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하느님 사랑/주님의 말씀.나의 생각.

삼위 일체 <이름>믿음 <만남>

우리들 이야기 2021. 1. 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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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보이지 않는 삼위일체

저마다의 생각과 현실에서 살아가며

배불러 살만하니 안 보이는 천상을

그리며 삼위일체를 풀어보려 하나 봅니다.

삼위는 보이지 않아도 살아감이

삼위일체가 아닌 것이 어디 있나요?

누구의 아버지가 아들 할아버지

엄마의 딸이자 아내고 엄마나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한 몸이 세 위격

그 안에 성령의  이름 역할을 하여주고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의 몸이지만

세 위격을 지녔듯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느끼는 대로 삼위일체 안 보여도

생각이 세상을 보듯이 일상적인 생활에서

엄마와 자식 사이에도 성령의 그 안에

존재할 때만 삼위일체가 되는 거지 마음이

흩어지면 성령이 날아간 것이었습니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세상에도

아리송한 것이 있지만 알려 안 하고

알이나 닭이나 취향대로 먹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지체는 하나지만 위격은

주어진 이름이 숫자가 되는 것처럼

세 위격 보다 더 많은 이름을

가지기도 하지만 삼위일체가 세상에서도

주어진 보편적인 이름이었습니다.

위치를 정하지 않고 둥근 식탁

의자에 앉으신 것은 높고 낮음이 없이

한 몸이라는 것을 그림으로지만

보여 주었고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가르치신 것은 먼 날을 내다보는 구세주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거룩한 말씀이라 성경이라 하였고

말씀은 비유기에 생각대로 푼다면

보편적으로 살아감을 평준으로 할 때

미완성으로 살기에 희망을 찾아

사람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세상을 돌게하고

일상의 것들이 성령이 함께 하시기에

편하게 하여주었습니다. 데레사

 

삼위일체

삼위일체론에서 핵심은 사실 어떻게 하면

하늘에 계신 창조주 아버지

이땅에 아기예수로 오신 그리스도

세상에 협력자로 보내주신 성령이

셋이면서 한몸이고 성령의 마음이 하나기에

한몸이면서 셋이기에 삼위일체

나무가 뿌리가 있고 줄기가 있듯이

이세상 살아있는 무엇도 삼위일체가 아닌것은 없어요.

도랑물이 강으로 흘러가고 모여서 바다가 되듯이

두물머리라고 직접 강물을 보았습니다.

남한강 북한강이 만난 두물머리

흘러가서 한강에 모여 큰 강을 이루고

시내의 도랑물이 흘러가서 냇가에서

만나고 삼등분해서 갈러놓으며 샘물을 만들지만

내용은 물이듯이 서로 분리되지 않아

샘이 시내가 아니고 도랑물이 아니듯

성부 성자 를 연결시켜주는 성령 그림에서 보면

비둘기가 성령으로 가운데서 두마음속에

하나로 들어있었습니다.

보이지 않으니 삼위일체지만 세상에선 삼위일체가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브랜드가 믿음이 되어가는 현실에서 

어느것도 하나가 단일로 된것은 없고

동전도 앞뒤가 달라도 돈이고 숫자나 글도

다르지만 글이듯이  의혹을 가지면 완벽한 것은

하나도 없기에 미완성이라하나봅니다.

삼위일체를 왜 알려고 하는지요?

그냥 따르고 닮으면 되는 건데 모든

존재물이 잘 쓰이기도 하고 소멸하는

유한의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무한의 세상을

살아있는 생명들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심판하는 성부 성자  의지대로

가는 마음이 성령이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어도 현실에서  양심이 안녕하냐고

이풍진 세상을 살며 한알의 씨앗이 되는 것이

삼위일체였습니다.

너무알려고 하지말고 닮으라고 신앙의 

주어지듯이 믿는만큼 얻는다고

좌와자천으로 자기를 알리는 세상에서

한번도 그리스도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네 믿음이 이루어졌다 하시며

내세우지 않았듯이 믿음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비유니까 노래로 영화로 생각으로 소설속에

등장하면서 자기들의 생각대로 꾸미는

위엄이 있으시면서도 다정한 분

말씀으로 이루어진 삼위일체는 세상이

없어져도 한점  한 획도 그대로 남아있다니

우리도 신비의 세계에 갈수있다는

희망이 신앙이 아닌가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신적 위격들 삼위일체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께 던지는 메세지 서로 함께

그리고  모두 안에서 네가 아닌 나다 라는

공동체안에 들어 있으라고 

성부 성자 아버지 아들 하나의 몸이 마음인

성령이 세위격으로 표현하는 것이니  

구분되어있지만 분리되지 않고

위격은 혼합되지 않는 삼위일체 저마다의 생각이

다르지만 제가 아는척 한 이야기입니다.lim

 

이름

아브람을 아브라함이라 고치면서

불러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은 이삭이라고 말씀속에서

족보가 되었고 그의 아들은 야곱 

야곱이 어스럼한 새벽에 누구와 씨름

그분은 바로 하느님이었습니다.

동이 트니 하느님이 야곱에게 지금부터는

네가 나를 이겼으니  너 서있는곳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하셨기에 지금까지

이스라엘로 부른다는데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성경의 말씀속에 들어있는 구절이었어요.

