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하느님 사랑/주님의 말씀.나의 생각.

민들레꽃 외롭지 않다

우리들 이야기 2024. 6. 23. 12:58

 

민들레꽃 외롭지 않다
아무리 작고 낮아도 샛노란 마음 활짝 열어
온통 하늘을 담고 언제 어디서나

더불어의 삶중에도 내면은 위의 민들레꽃처럼

하느님만으로 행복과 가난하고

은수자로 살아갈 수 있는 내공이 절실한 시절.

오늘 옛 어른의 말씀도 신선한 도움이 됩니다.

 

인생은 길이가 아니라 어디에 인생을 거느냐가 중요하다.손정희
매일 자기 전 잠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만으로 위대함은 확실하게 쌓여간다.다산
날마다 세 가지 점에서 나를 반성한다.

일을 할 때 불성실하지는 않았는가? 벗의 신의를 저버린 일은 없는가?

배울 때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은 없는가?”논어
이런 좋은 습관 역시 얼마나 믿음의 삶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지요!

예전 피정자들에게 자주 예로 들었던 두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1.품위있는 노년 삶의 우선 순서는 하느님 믿음, 건강, 돈이다.
2.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정확하게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오늘 역대기 상권에서 요아스 임금이 우상들을

섬긴 것도 배은망덕하게도 생명의 은인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를 죽인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그 자신이

살해된 근본적 원인도 하느님 중심의 믿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이라면 그런

삶자체 모두가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하느님이냐 재물이냐?
양자택일 역시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힘든 것은 삶의 중심이 하느님과

재물 둘일 때 그리하여 마음이 갈릴 때입니다.

확고부동한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이 얼마나 결정적이요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오늘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세 가지 충고 말씀이 참 고맙습니다.
첫째, 걱정하지 마라!
정말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이라면

모두가 하느님 섭리 안에 펼쳐지는

삶이라면 저절로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원망, 절망, 실망의 삼망의 삶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이야 말로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의 모범을 보여주십니다.

그대로 예수님 삶의 체험을 반영합니다.

그대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믿음 약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복음 말씀입니다.

우리의 믿음 부족을 한없이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으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느냐?

너희는 왜 옷 걱정을 하느냐?

이 믿음이 약한 자들아!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 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함을 아신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이미 전래 되는 속담에도 믿음의 흔적이 있습니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다 그가 먹을 것은 타고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

인명은 재천이라 사람의 목숨을 하늘에 달려 있다.

이런 삶의 낙관 역시 믿음의 반영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믿음은 전반적으로 얼마나 약화되어 있는지요?

하루하루의 삶에 오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

좋은 추억을 쌓아가면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됩니다.

말그대로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로 살게 하는 믿음입니다.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

믿음의 삶이 탄력좋은 삶을 살게 합니다.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이 무너질 때 무기력

무감감 무의욕의 삶이요 저절로

죄와 더불어 심신도 병들게 됩니다.

영적 건강에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삶은 얼마나 결정적인지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둘째, 보아라!
‘들어라!’,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삶의 허상이나 환상을 꿰뚫어 삶의 진상을,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사랑의 눈, 믿음의 눈이 열릴 때 하느님 섭리의

현존으로 가득한, 하느님의 선물로 가득한 세상임을 깨달을 것이며

마음 깊이에서는 찬미와 감사도, 기쁨과 평화도 샘솟을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 그런 분이십니다.

대영성가이자 신비가이자 관상가입니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 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조화로운 평화공존의 세상이요

하찮은 미물들 역시 하느님 안에서 한가족임을 깨닫습니다.

지구에 대한 무절제한 채굴과 세상 생명체들에 대한

잔인한 착취와 학대 역시 얼마나 큰 죄인지 깨닫습니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도 차려 입지 못하였다.

오늘 서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입히시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강론을 능가할 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낙관적 믿음이 우리의 부족한 믿음에 크나큰 도전이 됩니다.

매사 세상 만물과 사건들은 믿음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눈여겨보고 지켜봐야함을 깨닫습니다.

셋째, 찾아라!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 인간 실존입니다.

그러니 자나깨나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생명과 빛의 하느님을 찾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결론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의 평생화두로 삼아야 할 말씀입니다.

“너희는 먼져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이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한 안빈낙도 자족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최소한도의 필요로 최대의 행복을

살아갈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람들입니다.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기후위기에 대한 궁극의

유일한 처방이 이런 내적 혁명의 회개의 삶이요.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더불어 공동체 삶중에도

내면은 충만한 고독의 은수자로, 최민순 신부님의 두메꽃처럼 살게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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