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쓸쓸해지는 늦가을 날에 오래전 추억은
늙지 않으니 고왔던 단풍이
내 잎이었기에 그때로 돌아가 놀아본다.
햇빛이 등을 비추는 아침 했쌀.
눈이 피곤하면 귀로듣게 책 읽어주니
참 좋은 세상이고 단풍은 색이
바래어 떨어져 쓸쓸하지만 그 안에서
고왔던 나의 지난가을 추억만을 생각한다.
내 늦가을
단풍이 색이 바래면 낙엽이 되듯이
슬픔과 기쁨이 하나의 짝인 것을
아픔을 피하려고 하였던 지나온날의
약은 세월이며 해마다 다른 나의
가을은 보는대로 살다보니 쓸쓸하지만
삶의 세월은 향기를 내고 있었다.
하루를 더 살면 그만큼 많은 경험속에
고마움 감사 뿐이지 그냥이나
이유는 없었으며 아픔은 머물지 않기에
생각 한 대로 거기에 있었다.
가을과의 이별
내년에 다시 온다고 서러운 가을과 이별
나고 죽고 세상과의 이별만 있는줄
알았는데 공항에서 만남과 이별이 있고 바다를
가르는 여객선에서 부두의 이별도 있었다.
단풍일던 가을에서 단풍지는 늦가을은 겨울로 가는 신호인가?
가고오는 청춘에서 늙음으로 남은 날들.
젊은날의 비행기로 제주광항에서 이별했으며 바다를
가르고 목포 부두에서 여객선과의 이별.
만남과 이별이 사람과의 관계뿐 아니라 삶은 이별이 있기에
그리움이 남았으며 흐름따라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늦가을 단풍
물들으려 하는 단풍이나 물들은 단풍도 세월속에
고왔던 단풍에서 색 바랜 갈색 단풍이 모두
애환이 담긴 인생의 늦가을이 묻어있는 나무꽃이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모두가 한 때인 것을
산과들이 고운 단풍이더니 이제는 쓸쓸해지는 갈색
낙옆이지만 고왔던 단풍만을 담으련다.
오래전 나를 보아 달라고 손짓하던 단풍이 갈색으로
피고 지며 스산하게 스치는 바람소리만 들리었다.
아름답던 단풍잎도 시들면 떨어지듯이 고왔던 단풍
일때 많이 웃으라 속삭였는데 왜 들리지 않았나?
낙엽이 떨어져 거리에 뒹구니 나를 보는 것같아 슬퍼진다.
단풍만을 담고싶은 것은 그때는 나도 청춘이었고
새월이 겉모습 가져갔어도 마음은 여전히 늙지 않았다.
떠나려는 가을
늦게 피어도 피지 않는 꽃이 없다 하듯이
늦게 단풍이 들어도 하나의 갈색으로
그잎이 변하듯이 성질급한 잎은 일찍 색이 바래지만
게으른 잎은 단풍으로 물들다말고 낙옆이듯이
사람들도 게으른이나 바지런한이나 천차만차기에
풀잎에서 단풍으로 낙엽으로 가는 계절과
하나인 것을 떠나는 가을이라 생각도 슬퍼진다.
김장
이제는 겨울준비 해야하는데 내가 하지는 못해도
마음속은 김장을 해놓아야 한것지었다.
정해진 김장날 전날에 절임배루가 도착하는데
지금은 김장매트가 있어 절임배추로 비벼
넣기만 하면 되는데 그래도 지나가야 마음이 편하다.
사는 것은 계획한대로 이루어지면 고마운건데
당연하다는 생각이 감사를 가져간다.
김장철이 일찍 정해지니 지금이 제철인가?
주변에는 김장을 한이가 많은데 우리는 이면 주말에 한다.
새가슴
포기한 작은가슴이 나를 살리었다.
생각이 많은 이맘 저맘 잡으러
내 맘속을 헤메었는데 찾는 마음은 포기였다
먼길을 헤멘 것이 후회 되었으며
보이지 않는 세상일은 맘대로
안된다는 것이 나를 포기하게 하였으니
다 세월의 약이고 경험만이 남았으며 작은
가슴은 불안을 달고 살게 하였지만
큰 새마음이 작은 나의 새가슴을 밀어냈다
비유
보이지 않는 내일을 모르기에 가고싶은 대로
갔으니 종교를 따지기 전에 신뢰와 믿음이 우선.
모든 종교는 나를 위한 이득보다는 모두를
위한 공통체에서 빛이나고 신뢰가 생기었다.
거룩한 말씀대로 세상을 살기는 힘들어도 신을
이용하지말고 비슷하게 라도 살다보면
나도모르게 거룩하게 되어가니 비유지만 그대로
닮아가는 이가 많이 늘어났으면 한다.
제도
하찮았던 날들이 쌓이고 쌓여 추억으로
남을 줄이야 부족해서 허덕인 부끄럽던
그시절에 내가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세월속에서 많은 것들이 변화되며 풍족한
시대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나서부터
죽을때까지 빈부의 차이를 만들어졌으니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제도라고
하지만 그 위에는 개인의 양심이 있었다.
