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하느님 사랑/주님의 말씀.나의 생각.

열려있는 문

우리들 이야기 2021. 3. 23. 16:05

 

 

열려있는 문
비밀번호를 몰라도 들어올 수 있는 우리들의 문

열어주지 않아도 마음 놓고 들어오고 나갈 수 있는

우리들의 문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은

내 집을 찾아주는 이는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불편한데 잘 지내고 있느냐고?

돕지 못한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의 마음이라고

나를 꾸짖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이에요? 한 번도 관심 안 주기에

주님 원망이 이제는 지쳐서 포기하였답니다.

들어가지 않고는 나올 수도 없는 문인 줄 알았는데

닫혀있는 문도 들어 올 수 있는 분이었지요.

나는 안 돌아보고 다 이유가 있는 것인데

원망은 절망이지만 감사는 희망이라는 것을 느끼게 하시더군요.

세월의 약이라고 하지만 생각하기 따라 거기에 있기에

공정하신 주님이셨는데 내 맘대로 주님을

평가했으니 세상에 기적은 없다고 하면서도

당신을 설마 하며 믿지 않으면서도 댈 되 없으니

주님을 찾으면서 원망하기만 하였으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기도라고 주님 저의 기도 들어주소서

하면서 예를 들어 하늘의 달을 따달라고

하거나 별세상에 살고 싶다고 날개라도 달아주어 날고

싶다고 떼쓰면서 간절한 마음은 걷는 것이었습니다.

남보다 빨리 가려고 높은 구두 신고 달려 다녔는데

그때는 일이 많고 불러주는 곳이 귀찮았는데

그리움이 되었으니 세상 허무만이 나를 슬프게 하였고

뒤늦게 주님의 고마움 감사를 알게 하였습니다.

나를 찾아주는 사람으로 위로가 되고 심심하지 않더니

서서히 방문이 뜸해지더니 이제는 비대면을 핑계 삼아

와 주는 이들이 없어지고 가족들도 거리가 멀어진 것 같습니다.

사는 것이 서로의 문화가 달라도 진실과 사랑은

하나이기에 만나면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이들이 가족.

가족이 있어 어두움에서도 세상은 환하게

비추고 삶을 샅샅이 비추면서 어둠을 몰아낸다는 것은

아쉬움을 해결해달라고 간절함을 말할 수 있는 주님이 빛이었죠?

비유기에 이유를 붙이거나 따지면 안 걸리는 것이

없지만 거룩한 말씀이고 잘못은 나에게 있는 거니

희망으로 가고 있답니다

나의 길을 따라오려면 가시덤불도 헤치고 따라오라

하셨지만 험난한 길을 따라갈 사람이 어디 있으며

보이지 않는 길을 어떻게 가겠습니까?

주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 말씀으로 빛이 생겨라

하시니 그대로 된 것처럼 삼라만상이 고개를 숙이는데

내가 무어라고 고개를 들고 산답니까

자신을 낮추는 법도 알려주었습니다.

기묘하게 그래서 주님은 신비라고 하나 봅니다.

거저 주고받는 것이 없다고 하는데 필요한 것을 싸게 받았는데

그렇다면 주님 빛이 되는 것은 무조건 받을 겁니다.

그 주님의 빛을 가족에게 비추어주소서.

무거운 십자가는 제가 다 지게 하시고 가족애들은

꽃길만 가게 하시어 높은 곳에서 해바라기 되어주소서.

저와 애들 빛을 찾아 부지런히 따라 움직이게 하소서.

들고나오는 문이 있으니 비밀번호 몰라도 주님은 저희

가족에서 제일 윗자리에 모실 테니 저희에게 빛을 비추어주소서.

비밀번호 없이 들어오는 가족이듯이 언제라도 들어와 주소서.

 

영혼의 문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신비로부터 시작된 죽음에서

생명을 찾아가기에 영혼의 문을 두드린답니다.
전쟁 때는 잘 곳이 없어서 허술한 방이라도 택하였는데

그들에게 내줄 빈방은 없습니다.
내어 줄 수 없는 빈방이라면 잠긴 방과 무엇이 다를까요?
생각지 않은 이 아픔이 왜 나에게 온 것인가?

왜 하필 나인가?

이런 끔찍한 일이 왜 나한테 벌어지는가?’

주님을 섬긴 내를 왜 이런 부조리로 눈감는가?

하필 나에게 왜 이래? 해당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누구 보다 잘살아보려고 했는데

내 맘대로 안되는 것이 현제의 상황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일이 왜 하필 나한테 생긴 것인지

속상한 것은 옛날이 그리 화려하지 않아도

그리운 것은 현실에서 만족하지 못해서였습니다.

워커에 의지해야 걸을 수 있는 변화된 나의 신체에서

아무것도 못 하니까 시간과 뒹굴며 쌓여 지는 것은 생각이었습니다.

나의 빈방이 이제는 안방이 되었고 나의 빈 가슴은

사랑으로 채워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습니다.

브랜드가 믿음이 된 세상에서 곧이곧대로 믿는다는 것은

바보 취급받거나 예수쟁이라고 부른답니다.

하지만 이미 당신은 내 영혼의 집이며 비유라고 해도

거룩한 말씀이기에 그대로 믿을 겁니다.

믿음은 자기의 마음이라니까 구하는 기도에서

이루어지면 네 믿음이라고 하시었으니 주님은

한 번도 자신의 기적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믿는 마음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하고 속였으면 벌을 주소서.

살다 보면 아는 일도 실수를 하듯이

우리 마음 들어주지 않으면 주님의 실수라 하며

심하게 말하면 위선자라고도 해도 그 자리서

우리가 변화하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계신답니다.

태양이 빛을 내는 것은 빛을 받는 피조물이

있으니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자연에서도 보여주었습니다.
배고픈 이에게 먹을 것 주고 목마른 이에게 물 한잔

주는 사람이 주님이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살면서

예수님은 찾아왔는데 안 보았으니 눈이 멀었나 봅니다.

시대 따라 지금은 끼리끼리 상대하는데

마음 까지 가난해야 한다고 하시면 누가 인정을 해준답니까?

믿음이 없어도 타고난 성품이 있는 것인지

당신은 안 보여도 빛과 소금 역할 하는 성령들이

세상을 이끌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가난이 죄가 된 세상이라 감추려고 하며

비어있는 창고처럼 가난한 마음이 겸손함이지만

인정 안 해주고 부자만 문을 열어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