 일을 해도 어떤 이는 형량이 높고

어떤 이는 무죄가 되듯이 법조인들이 자기들

이익만 생각한다면 사법은 무너지고 법은 오래가기에

자기들 후손이 받을 것이다.

다윗이 아들 솔로몬이 지혜를 돈과 보물에 팔아

너희 아버지와 할아버지 정의를 보아서 너까지 봐주고

후손 3대부터 멸한다고 하셨듯이 저희도 할아버지 세대

법보다는 입이 먼저 말로만 사고팔고 한 것이

오늘날 재판에 걸렸듯이 별거 아니지만

송장이 날아오면 그 순간부터 머리 복잡하여 그곳은

지옥 같은데 법조인들은 악을 쓰고 행세하는 곳이더라.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사전에 일반적인 법적

규준에 따라 관계를 생각하지 말고 명확히 규정하여

분쟁 방지에 정의로 와야 하는데 법 문턱에 있는 저울처럼

판결해야 하고 의혹이 남을 때는 먼저 피의자 편에서

판결하라 한 것은 말 한마디 잘못으로 억울하면 안 되니까.

사기 치는 머리를 만들어야 부자로 잘사나?

정의를 배신하고 양심을 버리고 어떤 구체적인

분쟁으로 증인이 될 때는 양심을 팔기도 하면서

이익이 가는 곳에 편을 들어주니 어이없다지.

당사자들이 자주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에

최종적인 공권적 분쟁 해결기구가 자리하고 권력 그리고 돈

그래서 유전 무죄 무전 유죄 하니 부끄러운 사법

낡고 오래된 사법 법보다 주먹이라고 하던 시절

법보다 독재 권력이 먼저라는 것은 수없이

보아 와서 법에 접촉 되게는 안 살려고 했다.

표현의 자유보다 표현의 언론보다 시급한 표현의 헌법

햇빛은 크고 작은 이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머리 위를 비추는데 툭하면 핑계 대는 표현은

어디에 써먹는지 아니면 말고 식이 아닌 책임이 표현이라면

사법은 확실히 정의표현이 법이어야 하더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옳은 말 하는 이 보면 정의로운데

적이 많은 것은 자기의 삶이 그에게 어떻게 비칠지

부담 가고 그 사람 좋은 이라고 마음으로는 칭찬

어쩔 수 없이 사나운 이리떼 뒤에 서야 살아남으니

우리의 사법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갈 길이 멀게만 보인다.

누구든 잘못하면 수사를 받아야 공평하지 그러기

위해선 공수처가 시급한데 사람의 마음이 배신하지 않을까?

고심해야 하겠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

기회는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 다 때가 있다고

이번의 찬스 놓치면 영원히 법은 고치기 힘들고

누가 그런 자리 만들어 주었나?

깊이 생각하기를 바라며 제일 먼저 사법제도가 바뀌었으면

 

 

사법의 자리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기에 고민하면서

판결하는 판사 의혹이 생길 때는 피의자 편에 서라는 것은

억울하면 안 되니까 정의롭게 하라는 법인데

사람이 한계라고는 하나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법을

이용한다면 무너지는 헌법이랍니다.

수없이 보아온 유전무죄 무전 유죄는 아직도 부끄러운 헌법

이기고 지는 싸움을 칼을 가지고 덤비니 안 보았던 망나니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시대에 사는 것을 민주라 할 수 있나요?

칼은 일상의 도구라 없으면 맛있는 것을 못 하듯이

인권을 다스리는 검은 심사숙고 해야 하는데 양날의 칼을 가지고

휘두르다 자기 발등을 찍는 격이 헌법이라면 법을 아는

사람은 빠져나가는 길도 알기에 말 한마디가 법이니.

말과 칼이 정의롭게 쓸 때 우리가 의존하는 헌법이지요.

사는 것에 법이 안 거친 것이 어딨나요?

나면서부터 호적 신고 죽으면 사망신고 이 밖에도

사는 것이 다 법이라 법치국가라고 하며 정의로운

법은 편리하고 특히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법인데

법까지 부와 가난을 차별하니 돈 없고 힘없는 약자는

억울함을 당해도 말을 못 하고 입맛대로 손을 들어준다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나요?

