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이야기 <믿음 온유 사랑>

나의 글 1409

미장원.인간다움

미장원 어젯밤 묵 가질러온 막내시누이가 언니 머리가 왜 이래 하길래 오늘 파마했어 하니 다 풀어졌네 하니까 남편이 드라이로 피었다 하였으며 시누이는 그 미장원 여자를 푼수라하며. 언니 게하고는 말도 석지마 하였는데 시누이가 가고나니 남편말이 머리를 성의껏 하며 잘 만진다고 하였다. 인간다움 살다보면 예기치 않은 아쉬움이 있어 후회를 하며 삶에서 경험을 얻었다. 살다보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였는데 잘 살라는 교훈 이었으며 사람도 아녀 인간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이런말은 듣지않는 삶을 살아야겠다. 피할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을 받아들이며 온전하지 못한 나의 일상이라도 그 안에서 잘못된 버릇을 고칠줄 알아갈 때 나이값을 하는 것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웃는얼굴에 침 못뱉는다고 내가 먼저 아는체..

추억이 머문곳

자연에서 보이지 않아도 철이 바뀌는지 새싹이 돋아나려 기온이 올라가는 봄 육개월에 한번씩 파마를 하는 것은 머리가 풀이 죽어 힘이없기 때문에 파마한다. 파마하고 나면 다듬어 주는데 잔머리 카락이 숨어서 꼭 머리를 감는데 파마하고 샴푸 쓰지 않는다해서 오늘아침 목욕하며 샴푸를 했다. 사는 것은 젊을때나 늙어서나 현실에 있으며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기 싫으며 진흑에 빠지고 싶지 않지만 연꽃도 진흑속에서 피어나고 낭떠러지 아래는 맑은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고마움 기쁨과 고통은 함께 가지만 고통이 머물지않기에 살다보면 만족함이 찾아왔다. 긍정과 부정은 생각하는대로 답이기에 고통속에서도 이만하면 다행이라고 피할수 없기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작은 만족을 크게 부풀리다보니 사는 것이 고마움이었다. 추억이 머문곳 오..

둘이 하나

둘이 하나 살다보면 하나라고 생각한 그대가 생각이 달라 실망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더 옳을 때가 있어 배웠다. 두마음이 중요한 일엔 하나임을 느낄 때도 많으니 오랜 세월이 흘러간 자리는 환경과 생각이 다른 우리라는 둘을 하나로 가게 하였다. 갈수록 두 사람이 만든 일이 많아지고 믿을 수 있는 편한 우리가 되었다. 나가 아니고 우리일때 행복한 것이 많은 것은 둘이 하나니까.. 향기 비바람이 불어와도 꽃은피고 빛바랜 낙엽이 되어가도 고왔던 단풍만을 생각한다. 세월이 가는 만큼 서산은 가까워도 동트는 아침만을 기억하는 그때의 유행에 맞춰 웃고 울던 우리들의 추억 아름답던 장미꽃도 언젠가는 시들고 기억 속에 향기만 남듯이 나의 이익보다는 서로 배려하는 고운향기를 남기고 싶다. 나의 노을 세찬 비바람도..

취나물

취나물 오래전에 취나물을 제배하여 캐러간 날들이 추억이 되었다. 나물들이 연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이 제철이며 시누이가 아는 친구네가 취나물 장사한다고 한박스를 가져와서 다듬고 여기에 남겨놓고 가져갔기에 삶아서 무치었는데 맛이 기가 막히었다. 겨울이 간다는 신호도 없이 봄이찾아와서 나는 봄을 맛보았다. 하늘이 부연하게 안개는 끼었어도 기온이 봄이라 여기저기 세상은 제일먼저 나무꽃이 허드러지게 피고 맑은하늘 아지랑이 감도는 바깥세상인데 봄꽃이 피는줄 모른채 봄은 이미 와있다. 내봄 논들이 펼쳐있던 도시와 시골사이 전부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길가에 뚝에서는 봄바람에 쑥이 춤추고 달래냉이 봄 채소들이 연두색 옷입었다. 쑥떡 해서 나눠 먹던 인심이 넘치었고 남들 흉 안보면 인정 안하던 청춘들이 가까이 살아도 서로의..

우리들의 삶

우리들의 삶 아등바등 살아도 건강이 먼저기에 3년후에 내집으로 이사간다는 아들부부 미리 주위를 보고 왔다니 들떠있는 그맘 알것같다. 한치앞도 안보이는 삶이라 희망을 품을 수 있기에 아푸지 말고 건강하게 살면서 새집들어갈 때 약속도 했기에 지키자 하니 좋아하는 것이 아이같았다. 너와 나 공동의 부부가 때에 따라서는 너는 너 나는 나로 미울때는 남이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만 직으면 남이 된다하더니 부부가 그려놓은 테두리 선을 넘지 안을 때 공동이였고 그 선을 넘으면 남남이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맞춰가면서 부부란 한곳을 바라보는 공동체였다. 목소리나 눈빛으로 속을 꽤뚫어보는 부부사이 하나이지만 둘이기에 서로의 감정을 이해할 때 쳐놓은 테두리 안에서 사는..

