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하느님 사랑/주님의 말씀.나의 생각.

<벗> 여러말씀.

우리들 이야기 2022. 5. 13. 10:46


벗은 다름을 수용하고 새로움을 맏아들이며
대륙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존재이다.
그리하여 나와 벗이 가는길에는 생명이
움트고 종국에는 신에게로 귀환하게 된다.

 

책이 벗이 될때
김대우 모세 신부님 시 (사유)
내 미천한 생각 쉼없이 흐르고 흘러
찾아오는 지류들을 품고가니
큰 강물이 되고 바다에 이르더라
사물의 겉을 보지 아니하고 그 내면을
탐색하니 사라졌던 탯줄이 보인다.
시월의 이성으로 그것을 붙잡으니
생명의 심연으로 향하는 여행이 시작된다.
존재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대
지나치지 아니하고 관조하는 내내
지혜는 그대를 찾아와 벗이 되리라.

 

신부님의 시

하늘빛을 담은 호수를 들판삼아

오리가족이 산책한다.

장난꾸러기 아이손짓도 연인들의

뜨거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행복 해 한다.

호수 물결은 홀로 스르륵 스르륵

모래 위로 부딧쳐 고민을 토해 낸다.

밤하늘 뒤켠에서 별빛이 지켜보다

마음 애려 깜빡인다.

어느새 이집저집 여린 불빛 만이 스르륵

스르륵 내마음 어딘가에

누구에게로 부딧치고 싶다 기대고 싶다

 

구약시대에는 윤리가 없었기에 야곱이 외삼촌 라반 댁에 가서  큰 딸 레아 작은 딸 라헬 사촌들과 

자손 번성이 먼저인때라 친척과의 결혼을 했다.

유대인들은 일찍 자립시키며 주식을 선물로 준다. 그러니 자동으로 신문을 많이 보고 세계ㅢ

흐름을 알수 있기에 경제력은 최상이다

지식의 열쇠는 유대인의 교육법에서 보아야 한다.

얼마 안되는 인구의 숫자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최고의 부자니까.

 

감사

한 시대가 지나도 옛날이야기가 되는 세상에서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정보란 소문을 듣고

말이 되어 법이 되었던 때였기에 그분 시대를 이해하게

되고 현실에 맞춰보면 전설이고 이야기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래는 것이 많아 원망이 해소되면 당연한 줄 아는데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고 고마움 감사를 가져야 한답니다.

열병은 신체의 한부분 화병은 마음속 깊은곳 다른것

같지만 비슷하기도 하였습니다.

시몬베드로 장모 열병은 신경쓰여 주어지는 관심의

병이었지만 그분을 믿는 마음이 그를 낳게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나오는 구절인데 이제야

듣는 마음으로 조금은 알듯합니다.

믿음이 신뢰지만 보이지 않는 주님말씀을 얼마나 믿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말씀이니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분을 닮고 싶습니다데레사

 

지금

위험은 어디건 안보이니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정결 부정한 것을 만지면 안 된다는

법이 매몰되어 있기에 인권을 차별했답니다.

믿음에는 사랑이 있기에 더 아름다운 것인데

사마리아 여인과 유대인의 사는 법 여기서 우리는

누구를 본받고 싶은가요?

나의 양심을 안녕하기 바라며 사마리아 사람

닮으면 주님을 닮는 것이니 나중에 보자는 말은

무섭지가 않기에 지금 그분 닮은 사람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유혹

위험에서 구해주면 나도 위험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듯이 손해 보는 일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의인은 손해를 보면서도 행동한답니다.

자리 따라 대우하는 것이 기득권들만 아니라

일반 우리에게도 하게 되는 것은 익숙해진

제도가 그렇다고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소서.

기도하면서 하느님 안에 머물때 지켜주신다니

달콤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여주세요..

 

세례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은 새싹과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무도 헌 옷에 새 천을 대고 꽤 매는 이 없듯이 세례 때엔

물로 나를 씻어내는 것이 나의 마음을 씻어내고

주님의 지어주신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세례를 받고서는 미사를 드리며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듣다 보니 주님은 포도나무고 나는 가지가 되는 것도

이런 마음이 세례인가 잘 모르겠고 그냥 주님 말씀 안에 머물고 싶습니다.

 

관계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우리의 부모님을 따라갈 때

위험에서 구하시듯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가까울수록

바람이 크듯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모님은 자식

편이지만 자식은 바라기만 하기에 보이지 않는 주님을

마음으로 따라가야 하는데 눈에서 안 보이니 영상을

통해서 듣게 되고 믿음이 생기어 우리가 부모님을 믿는 것처럼

말씀 속에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믿음으로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제기랄

능력이냐 인간성이냐 믿는 것이 바보인가?