인생의 굴곡
삶은 미래를 위해서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데
이렇게 에상하지 않은 큰일이 나에게
덮칠줄이야 내 나이 중반에 넘어지었으니 그때는
늦은 봄이었지만 몇번의 봄 가을 보내고
맞더니 세월은 원래 모습과 젊음을 가져갔습니다.
예상치 못한 삶의 굴곡을 겪고 오로지
나를 위한 공간에서 컴과 살며 외로움에 늘 다
거두어간 늦가을 거리에 뒹구는 낙엽이 내모습.
시간은 아침인데도 내 등을 비추던 햇빛이
그리워지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뒤한번 돌아보고
닫혀진 창문밖에는 찬서리에 떨고있는 갈잎들
겨울이 가까워져 흐터진 갈잎처럼 나도 추워지는 늦가을.
첫눈.
늦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첫눈.
김장을 하기전날 첫눈이 참 예쁘게 내리고 있었다.
막내아들이 오는날 김장 전날에서
눈이 오기시작했으니 김장도 맛잇을 것 같다.
첫눈이 축복해주는듯 하였고 김장을
마치고 서울로 가는데 길이 안 미끄럽게 눈이 다 녹았으니
우리가 사는 고마운 세상이었다.
첫눈도 나이를 먹는지 청춘에 첫눈과 지금의 첫눈은
생각하는데로 달라도 분명한 것은
첫눈이었으며 펄펄 쏟아지니 옛날에 보던 첫눈이었다. 2023 11 17
김장
정해놓은 김장날짜 막내아들이 전날 와서 장어집에서
식사하고 어제 아침에 남편이 일찍 일어나
밥을 하고 풀쑤고 나는 냉장고 방에다 씻어놓은 갓과
파가 떠 있어서 다시 다듬었으며 더 맛있게
끓인다고 육슈뮬에 시금치 국을 끓였는데 냉동고에
잔뜩 있는 바지락을 안넣었으니 그런대로 맛은
있는데 내 잔소리가 때에 따라서는 달달한 약이 되기도
하였으며 못내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막내아들이 절임배루를 소쿠리에 담고 남편은 무우를
갈고 파와 갓을 썰어 김장매트에 담았으며
이것저것 소소를 만들었으며 막내 시누이까지 와서 일찍
끝마치고 소영이 남편하고 애들도 다 와서 시끌댔고
김장하느라 힘들었는데 도윤이 다진이가 웃게 하였다. 2023 11 17
1야생화
들꽃이었던 내가 세월이 휘감더니 야생화로
억세지었는데 잘모르겠다.
나 더러 순한 양 깉다며 나를만나 맹수가 양 되었다 해서
그런줄 알았는데 속이 보이는 바보를 만들었다..
착한이 보러 양이라 하였는데 나와 내가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면 사자가 되어야 하는데 나도
도움을 받아야하는 아쉬운 처지였다.
악마가 쫓아오면 착한 양 뒤에 숨어서 그 뒤를 따르가라
하였는데 이젠 어릴때부터 부터 빈부 차이가
나기에 경제로 애들이 기가 죽으니 착함보다는 맹수로
군림 하는걸 배우고 있었으며 됨됨이 보다는
부모의 위치나 경제가 조건이며 양 뒤가 아닌 사자등뒤에
숨어야하니 슬픈 현실을 따라가며 가까울수록
계산하는 경쟁자가 되었으니 더 속상하고 여기저기 환하게
향기나게 피던 들꽃이 어쩌다보니 시들고
지는 억새로 살기 위해서는 야생화가 되어가나?
마음이라도 부드러운 들꽃이어야 하는데
억새지는 야생화가 되어가니 꼴값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의 문화는 김장철이 되니
우리집에 모여서 다 끝내고 자장면과 탕수육 곰탕으로
어른과 아이들이 다 함께 떠들었으니 다 나는
없어지고 아이들 위해서 웃음나누었고 들꽃이 시들으니
새로운 시대의 향기나는 야생화로 들판이 환하였다.
2야생화
다진이는 딸이며 4살 도윤이는 아들인데 2살
어린 다진이가 웅면 대회 나가기도 하게
엄마 아빠가 기를 살리어서 어디를 가도 당당한
어린 향기 피우는 야생화가 되었으며
내 맘에 안들면 우는 목소리에서 감정이 묻어나서
아무나 달랠수가 없었고 도윤이는 더 천방
지축 이라도 남아라고 드세며 지 맘이 안들면 그냥
시무룩 하기에 어릴때부터 딸과 아들은
표현이 달랐으며 확실한 것은 다진이도
도윤이도 속이 보이는 철이 덜든 아이들 그 부모가
향기나는 야생화로 피게 하였으면 한다. 2023 11 18
고마움
승덕이가 배달원이 되어 봉사하니 막내고모가
올가을 지은 쌀을 20kg 주었으며 쌀값대신
다진이 도윤이 돈을 조금 주었으니 주고받는 기쁨이었다.
곰국에서부터 백김치 깍두기 김장김치 누나네
엉아네 다 배달해고 집에는 늦게 들어갔나보다.
검강검진을 이달중에 받는다는데 건강하게 별일 없었으면
하고 고마움 감사가 날마다 이어지기를 기도한다. 2023 11 19
내 가을
아름답던 가을 단풍도 이별이 서러워
눈물을 쏟아내니 자연도 그냥은 없었습니다.