지키라고 있는 헌법인데 휘두르는 검에 얼마나 많은 이가

희생되었는지 나라 이름을 빼앗기고 그때의 일본 순사가

지금 검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니 이번 기회에 정의로운

법으로 꽃피기를 법은 사람들이 지켜야 할 규칙이고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하는 공동생활의 기준인데요.
우리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법이

이러한 것들을 보장해 주고 법치국가에서 약자들이 의존하는 법

만약 법이 없다면 권력이나 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갖기 위해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의 권리를 빼앗아도 꼼짝 못 하고 당하니

교육의 제도가 법조인이 되어야 자기의 보호막이 생기니까요?

세상을 안 바라보고 출세만을 볼 때 사법은 무너진다지요.

법의 제도를 세월이 간만큼 바꾸어야 하는데

법조인들이 악랄하게 발악하니 사법이 무너지는 나라

다시 법 개정을 하고 헌법이 꽃을 피웠으면 합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와 양을 구별할 수 있게 사법이

있는 건데 요즘 보면 검은 그림자가 뒤에서 가까운 사람이

조정하는 대로 따라가니 정신 차리라고 말하고 싶어요.

양의 탈을 쓴 이리가 휘 접고 다니니 참 기막힐 일이고

정의 사도 백의 천사들이 바이러스와 싸우는데

도움이 하나도 안가는 법인 것 같아요

약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에게 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가 사라져 어제의 친구가 오늘 적이

되는 법의 사회인가 봅니다.

권력의 힘이 아닌 근육의 힘을 키우느라

운동하는 이가 많아지고 억울한 이가 없게 하였으면

법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지 행세하라고

주어진 자리가 아니라는 거 알았으면 합니다.

 

법이 꽃

양의 탈을 쓴 이리떼가 많아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눈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

법을 만든이들이나 법을 아는 이들은 빠져나가는 법을 아니

애꿎은 힘없는 사람들만 법에 의존하고 법을 지키며

살아가지만 정말로 가고 싶지 않은 곳.

순한 양은 이리떼를 지키지 못하지만 이리 떼는 자기들

입맛에 들면 다 지켜주니 힘이 먼저인가?

그런 곳에서 날마다 죄인을 만들기도 하고

죄를 숨겨주기도 하느라 고생이 많기에 그런 이들 안 부럽고

사자의 눈으로 변해가며 신뢰할 수 없으니 없어졌으면 좋겠다.

창세기를 보면 인디언들이 사는 법과 비슷.

고마움 감사를 알고 양심을 먼저 지키고 가치로

인성을 평가하는 세상을 인디언들은 법이 없어도 알아서

자기들이 법을 지키는데 법치국가라 하지만

약자들이 넘어가기에 높은 법의 문턱

그곳은 사람 냄새가 없고 오로지 이익만 챙기는 곳

서초동 법원과 검찰청이 있는 한적하고 음침한 그곳

저울을 양팔에 들은 동상이 쓸쓸해 보이는 그곳은 가기 싫은곳

저 안에서 길잃은 양 목자를 잃은 양

떼 지어 다니는 검은 이리떼들 싸움이 끝나는 날 법의 꽃은 피리라.

 

 

법과 허리

헌법이 머리라면 젊은이는 허리

나라의 중심은 청년들의 허리라지.

70년 써먹은 헌법이라면 그릇이나

옷이나 숲도 나무도 그때의 문화는

남은 것 없이 다 바뀌었는데

왜 헌법은 바꾸지 못하나?

정치가 젊어져 허리가 되어가면

국민을 허리로만 바라보아준다면 하는 아쉬움만

지금 현실을 보면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다 해도 요즘 세상 애들은

달나라 가는 디지털 세상에 사는데 제도가

70년 전에 만들어진 헌법 한 발짝도

못 나가기에 앞서가는 진보적인 젊은이들

시대의 흐름은 갈라질 수밖에

자기의 인기로 디지털 세상이라 세계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국격을 만들었더라

돈이 판치는 현실에서 가치를 아는 예술인들이

외로 많기에 나라의 앞날이 보인다.

