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시) 이야기 268

차 안에서

차 안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 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길가에 서 있는 소나무가 오늘따라 짙어 보이는 한낮! 웃고 있는 겨울 햇살 찬바람을 가르며 대천항으로 자동차는 달린다. 초록빛 바닷물은 끝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는데 철렁대는 파도에 발을 디디면서. 깊은 심연에 빠져 바라보고 있는데 모래 위를 거니는 팔짱 낀 연인들의 모습이 한 폭에 그림이 되어 젊은 날에 우리를 보는 것 같다 신나는 음악을 함께 공감하는 우리들의 추억 바다를 가로막은 긴 방파제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겨울 햇살이 바닷물에 비춘 것처럼 우리들의 음악이 되어 오늘의 시가 되어 황홀한 낭만에 취해본다.2008년

특급열차

특급 열차 쉬지 않고 가는 열차 어디쯤 가고 있나요? 먼 줄만 알았는데 인생 열차는 고속으로 달리었나요? 쉬엄쉬엄 가는 완행열차인 줄만 알았는데 뭐 그리 바쁘다고 그렇게 빨리 달리었나요? 돌아볼 시간도 없이 아쉬움만 남겨놓고 먼 길을 달려왔나요? 나뭇잎이 진자리는 봄이 오면 새 생명이 움트는데 녹 슬은 기계도 기름을 부어주면 돌아가는데 리콜할 수 없는 인생 열차 꽃이 피었다가 시드는 것처럼 고왔던 단풍은 낙엽이 되어가도 수없이 부디 치며 시대 따라 나만의 타고 가는 특급 열차였습니다. 2010년

맨드라미

맨드라미 향기도 없고 볼품없는 맨드라미 장독대에 자주색 꽃이었건만 지금은 어디에 숨었는지 찾기가 힘들더라. 꽃도 사람도 유행의 한순간 인기가 유행에 물들다가 바래면 없애 버리지만 훗날 그리워지는 꽃의 이름 맨드라미 요즘 애들은 모를 것이다. 새로 나온 꽃들의 잔치는 해마다 다른 신품종이 이름도 모르고 그냥 예쁘다는데 옛날 사람은 옛날의 꽃 이름을 찾아보는 맨드라미.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며 햇살 품은 숲 이끼 두른 바위 사이 심연은 푸르다 못해 짙푸르게 물들어버린 초가을 산아 매미 따라와서 매미 가면 떠나가는 늦여름 풀벌레 새벽안개 맞으며 구슬피 울어대는 문턱에서 비바람에 지쳐 쓰러진 가지마다 일어나려 용쓰는데 창문 틈 사이 스며대는 가을 냄새 소녀의 볼처럼 빨갛게 익어버린 산딸기 알알이 익어가는 자주색 포도송이 땅거미 지면 별 보며 여름 이야기 더위와 장마 동반하다 푸른 숲에 고운 옷 준비하고 먼 길 떠나려 한다. 여름 그림 한 폭을 가슴에 남긴 채 어느덧 창문을 닫아놓은 여름을 보내고 있다 초가을날에

흐름

흐름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생각도 흐름 속에 맞춰가고 행동도 흐름 속에 따라갔습니다. 마음은 흐름을 사랑하였습니다. 흐름에 맞춰가지 못하면 부족한 삶으로 여겼습니다. 의지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흐름 속에 묻혀 어디로 가는지 길을 잃고 헤매었습니다. 목이 말라 갈증 속에 물이 보였습니다. 물도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흐르기 때문에 썩지 않고 맑은 물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흐름도 유행 따라가지만 물 흐르듯이 깨끗한 흐름으로 갈 때 중심을 찾게 해주었습니다 본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흐름에 맞추다 보니 잊고 있었던 것들이 많았습니다 흐름을 따라가되 분별할 줄 알 아야 자유롭다는 것을 지금 배우고 있습니다. 임일순

바람부는 날

바람 부는 날 사나운 바람이 붑니다. 태풍인가 봅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일고 수풀이 흔들립니다. 눈만 뜨면 보이던 창밖 나무의 이파리가 떨어져 날립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가지가 부러질까 염려됩니다. 풀잎들이 엎드려 일어서지 못합니다. 밭고랑 콩 이파리마다 열매를 맺으려는데 비켜 가면 좋겠습니다. 노점상들이 물건을 펴놨다가 다시 보따리에 담습니다. 하늘을 쳐다봅니다. 하늘은 더 무섭게 검은 구름과 바람이 불어 대고 있습니다. 날라가 버릴 것 같은 거리에 바쁘게 바람을 헤치고 걷는 이들이 보입니다. 그 속에 끼어서 함께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누군가 그렇게 걷고 있습니다. 그렇게 걷고 있습니다.

원두막

원두막 파란 이파리 헤치면 멋대로 삐 뚫린 개구리참외 호박 참외 오이 참외 보송보송한 솜털 입고 빗장 열며 방긋 반기네 바람 솔솔 햇빛 솔솔 원두막이 춤추고 매미 소리 뜨름뜨름 여름을 이고 있네 풀 내음 흙내음 거름 내음 바람 내음 코 끗 스쳐도 시골이니 그러려니 시골 냄새려니 세월과 함께 원두막은 사라지고 방갈로 한 채가 우두커니 사람들 쉼터로 그리운 동심의 시절 오래전 원두막에 앉아있네 어린 시절도 원두막에 있네. 그렇게 앉아있네 임일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