하면서도 둘다 놓을 수 없듯이 보이지 않아도

그분의 말씀에는 정의가 있기에 노력했지만

독학으로 공부했기에 선후배가 없어

챙겨주지 못하니 혼자만이 가는 세상은 쉽지가 않았겠지요.

세상에선 인맥으로 자리가 주어지지만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은 보이지 않는 세상은 하느님이었습니다.

모든 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이고 아마도 끊어진

시련을 이으면서 내가 쓰지 않은 것들 여기서

언급하지 않은 것들이 올 것입니다.

아름다움이여 재미있는 글들이여 친구들이여

느끼는 대로 아는 사람들이여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나는 죽어갑니다. 안녕!!! 

 

카메라

어깨에 카메라를 메면 멋있게 보이던 그 시절

하지만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기에 흐름 따라

함께 가는 것이고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는 것이다.

물도 흘러가야 새 물 이 되듯이

추구하는 것이 인기가 되면 너도나도 찾아 만드니까

올라갈 때를 알고 내려 올 때를 알고 비우는 것이었다.

모든 것은 때가 있더라.

달리다 쉬어 가라 하면 멈출 줄 아는 사람이

오래 버티는 것처럼 마음은 젊으나 몸이 말을 안 들으니.

요즘은 타임이라 하고 시간을 소중히 아는 것처럼

그래서 옛날에는 때를 이름으로 말하며

때가 되면 밥 먹는 것을 이름 짓자 하였듯이

사진도 그때의 추억이니 앨범 안에는 젊음이 살아있다.

추억은 늙지 않으니 할머니 이름이 아니라

여전히 엄마란 이름도 앨범 속에 젊음을 부르더라.

삶은 카메라에 담은 것처럼 눈 위에 발자국이 되었더라.

 

부활

부활이란 것은 삶으로 체험해야 한다.

예수님의 우리를 위해 십자가 돌아가시듯이

새로 태어날 때만 이 날개를 달고

날 수 있는 것처럼 주님을 위해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주님을 닮는 것이었다.

부활을 믿는 마음은 사랑이 함께 하며

지금까지의 삶을 버리고 새로 부활하는 것이더라.

 

애벌레 전설

잠자리도 처음부터 나는 것이 아니고

애벌레부터 시작하고 날개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 허물을 벗는 아픔이 있더라.

경험이 체험이지만 더불어 사는 애벌레는 날개를 달지만

혼자만 날라고 감추고 알려주지 않으면

힘도 잃고 날개를 가질 수가 없더라.

 


에디슨

나의 발명왕을 되기까지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쓸데없는 일에 고집을 쓰지만

본인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전기를 발명했기에 오늘날도 전기가 안 들어가는 것이 어디 있나?

브랜드가 대세인 지금 처음 발명하고는 도용 할가봐

특허를 내지만 에디슨은 전기는 모두를 편하게 하려

발명했는데 사람들이 발명가의 이름을 알리었다.

 

호랑이 잡으려면 호랑이 굴을 들어가라 하지만

맹수 굴속에 누가 들어가려 할까요?

옛날에는 복수 방식과 요즘의 방식이 다른 것은

지금은 생각하면서 선으로 악을 물리치고 정의로

불의를 물리치는 것은 양심이 좌우하였습니다.

안 보이는 마음과 보이는 현실이 갈등 속에

내일을 향해가고 희망은 보이지 않는 마음

현실을 거부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의 물질 만능이

나를 보호하니까 그래서 신의 세계를 긴가민가

하다가 세상과 이별할 때가 오면 자신을 돌아보며 주님을

부르지만 사실은 현실에 가까운 곳 내 곁에 계시는데

안보이기에 조용히 혼자 내 마음을 정리해보면 그곳에

계시어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안 보여도 착한 일을 하는 성령은

곳곳에서 우리를 지켜주고 안 보여도 믿게 하는

브랜드가 삼위일체인 것 같습니다.

적들이 잘 나타나는 곳에 함정을 파서 잡듯이

그래서 맹수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 했나 봅니다.

 

평화

독립을 위해서 두려움과 불안속에

분노와 미움이 사무쳐서 나라를 찾기위해

나를 버리고 헌신하신  안중근 선생님

자신의 구속으로 해방을 맞았는데

그런 애국자 선생님을 누가 자기 권력을 위해

명예를 더럽히었는지 죄를 물을 때

민주의 자유가 주어질 것입니다.

저 나이를 먹도록 역사의 아픔을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국민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는지 양심이 안녕하길 바라며

어떤 것이 정의와 불의를 판가름하기

위해 나서는 이들이 진정한 애국자.

모두가 소망하는 평화를 위해 목숨을

버리었지만 나라에 후손이 그의 충심을

이름으로 빛내주었습니다.