우리의 허리인 젊은 애들은 생각도 세상을 보는 눈도

깨끗한데 어른들 뒤를 따라가니 희망이 안 보이고

허리가 없이 미미한 원피스가 대한의 옷

허리가 있는 옷이 예쁘고 바로 청년들인데

 

 

헌법

탄핵이 없는 법의 꽃은 향기가 진 할 텐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탄핵이 유행되어 대통령이

시범을 보이니 창피하다.

대통령 파면을 선고한 헌재의 탄핵 노무현 박근혜  

선고내용의 핵심은 바로 이 부분을 아프게 찔렀기에

둘로 나누어져 진영싸움이 끝나 지가 않더라.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헌법정신을 수호하고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자격이 상실된다는 것을 

명문화한 것이 이번 헌재판결의 핵심

어디 그뿐이랴? 돈 앞에 이익 찾아가는 사람들

어느 쪽에 서야 이로울까 재면서 가는 배신자
언론의 자유라고 하지만 책임도 따른다는 거 안

배웠는지 아니면 말고 식인지 언론의 무분별한 글이

사람의 가치를 떨어트리고 생명을 죽이기도 하니

아이고 무서워 언론자유 훼손 주범으로 대통령을 

특정하기 어렵고 언론자유라 표현의 자유라 떠들기만 하지

특종도 정확히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장사하니 누가 언론을 믿을 건가?

간판이 브랜드가 되어 믿음이 없으면 브랜드도

인정을 안 해주는 데 부끄럽게도

언론자유가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명시되었으면

그래서 헌법상의 숭고한 가치로서의 

언론자유가 보기 좋은 꽃장식으로 헌법 조항에 

매달려 있지 않고 언론이 법이 되어버린 세상

 

 

 

헌법이 왜 이래?

이기고 지는 싸움이 시작되는 헌법이라면 옛날 사람들

몰라서 억울한 일 안 당하고 법이 제대로 되었으면 좋겠다.

뉴스에 나오는 장관과 총장만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사람들은 더 많은 법 속에서 살아가며

조금만 안 지키면 수사를 받는 곳이라 검찰청은 무서운 곳

법 만든이들이 떠들어대고 나라가 발칵되집어 졌다고

하는데 검사와 판사가 싸워서 개혁되어 법의 꽃이 피었으면

그동안 판검사가 하나 되어 약자들은 꼼짝 못 하였지

지금처럼 생각이 다르다고 다툰 적이 있었던가?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면 법의 자유도

있어야 공평한 것이 아닌가?

입맛대로 수사하고 난동을 부리는 곳이 아니고 억울한

이가 없게 사실을 위해 수사하는 곳인데 무엇이던

오래가면 낡아지어 냄새까지 나니까 그만 사법개혁을

하여서 모든 이가 평등한 법치국가에서 살면 좋겠다.

법이 엉망인 것은 직접 해당이 되어 법에 관심

가지다 보니 자주 구레 한 법들을 고쳐야 할 곳이 많더라.

알지도 못하는 할아버지 산골 땅 상속자가 되어

명의만 남기고 50년도 넘었는데 땅 찾아가라며 법에

논리로 골치가 아프고 쉽지가 않으니 참 어이가 없다.

어떻게 하나 할 줄도 모르고 법무사나 변호사 사서 하려니

비용이 엄청나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나?

말로만 사서 그 아버지는 죽고 아들이 양계장을 하는데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 별로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 변호사를 사서 상속자 주소를 찾으려고 28명에게

송장을 보냈다니 이게 무슨 코미디인가?

그 송장 보기만 해도 구역질 날 정도라 안 펴보았는데

머가 그리 많은가 보니 다 죽고 없는 자식들 3대까지

상속인이라니 연락도 안 하고 사는데 그 변호사는 주소를

어떻게 알았는지 정보가 법 쪽에서는 아니 불법사찰까지

하면서 자기들과 서민들은 다른 나라에서 사는 줄 아니 씁쓸하였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면 말이 안 된다고 했는데

법치국가라고 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으니 억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법대로 살지 않고 힘없는 이들만 지키고

자리 따라 말로 법을 만드는 모양인데 그러거나 저러거나 어쩔 수

없이 약자들끼리 싸움이 시작되니 이겨도 져도 그저 그렇다.

