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하느님 사랑/주님의 말씀.나의 생각.

영혼의 방

우리들 이야기 2021. 8. 22. 08:05

 

종교

과학이냐 신비냐 세상은 둘 아우리며 그 안에서 사는 생명의 존재

유럽의 종교 문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그리스도의 신화의 공간이 되어 거룩한 말씀을

가진 저마다의 종교 신만이 해결 한다고 믿는 신의 세계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알수 없듯이 뿌리는 새로움을 창조 한다하지만 처음 그 뿌리도 토양따라 다르고

거름을 주기에 달라지니 사람이 만들고 그안에서 생명을 보존하듯이 이거와 저거 사이는

같은 것 같아도 엉청난 차이 삶이 개선되어도 갈수록 경쟁은 더 심해지며 친선이라고는

하지만 싸움은 승부욕이라 이겨야 재미가 있으며 져도 당당하게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다운 패배며 한 처음부터 불의를 이기는 것은 정의기에

지고 이기는 싸움에서도 정도를 넘어서는 안되며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너와 내가 안다고 하였듯이 하늘과 땅이 손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도덕성으로 그 말씀을 먹고 살더니 시대 따라 먹어야 생명을 유지하고 모든

가치를 가진대로 평가하며 비만이 빈곤으로 멋있는 몸매는 부의 상징이 되어서

매끈하게 건강한 사람들이 속도 건강하였고 끝없이 광야하게 넓은 바다속은

고기들의 서식지였지만 사람들이  먹고사는  추수할 수 없는 곳이라 어둠이었는데 

그 어둠의 물색이 파란 물결로 팔더니 관광의 놀이터로 하늘 닮은 바다는 땅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 되었으니 세상은 아름다운 그림

철이 변동하는 신의 세계 온라인이 대세라 해도 다 사람들의 머리에서

만들었기에 디지털 그 위에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시대따라 과학으로

풀지 못하는 것은  다 신비가 답이었으며 보이는 세상과

안보이는 천국에서 싸우는 종교가 되지 말고 그분들을 닮는 것이었습니다.

 

 

 

영혼의 빈방

옛날의 가난한 시절에는 식구가 많아서 빈방이 없었지만

지금은 했가족 빈방이 많아도 주님 계실방은 없다합니다.

저희가 가는 곳마다 따라 오신다고 생각했는데 저희가 살 곳을

안내 해주었으며 연어가 알을 낳을려면 고향으로 온다고

저희가 주님을 뵈온 곳이 이곳이기에 주님과 만남의

고향을 찾아왔기에 몸이 자유롭지 못하여 당신이 계신 성당은 가지

못해도 창문틈으로도 오시니까 문이 늘 닫혀있어도 이곳을

찾아오시어 나의 손발이 되어주시는 당신 집안이 작은데도 보이지 않으니 어디에 계시는지?

큰방은 내방 문간방은 야고보방 냉장고 방이 빈방인데 그곳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방

주님은 안보았어도 사진이나 그림에서 형체를 보니 굽실한 머리에 날씬하고

미남의 건장한 청년 목수의 아들로 직책은 보잘 것 없지만 크신분 인류의 아버지가 되셨으니

주님의 자녀라는게 자랑스럽고 제일 후회없는 만남이 당신을 알게 된 순간이랍니다.

백의 천사로 질병에서도 죄많은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시기에 사람을

정말 많이 사랑하셨으며 야훼라고 사람들이 부르게 되었지만 주님의 이름은 나였다지요.

집안 전체 예수님의 향수가 젖었는데 집이 작아도 보이시지 않으니 가전제품을 놓은

빈방도 있지만 제일 먼저 주님의 방을 만들어 드리려 현관문 열고 들어오는 모든이에게

보이려 벽이 빈방이고 십자가를 꾸며놓았습니다.

십자가 아래는 향나무 올리브가지 피곤하시면 쉼터가 되겠지요

구역장이 성서읽기 하라고 전화가 왔는데 그전에 인터넷을 못할때는 성서책에서 거룩한

말씀을 읽기는 했지만 뜻을 알수 없는 것은 2천년전 시절의 문화니까

이해가 안가서 옛날이야기로 상상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성경책에서 예수님을 보이는 듯하였고 말씀이 갈수록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새록새록 다가오는 것은 현실의 삶이 그시절의 예언이 되었습니다.

사실을 알리면 빛속에서 사는 것이고 거짓을 알리면 어둠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주님 어떻게 빛이 되죠?

어둠이 깊어지면 동이트고 꽃도 어둠속에서 이슬먹고 햇빛이 비추면 아침을 맞듯 

사람은 몸을 태우지 않고 빛을 낼수가 없었습니다.

나를 태워야 한다면 빛이 되는 것을 고민해야 하며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태울 수는 있어도 주님처럼 인류를 위해서는 빛이 될수 가 없고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행동으로는 주님을 따르지 못해도 마음만이라도 주님에게 향하는 꽃이 되게 하소서. 

돈으로 이익앞에서 주님과 바꾸지 않게 하시고 삶이 힘들어도

내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주님있어 반항하며 주님을 원망도 했지만 이렇게

주님을 탓한 것은 관심으로 떼쓰는 것이었으니 용서하여 주시고 어여삐 보아주소서.