나이.고마운날

나이 못먹을 것은 나이라더니 나이는 그만큼 세월을 많이 보냈다는 것이었다 날만새면 운동하던 남편이 감기로 못 나가니 들랑날랑하며 운동할수 있던 날들이 고마웠고 안마의자에 앉아서 운동을 하는지 소리가 난다. 늘 나만가지고 걱정하더니 나는 뒷전으로하고 자기몸을 챙기는게 귀엽기도하다. 천년만년 건강할줄 알고 뼈빠지게 일하며 머리를 많이 써서 터져버렸는지 꼭 미친나같다. 나도 내가 맘이 안들 때 생각의 틀을 바꾸고 싶지만 타고난 나의 운명이고 이만하면 다행이라 믿으니 고마운날들이 많았다. 언제 부턴가 나도 모르게 별일 없는 것이 모두의 안녕이었고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오는 길이 여유롭고 편하니 그러기에 세월의 나이였다 고마운 삶 한때는 불러주는 이들이 많아 갈곳이 많아서 귀찮기도 했지만 필요없는 내가 되고보니 필..

건강한 자존심

건강한 자존심 나는 하늘인줄만 알았는데 그안에 자존심과 자존감이 함께 있었다. 어느날 자존심이 땅바닥으로 떨어지었는데 생각을 낮추니 자존감이 생기어 땅위에 사는 이들속에 함께 살고 있었다. 예기치 않은 아픈상처를 끌어앉고 아쉬움속에 살다보니 허무와 시간을 만들었다. 늦 봄바람에 마른 꽃잎이 떨어지던 날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일이 속상했지만 비 그치면 무지개가 피듯이 겨울은 봄을 앉고 오는 것처럼 인생의 삶도 같았으며 한치앞도 안 보이기에 주어진 내 시간이 조급 해지고 이무것도 아닌 자존심 내려놓고 잃어버렸던 자존감을 뒤찾아본다. 이런 꼴로 오래 살다보니 내곁에 사람들이 떠나간 것이 아니고 내가 떠나갔으며 자존감을 만들었기에 다 잃은 것은 아니었다.

세월 길

세월 길 세월의 나이가 누구는 건강하게 젊어보이고 누구는 갈수록 더 볼품없는 세월이었다. 환절기를 모르고 사는 젊은이 같더니 그제부터 몸에 이상이 왔는지 몸을 추스르지 못하고 누면 기침이 나와 안마의자에 기대고 자며 못먹을 건 나이라고 건강자랑허더니 작은 병도 이기지 못한다. 누구나 먹는 나이 세월의 길을 가고 오는 한길 계곡이 깊을수록 봉우리는 높아도 한 길이었으며 또 봉우리가 높을수록 계곡도 깊듯이 한 길을 오르고 내려오는 삶이라도 저마다의 자유로운 영혼이랄까? 지맘대로지만 자유에도 테두리가 있기에 그 테두리가 처있는 길안에서만 자유를 누리며 시대따라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어릴땐 한우물만 파라고 하더니 현 시대는 다양성이었다. 이것저것 다 할줄 알아야 불러주는 이가 많으며 같은길이 운동하는 길이라고..

나의 이야기들 46.47.48

나의 이야기들 산다는 건 어쩌면 벌판을 혼자서 가고있나? 주위를 보노라면 다 현 시대를 지나가고 있었다. 봄이면 햇살받아 반짝이는 잔 물결들이 여름에는 더위를 식혀주는 수영장이 되고 겨울이면 꽁꽁 얼어 붙으면 썰매장으로. 어린이가 커가면서 청춘은 생각도 부풀었고 젊은날의 사랑은 고운 단풍처럼 예뻤는데 시들어 아름다운 추억만 남기었다. 생각대로 되는 일이 멀어지고 나에게 한 약속도 지키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으며. 계절이 바뀌면 허무가 쌓이고 조급 해지니 언젠가는 세상과의 이별이 있지만 그시간을 모르기에 사는동안 삶의 만족을 찾으리. 사는 것은 꽃피는 봄에서 삼라만상이 얼어붙는 한겨울까지 가슴에는 얼음위에 동동 떠있는 꽃같은 삶이라 초저녁에 떠있는 별처럼 투명하지는 않아도 어둠이 깊어지면 밝아지어 또렷한 ..

현실이 삶

현실이 삶 내가 누구인지 미쳤다하며 나를 구박하였고 지친 삶에서 아우성치다가 더큰 일이 닥치니 지쳐있던 그때가 그리움이 된줄 알았는데 또 그때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으니 변덕이 팥죽끓듯한다. 내가 이모양이라도 지금이 최고의 순간이라고 하니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도 오지 않은 날이기에 오늘만이 현실이라 중요성을 깨달았다. 김치 어제는 막내 시누이가 교회서 오이와 파를 가져 왔는데 오이는 장아찌 담구고 파는 어제 까놓았다 오늘 김치를 담았다. 남편이 철 바뀔때마다 감기가 오나 몸이 찌푸등하대서 심난하였는데 병원에 다녀와서 파김치 담구고 안마기 의자 앉아서 코고는 소리가 나니 잠을 자나보다.