몇 번이나 곱게 단풍진 가을 볼수
있을지 몰라도 물들었다 지려는 늦가을에서
허무보다는 단풍이 곱게 물들어
아름답던 날들만 추억애 담아보렵니다.
사는 것은 웃음속에 눈물도 섞였서 고마움을
알게 하는 감사한 날이었고 어젯밤에는
손주들이 랩을 하며 춤추는 사진을 보내
왔으니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며 감춰
었던 속을 보여서 옛날의 할머니를 탈퇴하렵니다.
어둑어둑한 아침 밖에는 늦은 가을비
오는지 운동 나갔던 남편이 비온다고 들어왔으니
거대한 하늘도 예쁜 가을산과 작별이
싫어서 우는지 내 마음도 우울합니다.
나의 삶
어차피 살거라면 상황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일때
살아있음에 재미도 알게 되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나는 여기와 지금에 살 수밖에
없으며 미래를 내다 본다거나 헛된꿈은
이미 다 꾸어 보았지만 내 생각대로 안된다는 것을
이제 그만 멈추라고 아무것도 못하게 하였다.
인생이란 공평하지 않다고 처한 나의 상황을
위로 삼으며 사는 것은 어떻게 늘 만족하기만 하냐고
하지만 다들 아픔과 빈곤은 싫지만 상황을
피하지는 못하는 것이 삶이며 이런 나의 처지에서
조금 이라도 만족함만 찾으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창밖의 모든 새싹들이 세월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며 컸다가 늙어버린 나무들처럼 나도 한때는
새싹으로 시작되었으니 그때의 전성기만을 기억하리라.
살아간다는 것이 저마다 기준이 다르다 해도
비슷한 것은 늙어보니 거기서 거기였으며 건강이 마음도
불렀기에 경쟁하며 살아온 이들이 세월 친구가
되었고 아무것도 못하니 찾아주는 이가 없드라.
그래도 서운하지 않은 것은 다들 엉금엉금 기는 이가
늘어가니 세월의 무상함인가 엄마의 이름이 전부
할머니라 불러도 나에게는 여전히 누구의 엄마로
그들이 세월의 친구였으며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배려
속는줄 모르게 속았으며 속이는 줄 모르게 속였다.
속고속이는 세상에 살다보니 의심부터 하고
세일하던 시대는 옛날이며 지금은 하나 더하기 하나로
속이니 하나만 을 사면 손해본 것 같았다.
작은 것도 사람을 모이기 위해서 속이며
미찌는 장사가 없다고 이익을 위해서는 천리도 간단다.
어딘가에서 채우지 무조건 흑 파먹고 장사하는
것도 아닌데 당장은 싼것에 호기심이 생기지만
지나보면 신뢰가 먼저라 싼게 비지떡 이라더니
김장김치가 물러서 왜그런가 생각해보니 배추를 집에서
절이다가 싱거울 것 같아 소금 한줌을 더 넣었는데
그 소금이 물건너온 썬 소금이었더라.
그후로는 소금이 김치의 생명이란 것을 알았고
오늘 친구가 배추를 준다해서 백김치 담으려
검색을 해보는데 고춧가루만 안들어가지 양념은 똑 같았다.
비오기전 오늘 뽑아와서 두었다 7일날 절여서
8일날 담으려는데 나이가 들었어도 계획한대로 리듬이
깨어지면 안되기에 점점 불안하기도 하다.
귀찮기는 해도 시골에서 직접 가꾸었기에
정성이라 친구한테 전화하니 안 받는다는데 가끔은
식사 대접하니 부담이 적어진다.
친한이와 허물없이 재밌게 이야기하다보면 알면서도
속아주고 나도 모르게 속이기도 하고 속고
속으며 사는 세상이라도 배려하는 믿음이 생기었다.
나의 무기.
무기가 나의 도구가 아니고 낭만이 있는
책이 도구기에 나이나 신체에 연연하지
않는 것은 숫자에 불과하다고 나의 무기는
책속에 빠지는 것과 디지털이었다.
언젠가 부터 세월 따라 가다보니
늦 가을에 와 있는데 춥기만 하여 김장
준비하려 검색창을 뒤적인다.
언젠가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져
책에 기대 었는데 책읽기가 귀찮았지만
책읽기가 읽어주니 참 좋은 세상에 있구나.
고마우며 디지털이 세상에서 모르면
검색창에서 알려주니 언젠가부터 디지털에
의지하게 되었고 불편함을 해소시키는
것들을 찾아보니 많았기에 나의 도구는
집인일이 아니라 디지털이고 책이었다.
억울한 세상
속이고 속는 세상뿐 아니라 쫓기고
쫓아가며 그안에서 부딧쳐 싸우며 이해하고
억지라도 웃으면서 억울 해서 분통도
터지며 그렇게 내 맘에 만족을 얻지 못하여
원망과 아쉬움이 많았지만 이제 그세상과
작별할날이 가까워진 내세월이 허무하고
나로 인하여 억울 한 이가 없었으면 한다.
슬픔
아픔으로 으로 얼룩진 많은 날들이여
어두운 밤이 길더니 어디에는
비가오지만 어디에는 해가뜬단고 꽃도피면
지고 새도 오면 떠나고 나고 죽고
일장춘몽이지만 사는 동안 뼈저린 아픔만은
피해야 하는데 자리가 힘이되어
밀어 붙이는 현실이지만 양심은 하늘이더라.
