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인생 이야기

삶.헤메는 사랑.

우리들 이야기 2021. 8. 25. 16:55

 

헤매는 사랑

어릴 때 동화가 커나면서 재미 있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많이 아는척도 했었는데

지금도 그동화의 한토막이 생각이 나는 것은 그때의 동심이 그립기도 한가요?

별별일을 다보면서 한세월 정신없이 살다가 뒤한번 돌아보니  나의 어린시절은

사납지 못하여 속상했는데 지금도 사나운 사람들이 제일 무서운 것 보면 아직도 철없나?

우리 어릴때는 경우를 따지지 않고 목소리 크던지 힘세면 무기였습니다.

어린시절 못난이야기하면 참 철이 안났다고 하면서 이런 나를 호강스런 이야기라

하길래 그런줄 알았는데 말짱 헛소리였습니다.

전성기였던 중반길에 너머져 일어서지 못하고 지금까지 남의 손을

빌리는 신세 삶이 아픈사연과 기억하고싶은 추억이 뒤범벅되어 머릿속은

복잡하지만 그중에 슬픈날은 지워버리고 즐거웠던날만 담으렵니다.

사랑만 가지고 살수 없는 현실 채워지지 않는 갈등은 경제였습니다.

어느순간 사랑은 돈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사랑이 정을 걷혀 믿음으로

간다는 것을 젊은날은 쓸데가 많아서 복잡했는데 나이가 먹으면

쓸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일단 나이를 먹으면 돈을 벌수가 없더라구요.

사랑이 변한 것이 아니고 돌고 돌면서 시대따라 상황따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사랑이란 것을 한참후에 알았고 함께 웃으려고 헤매고 있었습니다.

 

저울

갈대와 소나무하는 일은 다르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것들

이런말이 나하고는 상관 없는줄 알았는데

이런일 저런일 겪으며 살다보니 꼭 밭을 메고

풀을 베어야 농사 짓는 것이 아니고

일상의 삶이 가정의 안녕을 지키는 것이 농사일이었습니다.

농사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흑을 묻히지 않고

설거지를 안해본 이는 그릇 깨칠일이 없듯이 모두를

위해서 일하는 이는 정의롭지만 자기를 위해서

거짓말을 하며 많은 농사로 수확을 얻는 이들이 바로 지금

말하는 적폐가 아닌가 혼자의 생각입니다.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벼가 잘 자라는 줄 알고 지식으로 많은 것을 배워도

삶의 배움이 경험이 되어 지혜를 키워나갔습니다.

비와 햇빛으로 공이 단단해야 비바람에도 견딜수 있는데

물속에 키만 껑충하게 큰다면 비바람에 쓰러지었습니다.

사람들은 시대따라 가지 못하면 뒤처진다고 별짓

다하면서 갈대가 되어가지만 갈대가 되어야 세상을

편히 살수 있고 말로는 곧곧한 대나무나 소나무가 되라

하지만 현실은 갈대가 되어야 살고 곧곧하게

서있으면 부러지는 세상이라 슬픕니다.

적당히가 좋은데 그렇게 산다는 것이 마음을

흔들어놓으니 쉽기도 하고 힘들었습니다.

현실을 따라가면서도 잘못은 알기에 비판도 하지만

상황따라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라

어디까지 채워야 만족인지 모르니 마음에 저울이 있어

그래서 정의에 기울어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고

흔들리는 솔잎을 단단한 소나무가 받혀 주었으면 합니다.

 

 

삶의 둘레

삶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고정되지도 않았습니다.

누구도 끈이나 손을 잡았다가도 놓아야

한다는 것이 삶의 이치 해결 되지 않아 볼품없는 자신의 모습

고민이나 아픔을 안고 살아도 그중에서 기쁜일만

찾는이가 있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걱정하며 불안해 하는이도

있다는데 그러기에 팔자는 마음이 만든다고 하나봅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대로 허덕거리는 높은 언덕 가시밭으로 이어진

삶의 둘레 지나다보면 상처가나고 약이 되기도 하면서

거친 곳이나 기름진 땅도 있는 것이 인생의 삶 보이는 세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였습니다.

 

삶의 그림

한 생을 사는 것이 밑 바탕에서 그려진 그림도 있지만

시대따라 색칠이 바뀌면서 유행에 맞는 그림으로

제 탄생하듯이 인생은 저마다의 그림이 달랐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도 다른이의 그림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미켈란 젤로가 예술에게 남기는 말에서 이미 내게는 나를

끊임없이 노력하게 만드는 아내가 바로 나의 예술이고 나의

자식은 나의 작품이라 했듯이 저마다의

그림은 달라도 나의 그림은 남편이고 작품은 자식

미켈란 젤로는 첫번째가 조각과 그림으로 예술이지만 나의 첫 번째는

가족이며 형용할 수 없는 상상만이 그림이랍니다.