 

 

법의 공평

의혹이 가 확실하지 않으면 피고의 편에 서라는 것은

억울한 이가 없게 헌법이 있기에 그래서 자기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시시비를 가려주는 곳이 법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법도 이익 따라 만드니 사법은 무너지고 거짓이

흉흉해서 믿지 못하는 곳을 법조인들이 만들었더라.

법치국가에서 법을 안 지키면 범죄자가 되어 자리 따라

크기가 다르니 법은 만든이들을 위한 보호막이고 힘없는

이들이 지키는 법이었다.

법대로 하자고 큰소리치는 이들은 뒤에서 누가 봐주기에 믿고서 당당

하지만 죄를 안 짓고도 억울하게 죄인이 되는 법치국가.

법보다 주먹이라 허더니 요즘은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양날의 날을 세운 검인가?

신상정보도 그들만이 할 수 있으니 어쩌다 법조인이 저렇게 되었는지

자기들 죄를 모르고 엄한 이들을 치려고 휘젓고 다니나?

하지만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진리 그들이 벌 지금은 안 받아도

먼 날에는 그 후손들이 받더라.

그래서 조상 탓을 하고 우리가 아는 지혜의 왕 솔로몬도 돈과 여자

권력앞에 나중에는 타락하여 할아버지 이세와 아버지 다윗의 됨됨이가

훌륭하였기에 솔로몬 시대까지 벌을 안 받고 후손들은 갈라지었다지.

이렇게 법을 사람들은 자리 따라 먹이지만 진리는 공평하더라.

 

 

사람이 하는일

법은 인간이 만들었으니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안 되는 일 없다 하였지만 

법대로라는 말이 가진이의 무기 피할려고 하는 사람들과의 재판은 가진이

손을 들어주니 사람의 인정이 법에 부합되어 완벽할 수는 없더라.

하지만 어쨌거나 법이란 테두리가 안전 막이고 법이란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자유롭게 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더라.

생각이 다르니 저마다 옳고 그름이 틀리겠지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주어진 법

사람들의 인식으로 인해 어떤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의인이 되기도 하니까 법률가들은 말 한마디라도 억울한 이가 없게

판결해야 하는데 법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법의 판단에 따라 이리와 양이 되기에

분명한 것은 상황을 바라보는 생각이 좌우하기에 맘에 안맞게 판결하면

다시 승소하고 대법원까지 가니 사람의 하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더라.

 

관용

민주주의가 무너지려 하는 위기에 와있습니다.

정치에는 정답이 없고 정치에 보물은 어딘가에

숨어있기에 상황과 맥락이 그 보석이니

찾는 것이 정치를 아는 정답이랍니다.

민주주의 제도는 정치인만 믿지 말고 내가 바뀌어

갈 때 선거가 많은 나라에서 달콤한

말꼬임에 넘어가지 말고 잘못된 규범 절제하는

그런 지도자가 있을 때 민주를 지키며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양분된 저마다의 생각을 다 만족시키지 못하니까

튜표 % 수로 따지고 설득 대화 관용이 필요하다 합니다.

민주주의자와 극단주의자의 치명적 동맹

 

 

가산점

옛날에는 여성의 가치가 없어 차별한 것이 사실인 것은

조선 시대 에서부터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가며

설움 받던 여성들이 앞장서 가고 세상을 지배한 것은

남자지만 그 남자를 지배한 것은 여성이라고

최고의 권력자 위에는 여성인데 무슨 여성 대우로 점수를

더 준다고 하니 기막힌 제도 여성들이 사회 진출하니

남성들이 갈 곳이 적어지고 자리가 없는데

여자들을 위한 차별을 정치가들이 하고 있었습니다.