비 그치면 바람속에도 해는뜨고 늦게
피어도 피지않는 꽃이 없듯이 일찍 단풍들면
일찍 색이 바래듯이 인생의 삶은 일반
통행이 없었으며 봄에는 얼굴에서 꽃피지만
가을에는 잎새에서 꽃이 피니 잘 물든
단풍은 봄곷보다 더 예쁘다고 얼룩진 땅을
높아진 푸른 가을 하늘의 빛으로 말려
주기를 어디를 가나 나의 산이 있고 들판이
있지만 현실의 바람 부는대로 쓸려가드라.
슬픔
오래동안 현실만 살아온 나의 세월
지나온 옛날의 오늘 이었음을
내일은 지난날의 미래였는데 나의 세월은
그 내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부족한 옛날에도 내가 있었고 풍족한
오늘에도 내가있지만 그때나 지금
이나 만족함은 생각하는대로 였다.
사는 것은 과거와 미래속에 오늘을 살지만
자랑할 것은 못되어도 추억이 서린
옛날이였으며 오늘이 그때의 미래였다.
부족해서 오는 가난은 모두가 그랬고
그때는 믿음이있어 서로가 싸우면서도 앙금은
남기지 않았고 아이들이 안 들아와도
누군가 때가 되면 밥도 먹이고 재워주겠지
믿음이 갔던 그때였다.
점점 과학이 벌전하여 디지털에 목메어
사는이들이 늘어가며 경쟁의 전쟁으로
아이들나 어른들이나 권력으로 힘센 자리가
지배하니 긴 싸움이 될것이라 슬프다.
내인생의 바다.
거센물쌀을 뚫고 파도가 소용돌이 치며
밀물과 썰물처럼 넘실거리다 하나로 모아지면
햋빗에 반짝이는 물결이 빛을 내어 환하게
비추듯이 나의 삶도 그렇게 소란하다 잔잔하였다.
알 수 없는 삶을 살다 힘들면 바다를 보라
하듯이 넓고 푸른바다 물이되기도 하고 죽음을
부르면서 우리의 삶과 흡사한 자연의 한부분.
인생도 80%가 물로 생명체를 살리듯이 넓은 푸른
바다는 인생의 삶이고 다 생명을 지켜주었다.
늦가을
우리들의 가을은 해마다 찾아오지만 이야기만 남기고
저만치서 이별이 서러워 우는가?
자고나면 축축히 나뭇잎이 젖어 이슬이고 고개숙인
너를보면 허무해지드라.
서로 엉키어 매달리는 가을겆이 닮아가나
우수에 젖은 우리들의 세월만 이야기가 되었드라.
끝없이 펼처지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웃음과
눈물이 섞여있어 젖은풀잎은 내가 되었드라
전부가 익어가며 허물벗고 물들인 단풍아 쉬엄쉬엄 가면
좋으련만 머가 급한지 칙칙히 말리며 달려가는지
안보여도 가까운 하늘밑에 내마음도 가까워져 있다.
가을이 가는대로 청춘도 따라가고 바바리 여인들은
단풍길을 걷는줄 알았는데 어쩌다보니 이슬젖은 낙옆이
흩어지는 늦가을 한복판에서 우리들의가을이야기
나의 꽃 이름
잡을수 없는 시간이 갈때마다 세월은 흐르고
어김없이 철따라 꽃이피며 바뀌어 간다.
먼 훗날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내모습은 늙어가고
예기치 않은 사고로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피려던 꽃은 피지 못한체 떨어지었고 병원에서
퇴원하던 때 구월의 햇빛은 내등을 감싸주었고
재활과 마음 고생은 견딜수 있어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생활하는 돈이 없으니 더 힘들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공장과 집이 팔리어
삶을 지탱할수 있었으며 그래도 내 주위에 좋은
이들이 많아 세상이 나를 버린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세상을 못 보아 미안하였다.
배운것도 잘난것도 없으며 자존심 만으로 언덕을
올라가려다 내가 작아지고 아무것도
도움을 주지 못하여 쓸모 없어지니 나의 존제감
별거 아니라는 것에 허무를 알게하였다.
작은일에 행복이 그게 바로 세상이라는 것을
뿌리는대로 꽃의 이름도 있듯이 나의 삶
에서는 아내와 엄마라는 꽃이름 말고는 없었다.
새가오면 꽃이피고 새가 가면 꽃이 지듯이
웃으면 꽃이피고 슬프면 꽃도 떨어 지었다.
창밖에는 소나무 가지가 추운 바람에 흔들대고 엄마
꽃은 갈색꽃잎되어 거리에 흩어지고 있었다.
엄마의 꽃
세대차이.시대의 유행이 바뀌었을 뿐 세대차이는 없었다.
오늘이 내일의 어재며 어제는 그제가
되어도 한밤이 지나면 다 주어지는 오늘뿐 이었다.
지난날의 유행하던 것들이 옛 구식이 되듯이
나를 태워 가지고 다니던 소나타도 시간이 지나니
구식이 되었으며 다시 그랜저로 바꾸어
오래 탔는데 다시 새차인 신형 소나타가
나의 다리 역활을 해주었고 뚜껑을 열고 닫던 핸드폰
2년에 한번씩 바꾸며 지금은 최신형 뚜껑없는
예쁜 폰이고 와이파이가 잡히면 요금도 싸니 과거와
현제가 어우러진 디지털로 오늘을 만들었다.