보이지 않는 불확실성에서 살며 저마다의 삶을 그리지만 느낌은 달랐습니다,

 

책의 여행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책속에 빠지다보니 책순이가 되어 책을 한 장이라도

읽지 않으면 심란한것처럼 책은 삶의 일부분.

관광은 없어지고 국내에서도 여행 아니면 놀러

간다고 하니 시대따라 관광이 여행이 되었습니다.

물 건너가거나 비행기로 해외 여행하면 부러웠는데

지금은 국내가 더 코스가 잘 짜여져 자랑꺼리도

안되며 책속에서 더 많은 볼거리가 담겨져

온라인이 대세인 현실에서 책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다보면 새로운 것을 알게 하였고

꼭 어려운 숙제를 푸는 것만이 공부가 아니었습니다.

지구는 둥글다고 다 돌수는 없어도

다양하게 책에서 여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처음 국내의 관광에서 부터 집을 떠나면 작은 공간에서

갇혀 살다가 넓은 세상을 보기 때문에 관광은

나만의 자유 로운 여행이 되었습니다.

나혼자 관광으로 가던 여행은 이제는 나혼자 갈수 없는

몸의 변화에 가족여행 그나라 문화를 보았고

집을 떠나서 여기저기 세상과 놀다 눈 요기가 이야기로

인생의 상황에 맞춰 길고 짧은 여행뿐이 아니라 책의 여행에서

편하게 더 많이 세상을 즐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답니다.

젊은날에 여행에서 보는것들 한참 세월이 지나간

자리는 강물이나 바다위에 없었던 다리가 놓여지고

세상이 변하는 만큼 나의 인생은 저물고 있었습니다.

책의 여행에는 그때의 문화가 담겨있어 기쁘면 춤추듯이

책속에서도 일상의 삶이 녹아나기에 인생의 여행이

감각을 일깨워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살다보면 에기치않은 일이 닦쳐 아픈 과거로 남았으며

엉퀸실 같은 삶과 싸우며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하면서도 초라해서 도망 가고 싶었지만 갈곳은 없었고

사는 곳이 정든 집이며 책속에서 여행을 떠난답니다.

 

나의 글

밖에 혼자 나갈수 없는 것은 아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고

센바람에 넘어지어 일어서지 못하고 내 날개가 떨어져

컴하고 친구가 되어 이런글 저런글 그때그때 일기처럼

끄적여 보았는데 지금 보니 그때의 삶이 보이기도 하지만

만족하지 못해 고칠것이 많았습니다.

나의 신체가 건강하다면 이렇게 책이나 보고 나만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텐데 어쩌면 시간은 자기가 쓰는대로 있었습니다.

처음 나의 글이고 어떤 것이 글이 되는지도 몰랐던 초자.

그때의 시가 일기인데 슬프기도 하지만 가족이 늘어날때마다

살아있기에 주어지는 기쁨도 맛보았으며 강동의 순간이 참 많았네요.

하루가 가는대로 고민은 나의 신체 때문에 쌓여가지만

지난날 나의 전성기가 있었다는거 애기 엄마라는 이름도

가져보고 새댁이란 이름도 가져봤지만

제일 자랑하고 싶은 이름은 애들 엄마였습니다.

그때의 엄마가 할머니가 된 것은 당연하게 세월이 간자리였지만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필요없는 내가 되고보니

할 일 많았던 그때가 귀찮기만 해서 속상했던 날들이

그리움이 되었으니 가만히 햇수를 돌이켜보니 그때는 청춘.

정신없이 가버린 날들이 내가 따라가며 날개잃은 나는

날지못하고 각방을 쓰며 밤하늘 바라보며 희미하게 숨어있는

별이 내별인것만 같아 슬퍼지며 마음은 울었습니다.

잠이 덧드는 것은 몸이 편하니까 혹사시키면 피곤이라도

할텐데 더러는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금방 깨버리고 스마톤에서

유트브를 듣지만 재미가 없는지 꿈속에서 희미한 내별을 찾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금 글을 쓸줄도 알고 만들줄도 알지만

처음엔 어디서 들은말을 나하고 연결시키며 섰는데

어린애가 쓴 것 같지만 꾸미지 않아서 재미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가는대로 나이가 더해지고 할머니들이 그러더군요.

철들기 싫고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래서 나는 초등학교 다니는 손녀딸이 친구가 되었습니다.

 

내딸 시집가던날

언제 그렇게 컸는지 아직 어린애 인줄만 알았는데 시집갈 나이가

되었다고 혼인전 날 집에서 피로연하는데 시간을

정해놓았으면 주변사람들이 덜 복잡했을텐데 아침 11시부터

밤 11시까지 한두명이 꾸준하게 왔으니 경험이 부족한 탓이었고

몸이 불편하니 가까운 사람들에게 더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혼인날 휴게소에서 한 동네 후배가 청시만 하나를 주면서

쓰러지지 말라고 하는데 물론 관심이지만 나를 더 서럽게도 하였습니다.