표 때문에 그러는데 허기진 굶주림에서 배가 부르니까

자유를 찾고 민주를 부르는데 다 이루지 못하고

독재 타도 외치면서 공정과 평등을 위해서 피 흘리며

버텨왔는데 한순간에 물거품 되는 것 같아 정신 차리지

않으면 옛날의 독재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여성들이 세계로 뻗어나가며 대학진학률이 이미 남녀

평등시대인데 국회서만 여성차별을 두는 것은 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위험한 일하는 사망자의 90% 이상이 남성 군 복무도 의무적인 남성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남성들을 위한 제도는 아무것도 없고

가치보다는 자리로 조건을 두니 남성들이 더 불리한데

말 많은 여성들의 그런 때는 침묵하다

임금 차별한다고 목소리 높이니 유난히 우리나라 여성이

매우 심하게 차별이라고 피해 의식을 가지니 부모들도 덩달아

남녀를 불공평하게 만들어 여자면 낳고 남자면 지운다니까

여자가 나오면 웃고 남자가 나오면 운다지요.
출산 휴가와 육아 휴가에 공무원들이 차별을 두니 그게 문제지

왜 제일위에 자리 있는 여성들이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실에 놓여있는 처지를 사회 내부 구조의 모순은

안 보고 여성만의 피해 의식을 내세우면 다른 약자들의

목소리는 침묵시키니 이들에 대한 차별은 그러려니 덮어두고

잘 나가는 여성 위조로 페미니스트에 대한 나쁜 인식을 키웠습니다.
총선에서 여성 입후보자가 여성이라 낙선했다는 주장은

모두 단 1명도 없기에 남녀차별이 줄었는데 어느 집단이

부추기는지 화가 나며 일부일처가 도입 된지가 오래되었고

한 부부가 가정을 꾸려나가기도 부모 도움 없이 어려워

남녀 부부가 벌어야 가정이 돌아가는데 지금 세상에 여자들에게

가산점을 준답니까?

 

 

약속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신뢰와 믿음 가까운 가족들이었습니다.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자기를 신뢰하는 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키라고 있는 것이며

거짓말이 죄 중에 큰 것은 믿지 못하기에

무슨 말을 해도 옳은 말을 해도 신뢰할 수

없기에 그런 사람들과는 약속을 안 한답니다.

 

 

녹색 나무숲

호랑이 생일잔치 하는 동화 나무숲의 공원을 읽었고

사우디 아리비아 공용 동화도 숲이었지요.

공용의 눈물도 나무숲이었는데 

소설 나무에서 배우는 인생이야기도 나무숲

친구 남편도 숲 해설가 되어서 건강도 챙긴다지요.

애연가였는데 숲에서 담배 피지 못하니 나무는

평화의 기술자며 건강을 지켜주는 선물이었습니다

더운 날은 그늘이 되어주고 추운 날은 바람을 막아주며

사랑하며 자식 키우듯이 사랑 먹고 자라는 나무는

병이 안 들고 철 따라 잎새마다 꽃이 피고 생명을 유지한답니다.

긴 잠에서 깨어나 생명 들이 움트더니 세상은 녹색 천지

등 굽은 나무 크고 작은 나무 저마다 다양한 나무

일찍 햇빛 가는 대로 마디마다 움트고

가지 끝의 눈을 깨워 잎이 하늘을 향해 자라고

바람이 부는 대로 잎새를 물들이며 길어지는

햇볕 따라 저녁때면 그늘 되어 동네로 내려온답니다.

공원에 매화꽃 복사꽃이 진자리 나뭇잎이 돋아나고

밤하늘 별들이 비춰주면 캄캄해도 동네 한바퀴

돌아다니는 사람들 지켜 줄 것 같습니다.

나무 심어 숲 공원을 만들어야 아파트 허가도 내어주니

나무는 우리와 뗄 수 없는 동반자

건강을 챙겨주니 사랑할 수 있는 나무

삶의 음지를 양지로 바꿔는 것은 마음에 달렸듯이

이 회색빛 빌딩 속에서 산소를 품어주는 녹색 나무

 

 

 

자유 의지

가짜가 판치는 세상에서 옳고 그름이 판단하기

어려운 현실이라 속이 상하 답니다.