옛날사람들도 그때의 유행에 살았고 현실에 비추면
촌스러워도 부족했던 그 세월은 최고의 삶이고
물질이 풍족하다 해도 어릴때부터 빈부차이로 기죽고
커서는 자리로 싸우는 시대를 만들었으니
자유평등이 그립지만 쉽게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시대의 유행따라 과학의 시대에서 삶이
가치가 가진 만큼을 만족으로 살면 항상 부자인데
더 가지려는 눈 높이가 삶을 망가지게 했으며
생각은 차이가 안나니 옛날 살아온 사람들 현실에 사는이들
더 아래 어린 애들과 함께 어우러지게
중간 역활을 누가 하느냐에 세상은 달라지었다.
어제 시누이와 시집간 조카딸과 점심을 먹고 아이들
주라 곰국을 보냈는데 영상으로 할아버지 고마워요.
곰국을 먹으면서 다섯 살자리가 인사를 하였다.
아이들을 참 잘키우는 구나 마음속으로 그 엄마를 칭찬하였다
천질차이
오십보 백보 이거나 저거나 오르고 네려오고
가고 오고 피고 지고 날고 떨어지고
도 아니면 모라고 하지만 다 천질차이며 안오는 건지
못오는 건지 결과는 같아도 과정은 천질차이.
마음과 사정대로 현실이 주어지기에 비슷비슷한
것 같아도 천질차이였으니 확실하게 틀리면
쉽게 답을 찾을수 있어도 비슷하니 핵갈릴때가 많았다.
삶
거룩한 말씀속에 살아보려 하였는데
세상에서는 그렇게 살면 뒤처지기
때문에 세상에 끌려가다가 일주일에 한번씩
미사를 들일때면 나를 성찰하면서
부끄러웠으며 복음을 전합시다 미사가
끝나면 성당문밖을 나오며 다시 세상
속에서 헤매었으니 거룩한 말씀이 비유기에
그대로 닮아보려 했지만 안보이는
세상은 미루고 보이는 현실의 세상을 따라갔다..
자유
제멋에 사는 것을 자유라 하지만 책임 이었으며.
때로는 그런 자유속에 사랑과 증오
무관심이 함께 있어 그중에 사랑만을 찾기위해
증오와 무관심이 약이었던 때도 있었다.
부담을 안주는 무관심은 안보이게 감추던 마음속의
관심이었으며 자신의 눈빛에서 본성이
들키었으니 저마다의 자유는 다르지만 자유는 책임.
자유는 테두리가 있어 그안에서만 누리는
자유 였으며 방해하는 것은 경제라고 생각한 젊은날
그때가 나의 옛날이며 지금은 자유보다는
소망이랄까 경제 보다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별일없음 이었는데 아이들 말이 늙을수록
아프면 병원 가야하니 경제는 필요 하다고 한다.
인생 전체를 물들인 무의미속에 나는 어떤
색을 내었으며 향기는 사람을 매혹 시키었는지 성찰
하며 평온하게 죽음을 받아들이자는 나의지론.
이별이 가까워지니 죽음복을 생각하는 자유는 허상이었다.
굴레
생의 굴레는 천번만번 바뀌었다.
삶의 굴레를 벗은줄 알았는데
다시 굴레속으로 빠지는 줄을 몰랐다.
만남괴 헤어짐이 가장 확실한 진리며
한 생의 마지막 날까지 슬펐던
아픔이 기억으로 남지만 웃음을 나누
던 날들이 그리움으로 아픔을 지웠고.
삶의 굴레는 처한 상황대로 거기에 있었다.
날씨가 춥다고 낮 운동한다는 남편
첫미사 가야하는데 깨우지 않아서 시간이
넘어 알림을 무산시키었으니 교회
다녀와서 알림 찍는다고 하면서 미사가갔다.
화.
사는 것은 부부라해도 다름을 인정
할 때 서운하지가 않았으며
말도 안되는 어이없는 기사도 화가
가라 앉으면 이해가 갔으며
현실에서 네가 보였고 나를 알았다.
거룩한 말씀을 안 보니 휴대폰
바탕이라 중요한 1면의 거룩한 알림.
화가 났을때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말아야
하고 가라앉은후에 결정을 해야 후회가
없었으며 화가 나는 것은 나의
마음이 살아있다는 뜻이며 10을세면
화가 가라 앉았았고 더 많이 화나면
100을 세니 진정되었기에 그래서 화난
사람에게는 저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었으며 화난 사람에게 말로 대항하지
못하지만 기다리면 이기는 것이었다.
일상
살면서 풀어야 할 숙제는 당장이었다.
무말랭이 무치어야 하는데 성당에 다녀와서
나가더니 들어오지가 않아서 궁금해
전화하니 운동하러 나갔는데 아는 이가 자기
아내 없다하여 그 집에 가서 과일하고
커피 마셨다며 무 말랭이 불려가지고 무치었다.
저녁에는 곰탕에다 넣으려 당면을 담가
놓았으니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야서 먹으려 한다
참 좋았던 우리.
