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나의 이야기

내가 싫어<미안하다>

우리들 이야기 2020. 12. 18. 10:59

 

내가 싫어.

내 생각을 이해하는 사람과 가장 통하기에 이야기가 되고

돌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가나?

각계각층 주어진 삶이란 게 저마다의 기준은 달라도 같은

세월이 사람들이기에 이해하다 나와 다르면 흉보고 내 기준에

맞추는 버릇이었지만 요즘 아이들은 제멋이란 걸 알기에

서로를 참견 안 하고 다른 실체기에 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니까

나는 더 옛날 사람의 근성의 때를 못 벗은 거 같아 미안하였다.

버릴 것은 버리고 지켜야 하는데 문화의 차이가 배우는 학생

그렇다고 기죽을 거 없는 그러려니 한 부끄러운 문화

그런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기에 통하는 것도 그때의 사람들

겉으로는 걱정 없는 척 속을 감추며 살아온 날들이 내가 싫다.

 

미안하다.

온전치 못하여 누구에게나 다 미안하였는데

그 아픔을 내려놓으니 더 고마움과 감사가

감돌고 사람들에서 한해의 속도가 보였습니다.

정신이 나고 어차피 나는 세월을 못 이기고

넘어졌지만 내 옆에는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옛날의 나의 모습이 아니라 좋아진 현실에서

경쟁자는 많아도 삶을 즐기며 세대 차이가 나지만

사랑은 시대 따라 다른 거 같아도 하나였습니다.

한세상 길고 짧은 것은 생각이 만들고

마음의 거리는 해를 보내면서 허무하였습니다.

요즘의 엄마들은 나를 스스로 대접하는데

우리 때는 나는 없고 가족을 먼저 알았기에

흉과 칭찬으로 체면을 지키는 못난 세대였습니다.

실속으로 사는 요즘 사람들 내가 있어야 세상도

있는데 그래서 가장 나한테 미안하고 미안하답니다.

 

미안하다.

사무적인 이야기는 심란하지만

실없는 소릴 해야 웃음이 난다.

그래서 삶은 농담 따먹기 아니면 헛소리를 읊어본다.

코로나 19 악성 바이러스가 강타하는데

더 춥게 하는 것은 떠드는 나랏일

이슈는 우리의 삶이기 때문이다.

이리와 양들의 싸움이지만 부드러운 바람이 센바람을

밀고 가며 봄이 오듯이 봄바람은 추위를 이기고 오더라.

겨울 그림이 아닌 나비 날고 꽃피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미안하다.

삶은 기쁨과 슬픔 들이 함께 가고 있나?

누가 나에게 왜 슬프냐고 묻는다면 나의

아픈 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진행 중이니

기쁨을 어디에 맞추어야 할까?

웃음이 많은 이들에게 주는 선물 같다.

한바탕 거침없이 웃을 수 있다면 속이 뻥 뚫리겠지.

웃는 건지 슬픈 건지 알 수 없는 모나리자

눈빛처럼 웃어도 마음은 울기에 호탕하게 웃지를 못하나?

소외되거나 무관심한 존재로 남는 것은 슬프겠지만

어둠 속에서 애타게 부르는 소리 외면하지 않았나?

나를 돌아보면 내 탓이오! 가슴을 쳐봅니다.

눈물이 있었기에 웃음이 두 배로 기뻤다면

슬픔 뒤에 오는 환희가 두 배의 기쁨이었듯이

슬픔도 아픔도 기쁨도 웃음도 함께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었습니다.

보이는 타인의 고난과 시련에 나의 상황이 위로되었고

지나친 관심은 부담이었지만 무관심은 서운한 것은 사랑이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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