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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조선 왕의 계보

우리들 이야기 2023. 4. 25. 10:27

 

역사.

역사없이 미래가 없다고 오늘이 지나면

훗날에는 역사의 한페지였다.

사는 것이 일하며 내일을 열어가는 것이라.

죽을때까지 일하고 힘이들면 생각으로

일하기에 그래서 세월이 가는대로 시대의

경험이 지나온 날로  역사속에 과거라 불렀다.

사는것은 처음과 끝이있듯이 시작과

맺음으로 보이는 세상위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 있었으니 거룩한 말씀을 실천

하지는 못해도 닮으려는 마음이 시작이었으며

세상은 결과로만 평가하기에 이익이

가는 대로 생각도 따라갔고 좌총수 우총수로

살아감에 나를 단단하게 해주던 무기가 

분열로 서로에게 생각의 총뿌리를 겨누드라.

나하고는 상관 없어도 마음이 진보 보수로

갈라져 나와 생각과 맞지 않으면 말도 안섞으니?

보이는 나무들도 가지가 있어 더  예쁘고

다양한 자연안에 인생이 있었으니 보이지

않는 작은 운전대가 보이는 큰 세상을 끌고갔다.

강자에겐 강하고 약자에겐 약하게 대할 때

멎진 사람이라 그런이가 많아질때 역사의

경험과 보이지 않는 내일의 무지개를 열어 나갔다.

 

 

순서 전기

태조- 정종-태종-세종-문종-단종-세조-예종-성종-연산군-중종-인종 명종 ​

선조-광해군-인조-효종-현종-숙종-경종-영조-정조-순조-현종-철종-고종-순종

1대 태조(1392-1398)

고려 무신 출신으로 고려 멸망 후 조선을 세웠고 도읍을 한양으로 옮겨 학교 시장 도로 등을 만들고 새 왕조를 세웠습니다.

정도전의 활약이 컸으며 세자 책봉 과정에서 이방원의 난이 일어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2대 정종(1398-1400)

왕자의 난을 통해 조선 왕조 2대를 이었지만 2차 왕자의 난으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3대 태종(1400-1418)

이성계의 5번째 아들 이방원입니다.

정도전을 살해하는 등 왕자의 난을 일으켰으며

6조 직계제 실시, 호패법 실시, 사병 폐지 등 왕건 강화에 힘썼습니다

4대 세종(1418-1450)

태종의 셋째 아들로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집현전을 통해 인재 양성 국토의 확장 공법의 제정 3포 개항 등 업적으로 황금시대를 열었습니다.

5대 문종(1450-1452)

문종은 세종의 맏아들로 동국병감 고려사 등이 편찬되었으며 병력을 증대시켰으나 몸이 허약해 즉위 2년 만에 병사했습니다.

6대 단종(1452-1455)

단종은 문종의 장남으로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 오르지만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희생됩니다.

7대 세조(1455-1468)

세조는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여 왕권을 잡습니다.

정치적인 능력은 뛰어났지만 동복동생과 백성들을 죽일 정도로 잔인했습니다.

8대 예종(1468-1469)

예종은 왕위에 오른 지 1년 만에 갑작스레 사망합니다.

9대 성종(1469-1494)

13세 어린 나이에 즉위하지만 명석한 두뇌로 경국대전을 편찬하고 홍문관을 설치하는 등 조선 전기 문물을 자리 잡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아내에게 사약을 내리고 38세에 요절했고 아들인 연산군이 왕위를 물려받습니다.

10대 연산군 (1494-1506)

연산군은 성종의 맏아들로 생모 생모 윤 씨의 폐비에 찬성했던 수많은 사람을 살해하는 무오사화 갑자사화 등 공포정치를 한 폭군으로 중종반정에 의해 폐위를 당했습니다.

11대 중종(1506-1544)

반정으로 연산군을 폐위시킨 후 왕위에 오른 성종의 이복동생입니다.

조선 역사상 최초로 반정에 의해 왕위 되어 왕권이 강하지 않았지만

조광조를 등용 기묘사화와 삼포왜란을 일으켰습니다.

12대 인종(1544-1545)

성품이 온화하고 효심이 깊었지만 재위 8개월 만에 사망했고 계모 독살설이 있었습니다.

13대 명종(1545-1567)

12세 어린 나이에 즉위했는데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했었고 그 이후에 을묘왜변 등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겪었습니다.

14대 선조(1567-1608)

조선 왕조 최초로 대군 출신이 아닌 방계 출신의 국왕으로 16세 즉위 후 동인 서인의 파당 문제 남인 북인으로 분화한 동인의 여러 당쟁을 겪고 임진왜란 정유재란의 혼란스로운 시기에 재위했습니다.

