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시/시사랑

도종환. 이해인. 박노해.문정희 .이정하

우리들 이야기 2023. 12. 14. 16:32

 

소나무  임일순

고요하고 대지가 잠든 겨울밤

창틈에는 백설이 내려않았고 닫혀진

창문을 바람이 때리며 윙윙대고

솔잎이 흔들대는대로 그림자가 추어보인다.

자연의 예술작품 같아 창문을 열고

확인해보니 바람은 보이지 않고 캄캄하고

높은 하늘에 별들이 반짝이고

여전히 소나무 가지가 이러저리 한들거린다.

 

숲속 오솔길 임일순

이름만 들어도 낭만이 젖어있는 겨울숲속

오래전 춥기만 했던 그 오솔길은 하얀눈이 덮었겠지.

이제는 겨울눈이 낭만으로 보이며

눈보라를 헤치며 지나온날들 낭만이 서리었는데

위험하다 돌아가라는 소릴 듣지 못하고 앞으로만

가다보니 나의 겨울은 거세지는 눈보라가 되었다.

얼어붙은 눈 덮힌 땅을 뚫고 솟아난 새싹들.

봄이면 연두색 산나물이 여름에는 찌는듯한

더위를 식혀주는 나무 그늘이며 가을이면 오색 단풍이

세월을 알려주더니 다시 기온이 내려가며 겨울숲속

그 오솔길이 이렇게 변했다고 우리를 부르는 것 같다,

 

12월의 시 이해인
12월든 잿빛 하늘, 어두워지는 세계
우리는 어두워지는 세계의 한 모퉁이에 우울하게  있다
이제 낙엽은 거리를 떠났고 나무들 사이로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이고 눈이  것처러 흐리다

12월엔 그대와 나
따뜻한 마음의 꽃 씨 한 알
고이고이 심어주기로 해요
찬바람 언 대지 하얀 눈 꽃송이 피어날 때
우리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
온 세상 하얗게 피우기로 해요
이해의 꽃도 좋고요 용서의 꽃도 좋겠지요
그늘진 외딴 곳 가난에 힘겨운

이웃을 위해베풂의 꽃도 좋고요
나눔의 꽃도 좋겠지요

한 알의 꽃씨가 천송이의 꽃을 피울 때
우리 사는 이 땅은 웃음꽃 만발하는 행복의 꽃동산
생각이 기도가 되고 기도가 사랑이

될 때 사람이 곧 빛이요 희망이지요
홀로 소유하는 부는 외롭고 함께 나누는 부는

의로울 터 말만 무성한 그런 사랑 말고
진실로 행하는 온정의 손길로
12월엔 그대와 나 예쁜 사랑의 꽃 씨 한 알
가슴마다 심어주기로 해요.

 

겨울 사랑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겨울날의 희망 박노해
따뜻한 사람이 좋다면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꽃 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빛나는 날들이 좋다면
우리 겨울밤들을 가질 일이다
우리 희망은 긴 겨울 추위에

얼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뜨거운 피가

돌고 얼어붙은 뿌리에

푸른 불길이 살아나는 것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우리 겨울 희망을 품을 일이다

 

겨울 편지 이해인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 바다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 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본다.

 

다시 겨울 아침에 이해인
몸 마음 많이 아픈 사람들이
나에게 쏟아놓고 간 눈물이
내 안에 들어와 보석이 되느라고
밤새 뒤척이는 괴로운 신음소리
내가 듣고 내가 놀라 잠들지 못하네
힘들게 일어나 창문을 열면
나의 기침 소리 알아듣는
작은 새 한 마리 나를 반기고
어떻게 살까 묻지 않아도 오늘은 희망이라고
깃을 치는 아침 인사에
나는 웃으며 하늘을 보네

 

 

겨울 나무 도종환
잎새 다 떨구고 앙상해진 저 나무를 보고
누가 헛살았다 말 하는가
열매 다 빼앗기고 냉랭한 바람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누가 잘못 살았다 하는가?
저 헐벗은 나무들이 산을 지키고 숲을 이루어

내지 않았는가 하찮은 언덕도 산맥의

큰 줄기도 그들이 젊은날 다 바쳐 지켜오지 않았는가?
빈 가지에 새 없는 둥지 하나 매달고

있어도 끝났다 끝났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실패했다고 쉽게 말하지 말라
이웃 산들이 하나씩 허물어지는 걸 보면서도

지킬 자리가 더 많다고 믿으며 물러서지 않고 버텨온 청춘
아프고 눈물겹게 지켜낸 한 시대를 빼놓고

 

겨울 나무 문정희
감나무에 박힌 나뭇잎사귀
막대기로 툭툭 치지마라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뼛속까지 깨우쳐 준 이가

바로 그여서 무릎 꿇고 정말

큰 절을 하고 싶어
오늘도 부처 같은 말씀 몸통 째

뚝뚝 떨어져 무슨 깨우침의

말인지 잘 알지 못했지만 얼마나

구구절절 깊고 장엄한지 삶은

파도 거품 같은 것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확실하게 보여주는 기술은
지구 어디에도 이들을 능가할 자가 없어

 

그해 겨울나무 박노해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박노해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빚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그해겨울 박노해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 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귿게 믿고 있었다. 

겨울나무 이정하
그대가 어느 모습 어느 이름으로

내 곁을 스쳐 지나갔어도 그대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여울되어 어지럽다
따라 나서지 않은 것이 꼭

내 얼어붙은 발 때문만은 아니었으나
안으로 그리움 삭일 때도 있어야

하는 것을 그대 향한 마음이 식어서도 아니다
잎잎이 그리움 떨구고 속살 보이는 게
무슨 부끄러움이 되랴 무슨 죄가 되겠느냐
지금 내 안에는 그대보다 더 큰 사랑
그대보다 더 소중한 또 하나의 그대가
푸르디 푸르게 새움을 틔우고 있는데

 

겨울나무 이재무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 내려 잎 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 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 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더욱 단단한 겨울나무

 

 

겨울나무 조병화
겨울나무는 종교처럼 하늘로 하늘로 솟아오른다
 매서운 바람 속에서 냉랭한 대기 속에서
세찬 눈보라 속에서 오로지 곧은 이념 묵묵히
카랑카랑한 기침 소리를 내부로 내부로 숨기며,

죽이며 의연한 모습으로 겨울나무는

스스로의 종교처럼 하늘로 하늘로 솟아오른다
안으로 안으로 스스로의 하늘을 넓히며
파릇파릇한 생명을 닦으며 밤에도 잠자지 않는

꿈을 품고 투명한 영원으로, 쉬임없이
겨울나무는 스스로의 종교처럼 하늘로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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