멀쩡한 몸으로 동기간 결혼식 시부모님 장례식 다 치루고

나의 애들 결혼식에만 불편한 몸이 되었으니 얼마나 서럽고 속상한지

결혼식날에는 걸어볼려 무진 애를 썼는데 소용이 없었습니다.

죽을데도 살길이 열린다고 몸이 불편한데 돈까지 없는데

공장이 팔려서 일단 집 얻는데 보태주고 결혼식 비용이 되었습니다.

그때만해도 누가 부축해주면 잘 걸었는데 양쪽에서

내 팔을 걸어주는 사람들 그들이 나의 날개였습니다.

올 때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혼인은 잘 마무리 하였습니다.

 

큰아들 장가 간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고나서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고 평범한데

대학에서 만난 아이는 케나다에가서 공부하고 돌아와

취직해서 있는데 영화 찍는다고 다시 한국 종합 예술학교를 갔으니

나에 몸도 불편하고 남편도 하는일을 접었는데 아들 여친의

부모가 선보라고 한 대서 아들이 인사갔는데 상견례 날짜를 받아

가지고 와서 한정식 고급식당을 예약해서 사돈 사부인 인사를 나누었으며.

결혼날짜를 여름과 가을사이 늦여름 초가을 인천 성당에서 거룩하게 하였지요.

멋을 안내서 양복 잘 안입는데 그날은 신랑신부 날이니 신랑이 입은

예복 멋을 안부리는 며늘애도 신부화장에 드레스를 입었으니 천상의 한쌍이었습니다.

혼인은 경사기에 아들 어머니도 한복을 파란색을 입어야 하는데

몸이 불편하니 그런것에 신경을 안쓰고

분홍 저고리였으니 어쨌거나 내가 움직이는게 옷보다  신경을 썼지요.

 

 

결혼후

석관동에 신혼집을 차리었는데 얼마 안 있다 남편의 생일이 돌아와

거기서 모였는데 한우 갈비를 재가지고 배터지게 먹었는데

사부인이 고기전문인 식당에다 맞추었다고 하며 맛있는 고기였습니다.

곧 추석 명절이 되어서 동기간이 다 서울에 사니까 집들이겸 모였지요.

작은 방까지 3개였는데 방 한칸이 선물로 가득해서 내가 뿌듯하였습니다.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는 며느리가 참 예쁘고 시집식구들 추석 선물까지 다

장만한 것보니 동기간들의 칭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시대따라 문화가 바뀌어 요즘애들 어쩌구 해도 옛날에 시집살이하며

옳은말 하면 바른말이라고 하고 참고사는 것이 며느리의 미덕이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싫었을까요.

지금은 생각대로 말하며 기분이 얼굴에 쓰여있어서 마음까지 보이니까

요즘애들이 참 좋으며 지내기에 달렸다고 미운것만 보면 남의식구였지만

이쁜것만 보면 나의 식구였습니다.

십년이 넘었지만 한결같은 마음 경제적으로는 나누지 못해도 마음은 다 준답니다.

어버이날에 핸드폰 다시 바꾸어주고 집안일로 추석명절에는

오지 못해도 그 안에 한번 다녀 간대서 그때 꽃계장을 만들어줄까 생각중이랍니다.

 

 

작은아들 장가

신촌에서 사당동으로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와 살았는데

며늘애가 동생하고 살다가 우리 막내하고 결혼도 안 했는데 살았습니다.

나보러 어머니 오빠가 회사갔다올게 하는데 잘생긴 남자였어요.

그래서 그런 남자 누가 낳았어 하니 아버님요. 하길래 남자가 어떻게 아이를 낳니?

하니 어머니는 아버님 날 낳으시고 이런 동요도 있잖아요 하였다.

이아이가 나이도 어린데 참 좋은 것을 배웠구나 말 한마디에서 본심을 다 보았습니다.

대학동기 같은 과 연인 사부인이 빨리 결혼시켜자고 상견례를 한 대서

진주로 갔으니 몸이 불편해도 아이들 상견례와 결혼식을 다 치루었답니다.

 

결혼

눈 발이 사납게 날려도 미장원에 예약했기에 머리를 하러 갔습니다.

아들이 결혼식날 시간이 12월 11시에 예식한대서 여기서

7시 40분에 출발한다 알렸고 어둑어둑하고 날씨까지 추어서

한사람도 안오리라 걱정했는데 버스에 올라보니 자리가 하나도 없이

다 차있어 너무 고마웠습니다.

강남 새천년 예식장 양가 부모님과 친지들 추운줄 몰랐습니다.

딸과 큰며늘애 다 한복입고 동서도 한복입고 꽃같았지요.

경사에 일가 친척이 모이고 변해버린 얼굴에서 세월이 보였으니

더 반갑고 애잔하기도 하였습니다. 

몸도 불편한데 한복까지 입어야 하는 나의 일은 이젠 멈추었으며

신부 신랑이 잘 사는 모습만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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