더운 여름밤 창문을 열고 자고싶었는데 2층이라 도둑이 들어올까봐 에언컨을

취침으로 놓았으며 그렇게 무더웠던 밤이 처서라는 말에 놀래서 순식간에 가버리고

시들어가는 풀잎에서부터 비바람맞고 몸살하던 잎새들이 칙칙하게 바래며 단풍들

준비를 하는 가을이 문턱 작년 가을산이 위에서부터 내려와 들판이 곱더니

천둥치고 가는비가 오며 잎새마다 세수를 시킵니다.

얼마나 예쁘게 단장을 시키려고 주님의 섭리는 자연에서 철을 만들고 계시니

저희도 아름다운 단풍 닮게 하시고 씨뿌린 수확이 가을 알곡이 되게 하소서

정의가 이기게 싸움 하시다가 십자가 지신 예수님 많은이가 닮아 주님의 세상이게 하소서. 

꽃이나 풀이나 다 생명이고 나고 죽음이 있듯이 그 이치를 알면서도 죽음이

두려운 것은 정말 천국이 있을까 하는 믿음이 적어서 였나봅니다.

보이는 세상것들 사랑하는 사람들 꽃이었고 밤에는 별들 저녁때는 노을

풍성한 나뭇잎 사람소리 새소리 일하러가는 자동차 소리 이별하는 순간에는

시간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니 죽음을 불안해 하나봅니다.

하지만 정들은 이들이 있어야 이별의 아픔이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겠지요.

천당과 지옥 보이지 않아도 소중한 것들이기에 영혼이라하니 그렇다면

과정에서 천당을 갈수 있게 잘 살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천국을 간다는 과정은 그렇게 살기가 힘든 것은 보이는 세상것에서

매몰되었기에 안 보이는 주님 세상에 연연하면 저희보고 예수쟁이라고 한답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해 있으니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에서 기적을 행하시고도 한번도 내가 했다고 안하시고 네 믿음이라고

하셨듯이 저에게 천당을 허락하지 않으셔도 좋으니 사는동안 주님의 생각으로

천국을 맛보게 하시어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부활의 희망을 품게 하소서.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기에 만에 하나가 불안하게 하였고 인간이기에

생각할 수 있으며 길게 주어진 수명을 건강하게 지키려고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하면서 살기가 좋아지니 주님의 나라가 가까워지나 하였는데 공평이 돈앞에서

무너지고 보이는 세상일에 치우치다보니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였습니다.

로마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고 지금의 세상은 도덕성 보다는 대처를

잘하는 것이 훌륭한 사람이었으며 일을 많이 하다보면 실수도 있고 좋은 지도자

소리를 듣는것보다는 일하는 지도자를 원한다지요.

변하는 세상이 현실이니 상황에 따라가며 나의 직책은 엄마로서 제역활 못하니

마음이라도 좋은 엄마가 되어야 겠습니다.

햇가족으로 살다보니 빈방이 냉장고 방이고 이것저것 다 늘어놓은 창고가 되었으며

주님의 집은 제일높은 벽 한가운데 그안에서 주님과 사는 사람들이

가을이 열리더니 겨울이 가까이 오며 이제는 영혼의 준비를 하라합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상상의 거룩한 말씀이 오늘날에 현실이 된 것은

완벽하지 않기에 보이지 않지만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기에 유통의 기간이 있는 과학의 세상에서

천국은 풀수 없기에 하늘나라는 신비였습니다.

피렌체 메부자 댁은 경주에 최부자 댁처럼 많은 예술가를

후원했던 메디치가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이고

생명을 지키는 백의 천사 성령이었습니다.

길을 가다보면 메디치가가 살던 집이 궁전이 되어

곳곳에서 메디치의 흔적을 보면서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신 로렌초 성당 메디치가 있던곳 피렌체 지역의 만석꾼 이었지만

그렇게 부를 지킬수 있던 것은 정의로운 금융과 권력이었습니다.

권력과 금융을 이용해서 그만큼 부자를 지켰으며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가치를 먹이듯이 그는 부자 지만 예술을

사랑한 그 이기에 바로 이익 보다는 영원히 가야할 문화를

사랑했던 것이라 그의 부자는 말 그대로 꽃이 피어만 있었습니다.

 

그냥

그냥은 일상인데 특별하게 답을 찾으려 하였지만

답이 없는 일상 있는 그대로 다양한 자세 모습이지만 현사회서는

그 사람의 본 모습은 거울 그림자 지나온길 삶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림자도 그냥이고 거울은 자기의 모습을 보고 고치라고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 같인데 자기의 움직이는대로 그림자가 따라오니

확실한 거였으며 우리는 그냥이 일상이었는데 그냥에 대해서는

답을 찾을 수가 없는 답이 없으면서 그냥은 피하거나

찾으려 하지 않아도 그냥 일상만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평가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내 생각이 옳다고 믿는

우리들에게는 그냥이 정상이었으며 내 생각대로 잘해도 다른이가

보는 눈과 생각이 평가하니 그냥은 대충이라고 생각하며 보여주기

식에서 사는 우리에게는 쉽지가 않는 것은 세상을 볼줄 오른다며

미쳤다고 하니 답답하고 보이는 이세상을 살지만

안 보이는 신화적인 옛날이야기가 그냥 세상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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