15대 광해군(1609-1623)

혼란한 시기 중립외교를 했고 경기지역 대동법을 실시 허준 동의 보감을 완성했지만 서인의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습니다.

16대 인조(1623-1649)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총융청과 수어청을 신설해 반금친명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정묘호란을 겪고 병자호란에서 삼전도 굴욕을 당했습니다.

17대 효종(1649-1659)

효종은 청나라 8년간 볼모로 지냈고 북벌정책으로 정벌을 내세웠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18대 현종(1659-1674)

효종이 봉림대군 시절 인질로 가있을 때 태어났으며 현종 때 남인 서인의 당쟁과 예송논쟁으로 국력이 쇠퇴해졌습니다.

 

19대 숙종(1674-1720)

숙종은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는 등 정치적인으로 뛰어났으며 무수한 환국 정치를 통해 강력한 왕권을 향유했습니다.

두 번째 왕비가 인현왕후 세 번째 왕비가 장희빈입니다.

20대 경종 (1720-1724)

숙종과 장희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집권 동안 소론, 노론의 당쟁에 시달렸으며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승하하고 재위 기간이 짧았습니다.

21재 영조(1727-1776)

영조는 붕당 대립 완화 왕권 강화에 힘썼는데 탕평책을 실시하여 당쟁을 제거 균역법 시행, 신문고 부활 등 정치적으로 업적을 세웠지만 사도세자 비극인 임오화변 사건을 겪습니다.

22대 정조(1776-1800)

22대 정조는 사도세자 아들로 장용영 규장각 설치로 실학을 발전 수원 화성 완성 등의 업적으로 후기 문화적인 황금기를 이끌었습니다.

23대 순조(1800-1834)

23대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11세 즉위했지만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로 왕권이 쇠약해지고 백성들이 매우 힘들어졌습니다.

나라살림보다 권력에 급급한 대신들로 인해 난을 많이 겪었고 대표적으로 홍경래의 난입니다.

24대 헌종(1834-1849)

아버지 효명 세자가 요절하고 순조의 손자로 8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지만 할머니인 순원왕후 김 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했으나 안동 김씨와 풍양조 씨의 권력투쟁에 휘말리고 천주교 박해인 기해 박해가 일어납니다.

25대 철종(1849-1867)

25대 왕조 철종은 즉위전까지 강화도에서 유배를 하다 19세에 즉위했는데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와 군정 전정 환정의 문란이 극심했습니다.

26대 고종(1863-1907)

고종은 흥선대원군 아들로 12세 나이에 즉위한 대한 제국의 초대 황제입니다.

동학농민운동 임오군란을 막기 위해 일본군과 청군의 파병을 요청하며 조선을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27대 순종(1907-1910)

27대 순종은 조선시대 왕계보의 마지막 왕인데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몰락하게 됩니다.

한일신협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정치는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정리하다 보니 왕 끝에 붙는 접미사로 종 조 군 대군 등 다른데 그 뜻을 알아볼게요.

- 초기 세자 지간었던 왕, 후기는 덕이 많은 왕

- 초기 - 세자간이 아닌 왕위찬탈 쿠데타,후기는 업적이 많은 왕

- 연산군 광해군- 폐위된 왕

대군 - 왕비의 몸에서 태어난 자녀 - 후궁의 몸에서 태어난 자녀

 

프랑스 인권 선언문

1789년 프랑스 시민들은 프랑스 인권선언을 통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우애'를 내세우며 혁명을 일으켰다.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1776년에 일어난 미국의 독립

혁명과 계몽운동에 영향을 받아 종교적 자유,

언론의 자유 그리고 개인의 자유를 선포했다.

또 인권선언문은 인간이 자연적으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자유, 재산, 신체의 안전 그리고 억압에 맞설

권리" 등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뿐만 아니라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이상 그 누구도

고발되거나, 투옥되거나 혹은 체포될 수 없다"는 내용과 "모든 이들은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무죄를 원칙으로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프랑스 인권선언문은 1791년에 쓰인 프랑스 헌법 서문에 담겨 있다.

그러나 훗날 쓰인 나폴레옹 법전은 이러한 사상들을 묵살했다.

 

로마의 공화정

이탈리아 중심 피렌치에는 다위상과 처절하게

조각한 마리아와 예수님 상이 있다.

소년 다윗에게 불안하지만 강렬한 눈빛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은 것처럼

로마 이전의 모든 역사는 로마로 흘러들어갔고

로마 이후에는 다시 로마로부터 흘러 나왔다니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 씨름할때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면 아무말도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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