지나고 나면 추억이 아름답듯이 검은 머리가
빠뿌리가 되었어도 참 좋은 우리들의 지난날이다..
오늘이 가면 옛날이 되니까 지금 좋으날을
만들고 처해 있는 나의 상황에서 할수 있는
것들을 우선으로 하고 오늘을 살리라.
꽃도 피려면 비바람을 이기고 향기가 나듯이
긴 세월을 살아온 만큼 고운 향기를 내고싶다.
위험에서는 손잡아주는 이가 있어 센바람이
불어도 넘어가지 않았고 위험에서 보호해주는
이들이 세월이 숫자만큼 고마운이들이 많았다.
혼자가 아닌 나와 가까운 이들이 벗이 되어
주고 함께 별을 보고 꽃을 피우면서 미소를
띠우는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 나의 세상이었다.
감정
잃어버린 감수성을 찾아가는 문학이
세월의 길이만큼 사랑했는데 보이지 않더니
내시간이 많아지며 문학의 할머니였다.
부끄러워 말못한 숨겨진 감정이 드러났으며
나뿐아니라 우리의 세대친구들은 다
눈빛에 감정이 들어있어 그 사람의 현실이 보였다.
그때 그날
성질급한 꽃잎이 떨어지고 게으른 꽃이 피던 날
당신의 부르심으로 높은 문턱을 넘어
교리를 시작하였지만 일주일이 빨리 돌아와서
귀찮게 느꼈던 지나온날 세상에 젖어 있어
힘듬을 성당안에서 찾으려 했는데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모습에서 위안을 받았으니 그때부터
제 인생을 주관하신 주님 앞으로도 늘 함께하여 주십시오.
슬프고 아팠던 날들은 지워지게 하시고.
세상일은 한치앞도 장담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소서
당신과의 만남이 끊어진 실타래가 다시
이어지게 하는 당신의 섭리 남편을 다시 부른것은
아들친구 영세대부가 되었고 파주에서 마포로
큰 아들이 복사하다가 자기일에 젖어 세상일을
우선으로 하고 며늘애도 케나다에서 영세받아
안젤라라는 본명까지 받아 인천 성당에서 결혼하였는데
세상일에 매몰되어 두 사람이 냉담하다가
친구 영세때 남편은 대부로 아들은 영세 보증을 섰기에
그후로 다시 성당을 다녔으니 당신의
부르심을 냉담자 모두가 듣게 하소서.
병든자를 위로해주시며 이제는 당신이 나사는 곳을 찾아
오시니 주님이 가신후도 작은 내집은
주님의 향기로 가득하고 별별꼴을 다보고 비바람속을
지나며 살아온 세월에서 내가 성할 때 성지
순례로 베론성지를 갔을 때 가을이라 단풍이 예뻤으며
그곳 신부님께서 만남의 강론 말씀이 살면서 약이
되었으니 기억하고 싶은 추억만을 건지게 하소서.
새싹이 낙엽이 되기까지 몇변의 눈비를 맞은 것처럼 저도
그안에 함께 보낸 이 가을 단풍이 되기까지
아픔의 허물을 벗고 아름다웁게 보이다가 갈색으로 퇴색
되었어도 그 낙옆이 숭고 한 것은 한때는 단풍
이었기에 햇빛에 반짝이는 세월만 보였으며 주님의 부르
심에 응답한 것이 내 인생에서 후회없는 삶이었습니다.
세상일과 안 보이는 진리의 말씀을 재다가
거룩한 주님 말씀을 택했으니 저를 어여삐 보아주소서.
세월을 이긴 당신은 여전히 청년이지만 늙어진
저라도 마음만은 그때의 젊음으로 남게 하소서.
무량사
가을산이 예쁜데 가지못하니 멀리서
처다보는데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가을비가 오락가락 변덕스런 이를
가을비 같다고 하듯이 가을비가 내린후로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쌀쌀한 겨울로
가는 초겨울 11월인데 김장준비로 바빠지는가?
이상기온으로 작년보다 14일이
늦는다고 하니 단풍이 예쁘지 않았으며.
김장날짜를 11월 중순경으로 잡았는데
서울에서 애들이 온다해서 무량사 갈까한다.
얼마전에 그곳을 가보니 우리들의 청춘이
그곳에 묻히어 반갑다고 하였으며 50년이
지난 우리들의 청춘이 되살아나 어디를 보나 가을
추억이 살아온 길이만큼 많았으며 점점
아이들이 설곳이 적어지니 가을산도 늙어가고
무량사 사람들이 없어 절은 썰렁 한데
마당에 가을 국화만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오늘
한밤을 자고나면 새날이 오늘이듯이
날마다 주어지는 오늘은 고마운
소식으로 감사한 날이 되었으면 간절함.
그날이 그날 같아도 그제 어제밤
남편이 욕실을 락스와 휴지로 깔끔하게
만들어 기술자가 해놀은것 같았다.
어둠과 밝음이 반복 하면서 산과 들이
단풍으로 아름다운 가을만든 오늘.
먼훗날 오늘이 역사와 과거가 되기도 하지만
다 옛날이야기를 만드는 새로운 날.
나의 엣날이 작은 역사의 공간으로
나를 아는 사람들의 잠깐 기억했다가 지워
져도 오늘이라는 그때를 만들고 싶다.