정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처럼

안중근 의사는 나라 사랑 독립하기 위해

나를 버린 것같이 이런 마음은 예수님을 닮은 스승이었습니다.

 

이기심

누님 좋고 매부 좋고 꿩보다 알이라고

사람의 세상은 자기 앞에다 큰 감을 놓는다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는 것이 뒤늦게

보여주시었다.

절실하고 간절하다면 들어주실 거라는

생각이 믿음이었어요.

불러주지 않는 필요한 내가 되지 않을 때

어쩔 수 없이 갈 곳이 성당이었나?

주님을 찾은 것이 다른 방법이 없을 때 그곳이지만

가지 못하는 마음은 용기가 없어서였다.

이래저래 깊이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오래 익숙해지면 부모가 기다려주는 집에 가고

싶지만 갈 수 없으니 주님께서 나한테 찾아오시었다.

당신은 무조건 사랑이고 바람이 없이 부모의 마음

주님은 언제나 자기를 버리고 주님 집에

찾아오기를 기다리시는데 저희 마음으로 평가하며

귀찮으면 당신 말씀을 외면하였습니다.

당신 말씀을 듣고 내 맘대로 판단하지 않게 해주소서.

 

어린아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이 마음

깊이 이런저런 생각에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면

믿음이 갈 텐데 착해 보이는

사람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기에 믿을 수가 없지만

아이의 마음은 있는 그대로를 행동으로

보여준 아이 순수한 어린 마음

어른들이 세월을 가려면 속마음을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생각이니

머리로 기도하지만 아이는 예수님의 아픔을 보았습니다.

 

광야

행복의 기준은 아이와 어른들이 다른 것은

생각이 크기에 다르기 때문이더라.

하지만 지금의 시대를 보면 오래전 나의 어린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은

시대 따라가면서 꽃밭이 되고 광야를 만드는 것이

타고난 팔자기도 하지만 고쳐가는 것은 생각의 크기더라.

향기 가득한 꽃밭 길을 가고 싶지만 황막한

광야에 들어선 날들을 원망해봤자 돌아오는 길은

나이의 숫자뿐 내 마음속에 광야는

철 따라 피는 꽃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내 광야는 아름다웠다.

 

하느님 당신은 나의 모든 것

십자가의 신비로 이 세상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나에게 당신은 위로자가 되었습니다.

처음엔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었는지

하느님 원망을 했지만 만만한 사람은 가까운

부모였다는 것을 보이셨기에 주님의 주신

시련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

하니 주님의 원망이 감사로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었듯이

내 가족을 위해서 내가 십자가를 지었다고

생각하니 당신은 저희 위로자가 되었고 고마웠습니다.

 

기도 어떻게 해야 할지?

부르심이 들리는가?

익숙해지면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데 설마 또한

의혹이 귀를 막았지만 꼭 듣게 하셨던 것이었다.

우리는 하느님을 닮은 사람들 외적으로 닮지만

말고 내적 마음을 닮아야 하는 영적 치료였다.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거기에 사니까 울고 웃음의 시간도

마음이 정하는 것 하느님 말씀을 자주 듣다 보면

익숙해지는 것이 나도 모르게 변해가고 닮아가며

그분과 친해지는 것 같아서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분의 부르심이 듣는 곳에서

익숙해지려 하다 보니 말씀을 듣는 내가 되었어요.

 

삶의 기적

안 보이는 몸이 호르몬이 문제가 생기면 힘들어진다지요.

행복 호로몬 쓰테레스 호로몬 두 가지가 작용하는데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을 때 신경 질적인 호로몬이 되고.

행복 호로몬은 세로토닌 엔돌 핀 뇌의 다른 분이 활성화된답니다.

활성화되면 호로 몬이 나와서 근육을 유한 시키어

행복을 느끼는데 머리서 시작되는데 뇌에서부터랍니다.

 

고마움

비워야 채워지고 감사를 알았습니다

눈 내린 겨울날 옥마산을 지나면서 설산을 보았습니다.

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는 거

고마움을 알아갈 때 채워지고 있었습니다.

부엉이는 밤에 볼 수 있는 전설의 이야기지만

욕심에 망가져 가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가는 말이었습니다.

원망은 절망적이지만 감사는 희망이었어요.

내가 직접 체험한 경험에서 내가 보였고

마음먹기 따라 비우고 채워가는 것을 배웠습니다.

 

재주

사람마다 찾지 못하는 재주가 있었다.

은퇴후에 가지고 있는 재주를 발휘하고

나한테 이런 재주가 있다니 도전하면서

80이 되어서 책을 내며 제목은 나에겐 희망이 있다 였다

나이떄문에 슬퍼할 필요 없다고 숫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배움에서 보람을 느끼며 나이를 이겼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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