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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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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들여다보면 전쟁이 보이고, 전쟁을 들여다보면 역사가 보인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전쟁을 빼놓고는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게 되었으며, 철학자로부터 생물학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은 자기 학문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나름대로의 해답을 제시하였다. 특히 전쟁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왜 전쟁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어떻게 전쟁을 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해답을 제시하였다. 이 때문에 전쟁사를 통해 세계 최강국 중의 하나인 중국을 이해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삶과 의식뿐만 아니라 반만 년 동안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며, 나아가 동아시아를 이해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문명유기체-중국전쟁사
중국사에 나타난 통일과 분열의 순환적 구조 저자는 중국전쟁사를 크게 세 가지 틀로 바라보았다. 첫째, 통일과 분열의 순환적 구조이다. 애초에 중국이라는 실체는 황허강 중류에 살던 상족(商族)이 세력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되었으며, 상을 계승한 주 왕조 때 이르러 ‘천하(天下)’라는 개념으로 정립되었다. 천하는 하늘의 뜻인 ‘천명(天命)’을 받들어 땅 위의 평화와 번영을 구현하는 ‘천자(天子)’가 다스리는 땅을 뜻한다. 만약 천자가 천하의 질서와 안정을 유지하지 못하면 천명을 잃은 것으로 간주되었고, 천하는 분열되었다. 그러면 누구라도 분열된 천명을 받들어 천하의 평화를 회복하여 천자가 될 수 있었다.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대결과 연대 둘째, 중국전쟁사를 5천년에 걸친 농경민족과 유목민족 간의 끊임없는 전쟁과 동맹의 과정으로 파악하였다. 초원을 떠도는 유목민족과 정착생활을 하는 한족은 생활방식의 차이와 정치적 이해 때문에 빈번하게 충돌하였다. 이들의 전쟁은 근거지에 따라 초원지대에서는 기병이 주력인 유목민에게 유리하였고, 정착민족인 한족은 산악과 성채를 이용하여 승리했다. 이와 함께 유목민족과의 싸움에 지친 한족 왕조는 이들을 끌어들여 내부의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다른 유목민족을 제압하기도 했다. 유목민족은 한족 왕조가 무력해지면 반드시 중국을 침략하였으며, 중국 땅에 정착하여 중국식 왕조를 세우고 한족문화에 동화되었다. 또한 군사적인 면에서도 한족 군대의 장점인 보병을 적극 활용하여 강력한 군대로 발전시켰다.
천명의 징표, 농민봉기군 셋째, 통일과 분열의 과정에서 자주 일어난 농민군 봉기를 중시하였다. 과거 왕조시대부터 농민층은 피지배계층의 주된 축을 이루며 왕조의 흥망에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천하가 어지러워지면 봉기를 일으켰고, 많은 왕조의 창업자들이 농민군을 등에 업고 천하를 얻었다. 또한 농민봉기가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왕조의 몰락을 앞당기는 충분한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농민봉기는 왕조가 몰락하고 천하가 분열되는 과정 속에서 일어났으며, 시기적으로 이민족의 침략과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흥미로운 점은 관료와 지식인에 해당하는 한족 사대부들의 태도로 이들은 농민군에 협력하기보다는 이민족 정복왕조에 귀순하는 쪽을 택했다. 이처럼 중국전쟁사는 한족 농민군, 한족 사대부, 이민족 정복왕조 등의 이해관계가 서로 얽히면서 분열과 통일의 구조 속에서 역동적인 모습을 연출하였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중국 역사의 생명력을 찾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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