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하느님 사랑/주님의 말씀.나의 생각.

작은 신

우리들 이야기 2021. 8. 4. 08:01

신화 1

신화는 옛날 이야기 같지만 과학이기도 하고 하였습니다.

시대따라 달라도 선과 악은 따라 다니기에 과학으로 풀수 없으면

신비라고도 하지만 궁금해지는 것이 옛날의 위인들었습니다.

먼저 고향과 나이 됨됨이가 안보여도 이름이 되어 남아있으며.

하늘과 세상의 손을 잡은 천지창조 그림이 신화적이었습니다.

하늘에서는 보이지 않는 신을 절대적 존재라하고

보이는 세상은 자리로 은총을 입었다하니 세상의 힘은 위치며.

안 보이는 신화는 도덕성과 창조력이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유한이 있는 현대과학이 어떻게 무한한 세상을 풀수 있을건가요.

그러니 신비라고 하며 양심 대로 사는이들이 천국을 맛보며

끝없는 하늘 먼날까지 영원히 따라 다니며 이름이 남는 답니다.

 

 

신화 2

에덴은 기쁨으로 울타리 쳐진 공원이라지요.

좋은 말로 꾸미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옛날이야기나 신화라도

생각하는대로 해석하는데 정의로운 자랑거리만

쓰자면 마음도 기뻐지며 우리의 낙원은 천국

에덴동산이 마음에서 가는곳이며 동산을 지키는

수문장을 꼬시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아름답게

잘 살아가는날 에덴동산은 가까이 있겠지요.

 

신화 3

상징이 생명의 그림자였고 살기위한 수단속에서

과정이라 보이는 세상과 안보이는

세상에서 마음이 흔들리지만 정의는 같았습니다.

여의도뿐 아니라 생각의 전쟁이 내부나 자신과의

양심 싸움 갖혀있는 정치가 광장으로 나와서 시골과 도시를

연결시킨 장미닮은 사람들 코메디같은 현실의 정치가

우리들의 삶이지 않았나 관심을 가진이들이 많았으면 하며

누군가 보이지 않는 숲속을 가며 날따라 오라 하신 사람이

주위에 있기에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안전 하였습니다.

길을 만드는 사람따라 가며 헝크러진 숲을 싸우면서도 가고

세상의 쉬운일이 없듯이 편한 길은 없었으며

세상과 싸우다가 죽으면 끝이 아니라 하늘의 무한의 세상은

영원하고 보이지 않는 마음으로 심판 받듯이 마음이 몸을

움직이며 생명은 모습에서 보이고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에는

땅속에서 생명이 잠자고 미풍이 찬바람을 밀고가면 봄이 오니

답답한 땅속에서 살다가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면 지구는 잠도 안자고 돌고 있었는지 변하는 철따라

인생은 저물어도 이해가 안가기에 풀지못하는 우주속에

자신이 일부라 대단한 존재였으며 아무짝에도 사회서는

쓸모없어도 안 보이는 신화적인 세상을 가는 나였습니다.

 

교무금

오래전 높게만 느껴졌던 성당의 문턱 세상에서

바라보는 그곳은 기대 이하였지만 어딘가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을까 교리를 열심히 받았습니다.

영세하고 아무것도 모르니 책임감으로 주일미사를

참석하는데 일주일은 빨리 오고 헌금은 아깝기만 하고

교무금은 밀리고 있었습니다.

끝나면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녜 대답하고

성당 문을 나서면 복음 말씀을

잃어버리고 바로 세상과 싸우는 삶의 현실이었어요.

사랑은 용서라고 배웠기에 미운 사람도

그의 좋은 점을 찾으려 하였고 현실의 삶에

집착한 것은 그 안에 살고 있기에 더 그랬나 봐요.

미워지는 마음은 관심이었고 모든 것은

지나가는데 내 맘대로 평가한 것이 부끄러웠으며

신앙은 무엇인지 조금 알아갈때 심하게 휘감은

바람에 일어나지 못하여 교회를 못나가니  그리움의

신앙이 되었는데 하느님을 믿는 동생의 남편 제부

교무금이 밀리면 냉담 하게 된다는

그 말이 옛날 내가 느꼈던 경험담 이었어요.

제부와 여동생 지금은 쉬고있어도 집안은 성가정이고

마음은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교회서 할 일이 많아 귀찮기도 하였지만 어쩌다보니

보잘 것 없는 내가되어 아무것도 할수 없으니 그리움만.

보이는 세상의 인연과 안보이는 상상의 세상에서

희미하지만 경계선이 또렸해지며 마음이 바뀌었나 

교무금이나 헌금이 아깝지 않으며 주님께서

가난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나에게 해준거라 하셨으니

세상에서 주님을 많이 보았습니다.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부분을 바치는 것. 

모이는 곳에는 자금이 필요한 것이고 공동체 

운영하는 것도 돈이 있어야  많이 모일수 있으니

세상은 혼자 살 수 없는 것이고 교회서부터 공동체와

어울림을 실천할 때 예수님의 세상이 가까워지겠지요. 

 

역지사지

칼을 휘두른자는 칼로 망하리라 한것처럼 유통이 있는

사람들은 영원하지 않은 것이 인지상정 칼을

맞은이가 나를 향해 찌르는 것처럼 처음부터 정의를

이기는 불의는 존재하지 않았는데 악한 사람들이 만들었답니다.

그러기에 정의로운 힘은 용맹한 대통령이

지도자가 될 때 세상은 공평하기에 아름다워 질 것입니다.

 

과학

하늘문까지 열려하는 과학이 발달한 줄 알지만

정의가 위에가 있기에 욕심으로 하늘문을 열려 한다면

방해하시는 분은 정의로운 하느님 이었으니 처음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었지만 나의 모상대로

사람을 만드시고 후회하신 것은 사람의 욕심었습니다.

바벨탑을 세우려고 하였는데 하느님이 그 끝을 허물어 셨다지요.

산다는 것으 먹기 위해 생명이 유지되듯

울 주위에는 배불리게 먹고 있는 빵 그릇이 바구니로

유행하더니 꽃을 담으면 꽃바구니 곡물바구니가

되어 과일 담는 바구니가 주름잡고 있으니

과학이 발달한건지 유행이 판을 치는지 사람들이

편리를위해 어떤 것이든 하늘에 있는 별들도 따올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거 세상은 시대따라

과학이 의학과 비슷하여 생명을 맡긴다해도 보이지 않는

이야기 같은 신화를 믿지는 않아도 풀수 없으면 신비라 하고.

우리는 과학과 신비의 두가지 위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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