시대의 면류관
핸드폰이 유행하던때 아무나 가질수 없는
비싼 폰 지금은 업그레드 되어 모양이 달랐다.
바탕에다 손주들 사진을 올려놓고 자랑하는
할머니들 내리사랑 자식보다 손주들이 더 예쁜가?
할머니라는 그 이름을 얻기까지 사남피면서
지지않으려 우기고 이익 찾아갔던 우리들의 세상
엄마도 되어보고 할머니라는 여자의
이름을 다가져 보았기에 고마운 세월이었다.
누구나 태어나고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
천년만년 살것처럼 왜 그리 걱정했든가?
오래 살다보니 경험만 쌓였는지 그냥 다
이유없는 삶이 없었으며 그러기에 이해 못할일이
없었으며 친한이 만나면 속은 뭉개져도
웃음을 보여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은지가 오래
되었는데 나를 잘 아는 이들은 내 속마음을
다 알았으며 엄마와 아줌마에서 모두의 할머니가
되었지만 변변하지 못한 신체라도 마음은
건강하기에 하루가 가는대로 그때의 삶이
유행되면서 할머니라는 이름위에 변류관을 씌우련다.
나의 세월
손 꼬락을 세면서 오일에 한번씩 샤워하다보니 오늘이다.
물들이는 샴푸가 남았기에 머리를 감으니 염색날 늦추어 일석이조?
하는일이 없어 피곤하지 않으니 한밤을 보내려면 몇번을
깨면서 핸드폰 시간을 보다가 어둑 어룩한데 5섯시에 샤워하려 일어났고.
바쁘지 않는 우리 늙은 부부 운동하고 남편이 들어왔으며
컴에 앉아 보니 그날이 그날같아도 시간이 가는대로 세월이 되었으며
이제서야 삶에 기로에서 지난날을 더듬어보니 부끄러운 나를
보았기에 후회가 아쉬움으로 남았지만 그때는 젊음이 있었던 나였다.
불안하고 인생이 내맘대로 안될 때라도 다 세월의 약이었는데
신체가 병이나니 고치기가 쉽지 않았고 지금도 진행중이라 슬프다.
산과 들에는 아직 늦게 핀 단풍이 이상기온으로 예쁘지 않아도
나를 보는 것 같았으며 저 단풍이 더 색이 바래면 나도 낙옆으로 뒹굴겠지.
허무해지며 보이지 않던 나의 미래에 많은 날들 불안에
휩싸이게 하였고 내가 이모양 이꼴이 되었으니 남은이의 십자가를
내가 지었다고 나를 위로하며 세월이 가면 나의 신체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여전히 더 볼품 없어지며 세월만 흘러버렸다.
천생연분
표정에서 마음이 보이기도 하였지만
이유없는 삶이 없다고 이해하는 것도 배려이었다.
편한이라도 존경심을 가질 때 오래갔으며
함께 살기 위해서는 보이는 인성도 필요하지만
안 보이는 마음이 더 절실 하였다.
사나운 바람속도 지나가면 잔잔하였고 사나운
먹구름도 지나가면 푸른하늘이 나오듯이
함께하는 삶은 무거운 짐을 바쳐주는 것 같은 마음.
편하니까 함부로 대하기도 하지만 가까우니
그렇겠지 하면서도 누구있을 때 그렇게 대하면 속상
하였고 가끔은 서운하였지만 또 좋은일 있을
때는 제일먼저 알려 줄거라 생각하니 미움이
가시어 고마운일만 담게되며 전화기 단축번호 일번.
보는 방향이 같으니 이야기를 하다보면 목적이
같기에 한곳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천생연분이었다.
숲길을 보았다.
나의 숲길은 없는줄 알았는대
내 청춘이 추억이 묻혔던 숲은 비바람 맞으며
단풍이 들고 있는데 그곳을 안갔다.
그때의 백송은 철따라 푸른 숲이 단풍으로
잠깐 물들더니 비바람에 낙엽이 되었으며
보이지 않는 세월속에 내일만 연속이었다.
이야기할 사람들이 가까이 있어도 감추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눈빛만 보아도 속이
다 드러나며 비슷한 세월속에서 늘 다른이의
삶을 부러워 하는 것은 그 입장이 안되어
보았기에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연없는 이가 없었다.
세월은 그대로인데 마음만 늙어가나?
별 스럽지 않았던 날 오늘날에 꺼내보니 추억이
되었으며 창밖에 푸른 소나무가 가을이
깊어가니 노랗게 물들고 길건너 아파트
울타리 아래는 갈잎이 싸였다 바람이 부는대로 흩어지었다.
흩어진 낙옆
아름답게 잎새를 물들이는 가을꽃
해마다 철따라 오는 채우고 비워가는 가을에서
산과 들은 다양하게 가을꽃이 피고 있다.
하늘이 높아지며 쌀쌀해지는 기온에 쓸쓸해지며
허무한 세월속에 살아왔는데 고왔던 단풍잎은
가을비에 젖어 피다말고색이 바래며
낙옆으로 가는지 길바닥에 수북히 쌓였다.
