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시/시사랑

루 살로메에게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우리들 이야기 2009. 12. 24. 12:26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루 살로메가 36살 되던 해이다. 뮌헨대학에 다니며 시를 발표하고 있던 릴케가 그녀를 만난 것은 불과 22세 때다. 어느 문인의 집에 초청되어 갔을 때였다. 첫눈에 반한 릴케는 루에게 계속 편지를 보냈다.

“저는 기도하는 심정으로만 당신을 보았습니다. 저는 당신 앞에 무릎 꿇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만 당신을 열망했습니다.”

세계문학사상 가장 고매한 정신의 소유자로 일컬어지는 릴케마저 그녀를 평생토록 잊지 못하고 흠모한다. 릴케는 루 살로메부부가 처음으로 가는 러시아 여행에도 함께 갔다. 이후 두 번에 걸친 러시아 여행에서 릴케가 얻은 영감은 그의 시작(時作)에 일대 파란을 준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만도 릴케 사후 400쪽이 넘는 책으로 출간될 정도였다.
 
원래 살로메는 정신적 애인과 육체적 애인을 따로 구분해서 사귀었다.

그런데 릴케에게만은 좀 특별했다. 거의 4년여를 누이이며 연인으로서 릴케의 곁에 있었다.

 결혼을 한 루가 14살이나 연하인 무명시인 릴케의 실제적인 아내나 다름없었다. 루는 릴케가 자신에게 최초의 육체적 실재였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이렇게 위험하고도 신비한 마성의 그녀는 릴케에게 결별을 통고했다. 그의 천재성이 이미 세인들에게 알려졌음에도 릴케가 너무 자기에게 의지하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릴케의 문학적 성숙을 위해

 살로메는 그 곁을 떠나기로 작정한 것이다.

릴케는 루를 만나기 그 이전에도 연상의 가정교사와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평생 여러 여인들의 배려 속에 작품 활동을 했지만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여인은 루 살로메였다. 루를 향한 릴케의 사랑도 격정과 비극 그 자체였다. 릴케는 장미가시에 찔려 죽는 순간까지 이별은 했으되 가슴 속에서 루를 지우지 못했다.
 
훗날, 릴케는 ‘클라라’란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의 유별난 장미사랑이 시작된다. 릴케는 손수 장미를 심어 가꾸고 그 향취에 매료되고 사색하느라 거의 정원에서 살다시피했다. 어느 날 친구가 릴케의 집에 미모의 이집트 여인들을 데려와 소개를 해줬다. 릴케는 그 여인들에게 장미꽃을 꺾어 바치려다가 그만 장미가시에 손가락이 찔리고 말았다. 장미를 너무 좋아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사랑이, 열정이 식지 않는 가슴이, 손가락이 붉은 피를 뚝뚝 흘렸다. 그 때문이었을까? 장미를 찬미하는 시를 수도 없이 썼다. 뿐만 아니라 죽기 1년 전에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유언장과 묘비를 직접 써 놓았는데 그 묘비에도 장미가 등장한다. 당연히 그의 영구차는 그토록 그가 좋아했던 장미꽃으로 수를 놓았고 묘비 둘레에도 덩굴 장미를 심어서 얼핏 낭만적인 그가 깊은 잠을 자기에 충분했으리라.

 

장미/ 오, 순수한 모순/ 그렇게 많은 눈꺼풀 아래/ 누구의 잠도 되지 않는 기쁨

필자는 릴케가 루 살로메를 잊지 못하고 그녀 대신 장미를 품었던 게 아닌가 한다. 장미가시에 찔려 사경을 헤매면서도 그에게 그녀는 이별할 수 없는 누이이자 지워지지 않는 신부였기에 말이다. 결국 릴케는 숨을 거두기 전에도

살로메가 보고 싶어 주변사람들에게 이렇게 사랑을 호소하였다.

“나의 그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루 살로메에게 좀 물어봐 주십시오.”

아무렴, 아무도 담담할 순 없었다. 살로메도 릴케가 클라라와 결혼하고 자기가 버린 ‘레’마저 산에서 추락사하자 무척 상심하여 심장병을 얻는다. 그 때문에 옛 애인 피넬레스를 찾아간다. 그에게 치료를 받으면서 두 사람의 애정관계가 회복되어 아기까지 생겼다. 아빠가 될 꿈에 부푼 피넬레스의 청혼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이혼할 뜻이 없음을 밝힌

살로메의 심중엔 무엇이 있었을까.
 

내 멜로디에 당신이 부여한 높은 옥타브

 

루는 남자들과 함께 있는 것을 즐겼음에도 결코 그들에게 얽매이기 싫어했다.

남자들이 원하는 것에 신경을 쓰기보다 온전히 자신의 창작활동을 통해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확대해 나갔다. 자유로운 영혼과 자유로운 현실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니 남성이나 가족의 굴레에 연연할 수가 없다. 마침 기존 도덕과 관습에서 탈피하고자 자아를 추구하는 여성들이 대두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남성들만이 하던 학문에 뛰어들거나 혹은 예술가가 되는 길을 찾았다.

 자유연애는 이들이 던진 도전장인 셈이다.

그리고 루의 궁극적인 관심은 ‘생의 근원’이었다. 문학에서 그 해답을 찾지 못한 루는 지적 갈증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그녀가 50세가 되던 해에 철학자 프로이트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된다. 이후 프로이트와 각별한 우정을 지속했다. 그녀야말로 사랑과 지성의 탐닉자였다. 루는 성은 본능이며 인간의 가장 귀한 욕구이며 성애와 예술적 창조,

종교적 열정은 생명력의 서로 다른 측면일 뿐이라고 파악했다.
그러므로 여러 남성들과 사랑을 나누며 그들을 정신적으로 고양시키기도 하고 한편으론 황량하게도 했다. 정신과의 비에레도 그렇다. 그는 살로메와 프로이트 사이를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을 뿐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제자 타우스크가 살로메를 짝사랑하다 자살을 했는데도 루에게 연인이며 후원자로서의 역할을 평생토록 했다. 그녀가 생활하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지속적으로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실제 프로이트의 서재에는 살로메의 사진이 늘 걸려 있었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7년 뒤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결혼을 하고도 자유로이 떠돌았던 그녀가 이따금씩 남편을 찾았던 만큼 죽어서도 남편 곁으로 돌아갔다. 남을 의식하지 않는, 너무나 오랫동안 피부 밑으로 흐르는 여성의 수치심과 대치해온 것이리라.

자유를 향한 고군분투 말이다.

<출처 독서신문 http://www.readersnews.com/sub_read.html?uid=13245§ion=sc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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