아직 일부 사람들은 공동의식이 없어 깨어나지 않아

국력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어떻게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아니면 말고 식으로 남발하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좋고 나쁘고 머물지 않고 가고 오는데

자유란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지 틀린 것이 아닌데

툭하면 표현의 자유라고 떠들어대며

아니면 말고 식으로 무책임하게 남발하는지 속상합니다.

오래전에 배운 것이지만 지금에도 딱 맞는 말이었습니다.

자유는 책임이 있는 거라고 책임지지 않으려면

자유란 말을 하지도 말라고 가짜가

진짜처럼 들린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심지어는 표현의 자유까지 힘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면.

그러기에 자유의지라 부르며 책임을 묻는 것이랍니다.

 

유대인들이 사는 법

냇물이 도랑 타고 흘러가서 강물이 되고 강물이

도랑 타고 걸러 가며 흐르다가 바다에서 만나듯

관심을 안 두기에 보이지 않아도

바다에서 품어주는 물은 냇물이고 강물이었답니다.

산림녹화가 전 세계에서 알아주는 우리나라

소나무만 심지 않고 잡목을 많이 심어 어울려

엉키고 살아야 더 아름답다고 합니다.

자연은 물이나 산이나 공동으로 커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공동의식이 없고 혼자 잘 살면 그만 이고

더 심각한 것은 권력이나 돈 앞에 양심을 파는

것이기에 부끄러운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라 합니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는 것은 머리가 좋은 것이고

유대인보다 더 머리가 좋다니까 공동체가 잘 이어진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답니다.

물론 국력은 경제지만 공동의식이 있는 유대인들은

주식을 사며 돈을 돌리면서 경제를 살리는데

우리나라는 부동산을 사기 때문에 가두는 것이라 합니다.

너와 내가 살아야 하나가 커진다는 유대인들의 사는 법은

서로가 공동의식이 있기에 믿음을 우선으로 하는데

우리나라는 기준을 의심부터 하기에 문제가 많고 

국력이 없으면 아무리 부동산이 많으면 무엇하나요?

나라가 가난하면 한순간에 다 뺏기는데 풀지 않고 가두며

나만 살라고 하는 것이 미련하고 부끄러운 삶이랍니다.

강물이 도랑으로 흘러가서 바다에서 만나 하나가

되듯이 여러 가지 생물이 사는 바닷속 혼자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넓은 바다에서 볼 수 있다 합니다.

 

 

 

하나

시작은 끝을 향해간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 까요.

잠안자고 가는 시간이 세월을 만들고

나이 숫자뿐 아니라 몸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20세기였던 우리들이 한시대가 가기전에 막을 내리고 

온라인이 사람을 대신하여 기계화가 되어가는 현시대서

사람냄새가 그리움을 먹고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칼로 깎던 연필문화가 자동으로 내리고 올리는 연필이라도

지혜는 옛날이 사람이 나은것은 지식만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지혜는 경험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만큼 살기좋은 현실을 누리고 살수있는 것은

역사의 아픔속에 잃어버린 나라를 찾으려

생명을 던진이들의 뿌리가 있기에

우리가 덕을 보고 있으니 고맙고 감사하며

힘이 없다고 침략을 당하기만 한  우리나라

 가난은 영원한 것 없다고 지금은 세계의우뚝선 대한민국

가난을 겪어봤으니 남의 나라일이라고 생각안하는 마음이 신사랍니다.

식민지와 전쟁속에서 나라를 뒤찾은 끈기있는  대한의 사람들

시련의 갈등속에서 불으를 이겨내고 죽지 않고

살수 있는 것은 그시대의 힘이 없을 때 매달린

기도덕분이었다고 감히 생각해봅니다.

하나는 약하지만 모이면 단단해지는 대한의 사람들.

저마다 꿈은 오로지 나라 이름을 찾고 하나로 모아지려

한마음을 가진 동지얘 저마다의 삶의 무게가

달라도 목적은 하나이지 않았을까요..
진리가 담긴 성경 말씀도 어느 답이 없어

생각대로 해석하지만 거룩한 말씀이기에

비유지만 그대로 살아갈때 거룩한 삶이 라고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가 불안하기에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글이나 말 연장도 되지만 따지지 말고 걸러서 들었으면 합니다.