하느님이 야곱에게 지어준 이름 이스라엘

누구시냐고 물으니 내 이름은 <나> 다

하셨는데 인간이 지어드린 이름은 하느님

그 이름은 높이 부름이고 큰 이름이 되었습니다.

쉽게 잊어먹으니 적는것은 잘하지만

그때 뿐 성경 족보는 조금 지나면 생각이 안나고

기억하고 싶은것만  담아놓는 이기적이었습니다.

아픈 날들도 있지만 추억하고 싶은 날들이

오늘을 살게하고 그때그때마다 나에게

지어진 이름은 누구의 엄마지만 성당에서만

불러주는 이름은 데레사랍니다. 

 

 

이름

피렌체 출신 니켈라 젤로 작품 외형적인

모습은 못났지만 그사람의 그림은 신이 담긴 손

비탄 슬픔 조각으로 만들어진 성모가 죽은

예수님을 안은 모상 푸른색의 성모님 색을

내었다면 평화를 상징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은 죄 속에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고 율법은 기득권들이 편한 대로

만들었기에 고치려 하지만 그가 그린 그림은

만민이 볼수 있는 유럽 성지에 남아서 그의

이름이 유명해졌답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부활로 세상에 오시면서

어머니품에 안겨있는 그리스도 신이기전에

사람의 아들과 엄마 그아픔은 얼마나 크셨을까요?

그림에는 천상에서 보이는 평화의 예수가

옆이나 앞에서 보는 모습은 고통이라지요.

말씀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지만 내가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법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법을 안 지키는

사람들 그 이름은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

두 사람이 교리를 받는데 한 사람은 개종하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은 종교를 가지고 싶어서 덩달아 받았습니다.

개신교는 교리가 없어도 천주교는 교리를 받고 세례가

주어지니 문턱이 더 높기에 큰맘 먹지 않으면

쉽게 넘지 못하고 도중하차 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개신교에 다니던 사람은 뭐가 뭔지 잘 몰라도 믿음이

있어 교리 받은 것을 중요 한데는 밑줄 치면서 알려고

관심을 보였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평가하면서

관심이 없어 그대로 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오셨다지만 믿음이 먼저일까?

사랑이 먼저일까? 믿음이 없는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믿음이 깨지면 사랑은 떠나갔습니다.

한참이 지나고 보니 한 사람은 쉬고 개종한 사람은

다시 교리를 받아 부부가 세례받고 잘 다니어

믿음이 중독되어서 그 친구는 자매가 되었답니다

 

만남

어릴 때 친구 집에 갔는데 벽에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발견하고 너무 처참해서 저런 교회는

안 다녀야지 속으로 마음을 가졌는데 어쩌다 보니

엄마가 의지하러 다닌 곳이 공소이며 주님 계신 곳이었습니다.

아마 주님이라면 힘든 고민을 다 풀어줄 구세주라고

믿고 주님을 알아 갈려고 최선을 다했으리라 생각되네요.

엄마의 마음은 잘 몰라도 완전히 주님에게 빠졌는지

아니면 교회에 빠졌는지 교회로 인도한 사람을 믿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니 주님의 부르심이었으며

엄마가 성당의 다닌다는 게 자랑스러웠습니다

보이는 세상과 안 보이는 말씀에서 갈등하며 한 번도

주님을 믿으라 권하지는 않았으니 엄마는 그때도 언젠가는

주님이 부르시기를 기다리었나 봅니다.

내 여동생은 세례받았지만 나는 엄마와 떨어져

기회가 없었는데 결혼 날짜를 잡고 내 남동생을 보레영세

시킨다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공소에 갔는데 따라갔습니다.

훤하고 멋있는 젊은 신부님 왜 결혼도 안 하는 신부가 되었지

주님의 꼬임에 빠졌구나.

멋대로 생각하고 엄마 딸로서 잘 보이려 했나?

아니면 내숭이었나 나도 그때 그 애를 잘 모르겠습니다.

엄마가 얼마 안 있으면 대천으로 시집간다고 하니 반갑다고

바지씨 하고 성당에 나오라고 해서 대답했는데

그 후로 까마득히 그 신부님과 약속은 잊어버리고

몇 분의 신부님이 자리를 바꾸고 나서 교리 받으러 성당 문턱을

넘던 날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나는 완전히 천상의 사람이구나.

나의 생활을 청소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만나는 기대가 컸습니다.

천상이 마음이라면 보이는 현실의 세상에서 늘 갈등하며 주님이

귀찮지만 주님의 지어주신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책임으로

다니면서 바라는 나의 기도는 감사와 고마움을 모르고 상황에 대한

그때의 욕심이었습니다

성모 승천 날 새로 태어나고 그 더운 여름 아이들 둘 데리고

유아 영세를 시켰기에 그 후로 하나하나 주님의 사람 되어

저희 가정은 성가정이 되었으니 주님의 부르심은 참 오묘하였습니다.

 

 

묵상

인간의 탈을 쓰고 신비를 드러내는 것

계시의 오묘함 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요?

사랑의 깊이도 깊어지고 나의 삶을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하시니까 그리스도께

맡기고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역사를 잃어버리니 적어는 놓았지만

묵상할때만 궁금해서 보니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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