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사는 이야기

작은 거인

우리들 이야기 2021. 8. 29. 07:44

 

작은 거인

더위와 시름하여도 그늘과 에어컨 킨 집안은 더위가

방해되지는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선선한

가을바람이 창문으로 불어오는 데 반가운 바람이었습니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칙칙한 풀냄새 가을향기가 되어

오후엔 가을 고추 담으려고 고추대 뽑는다고 해서

고추따러 갔는데 가랑비는 오고 비닐 하우스가 나의 은신처

아직 고추대를 뽑지 않아 고추대가 서있는 밭고랑에서

남편은 풋고추를 세가방 따와 땀을 씻고 있었습니다.

고추잎을 슬치어서 옷이 젓었는데 다 말랐다고 하면서

힘들어 쉬고 있는 하우스 안에서 나의 맘은 짠하였습니다.

작년 이맘때 그곳에 가서 고추를 따왔는데 벌써 일년이

후딱 가고 다시 가을이 오고있으니 이제 작은 거인도

그만 일하고 쉰다고 하였는데 그 말 십년전에도 들었기에

정말 그말이 약속을 지킬는지 하우스 안이 길고 커서

운동장같이 아무것도 작물하지 않아서 속상하다고 하며

풀이 난 것을 보고 낮가지고 베기시작하였습니다.

그 작은거인이 월요일에는 딸네 아이들 봐주러 가야하니

급한 마음인지 이것저것 농촌은 할 일이 태산이라

시간가는줄 모르고 일해도 터도 안 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길들여져야 속을 아니 편한 관계가 되고

믿음이 생기니까 작은거인이 젊은날에는 같이 다니면

부끄럽기도 하였는데 진국을 몰라보았습니다.

사람은 앞날을 모르니까 지금은 그 작은 거인이 가까이서

말벗도 되어주고 산골에서 웰빙 채소도 먹는답니다.

한때는 젊은날 고스톱치면서 시끄럽게 떠들면서

재밌더니 보리밥 해먹고 국수 삶아먹고 히히덕 거린

사람들인데 하나하나 병 주거리가 되어 그중에 제일

반반한 사람이 작은 거인이랍니다.

작은거인 포함해서 우리또래들 세월이야기하면

척하니 알아듣는데 애들도 처음엔 그때의 이야기

재밌게 듣더니 이젠 실증이 나나 잔소리가 되었으니

알아듣는 우리세대 사람들과 맘놓고 수다를 떨으려고 합니다.

어릴때는 나도 아이였고 한때는 애기엄마 였는데

그때의 나의 잔소리 많이 하다보니 아이들이 커나면서

건져 담을 것은 다 머리속에 담기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할때가 있기에 써먹으며 자기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니

그래서 사랑의 교육은 물흐르듯이 흘러간다하나 봅니다.

젊을 때 수다는 세월의 공부가 되었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받침돌도 되었는데 지금은 잔소리로 들으면서

늙은이 취급만 하니 통하는 이들과의 이야기는 잔소리가

아니고 수다 어제따온 풋고추 다듬으려 김장매트

내놓으라고하니 이따가 성당 다녀와서 함께하자고 하였습니다

정성이 담긴 풋고추 장아찌 아이들도 주려고 많이 담을

것이며 부모의 자식사랑은 몸이 부서져도 몰랐습니다.

조그만해도 사랑은 크기에 작은 거인이라 저희도 닮아가고 싶습니니다.

 

 

행복이란

돈걱정없이 살면서 어려운 사람들 다 신경써주더니

본인이 힘들어진 날이 되었는데 그동안의 삶에서

공이쌓여서 고생도 했지만 세월이 가는대로 빛은 찾아와

긍정의 마인드가 오늘날 악화된 건강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어려운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현 상황에서 이것저것

다하다가 죽을데도 살약이있다고 보상을 받아 아파트 전세로

가더니 기간이 되어서 올해는 더 큰 아파트를 아주 샀다고 합니다.

어저께 그 집 옆으로 지나갔는데 아파트만 보아도 반가웠습니다.

앞에는 성주산 뒤에는 오서산이 있다고 좋아한다니

내마음도 샘이 안났다면 거짓 사실은 질투도 생겼지만

좋았으며 법 보다도 더 믿고싶은 사람이니까요.

긍정이 희망을 부르고 그의 마음이 행복을 불렀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하지만 몸은 많이 망가지어

이사하는데 동생들이 다 정리해 주었다는데 그런 동생들은

씨하라고 하였는데 동기간도 저 하기에 달렸다고

그동안 예쁘게 살아온 사람이니 자기 동생들 많이 챙겨겠지요.

나를 따라 성당에서 세례도 받아서 성당 사람들과

사랑회라고 모임도 가졌는데 상황에 따라 나는 빠지고 그

자매들과 돈독한 침목을 유지하는데 그래도 동네에서

맺은 인연이 먼저라고 하는데 나도 그러하며 스쳐가는

인연도 있지만 오래 인연을 맺고 살다보면

길들여졌기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은 가까이 있어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가며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부분 기억 상실

생각은 건졌는데 몸은 망가지었고 눈을 뜨니 병원 응급실

내가 여기 왜 누어있지? 일어나려 하였으나 몸이 말을 안들었으며

오래 긴잠을 자며 상황을 잊어버리고 싶어서였나요

사람을 알아보는 것 보고 안도의 숨을 쉬며 그동안의 사연을 말해주어

듣고보니 내일의 희망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삶의 어려운 복잡한 고비도 다 넘겼고 앞날이 창창하던 중반에서

내가 쓰러져 이꼴이 되었으니 슬퍼지는 아픔은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가정의 치닥거리 하다보니 나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었는데

어느새 내 애들이 다 대학생되어 이제 내 자신의 인생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꽃이 피려다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몸이 말을 안들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말라가는 꽃에게

물을 주는 사람들이 있어 늦게나마 꽃이 불쌍하게 피고 있었습니다.

예전 모습과 비교할 수 없어 늘 아쉬움이 남아 복잡했던 그 날들이

그리움이 되었는데 현실에 내가 살아남기 위해 컴을 배우기로하였습니다.

넘어지어 일어서지 못한 나지만 더 슬픈 이들에서

위로가 되며 아무것도 몸으로는 할수 없어 컴을 배우며 끄적거리다

보니 살아온 날이 한 편이 인생 드라마 늦게 피어도 일찍 피어도 꽃이며

향기가 나름대로 달라도 꽃이라 하였듯이 컴의 글은 나의 에세이

진흑속 들판에 피어난 들꽃이었습니다.

세상에 절망은 얼마던지 희망으로 만들어간다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걱정보다는 늘 긍정의 생각이 희망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못걸어도 앞을 볼수 있으며 다리 역활 해주는 자동차가 있어  나의 처지를

이겨낼수 있었고 늘 예기치 못하는 좋고 나쁜일이 도사리리기에

살다보면 별별 꼴 다보고 감당하기에 힘든 상황이 만들어져도

나의 일이라면 어쩔수 없는 것이기에 궁리하며 생각하기 싫은 그 날은

아주 잊어버렸고 두 번째 쓰러진날 목숨을 건졌는데 처음엔 말을

잘 못하더니 자꾸 하다보니 말은 해결되었으니 인생의 삶은 만족을 어디에서

찾을지 모르지만 욕심은 내지 않고 평범한 일상이었으면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나의 신체의 일부분이었습니다.

처음엔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많이 찾아내면 더아프기만 하니

잊은채로 그녕 사는 것이 낳기에 부분 기억상실이 오늘을 살게도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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