말이 법이 되었던 시대에는 그때의 문화가 유행이었고

현실에서는 구식이 되버리었기에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때에는 최고의 도구였답니다.
하찮은 하나를 작은 거인이라고 하듯이 세상은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미담이 있으며 속이꽊찬

영근 알맹이가 있기에 뭉쳐진 단단한 하나였습니다.

한세기를 100년이라 하였나 그렇다면 우리는 20세기 거쳐

21세기 어릴때 달나라 별나라 가는 꿈은 상상이었는데

그 시대에 가까이 가는 현실 행사가 어두운 밤에 열리는 것은

디지털 반짝임이 어두움을 밝혀 주니까 동계올림픽

밤하늘 수놓은 것은 사람이 만들어놓은 온라인이었습니다.

나라잃은 서름속에서 살아남은 뿌리들이 유한한 사람으로 

전기와 놀지만 편리함에 만족하지 않고 머리 공부를 하니

사람과이 온정도 이제는 기계화가 되어가며

온정은 흘러가되 새로운 도전을 하라고 전기를 주었으니

후손들에게 연구하는 지혜를 남겨 주어야겠습니다. 

나고 죽음이 있다면 한 번뿐인 인생 시작과 끝은

노인 청춘 애들 모두 하나였습니다.

똑같지만 시대 따라 유행하는 문화 따라 흘러가지만

그 하나는 더 단단하게 크고 예쁜 나무며 잎이고 꽃이 된 하나였습니다.

 

 

 

상황

겨울에 잠만 자는 줄 알았던 나무들이 새봄이

온다고 요동치며 움이 트고 새싹이 나와 꽃천지 

자기 상황 따라 사는 이들을 누가 평가하리오.

어떤 일이라도 누가 힐끔힐끔 처다 보아도 아무

문제가 안 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위해서는

거지행세면 어떤가 구걸하면 어떤가요?

전쟁에 먹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그들의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들

보면서 갑자기 서민의 아버지가 보였습니다.

전동차를 타고 지나다 보면 반갑게 인사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몰라도 오랜만이라고 아는 척

은 하는데 누구인지는 몰라도 본듯한 얼굴이었습니다.

젊은 날 엄마는 목에다 힘준 것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서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이 주어졌지만

세월이 한참 지나가니 누구의 엄마는

할머니가 되었고 슬프게도 혼자 움직이지 못하여

다리 역할 해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하고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옛날의

나를 돌아보면서 새로운 인생관을 열어간답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다고 이미 오래전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그런 사람이 바로 나였습니다.

가게 없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노점상으로 장사하여도

저마다 목표가 있기에 내 마음대로 그를 바라보면 안 되겠지요.

지하철역 앞이나 길목에서 거지 행세해도  나중에는

개가 천사 해서 훌륭하게 되기도 하니

내가 본대로 평가하면 안 되겠지요.

부러워 보이는 이나 측은하게 보여도

내 생각으로 보는 것이었고 나름대로 이유가 없는 이가

없다니 내 생각이 다는 아니었습니다.

상황 따라 위치가 정해지며 겨울도 봄도 만들고 있었습니다.

 

믿음

거짓이 판치며 동정으로 마음을 빼앗기어

일부러 불쌍하게 보여 장사하는 것 같아 믿지를 못하니

구차한 처지에 있는 이들도 인정이 메마르고

속고 살다 보니 진짜도 가짜로 보여 믿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가기에 믿음이 실종되어 가는 것 같아서 속상합니다.

오래전에는 체면이나 남 보여주기로 살더니

지금은 그렇게 살면 뒤떨어진 사람으로

무시해서 이익을 위해서라면 배신이 대수롭지 않은 것 같아요.