추억은 내가슴에
단풍색이 바래며 황금빛으로 채워졌던
들녁이 거두워지면 썰렁해지어
쓸쓸함과 허무함이 밀려오며 별일 없는
평온한 일상이 덧없는 것이 아니고
고마운 시간 이었는데 더 큰 아픔이
닦치니 그때가 그리움으로 남았더라.
시간이 많다보니 생각도 많아져
하찮은 추억이 살아나서 나도 모르게
그때로 돌아 가서 놀고 있었다.
가을의 가로수
치양모자 쓰고 전동차로 지나다보면
하늘이 가까이 내려와 그늘이 되어주더니
더위를 식혀주던 그 가로수가 철 따라
거리마다 노랑 옷을 입은 은행나무였다.
푸르름이 노랑물로 젖어있던 가로수는
이제는 갈색이 되고 바람에 하늘거리니
가로수 그 아래서 늦가을 하늘을 바라보니
은행잎사이로 하늘은 높고 더 푸르렀다.
무관심
돈을 무시하변 부자였다.
부자나 가난은 마음이 가는대로 거기에
있기에 이익이 있는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맞으면 아프고 빼앗기면 억울한데
아닌척 착한척 하는 것은 뒤처진 바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위에 무시하는 약이
있었으니 나라마다 법제도에 따라 자기
중심에서 흉보며 친해도 지나친 관심이 부담
될때도 있으며 돈만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다해도 그 돈을 이기는 것은 가진 만큼만
가지고 살면 부자 였지만 남하는대로
빕새가 황새 따라 가려고 하면 늘 허덕 이었다.
가을과의 이별
예쁜 가을이 떠나려 하지만 아직은 다 물들지 않은
가로수 은행잎은 얼룩지었으니 가을과의 이별이
남아있어 쓸쓸해지는 가을이지만 웃으면서 보내련다.
단풍잎 그려진 엽서가 오래전 청춘인가?
이제는 갈색 낙엽을 어디에 그려야하나?
깊어가는 가을에 세월을 함께 보낸 그리운 사람들과
살아온 날들이 이야기로 가을에서 늦가을
보내고 맞는 많은 사연들을 가을편지로 담아본다.
가을 단풍과의 만남이 낙엽으로 이별을 기다리는 우리들.
얼룩진 아픔
에기치 않은 아픈 날이 치료되지 않으니 오래
울리는데 그날의 기억은 지워져야만 살 수 있었고
그 기억이 인생의 삶을 돌아보는 나의 마음
청소를 하였고 원래 내가 아니기에 아프지만 그
불행을 이겨내는 아픔속에 작은 기쁨을 알았어도
다시는 그런 기억은 나에겐 없었으면 한다.
어이없는 날이 나를 사무치는 외로움에 나의 미래는
산산조각이 나서 내려앉고 세상일 내맘대로
이뤄지지 않았어도 여전히 내일에 희망을 걸어본다.
빨래만 섞어지면 얼룩지는 것이 아니고
나의삶도 알 수 없는 물결같은 얼룩이 남았다.
우리들의 고향
향수에 젖어 멀지 않아도 혼자서 가지 못하지만
마음속은 늘 그곳에 살고 있다.
어린 시절 우리가 살았던 옛날 그곳은 지금은
다 도시로 나가고 산골 마을 대표가 된
남편친구는 동네로 나오는 돈을 다 관리한단다.
도시는 땅이 비싸니까 산골에 공장이 들어서고
납골당도 있기에 몆집 안되어서 나오는 돈을
가구대로 주는데 솔솔하게 제법 많다고 하였다.
산골도 유행바람이 불어 아파트가 들어서고
전부 주택을 개조해서 살기가 편하다는데 자리대로
차별하니 애들 때문에 도시에 나가살고 내자식
만큼은 고생시키지 않으리라는 부모들이 마음까지
가난하게 하였으며 그 뿐인가 나의 고향도 되며
남편 친구가 하는 여러 채소 우리 마트가 되었다.
가을이면 우리 방으로 다 이사와서 방바닥에 누어있어
안먹어도 배가 부르며 아등바등 힘든삶을 살았던
우리의 젊은날 그곳에는 동심의 추억이 되어 정겨운 고향.
커가면서 순수함은 잃었어도 우리들의 어린시절이
그곳에 다 서려있기에 이야기가 통하는 우리였다.
지나봐야 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댕겨서
두려움을 걱정하는 날이 인생을 조여왔다.
생각하는대로 현실이라도
보이지 않는 내일 일에 걱정 안하리라
하면서도 준비되지 않은 어느날 늦봄
나의 꽃잎이 떨어지며 눈물보다 더 쓰린
아픔을 감당하지 못했다.
작은 돌부리도 넘지 못하고 너머지어
생명하나만 바드시 구해 감사했는데
이렇게 오랜세월 불편할줄이야.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주눅들은 나의 삶
현상황을 인정하니 자유롭고 감사를 알았다.
일어서지 못한 상처는 아프지만 그
상처에서 작은 기쁨을 알게 하였으니
인생이 슬프지만은 안았다.
중년에 슬픈 날들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방치하고
무시했던 나를 이제 부터라도 나를위해서 살겠다.
볼품없다고 부끄럽게 생각한 나에게
미안하며 측은히 여겼던 내몸을 챙기고
삶은 지나봐야 안 다니까 보이지
않은 내일이라도 내일을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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