줄을 잘 서야 생활이 안정되어도 결국은 들통나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들은 다 몰 수 하니 어쩌면 세상은

불의가 판치는 것 같아도 정의가 승리하고 또 좋은

세상으로 바뀌려면 노력하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해주겠지 하지 말고 행동하지 않으려면

참견도 하지 말라고 이 말이 정답이며 믿음은

속이는 사람이 잘못이지 믿은 사람이 잘못은 아니기에

점점 세월이 흐르는 대로 새로운 날이 되어

신뢰가 바탕으로 브랜드가 인정하는 젊은이들을 위해서

브랜드가 생겼으니 옛날 말이 법이었던 시대는

현실의 믿음으로 인정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을 보고 신뢰하여 꾸어주고 받고 하였지만 말보다는

서류가 인정하는 시대이니 말에는 오고 가는 정을

이용도 하지만 글은 증명이 되고 동영상이

믿음이 되었으니 제일 확실한 것은 믿음이었습니다.

 

 


여자 남자

남자 위에 여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서로를 위하는 남녀평등은 책임 있는 자유를

한 발짝 앞서서 불렀나 봐요.

남자가 사람이라면 여자는 생명이니 두 사람이

결합해서 하나가 되어 촌수가 없는 원이 되었다지요.

처음 맘은 순한 양으로 살더니 변하여 사나운

이리도 되니 세상의 어머니인 줄만 알았는데

여자들은 변덕쟁이가 되고 요물인가요?

피어있던 아름다운 꽃잎이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잎새도 되는 것을 살면서 보았습니다.

갈수록 남녀평등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남자가 지배하였다면 그 남자를 지배한 사람은

여자라니 부드럽지만 힘세고 다 그런 것은 아니기에

보편적으로 그래서 몇 % 가 결정하나요?

남자를 보면 여자가 보인다고 옛날 운동화를 빨면

누런 비누 자국이 남아서 박박 문질러

깨끗했는데 장가가더니 늘어진 양말에다 줄이

안 선 바지를 입고 아이도 밀 빵 끈으로

업었으니 그것을 본 어른들의 눈에는

한심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답니다.

엄마가 되면 순한 여자는 없어지고 호랑이 엄마가

된다니 남자들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불쌍하답니다.

커가는 대로 여자의 기세가 세니까 늙어서까지

불쌍한 것은 남자 그래서 장가를 잘 가야 하는 것은

여자의 마음에 달렸다고 합니다.

옛날에도 여자 하기에 남자가 선비도 되고

바보를 만들 듯이 세월이 가는 대로 여자의

자리는 넓어지고 남자의 자리는 좁아진대요.

힘이 보배였던 시대는 지나가고 남자들이 큰소리

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다고 한답니다.

남자가 나무라면 나무에 올라가서 흔드는

여자가 무서운 것은 잔디밭에 떨어지면 재수가

좋지만 바위에 떨어질 수도 있으니 아픔이 다르겠지요.

남자는 괜찮은데 여자를 보면 그 남자가

괴물처럼 보이기에 여자들이 꽃으로 향기 나는

삶이 남자에게도 베었으면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식민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더디가도 꾸준히가다보니 목적지가 나오듯이

양심은 사실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인권을 말살당하던 식민지 시대 노예가 되어

악날하게 서름 당했던  35년

한이 맺히어 오유월에도 서리가 내리더니 

나라를 되찾고 겨울에 꽃이 피고 있었습니다 

부나 돈이 전부인 현실에서 가치를 심어주고

깨어있는 사람들 그들이 있어 나라가 돌아가며

국격이 가치로 순번을 먹이는 것이 아니고

부유를 따지니 슬픈 일이지만 전 세계의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랍니다.

악법도 법이라고 하는 사람도 자기의 생각이고

직업이 떳떳하지 않으면 한마음으로

갈 수 없다고 제도를 탓하면서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죄를 합리화시키었던 것이었습니다.

식민지 노예 노비로 정신을 못 차리고 살았기에

나라 잃은 슬픔 겨레의 역사 아픔 속에 오늘날

여기까지 이루어 낸 것은 제일 먼저 민주와 자유가

보이지 않는 길을 헤치었기에 길이 보였고

고문과 죽음으로 민주화 를 만들었는데 

지키는 것이 이렇게 힘든것은 생각이 쪼개지었고

부와 가난이 아직도 주인과 종으로 노예제도가 남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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